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 놀이터

염정아의 입술 : 파국이라도 걸어 들어갈 절실함

동물적인 본능을 팽팽하게 표현해 내는 배우의 근육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종영까지 2회를 남겨둔 지금, 사람들은 숨 죽이고 바라보고 있다. 파국일지도 모르는 미지의 앞날을 향해 성큼 걸어가는 염정아의 굳게 맞물린 입술을. (2019. 01. 21)

1.jpg

 

 

* JTBC <SKY 캐슬>을 비롯한 배우 염정아의 주요 출연작들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죄책감에 공부할 의욕을 잃고 제 방 안에 웅크린 예서(김혜윤)를 달래다가, 서진(염정아)은 그간 예서가 받아온 상장들을 펼쳐 놓고 말한다. “너랑 엄마랑 우리 둘이, 우리 둘이 함께 이뤄온 거. 예서야, 너 이거 포기할 수 있어? 우리가, 이걸 어떻게 만들어왔는데.” 제 딸의 앞날을 위해 혜나(김보라)가 죽었고, 우주(찬희)는 살인 누명을 쓰고 구속됐다. 모두의 인생이 망가져 가는 순간에도, 서진은 어떻게든 예서를 다시 쳇바퀴 위에 올리고 싶다. 진심으로 딸의 앞날을 걱정하는 동시에, 그 동안 자신이 헌신해 온 세월이 억울하기도 한 것이다. 염정아의 연기 속에서 두 감정은 별개의 것이 아닌 한 덩어리로 뭉쳐져 있다. 걱정과 억울함 사이를 밀리초(ms) 단위로 오가는 목소리는 조금만 더 발성하면 울음이 터질 것 같다. 그 상황을, 염정아는 윗입술로 아랫입술을 꾹 눌러 간신히 닫는 것으로 매듭짓는다.
 
사람들이 염정아의 얼굴을 볼 때 제일 먼저 주목하는 건 고양이를 연상케 하는 눈매지만, 인물의 절실함을 넘치지 않게 타이트하게 재단해 내는 건 그의 입술이다. 회심의 미소를 지을 때 양 옆으로 섬세하게 빠지는 입꼬리는, 굳은 결심을 표현할 때면 입술 한 가운데를 향해 점처럼 단단히 수렴한다. 경악이나 분노를 표현할 때 그의 윗입술과 아랫입술은 미처 닫히는 것을 잊고 새끼손톱만큼 유격을 만든다. 그리고 이 모든 움직임은 너무도 자연스러워서, 마치 배우가 의지를 가지고 움직이는 게 아니라 조건반사처럼 반응하는 것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눈으로 감정을 표현하려 하는 배우들은 많지만, 입술의 사소한 경련과 잔주름까지 본능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배우들은 많지 않다. 염정아의 입술 위에서, 우리는 그가 분한 인물의 동물적인 절박함을 읽는다.
 
염정아를 오래 지켜본 사람이라면 오늘날 세상이 염정아에게 보내는 환호가 다소 새삼스럽다고 느꼈으리라. 그는 언제나 이론의 여지 없이 연기를 잘 하는 배우였고, 그를 향한 세상의 열광 또한 이번이 처음이 아니니까. 그럼에도 JTBC <SKY 캐슬>이 염정아의 필모그래피에서 다소 특별한 위치를 지닌다면, 그건 한서진이라는 캐릭터가 지금껏 그가 분해왔던 주요 캐릭터들의 총집본에 가깝기 때문일 것이다. 부유하고 뒤틀린 이들의 이너서클 안에 들어가 살아남기 위해 처절해지는 모습은 MBC <로열 패밀리>(2011)의 인숙을, 자식의 앞날을 위해서라면 뭐든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는 모습은 <간첩>(2012)의 강 대리를, 이루고 싶은 절박한 소망을 위해 자신도 잘 알지 못하는 세계로 두려운 발걸음을 떼는 모습은 <카트>(2014)의 선희를 연상시킨다. 제 몫의 절실함을 쫓아 달리는 인물, 그 절실함이 때로는 정도를 넘어서 잘못 친 건반처럼 불안한 불협화음을 만들어 낯설어지는 인물이라는 공통분모를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 절실함이, 한서진에게 동의할 수는 없어도 그를 이해할 수는 있게 만든 원동력이었다. 종영까지 2회를 남겨둔 지금, 사람들은 숨 죽이고 바라보고 있다. 파국일지도 모르는 미지의 앞날을 향해 성큼 걸어가는 염정아의 굳게 맞물린 입술을.

 

 


배너_책읽아웃-띠배너.jpg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2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 | 이승한(TV 칼럼니스트)

TV를 보고 글을 썼습니다. 한때 '땡땡'이란 이름으로 <채널예스>에서 첫 칼럼인 '땡땡의 요주의 인물'을 연재했고, <텐아시아>와 <한겨레>, <시사인> 등에 글을 썼습니다. 고향에 돌아오니 좋네요.

오늘의 책

AI, 전혀 다른 세상의 시작일까

유발 하라리의 신작. 호모 사피엔스를 있게 한 원동력으로 '허구'를 꼽은 저자의 관점이 이번 책에서도 이어진다. 정보란 진실의 문제라기보다 연결과 관련 있다고 보는 그는 생성형 AI로 상징되는 새로운 정보 기술이 초래할 영향을 분석했다.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

한국 문학의 지평을 더욱 넓혀 줄 이야기

등단 후 10년 이상 활동한 작가들이 1년간 발표한 단편소설 중 가장 독보적인 작품을 뽑아 선보이는 김승옥문학상. 2024년에는 조경란 작가의 「그들」을 포함한 총 일곱 편의 작품을 실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름들과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한 권에 모두 담겨 있다.

주목받는 수익형 콘텐츠의 비밀

소셜 마케팅 전문가 게리 바이너척의 최신작. SNS 마케팅이 필수인 시대, 소셜 플랫폼의 진화와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콘텐츠 제작을 위한 6단계 마케팅 전략을 소개한다. 광고를 하지 않아도, 팔로워 수가 적어도 당신의 콘텐츠는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다.

삶의 끝자락에서 발견한 생의 의미

서른둘 젊은 호스피스 간호사의 에세이. 환자들의 마지막 여정을 함께하며 겪고 느낀 경험을 전한다. 죽음을 앞둔 이들과 나눈 이야기는 지금 이순간 우리가 간직하고 살아야 할 마음은 무엇일지 되묻게 한다. 기꺼이 놓아주는 것의 의미, 사랑을 통해 생의 마지막을 돕는 진정한 치유의 기록을 담은 책.


PYCHYESWEB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