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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창작 수업에서 우리가 나누는 말들

우리들, 왜 시를 쓰고 싶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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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사람, 당신이 보낸 메일을 읽는다. 강을 건너며 어젯밤 쓴 시를 고치는 사람, 아름다운 뿌리를 내리느라 오늘도 바쁠 사람. 겨울의 끝에 와있다. (2019. 02. 20)

언스플래쉬.jpg

             언스플래쉬

 

 

겨울의 끝에 와있다. 이즈음 겨울은 사춘기를 겪는 아이 같다. 볕이 따뜻하네, 마음을 놓으려다 돌연 칼바람을 휘두르는 바람 때문에 애를 먹는다. 바람을 등지고 시 창작 수업을 하러 간다. 겨울에서 봄으로 계절이 건너가듯, 자기에게서 또 다른 자기로 건너가려는 사람이 있다. ‘시’라는 지팡이를 짚고 가려는 이들. 회사원, 백수, 대학원생, 모든 걸 내려놓고 1년간 시만 쓰겠다는 사람,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키우는 사람, 책을 낸 적이 있지만 제대로 써보고 싶다는 사람…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이들이 창작 수업을 들으러 온다. 시를 처음 써본다는 사람도, 오랫동안 썼지만 누군가에게 보여준 적은 없다는 사람도 있다. 제주에서 서울까지 매주 비행기를 타고 오던 사람도, 시를 외면하고 살아왔는데 써보니 빠져든다는 사람도 있다. 

 

이렇게 모인 우리들, 왜 시를 쓰고 싶은 걸까?

 

‘왜’라는 물음에 작아지는 게 시 쓰는 일이다. 시의 무용(無用)함 탓이다. 시는 어떤 필요에 대한 부응이 아니라 그저 하나의 존재다. 그러니 ‘무얼 위해’ 시를 쓰겠다는 사람도 없다. 시는 쓰는 자도 읽는 자도 애를 써야 흐르는 음악이다. 음악으로 그득 차있는 시집도 읽는 사람이 활을 잡고 글자를 연주하지 않으면, 이상한 기호로 이루어진 얇은 종이뭉치에 지나지 않는다. 시의 언어는 다른 방식으로 보고 말하라거나 숨은 그림을 찾아보라고 말한다. 이때 숨은 그림은 ‘스스로 만들어’ 찾아야 하기에 번거롭고 어렵다. 그런데 빠져들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희열과 충만함을 준다. 쓰는 이도 읽는 이도 열렬해져야 하는 일. 시로 충만함을 느끼고 싶은 이들이 옹기종기 모인다.

 

이 시는 어디에서 왔나요, 이 부분에선 음악이 느껴지지 않아요, 더 먼 곳에서 시작하는 게 어때요, 억지로 대상을 종이 위로 끌고 왔잖아요, 살아있는 언어가 없군요, 왜 다 말해줘요 듣고 싶지 않은데, 왜 안 말해줘요 가장 중요한 것을! 뜬구름 잡는 것처럼 들리는 말들이 우리가 ‘놓인’ 방 안을 떠다닌다. 우리의 말은 간절하지만 멀리서 보면 모호하고 우스워 보이리라. 우리는 말이 ‘팽팽한 기운’으로 우리 주위에 머문다는 것을 믿는다. 마치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위해 논의 중이라는 듯 우리는 진지하고, 언어는 맹렬해진다. 사랑이나 음악이 그렇듯 보이지 않고 잡히지 않아도 할 수밖에 없다. 밀쳐지더라도 계속 향하기. 자기 믿음이 없을 때 쓰는 사람은 작아진다. 사라진다.

 

잘 하고 있는지, 재능이 있는지, 계속 쓰는 게 맞는지 모르겠어요. 자기를 믿지 못한다는 말들. 습작생들에게 자주 듣는 말이다. 당신이 주머니 속 송곳처럼 ‘숨어서 계속 반짝일 수 있다면’(이게 가장 중요하고도 어려운 일이다!) 누군가 방해해도, 하느님이 말려도 나올 거예요. 오가는 말들. 장 주네는 탁자 아래에서 먼지를 잔뜩 뒤집어쓰고 방치돼 있는 자코메티의 “가장 아름다운 조각 작품 하나”를 발견하고 놀란다. 부주의한 방문객의 발아래에서 하마터면 부서질 뻔하지 않았느냐고 하자 자코메티는 이렇게 말한다.

 

“그게 정말로 뛰어난 것이라면, 설사 내가 감추어 놓았다 하더라도 스스로 제 모습을 드러낼 수 있을 거요.”
- 장 주네  『자코메티의 아틀리에』  36쪽 

 

가르치는 입장(이란 게 말이 된다면)에서 가장 두근거리고, 두렵게 하는 사람은 미쳐있는 자다. 시키지 않았는데 몇 편씩 써오는 사람, 합평 때 나눈 이야기를 자기 방식으로 소화해 다시 써오는 사람, 고친 것을 또 고쳐오는 사람, 쓰고 쓰고 또 쓰는 사람. 이건 정말 못 당한다. 좋아서 하는 일. 가끔이지만 이런 수강생을 보면 티내지 않으려 해도 심장이 뛴다. 태어나려나 봐, 저 사람, 태어나려는 것 같아. 어쩌지, 태어나면 저 사람 빛날 텐데, 빛나다 어두워지기도 할 텐데, 괴로울 텐데, 행복에 겨울 텐데, 도망치고도 싶을 텐데, 어쩌려고 저러나… 걱정 반 기대 반.

 

초심을 지키는 일은 가장 어렵다. 나무에 오르는 사람이 작은 나무에 오르고 나면 큰 나무가 보인다. 기를 써서 큰 나무에 오르면 웬일인지 큰 나무도 시시해 보인다. 큰 나무든 작은 나무든 높이가 중요한 게 아니란 생각은 못한다. 성장은 위가 아니라 아래로 깊어지는 일이라는 것, 보이지 않게 이루어지는 일이란 것을 모른 채 숲을 헤맨다. 성장의 비밀은 뿌리에 있다. 팔을 위로 올리고 싶으면 아래에서 반대로 당기려는 몸통과 다리가 있어야 한다.

 

“새벽에 쓴 시를 이리저리 고치며 작업실에 가는 중이에요. 지금은 희끄무레한 한강을 건너고 있고요.” 쓰는 사람, 당신이 보낸 메일을 읽는다. 강을 건너며 어젯밤 쓴 시를 고치는 사람, 아름다운 뿌리를 내리느라 오늘도 바쁠 사람. 겨울의 끝에 와있다.  

 


 

 

대자코메티의 아틀리에장 주네 저 | 열화당
매번의 만남 후에 주네는 자신의 노트에 이 경험과 생각을 옮겨 적고, 다시 돌아와 지우고 고치기를 반복하며, 글을 완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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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박연준(시인)

1980년 서울에서 태어나 동덕여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2004년 중앙신인문학상에 시 '얼음을 주세요'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시집『속눈썹이 지르는 비명』『아버지는 나를 처제, 하고 불렀다』가 있고, 산문집『소란』을 냈다.

자코메티의 아틀리에

<장 주네> 저/<윤정임> 역9,000원(0% + 1%)

프랑스의 극작가이자 시인인 장 주네가 조형적 실존의 미를 궁구했던 20세기의 위대한 조각가이자 화가 자코메티(Alberto Giacometti, 1901-1966)의 아틀리에를 드나들면서 기록한 짧지만 밀도있는 예술론이다. 주네는 1954년에서 1958년까지, 4년 동안 자코메티의 아틀리에를 드나들면서 그와 나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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