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 놀이터

영업 나왔습니다

제일 좋은 책 영업은 말없이 주변에 놓아두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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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계절이라며 무리하게 압박하지 말고 여기저기에서 무심하게 책 읽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는 것이 최적의 책 영업이다. (2017.11.07)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과메기를 주문하고 있었다. 구룡포 바닷바람에 말린 햇과메기를 샀다는 지인의 말에 덥석 나도 과메기를 사고 말았다. 과메기를 샀는데 비린내 없이 쫄깃하다고 지나가듯 말했다가 친구도 덥석 과메기를 샀다. 지난 주말에 여기저기서 과메기를 먹었다.

 

당근씨앗오일도 있다. 썩은 당근 밭에 누워 있는 것 같은 냄새가 나지만 피부가 좋아진다는 말에 덥석 오일을 샀다. 후각의 피로가 가장 빠르다는데 웬걸, 바르고 있는 내내 새록새록 괴상한 냄새가 정신을 산란하게 했다. 하지만 피부만큼은 좋아진다는 간증에 덥석덥석 주변에서 당근씨앗오일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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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제의 당근씨앗오일. 과메기는 다 먹었음.

 

영업은 본능이다. 좋은 것이 있으면 나누려는 성선설과 사단칠정의 인간 본성인지, 혼자 망할 수 없다는 물귀신의 본능인지는 몰라도 입소문 마케팅이 통하는 것은 이래서다. SNS에서 인기를 얻어 널리 퍼진 게시글에는 소위 ‘영업 글’이 꼭 붙어 있다. 좋아하는 캐릭터의 이미지를 걸어 두고 지나가던 누군가가 반하기를 기다린다. 팬이 늘어난다고 해서 딱히 좋을 것도 없는데 굳이 기쁨을 함께 누리고자 애쓴다. 물론 좋아하는 장르가 대중적인 인기를 얻어, 일명 ‘메이저’가 되면 관련 행사나 굿즈가 늘어나는 간접적 이득은 있지만 그만큼 경쟁도 치열해지는 법.

 

모 아이돌에 빠져 열심히 영업하던 시절이 생각난다. "5분만 봐달라"는 내 말에 근엄한 표정으로 아이돌 뮤직비디오를 관람하던 사관학교 출신 아버지와, "긍게 어덩게 니가 좋아하는 아여?"라고 묻던 80대의 외할머니, 신곡이 나올 때마다 초점 없이 흐린 눈을 뜨고 있던 남동생 말이다. 내 영업은 뭔가 방향성을 잘못 잡았던 것 같다.

 

의외로 책은 베스트셀러가 아니고서야 입소문으로 영업하기나 선물하기가 쉽지 않다. 상대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내가 권하려는 책을 이미 샀거나, 보았지만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경우가 많다. 읽지 않는 장르거나, 좋아하지 않는 작가거나 이런저런 취향이 달라붙는 꽤 섬세한 물건이다. 그건 책을 즐기려면 적어도 한두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과메기나 당근오일과는 다르게 책은 상대의 일부를 요구하는 셈이다.

 

그래서 제일 좋은 책 영업은 말 없이 주변에 놓아두는 것일지도 모른다. 출판사의 책 영업이 독자를 바로 상대하기보다 서점을 상대하는 경우가 많은 점이 이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읽으려는 사람이 슥 서점에 나타나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만날 수 있도록 발견성을 높이는 방법을 택하는 거다.

 

로봇 공학자인 모리 마사히로는 로봇이 사람 외양에 가까워질수록 인간의 호감이 증가하다가, 사람과 너무 흡사해지면 불쾌감을 느끼는 현상을 가르켜 언캐니 밸리(uncanny valley)라고 불렀다.

 

영업에도 비슷한 현상이 있다. 상대의 열정에 따라서 점점 구매욕이 증가하다가 어느 순간 너무 과하면 호감이 뚝 떨어지는 것 말이다. 좋아하는 것을 전파하던 사람도 마찬가지다. 팬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기쁘다가 어느 순간 너무 많아지면 갑자기 관심이 뚝 끊어진다.

 

사진02.jpg

     CC BY-SA FriedC A Korean translation of the SVG version of Image by Smurrayinchester

 

그러니 독서의 계절이라며 무리하게 압박하지 말고 여기저기에서 무심하게 책 읽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는 것이 최적의 책 영업이다. 아이에게도 책 읽는 부모를 보여주는 게 제일 좋다고 하지 않던가. 뭐든 굳이 설득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즐기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최고인 듯하다. 물론 아무리 책을 열심히 읽고 있대도, 무심하게 먹고 있는 야밤의 라면과 맥주의 영업력을 따라가기는 힘들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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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고여주

'그래, 난 취했는지도 몰라'라는 변명 아래 책과 전자책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작년부터 알코올 알러지를 앓고 있는데 개가 똥 알러지 같은 소리라는 핀잔만 듣고 있습니다. 고양이 4마리, 개 1마리와 살며 책에 관한 온갖 일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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