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거 : 유관순 이야기> 서대문 형무소 8호실에서는 무슨 일이?

하나뿐인 목숨, 내가 바라는 것에 맘껏 쓰다 죽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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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유관순 이야기>처럼 특정 시기, 특정한 상황에 갇힌 이의 사연을 건조하게 따라가 착실하게 정보라도 제공하는 것이 더 건강하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2019. 0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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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항거>의 한장면

 


<항거: 유관순 이야기>(이하 ‘<유관순 이야기>’)는 영화의 완성도 유무를 떠나서 개인적으로 흥미를 끄는 구석이 있다. 3.1 만세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백 주년의 해를 기념해 나온 영화라는 점은 차치하고 부제가 달린 영화는 기사를 쓸 때 첫 언급을 제외하면 이후에는 본제로만 지칭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나는 이 글에서는 ‘항거’ 대신 <유관순 이야기>라고 부제를 본제처럼 쓸 생각이다.

 

‘항거’의 제목은 내게는 자연스럽게 <헝거>(2008)를 떠올리게 한다. <헝거> 는 1981년 메이즈 교도소에서 단식(hunger) 투쟁을 벌이다 66일 만에 사망한 IRA(아일랜드 공화군) 소속 보비 샌즈(마이클 패스벤더)의 실제 옥중 투쟁을 소재로 한다. 시대와 배경과 인물이 다를 뿐이지 <유관순 이야기>는 1919년 만세운동 후 서대문 옥사에 투옥된 유관순 열사의 이후 1년 동안의 옥중 투쟁을 다룬다는 점에서 노골적인 유사성을 드러낸다.

 

그런 심증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이 영화의 제목으로 유관순이 전면에 나서는 <유관순 이야기>가 더 적합하지 않나 생각하는데 감독과 제작진은 다른 판단이 있었던 듯하다. 좋은 쪽으로 해석하자면, 유관순이 중심에 서고 유관순 위주로 흐르지만, 연대와 평등이라는 측면에서 <유관순 이야기>는 여성들의 이야기라는 점도 중요한 요소로 포함할 수 있을 듯하다. 그런 부분이 유관순 개인을 본제에 내세우지 않고 부제로 돌린 것이 아닌가, 짐작할 따름이다.

 

언급했듯 <유관순 이야기>는 유관순 열사의 옥중 1년의 기간을 다루면서 8호실에 함께 갇혔던 30여 명 여성들의 사연도 비중이 높진 않되 인상이 남는 방식으로 드러낸다. 유관순 열사는 서대문 형무소로 잡혀 와 그 유명한 흑백사진을 찍은 후 8호실에 감금된다. 그녀를 보자 한동네에서 살아 안면이 있다던 어느 아주머니는 너 때문에 우리 귀한 아들이 만세 운동을 벌이다가 목숨을 잃었다며 증오의 말을 쏟아낸다.

 

그때 유관순 대신 나서 만세 운동의 정당성을 설파하는 이는 유관순의 이화학당 선배 권애라(김예은)와 기생 김향화(김새벽)와 다방 종업원 옥이(정하담)다. 내가 주목하고 싶은 건 이들의 신분과 이들 대부분이 신분 문제를 애써 무시하는 태도와 그럼으로써 최종적으로 목적하려는 바다. 8호실에 갇힌 30여 명 여성의 사연과 신분은 제각각일지 몰라도 이들이 바라는 건 조국의 독립과 감옥에서 풀려나는 것이었다.

 

관련해 인상적으로 다가온 장면은 강강수월래를 하듯 좁은 감방을 원으로 도는 이들의 의식(儀式) 아닌 의식이다. 이 광경이 낯선 유관순에게 김향화는 “서 있기만 하면 발목이 부어. 천천히 돌면 나을 거야.” 설명하며 이 움직임에 동참할 것을 권유한다. 좁은 감방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 전략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생존은 생명이 걸린 절박한 문제이기에 그대로 태도에 반영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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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항거>의 한 장면

 

 

3평 남짓한 옥중에서 30여 명의 사람들이 원을 돈다? 이 광경이 경이적이었던 이유는 앞 사람의 어깨를 붙들거나 어깨 위치에 눈높이를 맞춰 대형을 지키려는 나란히의 가치를 보았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조국의 독립은 일본에 빼앗긴 국가의 주권을 가져오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전까지 황제가 주인인 나라였다면 이제는 신분의 높낮이로 사람을 가리지 않는 평등한 시민의 나라로서의 국가, 대한제국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건설이야말로 이들이 바라는 바였다. 그에 관한 열망을 느리지만, 멈추지 않는 원의 형태를 이뤄 도는 이들의 모습에서 읽을 수 있었다.

 

이를 읽어내는 것이 <유관순 이야기>가 목적한 바인지는 잘 모르겠다. 영화를 보고 나니 항거의 주체가 유관순을 필두로 한 여성들이었던 것 같은데 이들을 나란히의 선상에서 묘사하는 것 같지는 않다. “하나뿐인 목숨, 내가 바라는 것에 맘껏 쓰다 죽겠소!” 만세 운동을 주도하고 옥중에서도 그 의지를 꺾지 않는 유관순과 그런 유관순이 쓰러지지 않도록 보좌(?)하는 이들의 모습으로 행위의 중요성을 나누는 듯한 전개가 모순으로 다가온 까닭이다.

 

실은 원을 그리며 도는 광경도 건강을 잃지 않기 위한 행동으로 단순한 정보 제공의 차원이 아니었나 하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그의 차원에서 이 글 초반부에 언급한 제목의 본제와 부제의 의도도 영화를 봐서는 어떤 의미를 숨겨 놓았는지 전혀 알 길이 없는 것이다. 맥락을 심어놓기보다 3.1 만세운동 이후 1년 동안 벌어졌던 우리가 몰랐던 이야기를 정보의 의도로 제공하는 <유관순 이야기>는 ‘국뽕’은 피해도 감흥은 그리 크지 않는 인상을 남긴다.

 

한일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이에 편승하여 국민감정을 자극하는 영화는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차라리 <유관순 이야기>처럼 특정 시기, 특정한 상황에 갇힌 이의 사연을 건조하게 따라가 착실하게 정보라도 제공하는 것이 더 건강하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이를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역사적인 의미라도 짚어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이 글은 <유관순 이야기>에 관한 꿈보다 해몽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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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허남웅(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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