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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사람의 현실적 윤리 의식

『1밀리미터의 희망이라도』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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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변 사람들에게 박선영 기자는 이미 스타다. 박 기자가 칼럼을 올린 날에는 SNS로 같은 글을 여러 번 받아보게 된다. 글을 공유하려는 사람들이 넘쳐난다는 얘기다. 그만큼 공감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2017.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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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스플래쉬

 

매일 경험하게 될 소소한 갈등의 중요한 딜레마


최근 한 장관 후보자가 장모의 부동산을 자신의 딸에게 세대를 건너 증여하며 ‘쪼개기 상속’으로 세금을 줄였다는 것이 큰 걸림돌로 등장했다. 처음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신통방통하게 법의 허점을 이용한 얄미운 행위라 할 만 했다. 더욱이 후보자가 교수 시절에 시민단체 활동을 했고, 국회의원으로는 경제 정의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던 사람이었기에 더 비난의 표적이 되었다. 그러나 막상 세무사 등 전문가의 의견은 달랐다. 이 정도 방식은 현재 많이들 하고 있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나도 내 주변의 중산층 수준의 시민의 흔한 고민이 상속과 증여이기 때문에 이와 유사한 방식을 쓴다는 말을 들은 바 있다.

 

나는 여기서 이 후보자의 잘잘못을 따지려는 것이 아니다. 당연히 평소 이야기하던 가치와 당위성을 따르자면 그의 표리부동은 부끄러워할 만하다. 그리고 장관으로 타의 모범이 되어야할 사람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이다. 다만 현실의 얘기로 돌아와서, 한 명의 평범한 시민이자 중산층 정도의 자본 축적이 윗 세대부터 있다고 치자. 이때 세무사가 권장하는 수준의 절세 테크닉을 ‘나는 언젠가는 장관이 될지도 모르니까, 그때 문제가 되지 않으려면 안돼’라고 생각하며 몇 억 원을 세금으로 내는 것은 많이 고지식 한 행동으로 볼 가능성은 없을까? 거꾸로 불확실한 정치적 야망이 현실의 사적 욕망을 눌러버린 셈이니, 실은 더 무서운 사람이라고 볼 면도 있다 생각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이 후보자를 두둔하려는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 할 이야기의 밑밥을 길게 뿌리는 것이다.

 

이 후보자의 사례는 극단적인 양쪽의 스펙트럼에 퍼져있어 극적인 면이 있어서다. 장관이 되고 싶어 하는 야망, 국회의원이자 교수이면서 시민운동가, 거기에 장모가 물려주는 서울시의 수십 억대 건물. 그러다보니 공감을 못할 독자가 많을 것 같다. 이 스펙트럼의 파장을 1/10정도로 줄여보겠다.

 

한 평범한 40대 회사원에게는 아버지 명의의 매우 낡은 상가가 구도심에 있다. 최근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곳이다 보니 몇 년 사이에 분위기가 좋아져 부동산 업자들의 권유로 이 건물을 헐고, 새로 짓기로 했다. 여러 비용을 고려하니 상속보다 증여가 이득이라 아버지와 다른 형제들도 동의했다. 그런데 이렇게 하면 20년 넘게 장사를 하던 임차인을 내보내야한다. 마침 그 회사원은 광화문에 촛불집회도 나갔고, 젠트리피케이션에 반대하는 입장을 갖는 사람이었다. 이때 그는 혼자 젠트리피케이션을 막기 위해 건물을 그대로 두고 나중에 거액의 상속세를 빚을 내거나 건물을 팔아서라도 내겠다고 모든 형제들과 맞서는 것이 올바른 행동일까? 올바른 행동의 당위성과 개인의 상식적 욕망 사이의 딜레마가 발생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나는 이런 문제가 먹고 살만한 자본 축적이 일어난 대한민국에서 보통사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매일 경험하게 될 소소한 갈등의 중요한 딜레마라고 생각한다. 내가 평소 생각하는 윤리적 가치를 지키는 것과, 개인의 욕망을 실현시키기 위한 노력 사이의 충돌. 당위적 명제 만을 지키자고 하니 인생이 고달프고 팍팍하고, 욕망에 몸을 던지자고 하니 배에 기름은 끼지만 속은 부대끼고 불편하다. “너는 어느 편이야?”라고 이분법적 세계관을 세상은 요구하지만 한 사람의 개인은 언제나 양 발을 두 세계에 걸치고 양다리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 정신세계의 실체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런 문제에도 눈을 두고 생각을 해야만 한다. 현재를 사는 한국인은 마치 두 명의 다른 사람인 것처럼 살아간다. 광장에서 촛불을 든 나와, 큰 융자를 끼고 입주한 아파트의 시세가 급등하면 기뻐하는 나는 한 사람이다. 양끝의 어디엔가 서서 진자운동을 하니 ‘중용’, ‘내려놓음’, ‘다 비움’의 해법은 비현실적으로 들린다. 나는 이런 딜레마의 실체에 대한 인식과 고민을 하는 것부터 시작했으면 하는데 돌파구가 되어줄지 모를 책 한 권이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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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스플래쉬

 

욕망과 가치 사이의 흔들리는 마음의 저지선

 

<한국일보> 박선영 기자의 『1밀리미터의 희망이라도』다. 내 주변 사람들에게 박선영 기자는 이미 스타다. 박 기자가 칼럼을 올린 날에는 SNS로 같은 글을 여러 번 받아보게 된다. 글을 공유하려는 사람들이 넘쳐난다는 얘기다. 그만큼 공감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세 번에 한 번은 꼭 2루타 이상을 치는 강타자와 같다고 할까? 그녀가 수 년간 한국사회에 대해 본인의 경험, 세상의 흐름, 기자의 눈, 다양한 통계를 바탕으로 날카롭게 아프면서 수사적으로 매혹적으로 써냈던 칼럼들을 매만져서 낸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저자는 지금 우리가 사는 이곳을 이렇게 본다. 단식중인 세월호 유가족앞에서 닭다리를 뜯는 노인, 집단폭행으로 윤 일병을 사망하게 한 다른 장병들의 모습에서 ‘갑-되기’가 시대정신인 오늘날, 자신이 약자가 아님을 증명하려고 아비규환에 뛰어든 더 약한 제물을 찾는 약자이자 을들의 아귀다툼으로 읽어낸다. 평소 한국 교육의 문제점에 대해 열변을 토로하던 이들도 자기 자식만큼은 특목고에 보내고 싶어한다. (이는 몇 진보적 정치 지도자에게서 이미 본 바 있는) 이 사건은 지하철 스크린 도어를 고치다가 사망한 한 청년의 비극으로 이어진다.

 

어느덧 한국사회를 지탱해 나가던 ‘내 자식 같아 슬프고 화가 난다’는 공감의 시스템은 ‘내 자식 프레임'에 의해 왜곡되고 있다. 그 사건의 당사자가 내 자식이 아니라서 안도하는 세상, 어떤 참혹한 사건 앞에서도 내 새끼는 공부 열심히 시켜서 그런 일 안하게 해야겠다는 결론을 내리게 하는 현실이 더욱 무섭고 두렵다. 각각 한 명 한 명을 보면 착하고 윤리적으로 올바른 범위 안에 살아가지만 내 자식 프레임에 갇히는 순간 ’내 자식은 일단 빼내고 그 다음에‘로 넘어가면서 공동체적 삶의 가치관은 숭숭 구멍이 뚫리고 내재된 가치관의 수준은 서서히 침몰해간다.

 

가치와 당위의 측면에서만 보자면 교육은 신분상승이 아니라 행복을 위해, 인간적 삶의 토대를 위해서만 존재해야 한다. 하지만 ‘개천에서 용’이란 이데올로기가 말하듯, 유구한 역사는 교육이 신분상승의 수단이었음을 증명해왔다. 교육의 목적이 그게 아니라고 말하는 건 위선이라고 저자는 강력하게 주장한다. 가능하면 내 아이를 좋은 학교에 보내고, 좋은 환경에서 살게 하고자 하는 욕망과 경쟁 속에 꽃을 피우기 전에 지쳐버리는 집단의 현실을 바꾸고 싶다는 윤리적 가치관은 이분법이 아니라 함께 존재하고 있다. 내가 하는 사교육은 아이의 재능을 꽃피우려는 고상한 욕망이고, 네가 하는 것은 신분상승에 목을 맨 저렴한 욕망으로 보는 이분법적 사고 덕분이다.

 

저자는 이런 문제의 해법은 공부도 그저 수많은 여러 가지 재능의 하나일 따름이 되면 공부는 특별히 숭앙할 특기가 되지 않을 것이라 제안한다. 낙오에 대한 두려움에서 생긴 ‘내 자식 프레임’의 욕망은 공부를 패권주의적으로 숭앙하며 ‘너는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특별한 존재’로 포장하며 ‘아이의 기를 죽이는 일은 절대 하지 못하는’ 세상으로 만든다. 결과적으로 무간지옥으로 만들어간다. 저자는 이때 필요한 태도가 ‘너는 특별하지 않다’는 덴마크의 얀테의 법칙이라고 조언한다. 어릴 때부터 이런 메시지가 전달되어야 이곳은 너와 내가 함께 사는 곳이라는 공동체 의식이 중요해진다.

 

이와 같이 개인의 욕망 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한국사회의 구조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단번의 인간 개조가 아니라, 1밀리미터라도 조금씩 윤리적으로 나아가려는 노력을 하되 개인의 욕망에서 자유롭지 않은 자신의 처지와 판단을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홀딩하면서 가려는 자세가 모이고 모여 종국에 공동체의 큰 변화가 온다는 것이다. 지금 한국사회는 돈, 성공, 학벌이란 몇 개 안되는 욕망만 작동하고 있다. 지금 정치가 해야 할 일은 훨씬 다양한 욕망의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어야 한다.

 

공동체의 욕망은 방향을 제시하는데 공동체는 항공모함급의 큰 배와 같아서 쉽게 방향을 바꾸지 못한다. 배는 우리가 사는 사회의 구조를 의미한다. 구조는 바뀌는데 시간이 걸리지만, 반면 그 안에 사는 각각의 개인은 즉각적 욕망의 충족을 원하고 나름의 방식으로 노력한다. ‘내로남불’이란 21세기 신조어 고사성어는 바로 이 시차 속에서 등장하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자연스러운 욕망 실현 행위는 불가피한 개인의 선택이나, 결국 변화의 가능성을 말소하는 행위다. 나만 구조 바깥으로 나가서 욕망을 구현하며 구조를 향해 규탄의 언어를 내뱉어 봐야 피로감만 늘어난다고 저자는 적절한 비판을 한다. 안타깝지만 개인의 이기적 선택이 모순된 체제의 존속에 이바지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전면적 개혁이 아니라 이런 두 가지 모순된 갈등과 충돌의 존재를 직면하자는 것이다. 최소한 말이다. 그것이 먼저 존재해야 사적 이익과 공적 대의 사이의 충돌의 크기를 최소화하는 궁리와 노력이 비로소 싹트기 때문이다.

 

이때 필요한 마음을 박선영 저자는 "나는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다!"는 욕망과 가치 사이의 흔들리는 마음의 저지선이라고 제안한다. 조금이라도 윤리적으로 살아가면서 욕망에 무너지려는 마음을 ‘그렇게까지 하지 말자’며 다독이려는 개인의 노력들이 쌓이고 쌓여야 공동체의 기준점의 새로운 영점 조정이 일어나, 결국 구조가 바뀐다는 것.

 

이런 긴 노력을 보지 못하는 우리는 마음이 조급하다. 그래서 혁명을 말하거나, 욕망을 부정하며 가치관과 당위성의 이름으로 개인을 꾸짖기만 한다. 욕망을 부정하는 곳에서는 어김없이 위선의 곰팡이가 피어날 뿐이다. 인간의 몸과 마음은 하나다. 나와 가족의 안위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욕망의 실현을 위해 노력하는 나와, 공동체의 가치를 더 나은 방향으로 만들어나가기 위해 희망과 바람을 갖고 정의로운 세상을 바라는 나는 하나다. 이 둘 사이에서 지킬 박사와 하이드와 같은 다중인격자가 되어 불쾌한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면 이 책을 붙잡고 읽어보는 것으로 두 개념의 건강한 긴장 속의 공존의 실마리가 열릴 것이다. 

 

 

 


 

 


 

 

1밀리미터의 희망이라도박선영 저 | 스윙밴드
불평등과 부패의 정글에서 서로를 향해 독침을 쏘아댈 수밖에 없는 ‘사회적 약자’들을 대신해, 경계해야 할 진짜 적의 과녁을 향해 훨훨 타는 불화살을 날리는 책.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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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하지현(정신과 전문의)

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읽는 것을 좋아했다. 덕분에 지금은 독서가인지 애장가인지 정체성이 모호해져버린 정신과 의사. 건국대 의대에서 치료하고, 가르치고, 글을 쓰며 지내고 있다. 쓴 책으로는 '심야치유식당', '도시심리학', '소통과 공감'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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