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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나를 싫어하는지 나는 단 번에 알지

<월간 채널예스> 2019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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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싫어지는 것이 많아지는 세상에 감정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의 문제 앞에서는 공부가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싫은 것을 싫어하되 따로의 공부가 아니라면 인내만으로 이 압력들을 평형이 되게 할 재간이 없다. (2019. 01.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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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안 되어도 너무 안 되는 거다. 연락도 없고 문자도 씹고. 처음엔 그 사람 정신에 문제가 있나 생각했다.

 

그러다 알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그 사람을 흉보면서 “그 사람은 나를 싫어하니까.”라고 말을 했는데 듣고 있던 사람이 그랬다. “어떻게 그걸 알았지? 그 사람이 당신, 되게 싫어해.” 어떻게 그걸 모를 수가 있을까. 그 사람의 나를 싫어하는 기운이 도착해서, 나도 그 사람을 싫어하게 된 걸. 날 싫어한다는 걸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더이상 이것저것을 소모하지 않는다는 걸 모르지 않아서였다.

 

만날 때마다 내 전화번호를 묻는 사람도 있다. 명함을 준 적도 있고 전화번호를 적어준 적도 있지만 단 한 번도 먼저 연락하지 않는 사람. 그런데 왜 번번이 내게 전화번호를 묻는 것일까. 막상 따지고들 차례가 되면 세상에 따질 일이 그리 없느냐는 식으로 이런 포즈를 취할 것이다.

 

“그걸 몰라서 물어? 인생이 얼마나 쉬운데?!”


그래, 나만 어렵게 살아서 미안하다.

 

광고 카피 쓰는 일을 잠깐 한 적이 있었다. 대단한 광고회사는 아니었다. 작은 제품을 소소하게 포장해서 파는 정도의 일을 하는 기획사 규모였다. 그 일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매일 회의를 한다거나 매일 자료를 주고 받고 해야 한다거나… 아무튼 생산적이지 않은 것에만 매달리느라 정작 카피 쓰는 일에는 제대로 된 에너지를 쏟지 못했던 경우였다. 나는 하나의 프로젝트를 끝내고 원고료를 받을 날을 기다렸는데 연락이 안 와도 너무 안 왔다. 그렇다고 채근을 할 수 있는 성격도 아닌 터라 부글부글하는 날들만 계속되었다. 기다리는 일에 어느 정도 무뎌질 쯤이었을까.

 

충무로 전철역에 있는 화장실에서 광고회사 대표라는 사람을 마주치게 되었다. 볼 일을 보러 북적북적대는 화장실에 들어가서는 소변기 하나를 정하고 서서, 지퍼를 내리기 직전 알고 말았다. 내 옆에서 볼 일을 보던 사람이 바로 내게 원고료를 지급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지퍼를 마저 내리고 볼 일을 봐야 하나, 아니면 지퍼 내리는 일을 그만두고 그냥 화장실을 빠져나가야 하나, 나는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나는 이미 방광이 시키는 대로 지퍼를 내리고는 쏟아질 것 같은 것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때 힐끔 나를 보는 것 같았다. 나보다 한 박자 늦게 상황을 알아차린 것이다. 그러자 자신의 오줌 줄기를 자르고 냅다 자리를 뜨는 그의 뒤꽁무니라니. 도망치는 거였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어이, 거기 잠깐 기다려!” 라고 외쳤겠지만 다른 곳도 아닌 사람 많은 화장실에서 지퍼를 내린 채 그럴 수는 없었다. 그가, 급히 도망가느라 정리하지 못한 오줌으로 흠뻑 팬티를 적셨을 것만 같았다.

 

나는 그를 마음으로 정리하는 데 약간의 시간을 소비하는 동안 그 날의 오줌으로 꽤나 젖었을 그 사람의 팬티 사정이나 상상하면서 흐뭇해했다. 그리곤 깨끗이 잊었다. 어떻게?

 

‘그 사람이 나를 싫어하기 때문이야. 나를 좋아한다면 일 시켜 놓고 주겠다고 한 돈을 왜 안 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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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한번은 사내들끼리 술 마시는 자리에서였다. 한참 친해지고 있는 중인데(나만 그렇게 생각했나보다), 유독 한 사람이 내게 술을 안 따라준다. 내가 계속 따라주고 있는 걸 까먹고 있는지도 몰라 빈 잔만 보이면 정성을 들여서 따라줘 본다. 그래도 안 따라준다. 뭔가 치밀어 오르지만 이유는 간단하다. 싫으니까, 같은 극의 자석처럼 나를 밀어내는 상황인 거지(그러고보니 ‘같은 극’이라는 말도 참 묘한 구석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공평하고 정대하며 위엄 있는 직업 중 하나를 꼽으라면 스승이겠지만 스승도 제자를 싫어하는 경우가 있다. 과연 어떤 경우에? 이 스승이 아닌 다른 스승을 너무 좋아하거나 사랑하면 그 사랑을 받지 못하는 스승이 제자를 싫어하고 만다. 말이 너무나 된다. 인간이기 때문이겠다. 싫어하는 것도 모자라 의도적으로 여러 기회를 배제(排除:받아들이지 않고 제외시킴)한다. 심지어 배제(排?:밀어내어 곤경에 빠뜨림)하기도 한다. 스승을 한 예로 들었지만 (시인의 사회라고 해서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는 감정이야 말로 인간 뇌구조의 원리인 것만 같다.

 

싫어하는 사람은 내 앞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내 싫어하는 감정만으로는 한 존재를 절대 사라지게 할 수 없다는 사실만으로 불안할 뿐이다. 그래서 싫어하는 것을 제발 사라지게 해달라고 목소리를 내기 위해 우리는 광장에 모일 줄도 알게 되었다.

 

싫어하는 사람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하다 보니 떠오르는 한 남자 선배가 있다. SNS와 엮이지 않은 사이의 선배임에도 카카오톡만으로도 늘 자신을 알리는 데 열을 올리고 있어 피로감을 주는 선배였다. 그래서 차단을 해놓은 지 오래. 근데 사람 많은 곳에서 나를 발견하고는 내 이름을 큰소리로 부르며 다가오더니 대뜸 내 왼쪽 뺨과 오른쪽 뺨을 한쪽씩 차례대로 쓰다듬는다. “왜 연락이 안 되니?” 라는 말도 곁들여가면서. 가뜩이나 싫은데 이런 신체 접촉까지 해야 하다니. 얼굴에 묻은 불쾌한 걸 닦아내는 시늉을 하는 정도였지, 속으로 하고 싶은 말은 역시도 하지 않았다.

 

‘이러는데 연락이 되겠냐(요)?’

 

누군가에게 뭔가를 빼앗기는 기분이 들어도 그 사람을 싫어하게 된다. 세상 기준에 어울리지 않는 일방적인 행동을 하는 상대에게 막 하나를 치게 된다. 딱히 이유 하나 없는 무조건적인 싫음은 또 어쩔 것인가.

 

사실, 모두가 기압 차 아니겠는가. 싫어지는 게 있다는 것은.

 

이 싫음의 감정을 숨기지 못하겠는 것이며, 숨길 필요조차 없는 것은 고르지 못한 정신의 압력을 가만히 놔두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이겠지. 누굴 싫어해야 살아지는 경우도 있는 거니까.

 

이렇게 싫어지는 것이 많아지는 세상에 감정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의 문제 앞에서는 공부가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싫은 것을 싫어하되 따로의 공부가 아니라면 인내만으로 이 압력들을 평형이 되게 할 재간이 없다.

 

굳이 엇나가는 게 싫어, 싫어하는 사람과 묵묵히 대면해야 하는 자리가 나라곤 왜 없을까. 그렇게 자리를, 관계를 지키려고 하는 것은 쌓아온 시간이 아까워서겠다. 이제는 목소리도 싫고 걸음걸이도 싫고 자기 이야기만 하는 것도 싫고 항상 밥값 술값은 내가 내는 걸로 미루는 것도 싫고, 그렇게 신경세포가 너덜너덜해져 자리를 파하고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올려다본 밤하늘… 내 속에 이토록 먼지가 끼어서 나한테만 별이 안 보이는 건가… 싶지만 먼지를 뒤집어쓴 기분 하나 때문에 내가 망가지는 게 아까워서라도 밤하늘에 대고 할 수 있는 욕이라는 건 고작 이게 전부.

 

“싫어하면서 좋아하는 척하려니 거참 토 나올라 그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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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이병률(시인)

1967년 충북 제천에서 태어났다.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199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 「좋은 사람들」,「그날엔」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저서로는 시집 『당신은 어딘가로 가려 한다』, 『바람의 사생활』,『찬란』 등과 여행산문집 『끌림』(2005) 등이 있으며 현재 '시힘'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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