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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Too 생존자들의 모자이크 : 그 허들을 높이지 마세요

얼굴과 실명을 공개해야 비로소 믿는 불신자들의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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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운동 관련 보도에 나선 언론 중 상당수는 자꾸 생존자의 얼굴과 실명을 공개하는 인터뷰를 내보낸다. 물론 자신의 고발을 믿지 않는 세상을 향해 진실을 말하고 싶은 생존자들의 의사가 어느 정도 반영된 결과겠지만, 이런 인터뷰가 자꾸 쌓이면 얼굴과 실명을 공개해야 비로소 고발의 신빙성을 인정하는 분위기가 굳어져 버린다. (2018. 03.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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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수의 한국 언론은 해시태그 #미투(#MeToo) 운동을 ‘나도 당했다’라고 번역하고, 고발에 나선 이들을 ‘피해자’로 지칭한다. 그러나 미투 운동의 핵심은 ‘나도 당했다’가 아니라 ‘나도 고발한다(J’accuse!)’에 가깝다.

 

성폭력 피해자의 62.1%가 아무에게도 피해 사실을 알리지 않고, 알리더라도 경찰에 도움을 요청하는 이는 1.9%에 불과하다는 사실(2016 전국 성폭력 실태조사 결과보고서. 여성가족부)을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수면 위로 올라온 것보다 더 많은 일들이 있었을 거라는 건 자명하다. 성폭력 관련 인식 조사를 돌려보면 응답자의 34.4%가 ‘수치심이 있는(아는) 여자는 강간신고를 하지 않는다’라는 문항에 동의하고, 44%가 “여자가 술에 취한 상태에서 성폭행을 당했다면 여자에게도 책임이 있다”라는 문항에 동의하는 환경에서(위와 동일한 보고서), 피해 사실을 세상에 말하는 건 대단한 용기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니 ‘피해자’라는 말로는 직간접적으로 강요된 침묵을 깨고 나오는 이들의 용기를 다 설명할 수 없고, ‘나도 당했다’라는 번역으로는 단순히 피해사실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를 지목하며 그 책임을 묻는 운동의 함의를 다 담을 수 없다.
 
"가해자들이 마치 공식처럼 똑같이 행동을 한다. 처음에는 무조건 부인을 하다가 나중에 피해자가 더 나오고 실명을 거론하면서 폭로를 하면, 그제서야 기억이 안 난다고 하다가 모든 게 밝혀진 다음 마지못해 잘못했다(고 한다.)" MBC <아침발전소>에서 노홍철이 지적한 것처럼, 미투 운동을 대하는 한국 사회의 시선은 아직 황량하다. 가해지목자들이 끊임없이 침묵과 부인을 반복하는 동안, 어떤 이들은 자꾸 생존자들의 진위 여부를 의심한다. 얼굴과 실명을 내놓지 않으면 ‘그걸 우리가 어떻게 믿느냐’고 묻고, 얼굴과 실명을 내놓으면 ‘증거가 없는데 일방적인 주장을 어떻게 믿느냐’는 말을 던진다. 생존자들이 얼굴과 실명을 모두 내놓고도 그 진위여부를 의심 받는 동안, 세간에는 “미투 때문에 요새는 말도 조심해야 해”라며 고발에 나선 생존자들을 비아냥거리는 말이 ‘농담’의 탈을 쓰고 허공을 떠다닌다.
 
미투 운동 관련 보도에 나선 언론 중 상당수는 자꾸 생존자의 얼굴과 실명을 공개하는 인터뷰를 내보낸다. 물론 자신의 고발을 믿지 않는 세상을 향해 진실을 말하고 싶은 생존자들의 의사가 어느 정도 반영된 결과겠지만, 이런 인터뷰가 자꾸 쌓이면 얼굴과 실명을 공개해야 비로소 고발의 신빙성을 인정하는 분위기가 굳어져 버린다. 피해사실을 고발하기 위해 넘어야 할 허들이 점점 높아만 지는 것이다. 생존자들이 한줌의 신뢰를 얻기 위해 응당 누려 마땅한 평범한 일상까지 포기해야 하는 세상을 만들고 싶은 게 아니라면, 언론도 그 모자이크를, 그 음성변조를 치우고 싶은 욕망을 자제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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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승한(TV 칼럼니스트)

TV를 보고 글을 썼습니다. 한때 '땡땡'이란 이름으로 <채널예스>에서 첫 칼럼인 '땡땡의 요주의 인물'을 연재했고, <텐아시아>와 <한겨레>, <시사인> 등에 글을 썼습니다. 고향에 돌아오니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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