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 놀이터

누군가의 무엇이 아닌, 피아니스트 선우예권

<음악저널> 7월호 커버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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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오래 연주해 온, 잘 알고 있는 곡이라고 생각될지라도 늘 새로운 마음가짐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생소함’은 조금은 어렵고 이해하기 어려운 곡을 만났을 때 느낄 수 있겠지만, 그 생소함을 참신함으로 바꿀 수 있는 것도 연주자의 몫이고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2017.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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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an Cliburn Competition

 

라흐마니노프의 협주곡 3번 피날레 악장. 짧은 카덴차 한 마디에 쏟아낸 혼신의 포르티시모를 기억한다. 그 연주에 콩쿠르는 이미 없었다. 시공간을 초월해 온전히 마주한 라흐마니노프, 경쟁을 넘어서 온전히 마주한 음악. 2017 제15회 반 클라이번 피아노 콩쿠르 우승자의 마지막 1분, 그 전율의 순간이다. 누구를 위해서가 아닌, 무엇을 위해서도 아닌 오로지 음악을 향한 숭고한 경외 하나로 존재하는,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다양한 프로그램을 소화해야 하는 강행군이었습니다. 역시 선우예권! 전 라운드 주어진 과제곡을 능수능란 소화하는 모습에 감탄사가 연발 되었습니다. 메디치 라이브가 있어서 저희도 다 볼 수 있었지요.


콩쿠르에서 경연 무대까지 생소하게 느껴지는 곡이 있었다면 그것은 결과를 떠나서 옳지 못한 준비인 것 같아요. 모든 곡을 제 가슴으로 품으며 최선을 다해 준비했고 음악이나 감정을 과장하거나 외향적인 모습에 치중하지 않고 음악에 진실성을 가지고 접근하면서 제가 정말로 느끼는 감정과 음악들을 전달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콩쿠르 이전, 올해 상반기만 해도 국내 스케줄이 많았네요. 대구콘서트 하우스에서 모차르트 협주곡 21번, 성남 TLI콘서트홀 프로코피에프ㆍ슈베르트 프로그램으로 독주회, 원주시향과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3번 협연, 같은 프로그램으로 2017 교향악축제 협연, 아트엠 콘서트 리사이틀, 서울스프링실내악출제 협연 등 촘촘한 상반기를 보냈지요. 바쁜 스케줄 속에서 콩쿠르를 준비하느라고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에서 드보르자크를 연주했고, 대구와 원주, 그리고 교향 악축제 등 여러 무대에서 만났던 곡들을 다시 들을 수 있어서 여러 팬들이 좋아했을 것 같아요. 자주 연주했던 곡도 많이 보이고요. ‘익숙함’ 과 ‘생소함’은 둘 다 극복해야 하는 요소이지요. 이 두 간극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있었나요.


‘익숙함’이라고 하면 무대에서 여러 번 연주를 해본 곡을 그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사실 익숙함이라는 단어는 연주에 있어서 위험 하고 오히려 불안요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익숙함을 잘 컨트롤해서 음악을 풀어나간다면 좋은 작용을 할 수도 있지만 익숙함으로 인해서 감정표현에 게을러지고 그걸 당연시 여길 수도 있거든요. 아무리 오래 연주해 온, 잘 알고 있는 곡이라고 생각될지라도 늘 새로운 마음가짐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생소함’은 조금은 어렵고 이해하기 어려운 곡을 만났을 때 느낄 수 있겠지만, 그 생소함을 참신함으로 바꿀 수 있는 것도 연주자의 몫이고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라흐마니노프 협연을 마치고 객석이 기립하는 모습에 울컥한 무언가가 밀려오더군요. 3악장 피날레로 향하는 시간, 그 때의 무대에서의 감정은 무엇이었는지 정말 궁금합니다. 지휘자(Leonard Slatkin) 와 연주해준 오케스트라(Fort Worth Symphony Orchestra) 역시도 따뜻하고 진정성이 느껴지는 박수갈채를 보내는 것 같았고요.


일단, 정말 여러 가지 복잡한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감기 기운이 심해 져서 컨디션이 많이 좋지 않았어요. 파이널 협연 라운드 전날과 연주 당일은 무더운 날씨였지만 일부러 옷을 두 세 겹 입고 자며 땀을 내서라도 컨디션을 회복하려고 애썼죠. 무대 리허설을 마치고서는 오케스트라 단원 중 한 분이 제게 감기가 심한 것 같다며 걱정을 해주시는데 그 말에 따뜻한 위로를 느꼈어요. 그리고 본 무대 직전에는 무대 뒤에서 스트 레칭을 하며 몸을 풀고 있는데 지휘자이신 슬래트킨 선생님이 오셔서 어깨를 직접 주물러 주기도 하셨고요. 이렇게 마음이 통하는 따뜻한 분들과 함께 했던 무대였기 때문에 더 없이 행복했고 음악 그 자체에 몰두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우승자 발표의 순간, 이 샘 대표나 선생님이 아닌 ‘생판 처음 보는(?!) 여인’을 부둥켜안더군요. 반 클라이번 콩쿠르만의 특별한 점이 있었는지 요. 반 클라이번만의 특이사항을 알려주시면 좋겠어요.


이번 콩쿠르에서 특별했던 점이자 즐거웠던 점은 ‘스테이지 맘(Stage Mom)’ 제도였어요. 어머니 연배가 되실 것 같은 분들이 무대 뒤에서 연주 직전의 연주자들을 챙겨주시고 연주를 마치고 돌아오면 물과 손수 건을 건네주시는 일들을 해주셨는데, 진심으로 연주자들을 대해주시는 것이 느껴졌어요. 연주자 한 명 한 명을 배려해주고 따뜻한 진심을 전해 주시는 관계자 분들이 계셔서 길고 힘든 콩쿠르 여정이었지만 편안한 마음으로 임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피아니스트의 숙명, 여러 다양한 무대에서 수많은 피아노를 경험합니다. 이번 콩쿠르는 전 라운드 같은 피아노로 연주했나요? 그 피아노에 대한 느낌이 어땠는지 말 해줄 수 있나요.


이번 콩쿠르에서는 두 대의 함부르크 스타인웨이, 한 대의 뉴욕 스타인웨이 피아노 중에서 원하는 피아노를 고를 수 있었습니다. 그 중 저는 함부르크 스타인웨이 피아노로 전 라운드를 연주했고요. 피아니스트는 연주 때마다 다른 피아노를 다루면서 그에 적응하고 맞춰나가야 한다는 고충이 있죠. 하지만 이번 콩쿠르에서는 제가 가장 편안하게 느끼는 피아노를 골라 모든 라운드에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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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an Cliburn Competition

 

콩쿠르를 마친 후의 시간이 궁금(선우예권과의 인터뷰는 지난 6월 중순 이메일로 이뤄졌다) 합니다. 어떤 생각을 했는지, 어떤 분들을 만났는지 등 말이죠.


너무도 감사한 연락들을 많이 받았어요.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연락하고 지내지 못했던 가까운 지인들, 스승님들 등 진심으로 자신의 일처럼 기뻐해주시고 축하해주시는 분들 덕분에 정말 감사하고 소중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연주 일정, 음반 관련 및 미팅들이 연이어 쉴새없이 진행되어 아주 바쁘게 지내고 있어요. 6월 16일에는 뉴욕에서 수상자로서의 첫 공식 일정 때문에 지금 텍사스에서 막 뉴욕에 도착한 참입니다.

 

자신이 목표한 최고치의 콩쿠르에 우승하면 더 이상의 콩쿠르 출전은 의미가 없는 것 같습니다. 이제 선우예권에게 콩쿠르는 없는 건지 궁금합니다. 이번 콩쿠르를 제외하고 기억에 남는 콩쿠르와,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모든 콩쿠르 하나하나 다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저 또한 앞으로 다른 콩쿠르에 참가할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하나의 다른 콩쿠르를 꼽자면, 2015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인터내셔널 저먼 피아노 어워드가 생각나는데요, 이 콩쿠르의 이틀 뒤에 또 다른 콩쿠르의 1차 예선이 있었거든요. 제가 준비를 충실히 하지 못해서 콩쿠르 시작 일주일 전부터 새로운 에튀드의 악보를 처음 읽으며 준비해야 하는 등 여러 가지로 힘들고 정신이 없었어요. 그래서 인터내셔널 저먼 피아노 어워드에서 파이널 연주를 끝내고도 우승은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좋은 결과가 주어져서 정말 기뻤습니다. 최근 에는 이 콩쿠르의 심사위원으로도 참여하고 와서 더욱 의미가 깊다고 할 수 있겠네요.

 

이제는 두려운 레퍼토리 같은 건 없을 것 같은데, 그래도 도전하기 망설여지는 레퍼토리(작곡가)가 있다면.


어떤 작품이든 그 작품을 처음 연주하는 자리는 항상 두려움과 떨림이더 큰 것 같습니다. 물론 제가 느낀 음악 안의 감정을 잘 전달 드리고 싶다는 설렘도 들지만요. 무대에서 연주하기 망설여지는 작곡가나 레퍼토리를 굳이 꼽아야 한다면 아직 대중 앞에서의 바흐 연주는 조금 조심스럽습니다.

 

남은 20대에 꼭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입니까. 해보고 싶은 레퍼토리도 좋고, 음악 외의 전혀 다른 분야를 말해주어도 좋습니다.


사람은 누구든 주어진 시간이 다르고 저마다의 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더 지나봐야 알 수 있겠지만 평생 연주자로 살아가는 것이 꿈인 저에게 그 ‘때’는 20대 후반인 지금 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7월부터 시작되는 콩쿠르 수상자로서의 투어 일정들이 바쁘긴 하겠지만 그만큼 음악에만 더욱 전념할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라 생각해서 무척 기다려집니다.

 

연주시, 계획에 의한 스토리가 예상치 못하게 자꾸 빗나가는 상황이라고 가정합시다. 본인은 그런 상황에 민첩한 편인지, 아니면 용납하지 않고 계획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타입인지 궁금합니다.


상황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 같은데요, 제가 그 연주를 위해 어느 정도 준비했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제 모습은 어느 정도 계획된 구조와 틀 안에서 밀고 당기며 변화에 맞춰가는 것 같습니다.

 

연주자의 삶에서, 본인을 두렵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를테면 많은 인기와 관심이 때로는 독이 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가장 두려운 것은 음악에 대한 진실성과 호기심을 잃는 것이에요. 음악가에게는 아주 치명적인 일이라고 생각해요. 정말 감사하게도 제게는 음악을 진심으로 소중하게 생각하고 사랑하는 사람들(관계자, 동료 연주자 등) 이 주변에 함께 있기 때문에 서로 큰 자극이 되고 음악에 대한 열정도 서로 불을 지피며 키워주고 있다고 생각해요. 인기와 관심은 때로는 독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것들에 연연하지 않고 모든 것에 감사한 마음을 간직하고 음악 자체에만 더 몰입하고 싶습니다.

 

피아니스트로서, 한 명의 20대 청년으로서 선우예권이 소망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음악과 연주에 대한 절실함을 잊지 않는 것, 그리고 계속 발전해 나가는 연주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제 연주를 들으시는 분들께 제 연주에 대한 믿음, 그리고 마음 한 편에 따뜻함을 전해드리는 연주자가 되고 싶습니다.

 

번외 질문. 단 한 사람만을 위한 리사이틀을 개최할 기회가 주어집니다. 그를 위해 어떤 프로그램을 연주하고 싶나요.


그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서 곡 선정 또한 크게 달라질 것 같은데요. 그사람이 좋아하는, 또는 좋아할 것 같은 곡들로 선정하게 되지 않을까요?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라흐마니노프의 ‘소나타 2번’이나 슈만의 ‘판타지’ 같은 낭만적인 곡을 연주할 것도 같고요, 가슴 아픈 사람 또는 사랑이라면 슈베르트의 후기 작품들, 즉흥곡과 같은 곡들로 구성해서 연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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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an Cliburn Competition

 

미국 최고의 피아노 경연대회인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이 우승을 차지했다. 반 클라이번 콩쿠르는 미국의 명 피아니스트 반 클라이번을 기념해 만든 대회로 1962년부터 그의 고향인 포트워스에서 4년마다 열린다. 우승자는 상금 5만 달러와 3년간 미국 전역을 돌며 연주와 음반 녹음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며, 미국을 중심으로 활동하고자 하는 피아니스트들에겐 ‘등용문’으로 여겨진다. 2009년에는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이번 대회에서 2위에 입상한바 있다. 55년의 역사를 지닌 이 대회에서 한국인이 우승한 건 처음이다. 문화체육관광부(장관 직무대행 나종민) 는 세계적인 권위의 피아노 대회인 미국의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에게 축전을 보내 축하와 격려의 뜻을 전달했다. 문체부는 “이번 수상을 통해 우리나라 음악인들의 뛰어난 예술성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리는 한편 클래식 저변이 더욱 넓어지는 계기가 마련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앞으로 세계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오래도록 기억될 수 있도록 더욱 정진해 달라”고 당부했다. 반 클라이번 국제피아노콩쿠르는 1958년 러시아(소련) 에서 열린 제1회 차이콥스키 국제콩쿠르에서 우승한 미국의 피아니스트 반 클라이번을 기념하는 대회이며, 세계 3개 콩쿠르에 견줄 만한 권위 있는 대회로 평가받고 있어 이번 수상이 가지는 의미가 크다고 문체부는 설명했다.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은 서울예고를 거쳐 줄리아드 음대, 뉴욕 메네스 음대에서 수학했으며 센다이 국제음악콩쿠르(2013년), 독일 피아노 어워드(2015년) 등에서 우승하며 뛰어난 음악성을 국제무대 에서 인정받아 왔다. 우리나라에서 국제 메이저 콩쿠르를 가장 많이 석권한 연주자 명단에도 이름을 올리고 있다.


한편,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의 콩쿠르 실황 연주가 앨범으로 나온다. 유니버설뮤직은 ‘제15회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자 앨범(Cliburn Gold 2017) ’을 디지털 음원으로 6월 23일 전세계 동시 발매한다고 밝혔다. 음반 출시는 8월로 예정됐다. 이번 앨범에는 선우예권이 예선전에서 연주한 하이든ㆍ슈베르트-리스트ㆍ라흐마니노프ㆍ아믈랭ㆍ라벨ㆍ그레인저-R.슈트라우스 등이 수록되었다.


이번 우승을 계기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우리나라 문화예술 계의 지원이 여전히 매우 아쉬운 대목이다. 지난 퀸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의 임지영, 쇼팽국제피아노콩쿠르에서의 조성진 때와 마찬가지로 국가적 지원이나 관심은 물론, 문화예술계 각종 언론 역시 그들의 입상 소식만 뒤늦게 전달받고 축하하는 정도의 반짝 관심만 보이고 있다. 예술을 상품가치화 하려는 만행도 여기저기 속출한다. 그들은 한 순간 하늘로 올라간 별이 아니다. 그 칠흑 같은 암흑 속에서 빛나기 위해 흘린 땀과, 수도 없는 많은 날들을 혼자 외로이 견뎌가며 버텨낸 결과이고, 마음에 남긴 눈물로 스스로 밝게 빛나는 것이다. 저마다 누가 누구를 예견했다는 말로, 미리부터 알아봤다는 말로 관심을 표한다. 연주를 보기는 했는지에 대한 것은 퀘스천 마크. 이번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 출전한 한국인 연주자는 선우예권 말고도 몇 있다. 그들의 출전사실 조차도 거론 안한다. 이미 훌륭한 예술세계를 바탕으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음에도 그들은 없는 취급을 당한다. 개성이 말살된 나라, 예술이 예술로 인정받지 못하는 나라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각각의 예술계가 깊이 반성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목프로덕션 이 샘 대표의 생생 현장라이브


막상 콩쿠르에 들어간 아티스트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기도 밖에 없다. 이 모든 것은 그 혼자서 견뎌내야 하는 외로운 전쟁이고 선우예권 홀로 이뤄낸 위대한 성취이다. 3주 가까운 시간동안 여섯 번의 스테이지를 준비해야 했기에 무척 잔인했었고 체력적으로도 한계를 시험하는 시간이었다. 중간에 선우예권이 체력적으로 어려움을 호소했을 때 참 마음이 아팠다. 다행히 여러모로 선우예권을 잘 배려해주시는 좋은 호스트 패밀리를 만났고, 또 누구보다 정신력도 강한 아티스트였기 때문에 잘 견뎌 냈었던 것 같다. 콩쿠르 스태프들, 함께 한 오케스트라 지휘자와 단원들, 브렌타노 콰르텟 멤버들, 그리고 포스워스 시민들까지 모두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에게 전폭적인 응원과 지지를 주었던 기억은 무척 따뜻하게 마음에 남을 것 같다. 다른 참가자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특별함으로 선우예권을 대했다. 그들은 진심으로 선우예권을 아껴주고 사랑해주었으며, 나중에 들은 것은 심사위원 분들도 같은 마음이었다고 한다. 우승 발표가 나기전인데도 팬을 자청하는 시민들로 인해서 함께 거리를 걷기도 힘들었다. 잠시 스타벅스에 커피 한잔을 마시러 들어갔는데 너무 많은 팬들이 뛰어 들어와서 사인과 사진을 요청해서 결국은 앉아서 커피 한잔도 마시지 못하고 싸가지고 나와서 차에서 마셔야 했었을 정도. 콩쿠르가 열리던 바스홀의 기프트샵에서는 모든 연주자들의 전라운드 리사이틀 앨범들을 판매하고 있었는데, 선우예권의 음반은 늘 품절이었다. 그들은 모두 선우예권이 우승할 것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고 내게 말했고, 그것은 감격이상의 기쁨이었다.

 

이 샘 대표, 선우예권 안경 벗기다


안경을 벗긴 사람, 이라고 하니 몹시 자극적이다. 하하. 무언가 억압적인 아이돌 기획사 사장 같기도 하고. 스스로를 변호하자면 ‘안경을 벗어보면 어떨까’하고 제안한 사람 정도가 맞지 않을까? 예권씨를 처음 만났을 때 두꺼운 안경 뒤로 반짝이는 참 근사한 눈동자를 보았다. 관객과 인사할 때 렌즈의 반사됨 없이 아이컨택을 할 수 있다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더 중요한 점은 나의 제안보다 이런 조언을 경청할 줄 알고,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일 줄 아는 선우예권의 자세였다. 연주자들은 무척 자존심이 강한 편이라서 프로페셔널에 관련된 조언을 듣는 것을 유쾌해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 나 역시 몹시 조심스러운 이야기라 삼갈 때가 많고. 선우예권이 남다르다고 느꼈던 것은 이런 사소한 이야기 하나 놓치지 않고 받아들이고 성장의 도구로 영리하게 활용한다는 것이다. 그는 한 번도 성장을 멈춘 적이 없고 이런 열린 자세를 갖고 있는 한 앞으로도 성장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음악적인 부분들에 대한 기대는 그의 팬들이 이미 충분히 많은 기대를 하고 있을 테니 나는 연주자로서의 삶에 대해 생각해본다. 앞으로 그에게 더욱 힘든 날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끝없는 연주투어와 공항에서의 기다림, 낯선 도시에서의 외로운 날들, 고된 스케줄과 반복되는 일상속에서 음악에 대한 기쁨이 흐려지는 날이 올까봐 가끔씩 두렵기도 하다. 이미 연주자로서 충분한 자질과 누구보다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는 아티스트이니, 진심으로 그가 지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콘서트 아티스트로서의 힘든 삶을 즐길 줄 아는, 삶의 밸런스가 잘 잡힌 건강한 아티스트가 되어주었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그의 저 찬란한 음악을 더 많은 이들과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

 

선우예권은 이번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하이든의 다장조 소나타와 아믈랭의 무장한 남자 주제에 의한 토카타, 슈베르트-리스트의 리타나 이, 라흐마니노프 소나타 2번을 비롯해 슈베르트의 소나타 다단조, 라벨의 라 발스, 베토벤의 소나타 30번, R.슈트라우스-그레인저의 장미의 기사 두엣 주제의 사랑을 말하다, 프로코피에프의 소나타 6번, 모차르 트의 피아노 협주곡 21번, 드보르자크의 피아노 5중주 가장조,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연주했다.

 

글 김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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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음악저널 편집부

음악 전문 잡지이다. 대중음악 보다는 주로 클래식 쪽으로 집중하고 있다. 국내외 교향음악단의 내용은 물론 해외 소식과 해외에서 활약하는 음악인에 대한 내용도 소개한다.

음악저널 (월간) : 7월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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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전문 잡지이다. 대중음악 보다는 주로 클래식 쪽으로 집중하고 있다. 국내외 교향음악단의 내용은 물론 해외 소식과 해외에서 활약하는 음악인에 대한 내용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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