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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견이 다르다고 서로 욕은 하지 맙시다

지금은 고대사를 공부할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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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를 이해할 때도 비슷한 문제에 부딪친다. 술 마시다 끊긴 필름을 복원할 때 느끼는 난감함 말이다. 어떤 조각은 복원에 성공하지만, 어떤 조각은 끝내 되살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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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술을 자주 마시진 않지만, 한 번 마셨다 하면 폭음할 때가 있다. 천성적으로 비폭력 평화주의를 지향하는지라 술 마시고 정신줄을 놓았다고 해서 누구처럼 욕을 하거나 기물을 파손하거나 사람을 패지는 않지만, 별로 환영 받지 못할 술버릇이 도진다. 말이 많아진다. 술자리에서도 많아지는데, 집에 와서도 폭풍 수다를 풀어놓는다. 처음에는 이런 모습이 귀엽다고 하던 아내였건만 요즘은 딱 두 글자로 자른다.


“자라.”


그대로 잤다고 생각하고 다음 날 아침, 아니 같은 날 아침에 “어제 마신 술은 이것이고 먹은 안주는 무엇이며 만난 사람은 누구고 이러이러한 소재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지롱.”이라고 아내에게 말을 건네면 아내는 싸늘한 시선으로 대답한다.


“어제 다 들은 이야기거든?”


이럴 수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아내에게 이야기한 사실은 기억에서 완전히 지워졌다. 술 마신 시간은 대략 7시간인데 7시간 동안 행적 중 기억나는 장면은 7분 정도다. 나머지 시간에는 뭘 했지? 더 곤란스럽게 하는 것은 함께 술 마신 일행이 보내온 메시지다.


‘님 어제 많이 취한 듯.’


침착하자. 물리적 폭력은 내 본성과 거리가 머니, 아마 폭력이 발생했다면 언어 폭력일 텐데 어제 내가 무슨 말을 했더라. 아무리 떠올려봐도 크게 문제될 발언을 하지 않았다. 그래도 뭔가 개운하지 않다. 어제 술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보내본다.


‘나 어제 실언했음?’


그리고 시간차를 두고 답장이 오기 시작한다.


‘몰라, 기억 안 남. 나 문 앞에서 쓰러져서 잤음. 엄마한테 등짝 맞음.’


‘너 술 안 취해도 원래 그렇게 말하는 인간 아님?’


한 명은 그대로 뻗어 자는지 끝내 답이 없다.


그리고 몇 달 뒤 동일한 구성원으로 만나 술자리를 열었다. 소심한 나는 이전 술자리에서 내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조심스레 물었지만 그 누구도 기억하는 사람은 없었다. 기억한다고 해도 서로의 기억이 맞지 않았다. 하버마스가 말하는 의사소통 합리성 이전에 정확한 기억 자체가 불가능함을 서로 논하다 우리는 그냥 술이나 마시기로 했다.

 

# 2 


고대사를 이해할 때도 비슷한 문제에 부딪친다. 술 마시다 끊긴 필름을 복원할 때 느끼는 난감함 말이다. 어떤 조각은 복원에 성공하지만, 어떤 조각은 끝내 되살릴 수 없다. 희미하게라도 남은 조각을 간혹 발견하기도 하지만 추측할 수 있으나 확신할 수 없다. 당장 어제 일어난 사건을 다루는 뉴스만 봐도 매체별 논조가 다른 판에, 시간적 거리가 먼 고대사인데 말해서 뭣하랴. 논란이 되는 부분이 많을 수밖에.


한국 고대사에서 논란이 되는 부분은 여럿이지만 몇 가지만 꼽으면 고조선의 세력 범위, 한사군의 위치, 임나일본부 정도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무릅쓰고 말하자면, 한쪽에서는 고조선이 베이징을 포함하여 유라시아를 호령한 대제국이고 한사군은 한반도에 설치된 적이 없으며 임나일본부는 일제가 만들어낸 허구라고 이야기한다. 반대편에서는 고조선이 강한 나라인 건 맞지만 그 정도로 세력을 떨쳤다고 보긴 힘들고 한사군 그중에서도 낙랑군은 평양 일대에 존재했으며 ‘임나’라는 지역에서 왜인이 활약했다는 내용이 사료에 등장하지만 이를 일본의 한반도 지배로 보기는 어렵다고 이야기한다. 학자에 따라서 일부 사안에는 동의하고 일부에는 동의하지 않는 등 스펙트럼은 다양하다.

 

『한국 고대사와 사이비 역사학』는 이런 논쟁을 두루두루 다룬다. 젊은역사학자모임 소속 여러 사학자가 묶은 이 책은 제목에서부터 직구를 던진다. 제목에 들어간 사이비似而非라는 표현은 비슷해 보이지만 아니라는 뜻으로, 그러니까 사이비 역사학은 역사학이 아닌데 역사학처럼 받아들여지는 담론을 뜻한다. 책에 따르면, 사이비 역사학은 이런 특징이 있다.

 

사이비역사학의 특징은 우리 민족의 우월성에 대한 강조, 광대한 고대 영토에 대한 집착, 그리고 음모론이다. 자신들의 역사상을 뒷받침하는 문헌적ㆍ고고학적 증거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일본인들과 현재학계의 주류인 ‘식민사학자’들에 의해 은폐되거나 제거되었기 때문이라 주장한다. 또한 자신들의 주장을 부정하는 수많은 반증 자료들에 대해서는 일본인이나 ‘식민사학자’들이 날조해낸 가짜라고 주장하거나 거론 자체를 거부한다. 이러한 사고 구조에서는 어떠한 대화나 학문적 검증도 불가능하다. (26쪽)

 

위에서 지적한 대로 고대사를 둘러싼 논쟁에서 양측의 대화는 불가능하다. KBS 1TV 설날 특집으로 방영된 2부작 다큐멘터리 ‘멕시코 한류 천년의 흔적을 찾아서’ 방영 이후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화나 합의보다는 절대적인 긍정이나 절대적인 부정이 다퉜다. 서로를 비하하는 ‘환빠’라든가 ‘친일파’ 등의 표현도 등장한다. 사료나 고고학적 증거가 워낙 부족한 고대사인 게 이유인지는 모르겠으나 이쪽에서는 논쟁이 발생한다면 일단 욕부터 깔고 시작하는 분위기.


이런 모습은 인터넷의 보급으로 더 활발해진 듯하지만, 『한국 고대사와 사이비 역사학』에서도 지적하듯 이미 오랫동안 반복되었다.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아직 21세기로 진입하기 이전이었다. 당시 나는 중학생이었는데, 학교에 꼭 한 명씩 있다는 역덕이 존재했다. 역사 덕후 말이다. 공중파에서 하는 역사 프로그램을 즐겨 봤고, 관련해서 책도 꽤 많이 읽던 친구였다. 그래서 역사 선생님이 그를 총애했다.


수업 시간 중 그 친구는 『환단고기』를 읽고 자랑스러운 한민족 역사를 알게 되었다고 이야기했고, 선생님은 위서 논란이 있는 저작이니 비판적으로 읽으라고 답했다. 당시 사회 선생님의 체벌은 꽤나 강도가 높기로 유명했는데, 그 친구가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모르겠지만 수업 시간 도중에 큰 소리로 이렇게 외쳤다.


“선생님은 왜 자랑스러운 한민족 역사를 부인하는 건데요? 그러고도 제대로 된 역사를 가르칠 수 있습니까? 간도는 우리가 회복해야 할 고토입니다.”


수업 분위기가 잠시 얼어붙었다. 반항은 곧 죽음을 의미하던 역사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선생님의 총애가 구타 본능을 이겼는지 정색하던 선생님의 표정은 이내 풀렸다. 허허 웃으면서 선생님은 이렇게 대답하셨다.


“야, 대한민국이 지금도 서울 중심인데 거기까지 우리 땅 했다간 얼마나 지방을 더 소외시킬라고 그라노.”

 

# 3

 

고대사를 둘러싼 진실 공방은 한국 고대사에서만 벌어지는 특수한 상황은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공동체인 그리스도교에도 고대사를 둘러싼 이것이냐 저것이냐 싸움이 펼쳐진다. 바트 어만이 쓴 『예수는 어떻게 신이 되었나』는 신학이 아니라 역사학적으로 예수를 조망한 책이다. 이 책은 하나의 물음으로 시작한다. 과연 이 사람은 누굴까, 하는 질문 말이다.

 

그가 태어나기 전 어머니는, 아들이 그저 인간이 아니라 사실상 신이라고 말했던 하늘의 방문객을 맞는다. 그의 탄생에는 하늘의 비범한 신적 표징들이 동반된다. 성인이 되어 그는 유랑하며 설교하는 공생활을 위해 자기 집을 떠난다. 그는 모든 사람들에게 지상의 삶과 재물에 관심을 갖지 말고, 영적이고 영원한 것을 위해 살아야 한다고 말하면서 마을에서 마을로 옮겨갔다. 그는 주변에서 제자들을 모았고, 그들은 그가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 하느님의 아들임을 확신했다. 그리고 그는 그들의 믿음을 확고히 하기 위해 기적을 행하였다. 그는 병자를 치유했고 악령을 물리쳤으며 죽은 이들을 일으켰다. 생애 말년에는 로마 지배 당국의 반대를 불러일으켰고 재판에 넘겨졌다. 그러나 그들은 그의 영혼을 죽일 수는 없었다. 그는 하늘에 올랐고 오늘까지 그곳에서 살고 있다. 지상을 떠난 이후에 살아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그는 의심하는 제자들 중 한 사람에게 다시 나타났으며, 제자들은 실제로 그가 지금 우리와 함께 머무른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20쪽)

 

여기까지 읽은 대부분의 독자는 책에서 지칭하는 ‘그’가 아마 예수라고 생각할 것이다. 틀렸다. 답은 ‘티아나 출신 아폴로니우스’다. 로마의 여러 신을 섬긴 다신론적 숭배자이고 유명한 철학자였다. 여기서 바트 어만이 지적하고자 하는 바는 ‘비범한 출생 - 영적이고 영원한 삶을 강조 - 기적을 행함 - 권력으로부터 핍박 받음 - 죽어서 부활’이라는 서사가 그리스도교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그 시대에는 흔하지는 않지만 존재했던 영웅 서사였다는 사실이다.


2천 년이 지난 지금 아폴로니우스와 예수의 위신은 판이하다. 한 명은 고문헌학자나 살펴보는 사상가고, 한 명은 지구인 중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믿는 신이다. 바트 어만은 어떻게 해서 예수가 다른 경쟁자를 물리치고 신이 되었는지를 추적한다. 이 경쟁자에는 앞서 말한 아폴로니우스 외에도 대표적으로 로마 황제가 있다.


역사적 예수를 복원하는 작업은 쉽지 않다. 한국 고대사와 마찬가지로 자료가 없다. 예수에 관한 직접적인 기록인 공관복음은 예수 사후 최소 40년 이후에 쓰여졌고, 공관복음 사이에서도 많은 부분에서 일치하지 않는다. 그래서 저자는 자신의 논의를 진전시키기 위해 복음서 외에도 다양한 역사 자료를 분석한다. 바트 어만은 여러 가지 주장을 펼쳐놓는데, 대표적으로 ‘부활’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근본주의 기독교와 해석을 달리 한다. 그리스도교는 초기 영지주의(일부 영지주의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육체의 사멸과 영혼의 부활로 이해함)와 싸움에서 승리한 뒤 부활을 육체적으로도, 영적으로도 부활했다고 받아들인다. 이에 비해 바트 어만은 역사적 사실로써 부활을 인정할 수 없다는 쪽이다. 또한 그는 예수가 그가 활동하던 시기 예언자 혹은 대언자로서 정체성을 밝혔지, 신으로서 자리매김하지는 않았다고 말한다.

 

충실한 연구들이 보여주듯이, 예수의 다양한 행적과 그가 연루된 여러 논쟁 및 그를 죽음으로 이끈 다양한 사건 모두는, 특히 묵시론적 틀 안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예수가 어떻게 그리고 언제 하느님으로 여겨지게 되었는지에 대한 신학적ㆍ종교적 물음이다. 나는 예수가 공생활을 하는 동안에 가르치고 설교한 내용은 이 사안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와 반대로 그의 메시지가 안고 있는 부담은 도래하는 파국과 구원에 대한 묵시론적 선포였다. 그는 사람의 아들이 세상을 심판하러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곧 올 것이며, 사람들은 이 가공할 역사의 파국을 준비해야 하고, 하느님께 충실히 머문 의인들은 고통 중에도 하느님이 원하시는 일을 했기에 변호를 받고 보상받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136쪽)

 

요약하자면, 저자가 판단하기에 예수는 묵시론을 설파하는 사도였지 신이라고 주장하지 않았다.신으로 격상된 건 그를 추종하는 제자들이고 시기는 예수 생전이 아니라 사후라는 분석.

 

# 4.

 

『한국 고대사와 사이비 역사학』이나 『예수는 어떻게 신이 되었나』는 모두 도발적인 책이다. 제목부터 직구이고, 내용은 더 직설적이다. 환국의 실재를 믿는 사람과, 근본주의 기독교 신앙을 믿는 사람에게는 매우 거슬리는 내용을 담았다. 그래서인지 이런 소재에 관해 논쟁이 붙으면 ‘친일파’ ‘마귀’라는 딱지부터 날리고 시작한다. 여기서 엄마 아빠 욕은 기본. 너희 엄마 아빠가 친일파였구나, 너희 엄마 아빠가 악마구나 등등. 그런데 우리 최소한 욕은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서로 욕하고 싸우는 건 고대 성인들이 원하지 않았을 테니까.


한국 고대사와 그리스도교 초기 역사, 이 둘은 전혀 다른 문제이긴 하지만 인간의 욕망을 과거에 투사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보다 넓은 부동산을 소유하고 싶고, 불로장생하고 싶어 하는 욕망은 인간이라면 대개 갖고 있다. 이것이 한국 고대사에는 드넓은 영토로, 기독교 신앙에는 부활로 연결되는 것은 아닐까. 아니라면 할 수 없다.


시선을 돌려 보면 넓은 부동산과 불로장생보다 괜찮은 가치는 얼마든지 있다. 북유럽 사민주의 국가냐 러시아냐 둘 중 택하라면 나는 전자다. 그런 면에서 고조선의 영역 범위가 베이징에 이르렀다는 증거보다는 고조선에서는 성별과 계층에 상관없이 누구나 행복하게 살았고 굶어 죽는 사람은 없었다는 사료가 발견된다면 굉장히 멋질 듯하다. 마찬가지로 예수의 부활도 육체는 사라졌으되, 그 분의 인류애 정신은 우리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 계시다는 해석이 더 마음에 든다.

 

한국 고대사와 그리스도교 초기 역사를 읽자니 세계사를 향한 궁금증이 일었다. 마침 『대세세계사』가 나왔다. 이 책은 유럽과 중국만이 아닌 다른 지역을 다루려고 노력했다. 주로 정치사 위주로 서술하는 세계사에서 탈피하여 문화사 경제사 등 다양한 방면을 이야기한다. 꽤 두꺼운 분량이지만 이미지 자료가 많아 책장도 빨리 넘어간다. 2권은 5월에 나올 예정이다.

 

* 이 글은 채널예스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 글에 나타난 오류는 전적으로 필자의 무지 탓이고 글의 맥락이 이어지지 않은 이유는 숙취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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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손민규(인문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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