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블레이크, 성공이 가져온 성숙

제임스 블레이크 『Assume For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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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의 기호가 된 본인의 스타일을 유지하고 확장해나가는 과정에서 암울한 감성의 새드 보이에게 달콤한 작별 인사를 건네는 작품이다. (2019. 0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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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연 잔상과 황량한 대지 위의 독자, 불분명한 수채화로 암암하던 사내가 얼굴을 드러냈다. 말쑥한 옷차림에 시원한 이마라인으로 정면을 응시하는 제임스 블레이크는 <Assume Form>으로 본인을 규정했던 고독과 외로움의 새드 보이(Sad Boy) 이미지를 걷어낸다. 몽환의 짙은 잔향은 여전히 신비로우나 그 속에는 담담하고 편안한 사랑과 믿음의 메시지가 있다. 첫 트랙 가사처럼 ‘만져지고, 다가갈 수 있는(touchable, reachable)’ 존재로 거듭나려 한다.

 

제임스 블레이크의 첫 대중적 터치는 본인이 새 시대 팝의 공식을 상당수 고안해냈다는 자신감으로부터 온다. 파편화된 불협화음 속 섬세한 멜로디와 소울풀한 보컬의 그루브, 진공의 기류 속 희미하게 박동하는 전자음 노트의 고유한 모호함은 그만이 가능한 고유의 스타일이었다.

 

이것이 언더그라운드 일렉트로닉과 고상한 팝스타의 취향을 아울렀을 뿐 아니라 작금의 대세인 멜랑콜리 트랩 힙합의 모태가 되어 현시대를 지배하고 있다. 비욘세와 드레이크를 설계했고 켄드릭 라마의 <Black Panther> 제국 건설에 힘을 보탠 감각이다. 신예 힙합 프로듀서 메트로 부민과의 콜라보로 건조한 트랩과 자욱한 소리의 안개를 교차 제시하는 「Mile high」와 「Tell them」이 ‘팝 프로듀서’ 제임스 블레이크를 증명한다.

 

그는 성공이 가져온 성숙을 만끽하고 있다. 우아한 선율로 여백을 채워가는 「Assume form」과 21세 기판 틴 팬 앨리 트랙이라 해도 믿을 로맨스 「I’ll come too」의 메시지는 타자에 앞서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쓸 수 있는 문장이다. 우울과 고독에 시달린 과거 자아를 보듬는 「Don’t miss it」을 ‘또 다른 새드 보이 노래’라 평한 <피치포크>에 분노했던 이유가 읽힌다. 「Power on」의 반성조차도 낙관으로 결론지어진다.

 

동시에 앨범은 아티스트를 구성하는 역설과 몽환의 테마를 유지하기에 고고하다. 네오 플라멩코 싱어 로살리아와 함께한 「Barefoot in the park」의 처연함, 사랑의 열병이 가져온 불면의 밤을 치유하는 「Lullaby for my insomniac」의 카타르시스는 제임스 블레이크만의 소환물이다.

 

진화의 꼭대기에 「Where’s the catch?」가 있다. 거듭되는 성공을 살며시 의심하는 제임스 블레이크와 이미 맛본 성공을 무게로 느끼는 아웃캐스트의 안드레 3000이 다크한 일렉트로닉 비트 위에 병치된다. 불안한 멜로디의 피아노 루프에 무거운 드럼 비트와 쪼개진 노이즈를 점진적으로 더해가다 신경질적인 안드레의 랩을 인도하는 서사가 치밀한데, 이를 또 한 번 차분히 가라앉힌 다음 또 한 번의 리듬 파트를 전개하며 모든 예측을 거부한다.

 

<Assume Form>은 언더그라운드로부터 출발하였으나 팝 신의 중심에 존재하게 된 아티스트를 재정의한다. 대중의 기호가 된 본인의 스타일을 유지하고 확장해나가는 과정에서 암울한 감성의 새드 보이에게 달콤한 작별 인사를 건네는 작품이다. 친절한 제임스 블레이크의 모호함은 이제 카오스보다 코스모스에 가까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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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James Blake>33,800원(0%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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