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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인> 언제까지 각성만 하고 자각만 해야 하나

영화의 깊이는 그렇게 얻어지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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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증인>과 같은 종류의 영화가 이제 더는 상영시간 동안의 마음의 진통제 역할로 그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2019. 01.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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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증인>의 한 장면

 

 

영화는 레이어를 쌓아 깊이를 부여하는 매체다. 그래서 영화는 종종 배우의 현실 이미지를 영화 속 캐릭터에 부여해 설득력을 높이려고 시도한다. <증인>은 적당히 정의롭고, 적당히 현실의 때를 입었고, 적당히 타협할 줄도 아는 민변 출신의 대형 로펌 변호사 순호가 중심 인물로 등장하는 영화다.

 

해피엔딩이 순서인 대중영화라는 점을 고려할 때, <증인>은 우리의 주인공이 ‘적당히’의 태도를 버리고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이야기로 나아가는 게 일종의 절차다. 그런 맥락에서 당신이 감독이라면 순호 역에 우선 캐스팅을 고려할 배우로 누굴 꼽겠는가. 티켓 파워도 있고 사회적인 발언에 거리낌도 없고 그것이 사회 정의의 가치에 닿아있어 호감인 배우를 첫 손에 올려놓을 것이다.

 

<증인>을 연출한 이한 감독은 순호 역에 당연하게도 정우성을 캐스팅했다. 정우성은 지난 정권의 국정 농단 당시 정치적 발언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배우의 핸디캡에도 “박근혜 나와!”를 외쳐 많은 이의 호응을 얻은 건 유명하다. 이후에도 공중파 뉴스에 출연해 방송 정상화를 바라는 노조의 활동을 공개적으로 지지했고 제주도의 예멘 난민에 관해서는 정치 문제보다 인권이 우선한다는 소신 발언으로 많은 이의 지지를 받기도 했다. 요컨대, <증인>은 정우성의 인간에 대한 예의의 긍정적인 태도 이미지에 상당 부분을 기대고 있다. 영화는 바로 배우의 이미지를 영화 속 캐릭터에 덧씌워 깊이를 부여하려고 한다.

 

극 중 순호가 맡게 된 사건은 어느 돈 많은 노인의 죽음이다. 가해자로 지목된 이는 피해자의 집에서 노인을 돌보던 가정부다. 노인의 재산을 노린 계획적인 범죄라는 것인데 순호는 이를 뒤집어 가정부의 무죄를 이끌어야 한다. 신빙성 있는 사건 목격담이 필요한 순호는 다행히 유일한 목격자가 있다는 소식을 접한다. 중학생 지우(김향기)다. 문제는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의사소통이 힘든 자폐아라는 것. 진술이 필요한 순호는 지우에게 접근하지만, 쉽지가 않다. 순호 측에 유리한 진술을 받더라도 사람들이 자폐 증세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지우의 말에 불신을 보이지 않을까 해서다.

 

영화는 사람들이 지우에게 가지는 편견처럼 겉으로 보이는 것이 인간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작용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인간은 그렇게 단순한 동물이 아닐뿐더러 감정이란 우물처럼 깊고 가 닿기가 요원하여 쉽게 재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맞다, 다양한 이해 집단의 의견 충돌이 빈번한 지금에 더욱 간절히 다가오는 메시지다. 단순하되 설득이 쉽지 않은 이야기를 위해 영화가 정우성의 레이어에 하나를 더 쌓는 건 ‘자각’ 스토리다. 힘든 자기 삶만 눈에 보여 타인의, 사회의, 국가의 정의 따위(?)에 관심 없었던 필부필부들의 각성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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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증인>의 한 장면

 

 

복잡하고 입체적인 인간 심리로 정의를 말하는 영화의 목표치고는 게으른 구성이다. 지금 이런 종류의 이야기가 주목받는 건 우리 사회를 좀먹었던 비상식과 부도덕과 탈골한 사회정의를 바로 잡으려는 대중의 (무)의식이 <변호인>(2013) <택시운전사>(2017) <말모이>(2018) 등의 영화로 흥행이 검증된 까닭이다. 이 영화들은 시대 배경과 주인공이 처한 상황이 다를 뿐 풀어가는 이야기 방식은 흡사하다. 나와 가족의 안위와 이익만을 위해 살았던 주인공이 자신에게 가해진 도리에 맞지 않는 현실에 눈을 떠 사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 변화를 도모하는 것. 관람가의 나이대를 최대한 낮추는 쪽으로 관객의 수준을 상정하고 최대한 많은 관객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로 풀고 가려는 의도가 반영되어 있다.

 

이미 우리는 부조리한 현실을 각성하고 거대한 적폐의 환부 하나를 도려낸 공동의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이를 통해 새로운 시대 정신을 자각하고 지금은 사회 곳곳에서 그동안 약자와 소수자를 억압했던 기득권에 대항한 다양한 저항을 펼치고 있다. 그러니까, 지금 시대는 자각 그 이후의 또 다른 행동의 단계로 들어섰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인간 감정의 깊이는 수학 공식처럼 환원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하는 영화가 정작 흥행에 특화된 이야기 전개를 따른다는 건 모순이다. 이야기의 진심과 흥행 사이에서 겪는 분열증적 양상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증인>에는 지우에게 인간적으로 다가가려는 척 자신의 클라이언트가 요구하는 판결을 끌어내기 위해 결과적으로 이용하는 순호와 그럼에도 진심을 의심하지 않고 순수하게 다가가 최종적으로 순호의 ‘적당히’의 태도를 바꾸는 지우 사이의 마음을 여는 소통이 따뜻한 정서를 ‘자극’한다. 자극이라고 표현한 건 그 과정이 자연스럽기보다 인위적인 형태라 휘발성이 강하다고 느껴서다. 나는 <증인>과 같은 종류의 영화가 이제 더는 상영시간 동안의 마음의 진통제 역할로 그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마음이 따뜻하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실에 맞설 수 있도록 용기를 주는 영화가 지금 이 시대의 정신에 부합한다고 보는 쪽이다. 그것은 단순히 배우의 이미지가 좋고 연기가 뛰어난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영화의 깊이는 그렇게 얻어지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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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허남웅(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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