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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특별한 사람’을 가질 권리

결혼은 왜 유독 ‘우월한’ 선택이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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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지고 보면 결혼의 위기가 아니라 제도의 위기다. 변한 사회ㆍ문화ㆍ경제적 조건을 제도가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다. (2018. 10.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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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스플래쉬

 

 

결혼하지 않았다면 마흔 즈음 파티를 열 계획이었다. 파티 이름도 진작 정해뒀다. ‘혼자라도 괜찮아, 당신들이 있잖아.’ 그동안 뿌린 축의금을 회수하는 이벤트를 열어 마흔까지 살아온 나를 격려하고, 비혼으로 사는 것도 썩 괜찮다는 걸 전시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이었다.

 

결혼 제도 안에 편입된 건 결혼식을 치르고도 한참 후였다. 알면서도 모른 척 미루고 미루다 제도 안에 진짜로 편입됐을 때, 그 일은 그 문서에 적힌 그대로 ‘사건’이었다. 짝꿍이 들고 온 혼인 신고 증명서에는 ‘사건명: 혼인신고’라고 적혀 있었다, 우리는 이제 헤어지려면 법정을 가야 하는 몹시 귀찮은 사이가 되어버렸다.

 

따지고 보면 고작 4만 원 때문이었다. 짝꿍은 공공기관 비정규직인데, 결혼을 증명하는 문서를 제출하면 가족수당을 추가로 받을 수 있었다. 섭섭한 마음을 애써 돌려 말했다. “수당 때문에 혼인신고를 하자고 말하지 말고, 좀 더 근사한 핑계를 댈 수는 없었을까. 어쨌든 결혼을 정식으로 축하해.” 서운함 한편으로는 그 어떤 형식보다도 ‘법적 구속력’이라는 게 생각보다 대단하구나, 조금 감탄했다. 하지만 ‘증빙’하지 않는 이상 복지 혜택(4만원을 복지라고 불러도 좋을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지만)을 받을 수 없다는 건 역시 이상했다.

 

결혼은 당연한 걸까. ‘비혼’을 자처했었지만, 혼자 살 생각은 아니었다. 어느 날은 단신 기사 하나가 나를 하루 종일 옭아매기도 했다. 집에 혼자 있다가 로봇 청소기에 머리카락이 낀 55세 여성이 119를 불렀다는 내용이었다. 그분이 기혼인지, 비혼인지, 기타 등등 짧은 기사에 세세한 정보가 담기지는 않았지만 나에게는 ‘혼자 있다가’ ‘혼자 있...’ ‘혼자...’ 라는 글자만 엄청 크게 보였다.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게 혼자 살겠다거나, 아무와도 관계를 맺지 않겠다는 건 아닐 텐데. 짝꿍과 결혼 전 동거를 하면서 나눴던 질문도 그 지점에서 출발했다. 우리가 함께 사는 방법은 꼭 한 가지 ‘결혼’뿐일까? 연애 이후의 삶에 대한 우리의 상상력을 억제하는 건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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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스플래쉬

 

 

결혼은 왜 유독 ‘우월한’ 선택이 되는 걸까

 

황정은의 소설  계속해보겠습니다』  의 나나는 혼전 임신을 하게 된다. 결혼을 약속한 남자 집에 인사를 하러 갔을 때, 나나는 화장실에서 오래됐지만 잘 닦아 반짝반짝한 요강을 발견한다. 그의 집에는 화장실이 두 개나 있었다. 요강이 딱히 필요하지 않은 집이라는 얘기다. 남자에게 물어보니 아버지가 쓰시는 거라고 했다. 아버지는 요강이 필요한 ‘환자’도 아니다. 아버지가 쓰지만 한 번도 아버지 손으로 비워본 적 없는 요강. 그때부터 나나는 요강 생각에 사로잡힌다.

 

모세 씨는 나하고 틀림없이 결혼할 생각인가요?
네.
아이가 있으니까?
그게 수순이기도 하고요.
수순요?
당연한 것 아닌가요?라고 되묻는 모세씨에게 당연하지 않아요, 라고 답했습니다. 나는 모세씨하고 결혼할 생각이 없어요.

( 『계속해보겠습니다』 , 149쪽)

 

파혼은 ‘요강’에서 출발했다. 남자는 ‘가족’이기 때문에 어머니가 아버지의 요강을 치우는 걸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런 가족이라면 하지 않겠다고 나나는 생각했고, 실천에 옮겼다. 나나에게는 ‘함께’ 엄마가 되어줄 언니가 있었고, 어린 시절부터 울타리가 되어주었던 동네 오빠 나기가 있다(나기는 동성애자다). 엄마, 아빠, 아기로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제도를 부정하고야 말 가족. 그러나 “당신이 상상할 수 없다고 세상에 없는 것으로는 만들지 말아”야 할(187쪽), 그런 가족.

 

인구주택총조사 집계를 보면 우리가 흔히 ‘정상가족’이라고 말하는 부모와 자식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가정은 20%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법의 시야에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포함시키고, 가족의 개념을 혈연이 아닌 생활을 공유하는 측면을 중심으로 확장해야 한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나오는 까닭이다. 생애주기가 길어지면서 다양한 결합을 경험하면서 살 가능성도 이전보다 높아졌다. ‘정상가족’으로 엮이지 않으면서 함께 살기를 고민하고 시도하는 실험들 역시 계속되고 있다.

 

결혼도 다수가 선택한 제도일 뿐인데 왜 유독 ‘우월한’ 선택이 되는 걸까. 결혼이 불완전한 제도임은 혼인신고, 동성혼 불허, 이혼 숙려 등 결혼 유지를 위한 보완적인 제도를 운영하는 지점에서 오히려 선명하게 드러난다. 다양한 돌봄 관계를 제도 안에 편입시키는 게 그렇게 어려운 문제일까. 복지 시스템의 전제가 꼭 가족일 필요는 없지 않을까.

 

‘힌트’가 없는 것도 아니다.  『스웨덴이 사랑한 정치인, 올로프 팔메』 (후마니타스, 2012)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올로프 팔메가 1971년 첫 번째 임기에 도입한 부부 개별 세금 제도였다. “제도의 수혜자가 성별에 상관없는 개인이 되도록”, “가족 기준으로 디자인되어 있던 기존 제도를 개인을 기준으로” 설계했다(191쪽). 따지고 보면 결국 결혼의 위기가 아니라 제도의 위기다. 변한 사회 문화 경제적 조건을 제도가 뒤따라가지 못할 뿐이다.

 

진선미 여성부장관은 19대 국회 당시 ‘생활동반자법’ 도입을 적극 검토한 바 있다. 프랑스의 ‘공동생활약정법(PACS)’와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다. 꼭 결혼이  아니어도 누구나 ‘특별한 사람’을 가질 수 있도록 설계했다. 결혼 중심 복지 제도를 개인 중심으로 전환하기 위한 첫 시도였다. 결혼처럼 일정한 법률적 보호가 가능하도록 관련 세재를 개정하자는 게 요지다. 입법으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이 법의 한국 도입을 구상했던 이는 장관이 됐다. 그는 호주제 폐지에 앞장섰던 당사자이기도 하다. 생활동반자법이야 말로 바로 이 시대의 복지임을 그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혼인신고 이후 “생활동반자법이 통과되면 그때 혼인신고하자”라고 좀 더 강하게 밀어붙일 걸, 종종 자책하곤 했다. 대신 최근에는 이 법이 통과된 이후를 상상한다. 그 법의 우산 아래 근사하게 손을 맞잡고 살 다양한 모양의 사람들의 안녕이 결국 우리의 미래일 테니까. 그때, 이 땅의 소라도 나나도 나나의 아기도 나기도 조금은 더 안녕할 수 있지 않을까. 언제나처럼 가을과 여름이 오면 함께 김치를 담그고 남은 김치로 만두를 만들어 먹을,  계속해보겠습니다』  속 그 식구들 말이다.


 

 

계속해보겠습니다황정은 저 | 창비
서로 갈등하는 소라와 나나의 속마음을 보는 것이나, 공유한 과거를 서로 다르게 기억하는 소설적 장치는 독자에게 새로운 즐거움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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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장일호(시사IN 기자)

부끄럽지 않은 글을 쓰고 싶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자주 ‘이상한 수치심’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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