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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와 선 누이 같은 멜로 : <시간이탈자>

신선하지 않은 타임 슬립을 요리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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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용 감독이 두 시대를 관통하는 이야기를 보여주었던 <클래식>에서 우리는 이미 두 시대를 가르는 색감을 본 적이 있다. 서로 다른 두 가지 축을 그려내면서 시대적 감성 대신, 이분법적인 색감으로 차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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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시간이탈자>는 아주 복고적이지만, 달짝지근하게 현재를 에둘러 잊고 복고의 기억상실에 기대고 싶어 하는 영화는 아니다. 달라진 관객들의 기호를 고민하고, 밋밋하지 않게 이야기를 직조하고, 그러면서도 감독이 보여주고 싶어 하는 멜로를 담아낸다. 호불호가 갈리긴 하지만, 80~90년대부터 줄곧 그대로인 곽재용 감독의 ‘소녀감성’이 여전히 살아있다는 사실 자체가 낯설어 도리어 반갑기까지 하다. 곽재용 감독이 생각하는 사랑의 가치와 그 지속성, 그리고 그 절절함에 대한 믿음은 저래도 되나 싶게 여전히 순진하고, 낯간지럽지만 여전히 퇴색되지 않는 순수한 순간들을 담아낸다. 그럼에도 영화의 절반이상을 말해주는 제목처럼 무언가를 교묘하게 숨기거나 영리한 느낌이 부족해 보이는 점은 좀 아쉽다.

 

여러 가지 색다른 시도들을 하고 있지만 타임 슬립이라는 소재가 더 이상 신선하지 않다는 사실은 <시간이탈자>가 애초에 풀어야 할 숙제였다. 최근 종영된 드라마 <시그널>은 시간의 비틀림에 대한 정교함과 다른 시간 속을 사는 인물들 사이의 감정의 교류, 치밀한 이야기 구조로 호평을 받았다. 게다가 주인공 이진욱의 대표작이 타임 슬립을 소재로 한 <나인 : 아홉 번의 시간여행>이라는 점 때문에 자꾸 뭔가가 겹쳐 보인다. 그리고 2015년 살인사건과 타임 슬립이라는 소재로 <더 폰>이 앞서 개봉되었다. 심지어 유사하게 타임 슬립이 주는 스릴러적인 요소 안에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간절함을 세 작품 모두 녹여내어 여성관객의 호응도 적극적으로 끌어냈다. 물론 앞선 작품들과의 비교가 굳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시간이탈자>는 다른 결의 이야기를 품고 있고, 새로운 감성을 담아내려고 노력한다. 게다가 감독 최대의 장점인 멜로 이야기가 <시간이탈자>의 가장 큰 장점임은 부인하기 어렵다.

 

곽재용 감독은 다른 시간 속 두 남자가 소통하는 방식을 비교적 정교하게 짜내고, 꼬인 시간의 미스터리를 최대한 설득력 있게 그리기 위해 노력한다. 거기에 절절한 멜로는 등장인물들과 동화의 감정을 만들어내면서 관객들이 주인공에 동화되게 만든다. 꽉 찬 배우들의 연기는 스릴러의 느슨함을 대신 채워주기도 한다. 1983년 음악 년 강력계 교사 지환(조정석)과 2015형사 건우(이진욱)는 1월 1일 보신각 타종 행사에서 큰 사고를 당하고 꿈을 공유하는 사이가 된다. 서로의 꿈에 등장한 이야기는 실제 각각의 시간에서 벌어지는 일이기도 하다. 동료 교사 윤정(임수정)과 결혼을 준비하는 지환은 꿈을 통해 그녀가 살해당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건우의 눈앞에 윤정과 똑같이 생긴 교사 소은(임수정)이 등장한다. 지환과 건우의 뒤섞인 시간들이 윤정과 소은을 통해 재현되려 하고, 과거의 사건은 현재의 소은에게 위협이 된다. 지환과 건우는 각각의 여인을 지키기 위해 사건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1983년과 2015년, 30여년을 오가는 이야기라 실마리를 찾기 위해 관객과의 두뇌싸움을 벌일 법도 한데, <시간이탈자>는 의외로 무척 단선적이다. 시대를 표현하는 방식이 지나치게 도식적인 것과 같은 맥락이다. 곽재용 감독이 두 시대를 관통하는 이야기를 보여주었던 <클래식>에서 우리는 이미 두 시대를 가르는 색감을 본 적이 있다.  서로 다른 두 가지 축을 그려내면서 시대적 감성 대신, 이분법적인 색감으로 차별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80년대는 은은한 갈색 톤으로, 21세기는 차가운 은회색 색감으로 나눠지는 것이다. 덕분에 친절하게 두 가지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겠지만 두 가지가 구성되고 섞이기 위해 필요한 감성이 하나로 엮이지 않는 순간을 만들어내고, 결국 이야기에 대한 개연성을 이탈시킨다. 플롯은 비교적 잘 짜인 것 같은데도 단선적인 연쇄 사건의 나열은 개성도 개연성도 떨어진다. 가장 아쉬운 점은 복잡한 이야기 구조에도 불구하고 이미 너무 예측 가능한 범위 내에서 실마리를 풀어나간다는 점이다. 두 시대를 오가는 미스터리 여인의 정체도 예상한 그대로이고, 예측 가능한 살인범은 너무 일찍 노출되었고 그 해결 방법도 도식적이다. 

 

스릴러의 외피를 뒤집어썼지만, 결국 곽재용 감독의 감성과 이야기의 방점이 찍히는 이야기가 멜로라는 사실만 두고 보자면, 멜로는 <시간이탈자>를 구원하는 커다란 축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리고 어쩌면 곽재용 감독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감성의 표현이 멜로 속에 오롯이 담긴 것도 사실이다. 주인공이 목숨 걸고 지키고 싶어 하는 것도 사랑, 시대를 넘어 끊임없이 질주하는 유일한 이유도 사랑이라는 점은 끝까지 지켜보고 싶은 사랑의 순수함에 대한 갈망을 담아낸다. 그리고 그 절절한 사연이야말로 <시간이탈자>를 지탱하는 큰 축이며, 주인공과 관객을 이어주는 끈이다. 80년대 말 큰 인기를 끌었던 <비오는 날의 수채화>, 2001년 <엽기적인 그녀>, 2003년 <클래식>으로 이어지는 곽재용 감독의 작품들은 꽤 신선했다. 멜로의 감성은 충만했지만 우리가 흔히 알고 있던 신파에서 매끄럽게 벗어난 모습이었다. 출생의 비밀, 코미디, 비밀을 품은 두 시간의 이야기를 잘 활용하면서 멜로가 주는 신산스러움을 매끄럽게 피해갔다. 그럼에도 따뜻한 순애보를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이후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와 <무림여대생>은 신선하지 않은 동어반복이었다. 

 

<시간이탈자>를 꾸미는 감성추적스릴러라는 수식어와 관통하는 스타일은 전체적으로 ‘클리셰’같은 느낌이 든다. 곽재용 감독영화를 통해 전달하고 싶어 하는 이야기의 본질이  복고적이고 고전적인 멜로의 소녀적 감수성이라면, 그에게 필요한 것은 스릴러라는 새로운 장르 교배 혹은 수혈이 아니라 시간이 성숙시킨 사랑의 본질에 대한 변화된 시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시간이탈자>를 보고 있자면 이상하게 아련하고 아득한 기분에 빠져들기도 하는데, 이 영화가 과거의 곽재용을 현재에도 그대로 다시 만나는 것 같은 기분을 주기 때문인 것 같다. <시간이탈자>는 새롭지 않지만 ‘그 여전함’이 반가운 기묘한 영화로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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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최재훈

늘 여행이 끝난 후 길이 시작되는 것 같다. 새롭게 시작된 길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느라, 아주 멀리 돌아왔고 그 여행의 끝에선 또 다른 길을 발견한다. 그래서 영화, 음악, 공연, 문화예술계를 얼쩡거리는 자칭 culture bohemian.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후 씨네서울 기자, 국립오페라단 공연기획팀장을 거쳐 현재는 서울문화재단에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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