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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찾아오는 것 〈엑시덴탈 러브〉

삶을 견디게 하는 보석같은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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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 포스터와 인물의 조합은 ‘결국, 이 이야기는 사랑을 향해 달려간다는 것’을 예고하지만, 이 서사의 열차는 종착역에 도달하기 전에 미국 사회의 ‘의료보험제’와 ‘모기지 론’과 ‘하원 정치의 추악함’을 빈정대고, 꼬집고, 조소하며 경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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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이야’ 라면서도 책장을 덮지 못하게 하는 책이 있다. 이런 책 중에 상당수는 (이미 실망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한) 실망감을 선사한다. 하지만, 간혹 마지막 장을 덮을 때엔 완전히 다른 기분이 되어 ‘우와! 이런 말이었다니’하는 책도 있다. 나는 이 몇 안 되는 이 경험을 위해 무수한 실패를 반복하면서도 독서를 한다. 
 
영화 역시 같은 기분으로 보는데, 내게 ‘데이비드 O. 러셀’ 감독은 꽤나 독특한 인물로 인식돼 있다. 어떤 작품은 보수적인 스타일로 엄격히 연출하지만, 어떤 작품은 곤란할만큼 급진적인 스타일로 느슨히 연출해버리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의 전략이건 아니건, 나는 꽤 영리한 방식이라 여긴다. 예술 작품의 발표는 일종의 커뮤니케이션 같은 것인데, 매번 수작을 발표하면 관객의 기대는 올라갈 수 밖에 없다. 이는 예술가 자신에게 더 나은 작품을 창작하게 하는 엔진이 되기도 하지만,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지뢰가 되기도 한다. 진정 자신이 속한 예술 분야에서 여생을 보내고 싶은 이라면, 좀 더 느긋한 자세로 ‘이런 저런 작품을 담백하게 만들어 불쑥 내놓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러면, 관객도 긴장하지 않은 채 ‘뭐, 이러다가 또 좋은 걸 하나 쑥 뽑아낸다구’하며 편안히 보게 된다. 나 역시 독자로서도, 관객으로서도, 창작자로서도 그러하다. 러셀 감독 역시 그러한 것 같다. 
 

 <엑시덴탈 러브>는 그가 연출한 ‘파이터’나 ‘아메리칸 허슬’과는 한껏 다른 분위기의 작품이다. 같은 로맨스 물인 ‘실버라이닝 플레이북’과도 다른 느낌이다. 루저와 속물을 난무케하는 그의 캐릭터 설정에는 변함이 없으나, ‘실버라이닝 플레이북’과는 결이 다른 사회성 짙은 로맨스 물이다. 제목과 포스터와 인물의 조합은 ‘결국, 이 이야기는 사랑을 향해 달려간다는 것’을 예고하지만, 이 서사의 열차는 종착역에 도달하기 전에 미국 사회의 ‘의료보험제’와 ‘모기지 론’과 ‘하원 정치의 추악함’을 빈정대고, 꼬집고, 조소하며 경유한다. 이런 말은 과장일지 모르겠지만 (믿거나 말거나) 나는 꽤나 순진한 사람이다. 따라서, 영화를 보고 나도 모르게 ‘아, 결국 한 사회에서 사랑을 이뤄내는 것도 호혜적인 법제도와 건강한 정치와 친절한 사람들의 도움이 있어야 가능하군’하며 느끼게 됐다(영화를 보고 순진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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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혼을 받는 순간, 사고를 겪어 머리에 못이 박혀 버린 앨리스(제시카 비엘 분)는 정신이 이상해진다. 때문에 남자에게 버림을 받고, 더 이상해진 정신으로 ‘우연히’ 한 하원의원의 정치 광고 카피(‘저는 여러분을 돕습니다!’)에 혹해서, 무작정 워싱턴으로 달려간다. 영화는 기다렸다는 듯이, 둘이 우여곡절을 겪게 하고, 앨리스가 의회에서 활약을 하게 하고, 헤어진 남자 친구를 재등장시켜 새로운 사랑을 방해한다. 놀라운 것은 이 모든 사건들이 ‘액시덴탈(Accidental)’하게 일어난다는 것이다. 마치 사고처럼, ‘우연히', 돌발적으로 일어난다. 사고로 머리에 못이 박히고, 쿠키를 먹다가 죽어버리고(정말 마음에 드는 장면이다. 떡 먹다 죽는 한국 드라마 같다), 쿠키 먹다 죽어가는 사람에게 심폐소생술을 하려다 엉겁결에 성기를 다쳐버리고, 이 성기 다친 이를 대신해 투입된 사람은 (안 그래도 아픈) 항문을 또 다쳐 버린다. 이  영화적 설정은 희극의 전형적인 방식이지만, 제목과 묘하게 맞물린다. 이 제목이 ‘엑시덴탈 러브’라는 걸 상기해볼 때, 우리는 생각해볼 수 있다. 
 
의도적으로 빠진 사랑을 과연 사랑이라 할 수 있을까. 그것은 정치이자 거래가 아닌가. 어차피 모든 사랑은 ‘일종의 사고이자, 우연이자, 돌발적 결과물’이 아닌가. 이런 말은 힘빠질지 모르겠지만,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유한한 존재이다. 그러므로, 괴로움을 견뎌야 하고, 그 도중에 간혹 생기는 아름다운 일들을 반추할 수 밖에 없다. 이런 우리에게 허락된 아름다운 경험의 정수란, 결국 사랑이 아닌가. 그렇다면 우리의 삶을 견디게 하는 보석처럼 빛나는 역사들 역시, 우연한 사고의 연속으로 이뤄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할수록 겸손해질 수 밖에 없는데, 역시 안 어울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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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최민석(소설가)

단편소설 ‘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라’로 제10회 창비신인소설상(2010년)을 받으며 등단했다. 장편소설 <능력자> 제36회 오늘의 작가상(2012년)을 수상했고, 에세이집 <청춘, 방황, 좌절, 그리고 눈물의 대서사시>를 썼다. 60ㆍ70년대 지방캠퍼스 록밴드 ‘시와 바람’에서 보컬로도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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