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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예권, 비 오는 날 듣길 잘했다

<선우예권 - 2017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자 앨범>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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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테크닉을 구사하면서도 과한 힘이 들어가지 않고 유연하게 연주하고 있다는 것이 화면을 통해서도 느껴질 정도였다. 마치 아무런 조미료를 넣지 않은, 정말 좋은 재료만으로 정직하게 만들어낸 고급 한정식을 맛보고 있는 기분도 들었다. (2017.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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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많이 오던 어느 날, 방학을 맞아 조용한 학교 연구실에 앉아 음악을 틀었다. 음반을 듣는 내내, 빗소리와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 나이의 아티스트임에도 불구하고 경직되지 않고 힘이 들어가지 않은 연주와, 어딘지 모르게 슬프게 느껴지는 연주가, 비 오는 날 듣길 잘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선우예권, 사실 평소에 클래식 음악을 종종 찾아서 듣기는 하지만, 클래식 아티스트에 대해서 많이 알지는 못한다. 선우예권을 알게 된 것 역시, 반클라이번 콩쿠르에 한국인 연주자로서는 최초로 우승했다는 뉴스를 접하면서였다. 특히나 정말 좋아하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결선에서 연주했다는 소식에 곧바로 콩쿠르 실황 영상을 찾아보았다. 강렬한 마무리, 눈을 뗄 수 없는 연주임에 틀림없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건반에 집중하는 모습이 어린 나이임에도 참 존경스럽게 다가왔다.

 

그렇게 해가 져가는 연구실에서 한참 동안 유튜브의 바다에서 선우예권의 콩쿠르 영상과 다른 연주 영상들을 감상했다. 나는 거의 15년째 테니스와 라켓볼을 취미로 하고 있다. 운동을 오래 하면서 느낀 것이, 모든 운동이든 정확한 포즈를 취하기 위해서는 몸에 힘을 빼야 한다는 것이다. 경직된 상태로는 근육이 좀처럼 말을 듣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음원으로 들었던 선우예권의 연주는 선곡부터가 참으로 다이나믹 했지만 왠지 모르게 일관된 차분함이 느껴진다고 생각했었는데, 연주 영상을 보니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토록 화려한 테크닉을 구사하면서도 과한 힘이 들어가지 않고 유연하게 연주하고 있다는 것이 화면을 통해서도 느껴질 정도였다. 마치 아무런 조미료를 넣지 않은, 정말 좋은 재료만으로 정직하게 만들어낸 고급 한정식을 맛보고 있는 기분도 들었다.

 

이번 음반에서 인상 깊게 들었던 슈베르트-리스트의 「Litanei No.1 S.562」, 한국어로는 위령제라고 번역하는 곡은 특히나 선우예권의 순수하고 유연하고 따듯한 매력을 잘 표현해주는 곡인 것 같았다. ‘위령가-영혼을 위로하는 노래’ 라는 제목으로부터 느껴지는 감동과 더불어, 테크닉이 화려하진 않지만 그렇기에 한 음 한 음 더욱 정성스럽게 연주해야 하는 선율이, 듣는 내내 여러 가지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간혹 정말 아름다운 선율 속에서 느껴지는 아픔이 더욱 큰 감동을 가지고 오는 경우가 있는데, 선우예권의 연주에서 비슷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음악을 통해 위로를 전해줄 수 있다는 것, 다른 장르의 음악을 하고 있지만 참 깊이 공감되는 부분이기도 했다.

 

음반의 마지막에 실릴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소나타 2번은 다이나믹이 화려해서 색다른 매력을 들려주었다. 어쩌면 콩쿠르 결선에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연주하던 선우예권의 모습이 떠올라서 더욱 몰입해서 들었던 곡이기도 했다.

 

이번 앨범에는 총 9곡, 선우예권이 콩쿠르에서 연주했던 곡들과 그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곡들이 함께 실려서 발매될 예정이라고 한다. 어떤 곡은 이성적이고 어떤 곡은 화려하고, 또 어떤 곡은 슬프고, 다양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선곡인 것 같아 발매일이 기대되는 앨범이다.

 

어느덧 깜깜해진 건물을 나서며, ‘음악’에 대해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늘 순간순간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내는 즉흥연주, 재즈에서는 테크닉적인 완벽함도 중요하지만 연주자 개인의 감정 역시 매우 중요하게 여겨진다. 악보가 존재해서 매번 똑같이 연주할 수 있는 클래식과는 달리, 그 순간이 지나고 나면 달라질 수 있는 즉흥 연주, 변주이기 때문에 어쩌면 그 순간의 감정이 더욱 중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조금 더 자유로울 수 있는 음악이기도 하다. 반면 클래식의 경우 작곡가의 의도를 이해하고 또 그 악보를 테크닉적으로 그리고 음악적으로 완벽에 가깝게 재연해 내는 것이 매우 중요한 장르이다. 영화 <샤인>에서도 주인공인 헬프갓에게 스승이 말하길, 음표를 완벽하게 외우고 그 위에 감정을 얹히라고 조언한다. 재즈 피아니스트인 내 입장에서 클래식은 어쩌면 조금은 경직되어 보일 수 있는 장르였다. 실제로 가끔은 연주자들이 보여주고자 음악의 감정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너무나 화려한 테크닉에 가려져서 잘 와닿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 앨범에서 선우예권의 연주는 음악의 본질이 무엇인가 생각하게 만드는, 정말 담백한 대화를 하고 있는 것 같은 연주였다.

 

28살의 나이에, 인생에서 마지막이 될 콩쿠르에서 당당히 우승을 거머쥔 그에게 박수를 보내며, 앞으로도 한동안 이 음반을 즐겨 들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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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윤한(피아니스트, 작곡가)

피아니스트이자 싱어송라이터. 美버클리음악대학 영화음악작곡학 학사. 상명대학교 대학원 뉴미디어음악학 박사. 現 경희대학교 포스트모던음악학과 전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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