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펼치는 순간, 내 그림자가 보인다
『하이드와 나』 펴낸 김지민 작가
융은 한 인간의 성격이란 것은 단일한 이미지로 규정될 수 없고 수많은 성격(personality)의 조합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이러한 융의 생각에 아이디어를 얻어 『하이드와 나』를 구상하게 됐어요.
검은색 두툼한 표지를 펼치자 한 소년이 보인다. 다소 무표정한 얼굴, 고개는 살짝 기울어져 있다. 두 번째 장을 펼치자 소년의 뒷모습이 보인다. 낯선 대문 뒤에서 서성이는 소년. 이윽고 자신의 얼굴과 맞닥뜨린다. 아코디언북으로 만들어진 『하이드와 나』는 자꾸만 펼쳐보게 되는 그림책이다. 작가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 궁금한 동시에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게 된다. 동판에 새기고 판화로 찍어내는 에칭(동판화) 기법을 활용해, 흑백의 단조로움을 벗어났다. 책의 마지막 장에 다가서면, 어느덧 소년의 얼굴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마치 내 숨겨진 얼굴을 들킨 마냥.
김지민 작가는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뒤,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 중 영국으로 유학, 영국 킹스턴 대학교에서 일러스트레이션학과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하이드와 나』는 졸업작품으로 만든 책이다. 심리학에 관심이 많아 칼 융의 책들을 읽는 중, 『하이드와 나』를 구상했다.
졸업작품으로 만든 책 『하이드와 나Hyde & Seek』로 2016년 영국 ‘AOI World Illustration Awards’에서 뉴탤런트 책 부문 수상과 동시에 최고상을 수상했습니다. 수상 소감을 여쭙고 싶어요.
영국으로 유학을 갔을 때 런던 섬머셋 하우스에서 2014년 AOI 어워드 수상작 전시를 처음 보게 됐어요. 전시를 보면서, 나도 내년에 꼭 도전해 봐야지 생각했죠. 하지만 이렇게 수상하게 될 줄은 정말 예상치 못했습니다. 심사위원 중 하나가 제가 정말 좋아했던 영국의 유명 일러스트레이터 ‘데이빗 휴즈'라는 사실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더 없는 영광이었고 기쁨이었죠. 무엇보다 좋았던 일은 제 작품이 런던 섬머셋 하우스에서 한 달간 전시를 하게 되었고 이후 영국 전역을 돌며 전시 기회를 가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참, 최근에는 '나미콩쿠르'에서도 이 책이 퍼플아일랜드 상을 수상했답니다. 작가들은 자신의 작품을 누군가 알아봐 줄 때 가장 기쁜데 어워드 수상은 그런 의미로 기쁜 일 아닐까요?
『하이드와 나』는 어떻게 구상한 작품인가요?
어릴 때부터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지킬박사와 하이드 씨』, 도스토예프스키의 『분신』 같은 소설들이나 데이빗 핀처 감독의 <파이트 클럽> 같은 영화 등등, ‘분열된 자아’나 ‘얼터 에고’( alter ego)를 주제로 다룬 다양한 작품에 흥미를 느껴왔습니다. 당연히 이런 관심은 심리학으로 연결되었고, 스위스 심리학자 칼 융의 책들을 읽게 됐어요. 융은 한 인간의 성격이란 것은 단일한 이미지로 규정될 수 없고 수많은 성격(personality)의 조합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이러한 융의 생각에 아이디어를 얻어 『하이드와 나』를 구상하게 됐어요.
오리지널 북은 텍스트가 없었다고요. 글을 추가로 쓰시는 데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글을 쓰는 일이 그 자체로도 저에겐 매우 어려운 일이기도 하지만 특히 그림책에서는 텍스트가 디자인적인 면에서 그림과 잘 어우러져야 하는 점도 고려해야 하잖아요. 그래서 쉽지 않은 작업이었어요. 내용면으로는 책 자체의 몽환적인 분위기와 잘 어울리면서도 주제를 함축하려고 노력했고, 또 디자인적인 면으로는 그림과 어우러지게 텍스트의 양을 최소화하고 글 자리와 폰트 선정에도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제작과정이 무척 까다로웠을 것 같습니다. 출간되기까지 에피소드가 궁금합니다. 책 만듦새는 만족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아주 만족합니다. 우선 오리지널 에칭프린트 북의 느낌을 그대로 재현하기 위해 종이 선정부터 까다롭게 진행됐어요. 판화종이와 유사한 텍스쳐 느낌을 내면서 인쇄도 잘 돼야 했기 때문에 정말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선정됐고, 인쇄 시에도 기계 옆에서 인쇄 상태를 수시로 체크했어요. 그뿐만 아니라 매 페이지마다 다른 형태의 커팅섹션이 들어가기 때문에 제작이 매우 까다롭고 비용이 많이 드는 작업이었습니다. 30년 가까운 경력의 한솔수북의 팀장님께서도 이렇게 제작이 복잡하고, 까다로운 책은 처음이라며 혀를 내두르셨습니다. 제 의견을 늘 경청해주시고 좋은 의견을 주신 한솔수북의 팀장님과 디자이너께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어요.
홈페이지(WWW.JIMINKIMPICTUREBOOK.COM)를 보니, 흑백 작품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색을 많이 사용하지 않는 그림을 좋아하시는지요?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하이드와 나』는 작품의 콘셉트와 흑백 컬러가 어울리기 때문이고 홈페이지엔 제가 유학 중에 주로 했던 에칭 작업이 주를 이루어서 흑백작업이 많았어요. 저는 디자인이나 일러스트레이션에서 색은 가장 강력한 도구 중의 하나라고 생각해요. 특히 그림책에서의 색은 작품의 톤을 결정하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되기 때문에 색을 쓰는데 상당히 심사 숙고하는 편입니다. 다음 제 아티스트북에서는 컬러풀한 페인팅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작가님은 때때로 스스로의 생각이나 느낌을 숨기는 편이신가요?
저는 생각이나 감정을 숨기는 데 능숙한 사람은 아닙니다. 오히려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바로 얼굴에 드러내서 상대방을 불편하게 하거나, 또 그런 면 때문에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도 종종 있는 편입니다. 원활한 사회생활을 위하여 가끔은 능숙하게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숨기는 기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또 그것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물론 자기자신을 기만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겠지요.
고르기 어려우시겠지만, 이 그림책에서 가장 좋아하는 그림은 무엇인가요?
마지막 장면에서 아이의 뒷모습으로 큰 눈동자가 보이고 그 밑으로 또 다른 작은 눈동자가 겹쳐 보이는 장면을 좋아합니다. 크기가 다른 눈동자들이 마치 우주에 떠 있는 미지의 행성들처럼 느껴집니다. 우리는 누구나 미지의 우주를 내면에 하나씩 품고 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인터넷서점에는 유아 4~6세 추천 도서로 분류가 되어 있습니다. 아이 독자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어떤 마음으로 이 책을 접하면 좋을까요?
이 책의 주제는 융의 그림자 이론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사실 완전한 사회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유아들이 이해하기에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책은 텍스트와 오브젝트로 구성됩니다. 우선 유아들은 이 책을 내용보다는 흥미로운 오브젝트로서 즐기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아코디언북이기 때문에 주욱 폈다 접었다 하면서 매 장면의 컷팅섹션을 통해 만들어지는 다양한 이미지들을 감상하는 재미로 접근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시간이 흘러 초등학생, 중학생이 되었을 때 심지어 성인이 되어서 다시 책장에서 꺼내보고 ‘이 책이 이런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이었구나!’ 하고 다시 보게 될 수 있는 책이 되길 바랍니다. 한 마디 덧붙이자면 유아들보다 그림책을 정말 좋아하는 어른들이 더 많이 이 책을 즐기기를 바랍니다. 새로운 형식과 이야기를 품은 그림책을 찾는 젊은 일러스트레이터들과 특별히 그림책을 좋아하는 20~40대들이 많이 보기를 바랍니다.
어렸을 적, 그림책이나 동화책, 또는 책을 좋아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좋아했어요. 거의 시골과 다름없는 작은 소도시에서 자랐고 책을 읽는 일은 가장 즐거운 오락거리 중 하나였습니다. 그림책부터 만화책, 동화책 심지어는 아버지가 보시던 <리더스 다이제스트>라는 잡지까지 읽었습니다. 저의 어머니는 제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책을 자주 읽어 주셨고 저는 책을 보면서 스스로 한글을 깨우치게 되었죠.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요즘처럼 어머니들이 아이들에게 책을 많이 읽어주는 일이 흔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제가 이런 직업을 가지는데 저의 어머니가 많은 영향을 미치셨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에서는 영문학을 공부하셨는데, 일러스트레이터로 어떻게 활동하게 되셨나요?
사실 어렸을 때부터 그림은 즐겨 그렸지만 그림을 그리는 일이 직업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못했습니다. 주변에 미술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을 본적이 없었거든요. 하지만 책을 좋아하고 그림을 그리는 일을 좋아하니 자연스럽게 그림책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그림책학교에서 공부를 시작하면서 일러스트레이터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린이책의 일러스트레이터 일을 하면서 조금 더 체계적으로 그림책에 대해 연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유학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책이 첫 결과물이 되었죠.
그림책이 작가님께 딱 1권이 있습니다. 어떤 독자에게 선물하고 싶나요?
사실 주변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인간관계 때문에 힘들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친구나 직장상사, 심지어는 가장 가까운 가족과의 관계로 힘들어하는 경우를 가끔 보게 됩니다. 얘기를 듣다 보면 인간관계에서 오는 상당수의 트러블들이 각 개인이 가지고 있는 그림자와 상당수 연관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이드와 나』를 보면서 자신의 내부에 분명히 존재하지만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자신의 그림자와 먼저 조우하는 순간을 가져 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리고 자신과 문제가 있던 상대방을 바라보면 분명 다르게 보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좀더 적확한 설명은 칼융의 다음 문장으로 대신할까 합니다.
“Knowing your own darkness is the best method for dealing with the darknesses of other people.”
김지민 작가
최근에 읽은 그림책 중에 인상 깊었던 그림책 1권만 추천해주세요.
존 클라센과 맥 버넷의 『샘과 데이브가 땅을 팠어요』를 재밌게 봤습니다. 원래 토미 웅게러나 윌리엄 스타이그, 퀜틴 블레이크처럼 유머를 잘 다루는 작가들을 좋아합니다. 존 클라센도 그런 맥락에 있는 재능 있는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월요일에 샘과 데이브는 땅을 팠어요’라며 주인공들의 삽질로 시작하는 이 책은 인생에서 결과보다는 그 과정을 즐기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다소 심오한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작가들은 이런 다소 무거운 주제를 간결한 문장들과 유머스러운 그림으로 어떤 장르보다도 강렬하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런 점이 그림책이란 장르가 가진 매력과 힘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활동 계획을 알려주세요.
2월 초에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CODEX BOOK FAIR 2017에 『하이드와 나』 오리지널 프린트 북과 새로운 아티스트북으로 참여합니다. 앞으로도 어린이책과 아티스트북 작업을 병행하며 내용과 형식이 아름답게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그림책을 계속 만들고 싶습니다.
하이드와 나김지민 글 | 한솔수북
이 책은 내면의 다양한 풍경을 보여 주는 데 그치지 않고, 낮선 나를 만날 수 있는 호기심 넘치는 공간으로 초대합니다. 거울로 가득한 공간 속에서 고정된 모습이 아니라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변형된 내면의 모습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관련태그: 하이드와 나, 김지민, 그림책, 아코디언 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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