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 놀이터

모호한 구름이 준 독특한 환상

『예술가들이 사랑한 날씨』 연재 ⑤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어떤 화가들은 구름을 구체적인 형상들로 그린다. 그래서 족제비나 고래 모양 구름들이 영원히 화판에 남은 채 기묘한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본다. (2019. 01. 25)

예술가_5-1.jpg

         unsplashⓒmila-young

 

 

아리스토파네스는 구름 모양에서 켄타우로스, 표범, 늑대, 황소 같은 것을 보는 인간의 잘 속는 경향에 대해 농담을 던졌다. 그렇지만 대단히 멋스러운 구름에서 환상과 비전을 보는 인간 능력에 비하면 그런 농담은 대단찮은 것이다. 확정되지 않은 사물에서 알아볼 수 있는 형태를 찾으려는 인간의 욕구를 역사로 기록한다면, 아마 엄청난 책들이 나올 것이다.

 

어떤 화가들은 구름을 구체적인 형상들로 그린다. 그래서 족제비나 고래 모양 구름들이 영원히 화판에 남은 채 기묘한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본다. 이탈리아 예술사학자 키아라 프루고니는 최근에 13세기 후반기부터 이탈리아의 화가 지오토가 프레스코로 그린 구름에 나오는 형상에서 악마의 얼굴을 찾아냈다고 한다. 1458년에 그려진 만테냐의 <성 세바스찬>에는 말등에 올라탄 인물 형상의 구름이 나오는데, 아주 오랫동안 발견되지 않았던 구름 형상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영감이 필요한 화가의 경우 벽에 생긴 얼룩 하나만으로도 예술적 자극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즉 온갖 종류의 풍경과 형상(사람의 머리, 다양한 동물들, 전투 장면, 바위, 바다)을 그 얼룩에서 볼 수 있다는 뜻이다. 이처럼 영감을 줄 수 있는 벽의 얼룩들은 다빈치도 깨닫고 있었듯이 하늘에 떠 있는 구름과 닮은 면이 많다. 특정한 구름 형상도 그 얼룩들처럼 문득 새로운 생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모호한 구름 덕분에 환상적인 해석을 할 수도 있다. “나는 옛날에 구름과 벽의 얼룩을 바라보곤 했다. 그리고 미적인 창작을 위한 영감을 받았다” 구름과 관련된 역사에서 가장 매력적인 화가는 알렉산더 카즌스이다. 카즌스는 강렬하고 기묘한 형상 주위에다 전설에 나오는 것들을 배치해서 그렸다.

 

“만들어낸 얼룩 하나가 사람마다 각자 다른 아이디어를 줄 것이다. 이런 이유로 얼룩은 창작 능력을 증대시키는 강력한 힘으로 작용한다” 카즌스는 얼룩의 ‘모호하고 정해지지 않은’ 특성을 사랑했다. 장난처럼 우연히 또는 교묘하게 변할 수 있는 그 특성을 사랑했다. 그렇지만 자신의 상상력이 너무 자유롭게 방랑하도록 놔두지는 않았다. 그의 『풍경화의 창조적 구도를 위한 새로운 방법』 은 차분하고 질서 정연하게 공들여서 쓴 책이다. 책의 핵심적인 주제는 그럴싸한 상상의 이미지들을 만들어내기 위해 시계처럼 정확하게 각 단계를 밟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카즌스가 이튼스쿨의 교사로 오랫동안 활용해왔던 기법을 담은 교재였다. 교사가 지닌 명쾌함으로 카즌스는 번질 수 있는 잉크를 만드는 법(인쇄용 검은 잉크와 아라비아고무로 만든다)을 포함해서 수많은 가르침을 제시한다.

 

 

예술가_5-2.jpg

『풍경화의 창조적 구도를 위한 새로운 방법』  도판, 알렉산더 카즌스, 판화 13(1784)

 

 

처음부터 카즌스는 번진 얼룩을 구름과 연관해서 생각했고, 자기 묘비명에는 셰익스피어의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  에 나오는 희미한 구름 모습을 채택했다. 또 실제 그림을 그리는 방법도 조언했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는 스무 개의 구름 형상을 보여주는 판화들이 실려 있다. 이 판화들은 모두 그림에다 매력적인 하늘을 그려 넣을 때 분명히 도움이 될 것이다. 얼룩 효과를 이용해서 그린 풍경들처럼 이 구름들도 일부러 모호하고 주의 깊게 분류해서 그린 것이다. 그래서 ‘유형 18의 하늘: 하늘 맨 위에 얼룩무늬나 줄무늬의 구름이 있음’ ‘유형 20의 하늘: 반쯤은 가려져 있고 반쯤은 탁 트인 하늘. 구름은 탁 트인 파란색 하늘보다는 약간 어두운 색. 아랫부분보다 맨 위 부분이 더 어두움’ 하는 식으로 사람들이 각자 선택해서 자기 것으로 응용할 수 있도록 했다. 카즌스의 얼룩과 구름은 영국 화가들의 마음속에 살아있다.

 


 

 

예술가들이 사랑한 날씨알렉산드라 해리스 저/강도은 역 | 펄북스
아무도 밖을 쳐다보며 자기가 본 것을 기록하진 않았던 중세에 홀로 날씨를 기록한 최초의 사람 윌리엄 머를이나 17세기 일기 기록자 존 이블린의 기록 등 흥미로운 이야기가 가득하다.


 

배너_책읽아웃-띠배너.jpg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YES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1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 | 알렉산드라 해리스(작가)

예술가들이 사랑한 날씨

<알렉산드라 해리스> 저/<강도은> 역37,800원(10% + 5%)

고농도 미세먼지로 연일 주의 예보가 들리더니 이젠 북극한파 예보로 난리다. 2030년 즈음 지구에 10년간 소빙하기가 찾아올 것이라는 날씨 경고가 들리고 있는 지금. 지구가 마지막으로 소빙하기를 겪은 것은 약 300년 전의 일이다. 다시 지구에 소빙하기가 찾아오면 300년 전처럼 런던의 템스강이 또 결빙될 것이라..

  • 카트
  • 리스트
  • 바로구매

오늘의 책

끝나지 않는 오월을 향한 간절한 노래

[2024 노벨문학상 수상] 1980년 5월 18일부터 열흘 간의 광주, 그리고 그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작가의 철저한 노력으로 담아낸 역작. 열다섯 살 소년 동호의 죽음을 중심으로 그 당시 고통받았지만, 역사에서 기록되지 않은 인물들의 이야기를 꺼내 보이면서 그 시대를 증언한다.

고통 속에서도 타오르는, 어떤 사랑에 대하여

[2024 노벨문학상 수상] 2023 프랑스 메디치 외국문학상 수상작이자 가장 최근작. 말해지지 않는 지난 시간들이 수십 년을 건너 한 외딴집에서 되살아난다. 깊은 어둠 속에서도 “지극한 사랑”이 불꽃처럼 뜨겁게 피어오른다. 작가의 바람처럼 이 작품은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다.

전세계가 주목한 한강의 대표작

[2024 노벨문학상 수상] 2016년 인터내셔널 부커상을 수상한 장편소설이자 한강 소설가의 대표작. 보이지 않는 영혼의 고통을 식물적 상상력으로 표현해낸 섬세한 문장과 파격적인 내용이 큰 울림을 만들어낸다. 폭력의 악순환을 끊고,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나무가 되고자 한 여성의 이야기.

더럽혀지지 않는 어떤 흰 것에 관한 이야기

[2024 노벨문학상 수상] 한강 소설가의 아름답고 고요한 문체가 돋보이는, 한 편의 시와 같은 작품. 삶과 죽음의 경계를 허물고, 그 사이를 넘나드는 소설이다. ‘흰’이라는 한 글자에서 시작한 소설은 모든 애도의 시간을 문장들로 표현해냈다. 한강만이 표현할 수 있는 깊은 사유가 돋보인다.


PYCHYESWEB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