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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임(Shame), 영국 펑크의 적자
셰임(Shame) 『Songs Of Praise』
<Songs Of Praise>는 현재의 포스트 펑크 신이 자랑할 수 있는 어린 명작이기도, 미래의 아이콘이 집권을 예고하는 노기 어린 프리뷰이기도 하다. (2018. 03. 07)
영국 포스트 펑크를 상징하는 여러 인자들이 사운드에 담겨 있다. 프론트맨 찰리 스틴의 보컬에는 이안 커티스를 연상시키는 냉소 섞인 음색과 마크 E. 스미스를 닮은 우아한 퍼포먼스가 내재돼있고, 션 코일스미스와 에디 그린의 기타에는 더 와이어처럼 거친 질감과 직선적인 진행을 뒤섞은 터치가 담겨있으며, 역동적인 드러머 찰리 포브스와 함께 리듬 섹션을 구성하는 존 피너티의 베이스에는 피터 훅 식의 선율감 있는 펑크 리프가 흘러나온다. 이뿐만이 아니다. 1970년대의 포스트 펑크 밴드들이 즐겨 사용한 차가운 공기 또한 음장 전반에 내리앉은 데다 장르를 대표하는 음울한 정서 역시 멜로디 곳곳에 짙게 깔려있다. 이와 같은 전통적인 요소들은 앨범의 도입부를 장식하는 트랙들에서부터 확연하게 드러난다. 뿌연 앰비언스 속에서 까칠하고도 스트레이트한 기타 배킹, 단조로운 기타 솔로잉, 노여운 보컬이 연달아 등장하는 「Dust on trail」, 빠른 8비트 드럼 위에 멜로디컬한 펑크 기타와 콜 앤 리스폰스 보컬이 놓인 「Concrete」, 찰리 스틴의 숨 가쁜 읊조림 너머로 간헐적인 리프들이 긴장을 형성하는 「The lick」과 같은 결과물들이 그렇다.
동시에 이들은 자신들만의 사운드를 주조하는 데에 있어서도 훌륭한 모습을 보인다. 이들의 포스트 펑크 사운드는 결코 과거만을 맴돌지 않는다. 영국 펑크의 적자로서 장르와 스타일의 유전형질을 음악에 꾸준하게 내포시키면서도 셰임은 오늘날의 밴드로서 가질 수 있는 고유의 컬러를 만드는 과정에도 적극 투신한다. 앨범 전반에 조성된 넉넉한 사운드스케이프와 개개의 파트에 공간감을 더하는 멀끔한 리버브의 질감은 과거의 포스트 펑크를 보다 현대에 가까운 지점으로 견인해온다. 간결한 멜로디를 잔향에 잔뜩 실어보내는 기타 중심의 트랙 「One rizla」가 위의 신선한 터치들이 특히 빛을 발한 결과에 해당한다. 셰임의 컬러와 빈티지한 포스트 펑크가 잘 섞인 모습은 앨범 중후반부 수록곡들에도 놓여있다. 울림을 한껏 길게 빼내는 사운드 톤은 「Golden hole」과 「Friction」의 음울한 선율이 더욱 쉽게 트랙을 장악하게 하고, 「Lampoon」과 「Tasteless」의 기타가 가진 빽빽한 텍스쳐가 음향의 후경까지 가득 채우게 하면서 장르에 또 다른 표본을 만들어낸다. 더불어 찰리 스틴의 보컬 멜로디와 기타 리프의 모티브에 들어선 캐치한 선율들 역시 앨범의 러닝타임 전반에 등장해 셰임의 사운드에 접근성을 더한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셰임의 창작이 그저 멋진 포스트 펑크 사운드의 형성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이들이 만든 근사한 포스트 펑크 사운드는 목적이라기보다는 도리어 수단에 가깝다. <Song Of Praise> 전반을 둘러볼까. 포스트 펑크의 여러 상이 작품 곳곳을 횡행하는 가운데 하나의 인자가 앨범의 기저에 존재한다. 음산한 음색을 품고서는 주변의 상황들에서 포착되는 혼란과 갈등, 붕괴, 불안, 오욕 등의 어휘를 무섭게 내뱉는 찰리 스틴의 보컬에는 물론이고, 그 곁에서 둔탁한 펑크 배킹과 까칠한 리프를 동시에 선사하는 두 대의 펑크 기타, 직선성과 공격성을 한꺼번에 가져오는 베이스와 드럼, 이 모든 구성 요소들에는 모두 격분이 내재돼있다. 바로 그 분노에서 셰임의 음악은 출발한다. 이번에는 시야를 앨범 러닝 타임의 전체로 넓혀보자. 여러 스타일의 곡들이 트랙리스트를 구성하고 있음에도 노기는 앨범의 수록곡 그 어느 한 트랙을 지나치지 않고 <Songs Of Prasie> 의 전체를 아우른다. 완력으로 그득한 펑크 트랙에서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찰리 스틴이 나직하게 읊조릴 때에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기타와 베이스, 다이내믹한 드럼 위에서 화가 무섭게 뛰놀고, 펑크 사운드가 단조롭게 곡을 이끌고 갈 때에는 종잡을 수 없는 프론트맨의 보컬에서 성이 일어난다.
셰임과 <Songs Of Praise> 가 가진 매력은 결국 다채롭고 적확한 표현 양식을 통해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분노에서 발로한다. 앨범의 도처에서 5인조는 격앙을 근사하게 그려낸다. 중저음의 배킹, 크루너의 가창으로 시작하는 기타와 보컬이 번갈아 여러 차례 피치를 높게 끌어올려 감정의 격렬한 변이를 극적으로 내보이는 「Dust on trail」, 찰리 스틴과 주변 목소리들이 다함께 격노로 치닫는 「Concrete」, 느릿한 템포, 차가운 음장에다 굴곡 가득한 보컬 퍼포먼스와 날카로운 기타 리프를 얹은 「The lick」, 신경질적인 터치로 꽉 찬 포스트 펑크의 전형 「Tasteless」와 같은 트랙들을 훌륭한 예로 꼽을 수 있을 테다. 여기에 프론트맨이 쏟아내는 에너지에 맞춰 점층식으로 격정을 향해가는 「Golden hole」과 「Friction」, 불쾌하고 불안정한 뇌까림을 한참동안 이어간 뒤 급작스럽게 사운드를 터뜨리는 「Lampoon」 역시 이와 같은 밴드의 컬러를 잘 나타낸 장면들에 해당한다. 앞선 여러 곡과는 달리 다소 침잠하는 분위기와 7분에 달하는 긴 러닝 타임을 가진 「Angie」에서 조차 밴드는 다변화된 호흡 운용을 여럿 내재시키며 자신들의 음악 그 근원에 존재하는 분노를 나타낸다. 훌륭한 결과물들이다.
셰임의 첫 앨범은 대단하다. 잔뜩 일그러진 표정 너머로 아직 앳된 얼굴이 다분히 남은 이 젊은 밴드는 데뷔작을 의심할 여지 없는 수작으로 이끌어냈다. 영국 포스트 펑크의 아름다운 유산과 현 세대의 사운드 스타일링, 끊이지 않는 분노와 다듬어지지 않은 치기, 과격하고도 대담한 움직임을 셰임은 이 앨범에서 모두 드러낸다. 매개가 되는 개개의 수록곡 그 어느 하나 모자람이 없으며 개개의 수록곡을 만드는 개별 퍼포먼스 또한 상당하다. 대개 이제 막 걸음을 뗀 신인은 오늘의 찬사보다는 내일의 기대에 더 가까이 닿아있으나 사우스 런던 출신의 이 밴드는 그 두 개를 모두 제 손에 쥐고 있다. <Songs Of Praise> 는 현재의 포스트 펑크 신이 자랑할 수 있는 어린 명작이기도, 미래의 아이콘이 집권을 예고하는 노기 어린 프리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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