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 놀이터

나도 모르게 가족에게 내뱉는 드라마 대사들

“그거 무슨 뜻이야?” “또 시작이다,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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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우리의 가장 좋은 면을 봐주기를 바라고 보통은 그렇게 된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와 아주 가까운 사이이기 때문에 우리의 가장 안 좋은 면들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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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에 대해 말하기가 필요하다

 

영화 <미국식 이혼법Divorce American Style>은 데비 레이놀즈와 딕 밴 다이크가 손님들을 대접할 만찬을 준비하며 말다툼을 벌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부인이 먼저 남편에게 그는 비난밖에 할 줄 모른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남편은 그렇지 않다고 항변한다. 아내는 일단 오븐에서 바게트부터 꺼내고 나서 얘기하자고 한다. 그러자 남편이 묻는다. “바게트?”


그냥 단순한 질문처럼 들린다. 아니, 질문이라고 하기도 뭐하고 그냥 들은 대로 말한 것뿐이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아내는 남편을 향해 돌아서서 두 손으로 엉덩이를 짚고 전투태세를 취한다. “바게트가 무슨 문제 있어?” 그렇게 묻는 목소리가 굉장히 도전적이다.


남편은 악의 없이 대답한다. “아니. 나는 그냥 당신이 평소에 만드는 조그만 롤빵이 좋아서 그런 거야.” 권투로 치면 시합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린 셈이다. 하지만 싸움은 또 다른 종이 울리며 중단된다. 손님들이 도착했음을 알리는 초인종이다.


남편이 아내를 비판했을까, 안 했을까? 메시지의 차원에서는 안 했다. 그는 단지 아내가 준비하고 있는 빵이 무엇인지 확인하는 질문을 던졌을 뿐이었다. 그러나 메타메시지의 차원에서는 비판을 했다. 만일 아내가 선택한 빵에 만족했다면 칭찬을 하면 모를까 딱히 토를 달진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여기서 이런 의문이 들 수 있다. ‘그런들 뭐가 문제야?’ 남편이 바게트보다 아내가 평소에 만들던 롤빵을 더 좋아한다고 해서 뭐가 문제일까? 무엇이 큰일인지는 처음에 아내가 한 불평으로 알 수 있다. 그녀는 남편이 ‘항상’ 비판만 한다고, 자기가 뭘 하려고 하면 항상 다르게 하라는 말을 한다고 여기고 있다.


이는 좀 더 넓게 보면 가족의 역설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우리의 가장 좋은 면을 봐주기를 바라고 보통은 그렇게 된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와 아주 가까운 사이이기 때문에 우리의 가장 안 좋은 면들도 보게 된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이 허물없는 동맹자가 되어 우리가 잘하고 있다고 말해주길 바라지만 때로는 그 사람이 허물없는 비판자가 되어 자꾸만 우리가 잘못하고 있다고 넌지시 말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사소하고 악의 없는 권고가 쌓이고 쌓여서 큰 문제를 터뜨린다. 계속 메시지(바게트냐 롤빵이냐)에 대해서만 말하고 메타메시지(반려자가 내 행동에 사사건건 불만을 품는다는 생각)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으면 절대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이런 딜레마를 해소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는 ‘메타커뮤니케이션’, 곧 말하는 방식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남편은 아내가 뭐든 다 비판으로 받아들이니까 자기가 제안을 하거나 의견을 피력하려고 해도 입을 꾹 다물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는 ‘말’을 할 수 있다. 아내 역시 시비조로 남편에게 달려들 것이 아니라 자기가 뭘 하든 남편이 탐탁찮게 여기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말’을 할 수 있다. 두 사람이 이런 구도를 이해하면 그것을 다룰 방안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남편은 질문하기 전에 “바게트가 나쁘다는 말은 아니야” 하는 식으로 비판할 의도가 없음을 밝힐 수 있다. 아니면 롤빵이 좋으니까 롤빵을 만들어주면 좋겠다고 직접적으로 요청해도 된다. 그리고 부부가 합의해서 하루 동안 남편이 아내의 행동에 질문할 수 있는 횟수를 정할 수도 있다. 관건은 아내가 반응하는 메타메시지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그 메타메시지란 무엇인가? 마치 인생의 동반자가 집안의 감찰 요원인 듯하다는 것이다.


“난 그런 말 한 적 없어”

 

아이린과 데이비드가 식당에서 메뉴판을 보고 있다. 데이비드는 스테이크를 주문하겠다고 한다. 그러자 아이린이 묻는다. “메뉴판에 연어도 있는 것 봤어?”


그 말에 데이비드가 역정을 낸다. “먹는 것 갖고 싫은 소리 좀 하지 말지?”

 

아이린은 억울하다는 심정이다. “싫은 소리 안 했어. 그냥 자기가 좋아할 만한 게 있다고 말해준 거잖아.”


“싫은 소리 안 했어”라고 대꾸했을 때 아이린은 문자적 의미만 부르짖고 있었다. 다시 말해 대화의 메시지 속으로 쏙 들어가서 메타메시지를 피하고 있었다. 싸우긴 싫지만 의중은 전하고 싶을 때 누구나 그렇게 한다. 이처럼 방어적인 태도는 대개 진심이지만 아무리 진심이라고 한들 상대방이 인지했을 메타메시지를 무시하거나 부인하는 것이 정당화되진 않는다. 상대방이 그것을 ‘단순한 제안’이 아니라고 여기는데도 계속 메시지만 운운하면 테이프를 반복해서 트는 것처럼 서로 했던 말만 되풀이하게 될 우려가 있다. 그런 사례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이블린은 식탁에 앉아서 신청서를 작성하고 있다. 조엘의 회사에 복사기가 있기 때문에 신청을 마무리하는 것은 그의 몫이다. 이블린이 말한다. “자, 일단 복사를 한 후에 여기다가 수표를 붙여야 해. 알았지?” 조엘이 서류를 챙기지만 이블린의 말은 끝나지 않는다. “좋아, 그러니까, 내일 꼭 해줘. 당신만 믿을게. 여보, 정말 당신만 믿어.”


조엘은 짜증을 낸다. “어휴, 진짜.”


이블린이 발끈한다. “그거 무슨 의미야?”


조엘도 똑같이 묻는다. “당신이야말로 그거 무슨 의미야?”


“그거 무슨 의미야?”라는 질문은 반발의 표현이다. 의사소통이 잘될 때는 말의 의미가 명백하다. 아니, 적어도 우리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나중에 가서 그것이 착각이었음을 깨닫기도 한다.) “무슨 의미야?”라는 말은 정말로 설명을 좀 더 해달라는 말일 수도 있지만 거기에 “그거”가 붙으면 보통은 상대방의 말을 못 알아들었다는 뜻이 아니라 그것이 무엇을 ‘암시’하는지 알아들어도 너무 잘 알아들었는데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블린은 문자적 의미만 부르짖는다. 그녀는 메시지에만 매달린다. “여보, 그냥 당신만 믿는다는 말이야.”


조엘은 메타메시지를 거론한다. “그런데 꼭 날 믿을 수 없다는 식으로 말하잖아.”


이블린이 정확하게 따진다. “난 그런 말 한 적 없어.”


하지만 조엘은 메타메시지의 증거를 밝힌다. “당신 말투에 다 드러나.”


아무래도 조엘은 대화의 메타메시지적 차원을 뭉뚱그려서 ‘말투’라고 표현한 것 같다. 그리고 그가 이런 반응을 보인 데는 이블린이 말하는 방식(말투)만 아니라 이블린이 그 말을 했다는 사실 자체도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정말로 그를 믿는다면 그냥 일을 맡기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당신만 믿어”는 사람들이 용무의 중요성을 좀 더 강조해야겠다 싶을 때 쓰는 말이다. 번번이 지적을 받으면 지치게 되어 있다. 어디 그뿐인가. 무슨 뜻으로 한 말인 줄 뻔히 아는데도 그렇게 ‘말한’ 적 없다며 문자적 의미만 부르짖으면 아무리 이야기해봤자 복장만 터진다.


결속과 통제의 측면에서도 생각해보자. 서로의 삶이 얽혀 있으니 한 사람의 행동이 반드시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게 되어 있다. 이블린이 “당신만 믿어”라고 했을 때 아마 독자 여러분은 동거인들과 어떻게 지내왔느냐에 따라 조엘에게 공감하기도 하고 이블린에게 공감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런데 혹시 예전에 조엘이 깜빡하고 신청서를 안 부친 적이 있다고 하면 여러분의 반응이 달라질까? 이블린으로서는 조엘과 함께 산 세월을 생각하면 그가 말로만 하겠다고 해놓고 또 깜빡하진 않을까 하는 의심이 들 만했다.


그 같은 내력을 고려하면 이블린은 문자적 의미를 부르짖으며 자기 말의 메타메시지를 부인할 것이 아니라 차라리 조엘을 완전히 믿진 못하겠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편이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조엘의 건망증을 감안해서 함께 대책을 마련할 수도 있다. 조엘이 할 일을 쪽지에 적어서 서류가방을 열면 잘 보이는 곳에 붙여두는 것이다. 아니면 이블린이 좀 번거롭더라도 직접 나가서 복사하고 신청서를 부치는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다. 어떤 결정을 내리든 간에 양자가 어떤 메타메시지들이 어떤 이유로 생겼는지 인지한다면 말다툼을 피하고 신청서가 제때 도착할 가능성이 더 커질 것이다.

 

* 이 글은 『가족이니까 말해도 되는 줄 알았다』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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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니까 그렇게 말해도 되는 줄 알았다데보라 태넌 저/김고명 역 | 예담
《가족이니까 그렇게 말해도 되는 줄 알았다》의 저자 데보라 태넌은 그동안 남녀 또는 가족 구성원의 대화 방식에 대한 흥미롭고 생생한 사례들을 연구해온 언어학자로, 어떻게 하면 가장 가까운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개선시킬 수 있는지 저자만의 특별한 방법들을 제시해왔다. 《가족이니까 그렇게 말해도 되는 줄 알았다》에서는 내 편인 줄 알았던 가족이 왜 적이 될 수밖에 없는지, 왜 싸우고 후회하는 일상을 반복하는지 보여주고, 더 이상 사랑이란 말로 상처를 주고받지 않는 법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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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데보라 태넌

작가

가족이니까 그렇게 말해도 되는 줄 알았다

<데보라 태넌> 저/<김고명> 역12,510원(10% + 5%)

가장 가까워서 더 어려운 가족의 대화법 《가족이니까 그렇게 말해도 되는 줄 알았다》의 저자 데보라 태넌은 그동안 남녀 또는 가족 구성원의 대화 방식에 대한 흥미롭고 생생한 사례들을 연구해온 언어학자로, 어떻게 하면 가장 가까운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개선시킬 수 있는지 저자만의 특별한 방법들을 제시해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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