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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섭 책공방북아트센터 대표 “누구나 나만의 책을 만들어야 한다“
한국에 유럽식 북아트 책공방 도입한 책공방북아트센터 대표 김진섭
누구나 북 아티스트 작가가 될 수 있고 누구나 북아트 기획을 하고 만들어 볼 수 있는 곳, 지원해줄 수 있는 공방의 역할을 해보겠다고 생각했죠.
<월간 채널예스>에서 매월 책을 만드는 사람들을 만난다. 아홉 번째로 책 만드는 문화를 체험하는 공간, 책공방북아트센터의 김진섭의 이야기를 들었다.
책공방북아트센터는 유럽식 북아트 책공방을 국내에 도입해 책 만드는 문화를 체험해 볼 수 있게 한 곳이다. 책을 만드는 장인의 정신을 지켜가고자 노력하고, 책만들기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는 수업을 다양하게 운영한다.
북아트(Book Arts)는 예술의 한 장르로 일반적인 책의 개념과 다른 하나의 예술작품을 말하지만,삼례문화예술촌에 있는 책공방은 예술작품보다는 ‘자신만의 책’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열린 공방이다. 현재 근대 인쇄기기를 복원하고 보존하려는 마음으로 80여 종의 인쇄 관련 기계와 1천 여 종의 책 만드는 도구를 전시하고 있기도 하다.
김진섭은 잡지사에서 근무하던 시절 유럽에서 책을 만드는 공방이 마을마다 역사를 간직한 채 대를 이어오고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아 우리나라에서도 유럽과 같은 책공방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에 책공방을 열었다. 책을 만드는 문화를 전파하기 위해 책만드는버스(Book Bus)를 만들어 전국방방곡곡 찾아다니며 아이들을 대상으로 책을 만드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다.
‘책공방북아트센터’의 북아트란 구체적으로 무슨 뜻인가요?
북아트는 책이라는 오브제에 메시지를 넣어 작품을 만들고 다양한 채널로 전시하거나 유통하는 예술의 영역인데, 한국에 들어와서는 사람들이 아이들 책 만드는 프로그램 정도로 생각하게 됐어요. 북 아티스트들이 애써 작품을 만들어도 유통되거나 판매되지 않고요. 그래서 누구나 북 아티스트 작가가 될 수 있고 누구나 북아트 기획을 하고 만들어 볼 수 있는 곳, 지원해줄 수 있는 공방의 역할을 해보겠다고 생각했죠.
책공방에서 직접 책을 만들어볼 수 있나요?
처음부터 고급 과정으로 들어가면 시간이 오래 걸리니까 입문용 수업이 있어요. 2시간짜리에서 4시간, 하루, 일주일 단위 프로그램을 통해서 책을 직접 만드는 것에 도전해보는 프로그램이에요. 한번 만들어보면 그 도전이 어렵지 않고 쉬운데, 사람들이 접근하기 어려워요.
다이어리 만드는 과정이 있더라고요.
노트에다가 무엇을 기록했느냐에 따라, 어떤 이야기를 넣느냐에 따라 책이 될 수 있어요. 책의 역사를 보면 전부 다 처음부터 콘텐츠를 넣은 건 아니에요. 종이를 엮어 놓고 필사가들이 하나하나 베끼기 시작해서 책이 만들어졌죠. 일반적으로 글을 써야만 책을 만든다고 생각하는데 글이 없어도 책이 돼요. 사진만 모아 둬도, 도화지에 스케치만 해도 책이 될 수 있어요. 책에는 수만 가지 카테고리가 있는데 글로만 책을 만든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싶었어요. 다이어리부터 한번 만들어 보자는 거죠.
책 만드는 워크숍은 주로 어떤 내용을 가지고 진행하나요?
왜 내 책을 만드는 게 중요한지 먼저 이야기를 하는 편이에요. 만드는 방법은 인터넷에 검색하면 수없이 많은 강좌가 나와요. 자신이 가죽 같은 오브제나 기계를 이용해서 하나하나 작업을 하는 과정과 시간이 중요한 것이지 만드는 기술은 중요한 게 아니에요. 예를 들어 백화점에서 명품 가방을 사면, 이벤트로 가방 만드는 장인을 불러서 본인의 이니셜을 가방에 찍어주는 서비스를 해요. 그럼 그 가방은 자신만의 것이잖아요. 앞으로는 출판도 각 개인에게 영감을 주고 감동을 줄 수 있는 서비스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망가진 책을 수선하거나 복원하는 일도 하시나요?
예전에 어떤 분이 부모님이 만드신 필사본 성경책을 들고 온 적이 있어요. 한 2년에 걸쳐서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다 손으로 쓰신 책이었어요. 하지만 상태가 안 좋았던지라 고급스럽게 복원해서 드렸죠. 뿌듯한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출판 관련 기기를 모으는 것에도 관심을 두고 계시다고 들었어요. 기계를 모은 계기는 어떻게 되나요?
유럽의 책공방에서 자기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만들었던 기계로 여전히 종이를 뜨고 레터프레스로 찍어 한정본 책을 만드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핸드메이드로 초청장부터 명함, 레터지까지 만드는 걸 보고 왜 이렇게 만드냐는 말에 이것이 우리의 아이덴티티라고 하더라고요. 그럼 한국의 정체성은 무엇인지 고민해 봤을 때 아무것도 없었던 거죠. 그때부터 디지털화 된다고 버려지는 인쇄 기기를 하나씩 수집했어요. 2000년도까지만 해도 귀한 기계들이 너무 많았는데 보관할 장소가 없었어요. 그래서 공장 창고를 하나 임대해서 모으다가 지금은 삼례에 보관하고 있어요.
북아트센터가 서울과 삼례 두 군데에 있습니다.
책공방은 2001년에 사업하면서 시작했고 삼례에는 2013년에 내려갔어요. 책이 문화의 중심에 있잖아요.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모든 이야기를 다 하는데, 완주에서 책마을을 만들고 싶다고 하면서 저한테 공간을 줄 테니 같이 해보자고 제안이 왔어요.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지방에 내려간다고 했을 때 버틸 수 있을지 몇 날 며칠을 고민했어요. 하지만 헌책방 마을 헤이온와이를 만든 리처드 부스처럼 제가 있는 곳이 문화의 중심지가 되게끔 한 번 해보자 결심하고 나의 모든것을 다 가지고 내려왔죠.
안타깝게 못 구했던 기계도 있을 것 같아요. 기억에 남는 기기가 있나요?
사진식자를 넣어서 카메라로 찍어 글씨를 확대하는 산업용 카메라가 있어요. 최소한 5m 정도 길이를 가진 거대한 기계였는데, 기계를 풀어서 재조립하고 운반하는 비용만 5천만 원이었어요. 서울에서 그 기계를 놓으려면 월세도 들어가야 하고요. 그래서 고민하다가 못 가져가겠다고 했더니 망치로 다 부숴서 버리더라고요. 지금도 그걸 못 가져간 걸 땅을 치고 후회해요.
기계들을 모으는 데도 비용이 꽤 들어갔을 것 같아요.
금액으로는 부를 수 없어요. 어떤 사람은 값을 매기겠지만 값을 판단할 수 없어요. 문화재는 금액이 중요한 게 아니라 가치가 중요해요. 지금은 가치를 몰라서 그냥 고철인 거고, 나중에 가치를 인정받으면 문화재가 되겠죠.
물건 중에서도 책이라는 물건이 가진 가능성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책이 주는 오감의 힘이에요. 대부분 사람은 책을 눈으로 읽는 것만 신경 쓰지 나머지 오감은 배제하잖아요. 하지만 손으로도 만져 보고, 향도 맡아 보고, 들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지는 책이 있어요. 그게 물성이라는 거죠. 옛날 사람들은 책이 귀하다 그래서 신성시하고 모셔만 두다가 버렸단 말이에요. 하지만 책은 책이에요. 두꺼운 책 베개로 베고 자면 어떻고 뜯어서 읽다 버리면 어때요. 제가 쓴 책도 가지고 다니면서 강의 나갈 때마다 방명록으로 써요. 처음부터 끝까지 글씨가 들어가면 그건 하나밖에 없는 물성을 가진 책이 되는 거예요. 보는 것만 가지고 이야기하지 말고 써보기도 하고 냄새도 맡아 보고, 돌려서도 보자는 거죠.
『책 잘 만드는 책』,『책 잘 만드는 제책』,『Book Tools』 등 책을 만드는 내용과 책 관련 도구를 책으로 내신 적이 있어요.
앞으로 제가 가진 기계와 제가 가진 책의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겨서 매뉴얼화하고 싶어요. 일차적인 작업으로는 1년에 한 번씩 인쇄와 관련한 책을 꾸준히 쓰려고요.
후학 양성도 염두에 두고 계시다고요.
많은 사람을 길러내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워요. 그래서 올해 상반기에 책공방 책학교를 진행해요. 지역 콘텐츠 전문가를 육성하는 프로그램이에요. 지역 콘텐츠를 개발하고 기록해서 책과 아트 상품으로 만들어 판매하는 직업군을 기르는 거죠. 그래서 젊은이들이 수도권에만 있지 말고 비수도권 지역에 내려와서도 지역 콘텐츠를 이용해서 서점을 만들고 출판사를 만드는 산업 구조를 만들어보고 싶어요.
앞으로 계획이 있으시다면요?
제가 여행서나 소설, 감성 에세이집은 못 쓰지만 책을 만드는 기계나 우리나라 책의 역사, 인쇄의 역사 등 제 관심분야 만큼은 누구보다 잘 만들 수 있어요. 그래서 나만의 콘텐츠를 가지고 기획, 저술, 디자인을 넘어서 인쇄도 하고 제책도 하고 유통까지 시키는 자유 출판을 하고 싶어요. 안 팔리니까 책을 안 내는 게 아니라, 하나의 유산으로 누구나 기록을 남겨놓는 시대가 되었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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