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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뭐길래] 책은 정말 ‘개미 지옥’이죠 – 김여진 편

당신이 읽는 책이 궁금해요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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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 보면 또 저자가 인용하는 책들이 포도송이처럼 줄줄 나오고요. 정말 개미지옥이죠. 끝도 없어요. 염두에 두고 있던 책을 각기 다른 두 명에서 추천 받으면 그때는 “아, 이제는 때가 왔다.” 하면서 바로 주문합니다. (2019. 05.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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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가 미니 인터뷰 코너 ‘책이 뭐길래’를 매주 연재합니다. 책을 꾸준하게 읽는 독자들에게 간단한 질문을 드립니다. 심각하지 않은 독서를 지향합니다. 즐기는 독서를 지향합니다. 자신의 책 취향을 가볍게 밝힐 수 있는 분들을 찾아갑니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일하는 교사 김여진 씨는 측근들이 인정한 ‘책 중독자’. 스스로를 ‘책 수집가’로 부르기도 한다. 평생 책을 사랑해온 김여진 씨는 책을 많이 읽기도 하지만 무서울 정도로 많이 사기도 한다. 지출의 50% 정도가 책일 정도. 때때로 주변 사람들이 “책 값은 어떻게 감당해?”라고 물으면 “나는 뚜벅이라서, 자동차를 안 사는 대신에 책이야!”라고 답하며 합리화를 하곤 한다. 김여진 씨의 책 중독 생활은 재작년부터 본격적으로 동화책과 그림책에 푹 빠져들기 시작하면서 인생이 더 즐거워졌다.

 

최근에는 ‘좋아서 하는 그림책 연구회’ 운영진으로 활동 중이다. 모집 공고를 보고 지원서를 냈는데 운 좋게 합격됐고 그림책 애호가들을 주기적으로 만나는 중이다. 멤버들은 매달 돌아가며 각기 다른 주제로 강의를 하고 있다. 처음에는 20명 정도 모이는 작은 모임이었지만 이제는 70명씩 모인다. 김여진 씨는 연구회 멤버들과 공저를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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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진 씨가 찍는 '책커' 사진

 

김여진 씨를 수식하는 또 다른 표현은 ‘책커’. 그는 SNS에 커피와 책 사진을 꾸준히 올리고 있다. SNS에서 그를 만나는 사람들은 ‘아, 저 사람은 매일 책커 하는 사람!’이라고 인식한다.

 

지금 읽고 있는 책과 최근에 좋게 읽은 책을 소개해주세요.

 

첫 번째 책은  인생 100 그림책』  입니다. 제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았어요. 그림책이라고 했을 때 우리가 기대하는 게 있잖아요? 16장면 정도에서 기승전결을 담고, 스토리를 쭉 풀어내는. 이 책은 정말 0세부터 100세까지 한 장면, 한 장면 인생을 보여줘요.

주인공이 한 명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그냥 다양한 인간군상의 각각의 나이에 따른 모습들을요. 그림책 창작을 함께 공부하는 사람들과 둥글게 둘러앉아 소리 내면서 읽었는데, 울컥하는 순간들이 있었어요. “두 페이지 앞으로 돌려봐 줄래요? 내가 52세거든.” 하면서 자기 나이의 페이지엔 무슨 그림이, 무슨 글과 그려져 있을지 궁금해들 하시고요. 엄청난 퀄러티의 그림에 많은 페이지, 양장본으로 나왔는데 가격이 말도 안 되게 싸요. 이래갖고 출판사에서 남는 게 있을까? 괜한 걱정도 했었습니다. (웃음)

 

두 번째로 소개하고 싶은 책은  『사라질 것 같은 세계의 말』  입니다. 세상엔 얼마나 많은 언어들이 있을까, 그 중 내가 아는 언어는 얼마나 될까 하는 단순한 호기심으로 구매한 책이었는데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선 정말 주변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왼쪽 페이지엔 소수 언어의 아름다운 단어 하나와 그에 걸맞는 아름다운 일러스트레이션이 오른쪽 페이지엔 숫자가 하나 찍혀 있습니다.

첫 페이지의 숫자는 900,000이었죠. 90만.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의 숫자입니다. 웨일스어, 바스크어도 나와서 ‘아는 언어도 있구나.’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가기 시작했죠. 숫자가 10만, 3만. 숫자가 점점 작아지는데 너무 초조해 지는 거예요. 이제 남은 페이지에 소개되는 언어들은 얼마나 적은 사람들이 사용한단 말인가? 페이지를 넘길수록 그 초조함이 더해지죠. 1만, 5천, 1천, 5백……. 급기야 언어 사용 인구가 두자리에 불과한 언어가 소개되고, 10, 5를 지나 0이라는 숫자가 눈에 들어왔을 때는 숨이 막힐 것 같았습니다. “대안다만 혼성어 - 가장 마지막 세대의 언어 사용자가 2009년과 2010년에 세상을 떠나며 자유로운 작문이 가능한 언어 사용자가 사라지고 말았다.“ 난생 처음 보는 낯선 언어들의 아름다움과 그 희소함을 함께 알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두 번째 책으로 추천해 보았습니다.

 

세 번째 책은  『시 읽는 법』  인데요. 정말 좋았어요. 기차나 비행기를 타고 멀리 이동할 때 꼭 책을 챙기는데요. 그때 짐 무게 제한 때문에 정말 고민을 많이 하거든요. 무슨 책을, 몇 권 가져 가야 하나! 짐을 줄여 보겠다며 시집을 챙긴 적이 있었는데, 너무너무 안 읽히는 거예요. 도저히 읽을 수가 없어서 아주 두꺼운 소설을 꺼냈는데 오히려 술술 읽히더라고요. 얇은 시집, 짧은 시. 도대체 왜 그렇게 어렵고 안 읽히는지 정말 궁금하고 오기가 생겨서 더욱 알고 싶어졌던 참이었어요. 그때 마침 만난 게 이 책이었죠. 혼자서는 펼쳐 보지 않을 것 같은 여러 시를 매력적으로 소개하며 독자들을 시 속으로 끌어당겨요. 시가 왜 아름다운지, 어떻게 읽으면 더 재미있는지 속속들이 알려줘요. 시 자체로도 좋지만, 역사적 맥락 속에서 시를 읽으면 얼마나 그 작품이 입체적으로 보이는지도 알게 되고요. 이 책을 읽고 같은 작가의 『시의 문장들』  까지 읽으면 금상첨화! 덕분에 요즘은 이 시집, 저 시집, 마음껏 탐하며 지내고 있어요. 

 


어떤 계기로 선택하게 되었나요?

좋은 그림책을 아낌없이 출간해 주는 사계절의 그림책이잖아요. 페이스북 페이지를 늘 주시하고 있죠. 게다가 주변에 그림책 애호가들이 많아서 좋은 책이 나오면 분위기가 들썩들썩해요. 놓칠 수가 없죠!  『사라질 것 같은 세계의 말』  은 정말 우연히 인스타그램에서 발견했어요.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여기서 우연히 찾지 못했으면 평생 이 책을 모르고 지나갔을 수도 있겠다. 저처럼 한 달에 책을 50만 원 넘게 사는 사람도 모르는 책이 많잖아요. 훅 지나가는 책 소개 하나도 늘 소중하죠. 『시 읽는 법』  은 제가 가장 사랑하는 유유 출판사의 책이에요.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책을 내나?’ 싶을 정도로 취향 저격인 책을 많이 내서 늘 마음이 설레죠.

 

평소 책을 선택할 때, 기준은 무엇인가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은 당연히 찾아서 보고요. 인스타그램, 페이스북의 책 덕후들에게서도 새로운 책을 많이 만나죠. 예스24 팟캐스트 <책읽아웃>은 당연하고 <요조, 장강명의 책 이게 뭐라고>도 빠지지 않고 들어요. <이동진의 빨간 책방>도 애청했는데, 이젠 없어졌죠. 책을 읽다 보면 또 저자가 인용하는 책들이 포도송이처럼 줄줄 나오고요. 정말 개미지옥이죠. 끝도 없어요. 염두에 두고 있던 책을 각기 다른 두 명에서 추천 받으면 그때는 “아, 이제는 때가 왔다.” 하면서 바로 주문합니다. 메모 대신에 일단 인터넷 서점 장바구니에 쏙 집어 넣어요.(웃음) 일방적으로 아무 책이나 선물 받는 것보다 책 추천 받는 것을 훨씬 좋아합니다. 제가 직접 고르는 기쁨이 크잖아요?


어떤 책을 볼 때, 특별히 반갑나요?

잊히는 것, 작고 보잘 것 없는 것, 중요하지 않은 것을 기록한 글을 읽는 것을 좋아해요. 몸소 땀 흘리는 이야기도 정말 사랑하고요. 무척 대단하고 멋지고 성공하는 이야기보다 더 흥미로운 건 어떻게 실패했는지, 어떻게 허우적거렸는지 털어놓는 이야기죠. 최근엔 통증과 질병, 아픔을 얘기하는 책들을 집중적으로 찾아서 읽고 있어요. 황승택 기자의  『저는, 암병동 특파원입니다』  , 아서 프랭크의 『아픈 몸을 살다』  , 송효정 외 4분이 인터뷰를 엮은 책, 『나를 보라, 있는 그대로 - 화상경험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등이 최근에 저를 뒤흔들어던 책입니다. 고마움을 넘어 숭고함이 느껴지더군요.

책을 읽기 가장 좋은 공간은 어디라고 생각하시나요?

역시 공간을 가리지 않는 편이에요.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는 당연하고, 엘리베이터 기다릴 때나 횡단보도에서 파란 불 기다릴 때도 봐요. 조명이 부드럽고 높이가 적당한 의자와 테이블이 있는 카페에 가장 많이 가죠. 그런데 저만 좋아하는 장소가 한 군데 있긴 해요. 혹, 저랑 비슷한 분이 계시려나요? 버스 뒤편 자리 중에서 약간 공간이 넓고, 올라타다시피 해야 하는 공간이 있어요. 바퀴 윗자리? 햇살 받으면서 그 자리에서 책을 읽으면 진짜 아늑해요. 1시간씩 이동해야 하면 책을 끊기지 않고 읽을 수 있어서 행복해지죠.

매월 10만 원의 독서지원금이 나온다면, 어떤 분야의 책을 많이 사실 것 같나요?

한국에 잘 소개되지 않는 언어권의 그림책들을 구해서 읽고 싶어요. 영어 그림책이나 일본어 그림책은 원서를 사서 읽기도 하는데, 포르투갈의 도시 포르투에서 <렐루 서점>에 방문했다가 스페인어로 된 그림책을 한 권 샀거든요. 한국에선  『제인에어와 여우, 그리고 나』   라는 제목으로 번역돼 있고요. 더듬더듬 부족한 스페인어로 해석해 가며 읽는 기쁨이 정말 컸어요. 루시드폴이 보사노바가 좋아서 포르투갈어에 빠져들었듯이, 그림책을 통해서 새로운 언어를 만났으면 하는 희망이 가슴 어딘가에 간질간질 도사리고 있어요.

신간을 기다리는 작가가 있나요?


김중혁, 빌 브라이슨의 특유의 유머를 좋아해요. 요즘 말로 하자면 드립(?)을 쉴새 없이 치는데, 그게 또 절묘하게 맞아들어가는 느낌이죠. 소설도 에세이도 둘 다 기 막히게 잘 쓰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저 두 분의 작가가 그런 실없는 농담을 죽을 때까지 해줬으면 좋겠어요. 그건 엄청난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제인 에어와 여우, 그리고 나패니 브리트 글 / 이자벨 아르스노 그림 / 천미나 역 | 책과콩나무
움츠렸던 헬레네가 용기를 되찾는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서는, 헬레네의 밝아진 표정은 물론이고, 하나둘 채색이 된 배경을 통해 헬레네의 마음이 변화한 모습까지도 온전히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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