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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맨스, 형제애와 로맨스의 경계

‘동성애’라기보다는 그와 비슷한 ‘동성애 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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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브로맨스는 버디 형식과 비교했을 때 남성들도 우정과 의리를 넘어 사랑, 즉 애愛의 관계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문화적 다양성이라는 관점에서의 메시지를 우리에게 던져준다. 그러나 그것이 반드시 육체적 욕망 충족의 차원이 아니라는 점에서 동성애와는 거리가 있다.

로맨스라고 하면 대개 남녀 간에 벌어지는 사랑 이야기를 떠올리곤 한다. 그런데 최근에는 남성들 간의 로맨스가 펼쳐지는 영화와 드라마들이 쏟아지는 것은 물론 대중가요에서도 이러한 노래나 캐릭터가 등장하고 있다. 남녀 간이 아닌 남남 간의 로맨스가 대중문화 코드의 대세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남성들 간의 로맨스에는 어떠한 사례들이 있으며 이러한 로맨스는 누가, 왜 원하는 것일까.
우선 남남 로맨스의 사례들을 살펴보자. KBS 2TV의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서는 송송(송중기ㆍ송혜교) 커플이나 진구ㆍ김지원이라는 남녀 커플만이 아니라 남성과 남성 간의 관계도 눈길을 끌었다. 그 주인공은 송중기와 진구였다. 심지어 그들은 똑같은 줄무늬 옷을 입고 등장하기도 했다. 이는 커플티를 연상시켰는데, 대개 커플티는 사귀는 사람들이 같이 입고 다닌다는 점을 생각하면 흥미로운 지점이었다.

 

남성 주인공들의 알 듯 말 듯한 미묘한 감정을 담은 말


영화와 드라마에서는 이런 ‘브로맨스bromance’가 눈길을 끌고 있다. 브로맨스는 형제를 뜻하는 ‘브라더brother’와 사랑을 뜻하는 ‘로맨스romance’가 결합한 신조어인데, 남성 주인공들의 알 듯 말 듯한 애틋 미묘한 감정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그저 우정을 강조하는 ‘버디buddy’라는 개념과는 또다르다. 앞서 언급했듯 브로맨스의 대표적인 예로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 등장했던 송중기(유시진)와 진구(서대영)를 들 수 있다. 남녀 커플의 스토리도 재미있지만 남남 커플의 우정을 넘어선 달달한 감정은 확실히 〈태양의 후예〉에 흥미를 더했다. tvN의 〈응답하라 1988〉의 류준열과 박보검은 좋아하는 여자를 두고 브로맨스를 선보였다.


영화에서 〈내부자들〉의 이병헌과 조승우, 〈검은 사제들〉의 김윤석과 강동원, 〈동주〉의 강하늘과 박성민 등의 관계 역시 넓게는 브로맨스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남자 캐릭터들에게서 나타나는 이런 감정의 깊이감에 대응해 여성들의 경우에는 영화 〈아가씨〉처럼 여성 캐릭터들의 미묘한 감정이 담긴 백합 코드, 즉 여성들 간에 미묘하고 격정적인 감정이 분출되는 분위기가 눈길을 끌기도 했다.

 

   102P 영화 동주.jpg

화 <동주>의 강하늘과 박성민의 관계 역시 넓게는 브로맨스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변화는 영화와 드라마에서는 물론 뮤지션들 사이에서도 쉽게 인식되고 있다. 물론 이런 기미가 가장 먼저 감지된 것은 예능 프로그램이었지만 사실 공연계에서도 이런 현상이 나타난 지는 꽤 되었다. 연극 <M버터플라이>와 <프라이드> 등의 그것인데, 이런 작품들은 작품성은 물론 대중성에서도 좋은 평가와 함께 인기를 끌어 공연계에서는 “브로맨스를 내세운 작품들은 흥행불패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형제애나 우정을 그린 버디와는 분명 다른 로맨스, 아니 케미


이와 비슷한 말로 과거에 ‘버디 무비buddy movie’가 있었다. 버디 무비는 두 명의 남자 주인공이 등장하여 남자들만의 관계를 드러내는 영화를 지칭하는 표현인데, 1969년에 개봉한 미국 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ButchCassidy and the Sundance Kid〉 같은 작품이 버디 무비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브로맨스와 버디 코드는 어떤 점에서 다를까? 버디 코드는 단지 형제애나 우정, 그리고 의리에 그치는 반면 브로맨스는 그렇지 않다. 브로맨스라는 표현에서 초점을 맞춰봐야 하는 부분은 바로 ‘로맨스’다. 로맨스는 주로 남녀 간에 일어나는 ‘사랑의 감정’과 관련된다. 그렇다면 브로맨스는 바로 남성과 남성 간에 일어나는 정서적 관계를 말한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 사랑인지는 알 수가 없다. 요즘 말로 하자면 ‘케미’가 일어나는 듯 보일 뿐이다. 화학적 작용을 뜻하는 ‘케미’라는 말은 단순한 호감이나 친근함과는 다르다. 정신을 못 차릴 정도의 격정적 감정이 일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남성 간의 묘한 사랑의 감정이 일어나는 것은 동성애 문화의 부각 때문이다. 동성애 문화가 수면 아래의 서브 컬처subculture에 머물던 단계에서는 이러한 남성들 간의 케미가 주목받지 못했다. 그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 자체가 금기였기 때문에 살짝 언급만 해도 분위기는 무거워졌다. 하지만 지금은 동성애에 대한 생각도 다소 변화하여 이제는 그렇게 무거운 주제로만 받아들이지는 않게 되었다. 여기에서의 포인트는 ‘반드시 동성애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즉, 브로맨스는 ‘동성애’라기보다는 그와 비슷한 ‘동성애 코드’에 부합한다고 봐야 한다.

 

동성애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면 남녀 이성애


이런 브로맨스가 많아진 이유는 여성 관객들의 힘 때문이다. 드라마와 영화, 공연 문화의 핵심 주도층은 여성이다. 여성 관객들은 레즈비언 코드에는 별 관심이 없다. 문화는 미지의 아우라가 있어야 하는데, 바로 남성의 동성애가 그 영역 안에 있다. 이성에 대한 알 수 없음은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하는데, 더구나 꽃미남인 멋진 남성들이 벌이는 케미라면 더욱 흥미진진하다. 물론 남성 관객들은 이런 남성들 간의 케미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고, 오히려 예전 같은 버디 무비 스타일을 여전히 원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브로맨스의 주인공들이 하나같이 잘 생겼고 미끈한 까닭은 그 밑에 이런 맥락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브로맨스는 버디 형식과 비교했을 때 남성들도 우정과 의리를 넘어 사랑, 즉 애愛의 관계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문화적 다양성이라는 관점에서의 메시지를 우리에게 던져준다. 그러나 그것이 반드시 육체적 욕망 충족의 차원이 아니라는 점에서 동성애와는 거리가 있다. 물론 이는 오로지 그것을 보는 시청자, 관객, 그리고 팬들이 판단할 문제긴 하지만 말이다. 최근에는 여성들 사이의 케미, 즉 백합 코드가 적용된 작품들도 선보였다. 영화 〈아가씨〉가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는데, 이 영화의 엔딩 장면은 여성들 간의 정사신으로 끝난다. 이는 남성 중심의 질서에 대한 동성애적 반격이라 새삼 눈길을 끌기도 했다.


아가씨.jpg
여성들 사이의 케미, 백합 코드가 적용된 작품

 

브로맨스나 백합 코드는 동성애 관련 개념이라고 할 수 있으나 이전까지의 동성애 코드와는 다소 다르다. 동성애 코드란 결국 동성 간의 사랑을 다루는 것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면 남녀 이성애 관계를 다루는 것이 핵심 코드다. 본래 대중 대상의 공연 문화에서 동성애 코드는 여성이 아닌 남성에게 초점이 맞춰지고, 때문에 이런 작품들의 흥행은 주관객인 여성에게 달려 있다. 동성애 소재가 등장하는 공연일수록 티켓 판매가 더 잘된다는 분석도 있다. 물론 여기에서의 동성애는 남성들의 호모 섹슈얼을 의미한다.


사실 남성들은 레즈비언이 나오는 영화에 관심이 없다. 그러니 과연 남자들이 레즈비언 영화를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지 의문이기도 하다. 당연히 〈아가씨〉 같은 레즈비언 영화는 대중 흥행에서 한계가 있다. 여성들이 대중적으로 원하는 것은 남성들의 동성애 코드이기 때문이다. 그 남성들은 하나같이 잘생긴 외모, 이른바 꽃미남이어야 한다. 경제적 격차와 양극화의 심화는 성적인 측면에서도 결핍을 강화할 수밖에 없다. 본래의 대상을 찾지 못하면 대체 대상을 찾는 법이다. 이성 간의 상대적인 박탈과 소외는 결국 동성 간의 관계에서 만족을 추구하는 분위기로 연결될 테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더욱 충만하고 소망스런 결과를 만들어내지는 못할 것이다. 결말은 비극적이거나 파멸적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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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헌식(대중문화평론가, 문화콘텐츠학박사)

2004년부터 대중문화평론가로 활동하며 콘텐츠·미디어 분석을 해왔다. KBS, MBC, SBS, EBS 등의 방송 프로그램에서 문화와 트렌드 관련 코너를 진행해왔다. 현재 동아방송예술대학교 초빙교수이고, 지은 책으로 《대중문화 심리읽기》 《트렌드와 문화심리》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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