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 놀이터

내 나이가 어때서~사랑하기 딱! 좋은~나인데~

에이지즘(Ageism)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우리는 좀 더 엄격해질 필요가 있다. 어떤 성향으로 차별과 편견을 조장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최소한의 자각이 있다면, 나이에 대한 언급이나 강요를 삼가야 한다. 도대체 적절한 나이와 그에 맞는 행동은 누가 정했으며, 거기에 따르지 않는 것은 왜 문제인가? 그딴 것에 착취 당하기에, 열성을 다해 좋아하는 감정은 너무나 귀하고 아깝다!

천계영 만화가는 지난 주 트위터에 “어떻게 그 나이에 아이돌을 좋아할 수 있냐고 주변에서 놀라워한다. 그런 얘기 들으면 내가 더 깜짝 놀라는 게...아이돌을 무릎 연골로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늙은 게 뭔 상관이여...리모콘 돌릴 힘 남아있을 때까지 좋아할 수 있음.” 라고 썼다. 이 글은 볼 만한 사람은 다 봤을 만큼 폭발적으로 RT(리트윗. 트위터 상에서 특정 글을 자신의 타임라인에 띄우는 것. 트위터 안 하시는 분은 유사기능으로 싸이월드의 퍼가요~♡를 생각하시라) 되었다. 거의 5000여 건에 달하는 RT 수를 보면, 이 글에 공감하거나 관심을 가진 이들이 꽤 많았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 멀리 갈 것 있나. 사회적으로는 이미 그만두는 것이 마땅한 나이에 ‘아직도’ 그러고 있냐는 지탄에 시달리고 있는 거기 당신? 그리고 그 글을 읽고 물개처럼 무릎 연골을 손바닥으로 두들긴 필자는 키보드를 잡았다. 시기가 이렇게 적절할 수 있을까. 3월 24일 오늘은 국내 최장수 아이돌 그룹 ‘신화’의 17번째 데뷔 기념일이다.


신화는 여러모로 아이돌 사(史)에서 흥미롭고 대체 불가능한 존재지만, 이 글에서는 특히 에이지즘(Ageism)과 관련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에이지즘은 ‘고령자 차별주의’ 혹은 ‘연령 차별주의’로, 나이가 들수록 상대적으로 지위가 낮아지고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나이가 들면 사람의 매력이나 지적 능력, 생산성 등이 떨어진다는 믿음을 근거로 가해지는 편견 말이다. 얼마 전 마돈나의 새 앨범이 BBC 라디오 채널에 나오지 않는 이유가 마돈나의 나이 때문이라는 의혹이 불거졌다. 마돈나는 젊은 시절 자신의 인터뷰 영상을 올리며 이러한 미래를 예측했다고 자조한다. “우리는 인종차별이나 성차별만이 아니라 연령차별도 겪고 있다. 당신이 특정한 나이를 넘어서면 더 이상 대담하거나 성적으로 어필할 수 없다. 여기에 규칙이라도 있는가? 당신이 40살이 되면 죽기라도 하는가?” 나이는 인종이나 성별처럼 계급이 되어 자유를 제약하고, 편견을 생산한다. 당장 졸업만 조금 늦춰져도 암모나이트 학번이라느니, 삼엽충이라느니, 나이 든 존재를 희화화하는 세상이다. 특히 성차별주의와 결합한 에이지즘은 더욱 파괴력을 발휘하여, 천하의 마돈나마저 발목을 잡혔다.


인간은 누구나 늙는다. 그러나 더 이상 ‘나이 듦’은 인간이 자연스럽게 밟아가는 삶의 한 과정이 아니다. 에이지즘의 창궐 속에서 나이 듦은 설 곳을 잃는다. 장점은 지워지고, 설령 장점이 없다고 해도 받아들여야 할 삶의 과정인 나이 듦은 퇴치의 대상이 되었다. 나이 듦은 열등한 것, 어떻게든 피해야 하는 저주니, 전설 속 마녀처럼 생피를 뒤집어써서라도 혹은 초상화에게 대신 나이를 먹여서라도 젊음을 사수하라! 물론 매년 착실하게 올라가는 민증 상 나이를 되돌린 순 없다. 그러니 고개를 드는 것은 나이를 감추고자 하는 욕망이다. 피 나는 자기 관리와 과학 기술의 힘을 빌려 동안을 유지해야 한다는 압박이 텍사스 소떼처럼 밀려온다. 화장품 매장에서 천진난만하게 아직 아이크림 안 바른다고 한 마디 해보라. 매장 직원들이 갑자기 호들갑 떨며 공포에 질리는 풍경을 볼 수 있을 테니.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특히나 시간과의 싸움이다. 아이돌의 상품성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스펙트럼 속에 있지만 그 모든 것을 굴비처럼 엮을 수 있는 단 하나의 절대반지는 바로 ‘젊음’이다. 그 어떤 회사의, 어떤 콘셉트의, 어떤 개성의 아이돌이든, 그들은 어리다. 어려야 한다. 드물게 나이가 많은 아이돌 멤버가 있으면 두고두고 특이사항으로 기재되거나 놀림거리가 된다. 그룹 god의 박준형은 당시 서른둘이었던 자신의 나이를 고백하면서 눈물지어야 했고, 그 영상은 두고두고…(아 이건 마음 아프니 그만하자) 걸스데이의 소진은 30살이 된 걸그룹 멤버로서의 정체성을 새로 정의해야 하는 질문에 맞닥뜨렸으며 위너의 김진우에게는 툭하면 ‘반오십’, ‘어르신’이라는 자막이 튀어나온다. 카라의 새 멤버를 뽑는 서바이벌에 참여했던 멤버 소진은 오랜 연습생 생활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남들이 보기엔 ‘창창한 나이’지만, 아이돌 시장에서 살아남기에는 늦었다는 비관이 초래한 비극일 지도 모른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주 소비층이 10대들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아이돌 산업의 역사만큼 주 소비층도 나이를 먹었고 훨씬 다양한 층위에 걸쳐 분포되어 있다. 물론 여전히 10대들이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지만, 더 이상 아이돌을 좋아하는 것을 ‘사춘기 시절의 혈기’로 치부할 수만은 없는 이유다. 아이돌 그룹의 평균 수명도 훨씬 길어졌다. 이제 아무도 20대 중반의 아이돌을 끝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 데뷔한 지 5년쯤 지나 20대 중반이 되면, 아무리 잘 나가던 그룹도 남녀 불문하고 접시처럼 깨지던 때가. 신화는 아이돌 수명이 끝났다고 진단 받은 나이에 소속사를 떠났고 보란 듯이 전성기를 맞았다. 장담하건대 최근 아이돌 그룹의 수명이 기본 8~9년으로 늘어난 데에는 신화의 성공이 톡톡히 기여했을 것이다. 17년째 활동 중인 신화의 멤버들은 현재 모두 30대 중, 후반의 나이에 접어들었으며 신화의 팬들 역시 보통 팬덤보다 높은 연령대로 유명하다. (가령 “신화 욕하는 여러분, 조심하십시오. 여러분의 선생님이 신화창조일 수 있습니다” 같은…괴담 같지만 높은 확률로 사실로 확인되는…) 천계영 만화가의 말처럼, ‘아직도?’하는 시선이 신화와 팬들을 향해 비처럼 쏟아진다. 조상돌/최장수 아이돌/언제까지 아이돌할 거예요?/결혼은 언제 하실 건가요? 와 같은, 진부한 수식어와 성의 없는 질문들은 그들이 앨범을 발표할 때마다 따라붙는다. 이것은 우리 사회에 에이지즘이 얼마나 만연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훌륭한 예이다. 나이가 많기 때문에 현재진행형으로 활동하고 있음에도 ‘조상’이 되고, 아이돌에게 연애/결혼이 얼마나 사약 같은 줄 뻔히 알면서 거리낌 없이 결혼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그렇게 나이가 중요하다면서 왜 아이돌을 계속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지, 그들이 어떤 전략을 선택하여 아이돌 시장에서 살아남는지, 어째서 아직도 음악방송에서 트로피를 쓸어 담는 것이 가능할 만큼 든든한 팬들을 거느리고 있는지는 1도 궁금해 하지 않는다. 언제나 방점이 찍히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돌’이 아니라, ‘많은 나이’이다.


신화


반면 신화는 꾸준히 자신들의 전략을 이야기했으며,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과 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매우 명료하고 영리하게 인지하고 있다. 신화는 관록과 여유, 그리고 ‘나이 듦’이 열등한 것이 아니라 클래식처럼 스타일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그리고 치열한 고민과 새로운 도전을 통해 자신들만의 색깔을 뽑아내는 데 성공한다. 젊은 신체가 중요한 시장에서 ‘나이 듦’을 약점이 아닌 개성으로, 고유한 경쟁력으로 전복하는 신화의 행보는 독보적일 수밖에 없다. 수많은 그룹들이 롤모델로 신화를 꼽지만 의외로 그 롤모델이 무엇을 했는지, 대표곡은 무엇인지 모르는 경우가 있다. 신화의 가치는 골동품처럼 그저 시간의 세례를 받았다는 것이 아니라, 아이돌 산업의 판도를 전복하고 새롭게 배치한 것으로 증명된다. 나이가 들어도 멋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노력하는 아이돌이 있다면, 나이가 들어도 열렬한 지지와 사랑을 약속하는 팬도 있다. 다만 신화가 이런 성과를 거둘 수 있는 것은 그들이 남성 그룹이라서 가능한 일이다. 여성 그룹의 경우 데뷔할 때의 연령 제한이 남성 그룹보다 더 엄격하고, 여성의 나이 듦이 매력으로 받아들이는 사회가 아니니까. 로맨스 그레이(feat. 매너가 ! 사람을! 만든다! 싸랑해요 영! 국! 신! 사!)는 있어도, 여성 로맨스 그레이는 없다. 나이 든 여성 캐릭터는 아줌마 아니면 할머니로만 존재한다. 토토가에서 엄정화가 관록을 보여주었지만 워낙 일회성이라 예시로 꼽기에는 부족하다. 그나마 희망을 걸어볼 만한 그룹이 브아걸인데…힘을 내요 슈퍼파월~.


최근에는 아이돌 팬들의 연령대가 다양해져서, 고유한 호칭이었던 ‘오빠’가 어느새 ‘내 새끼’까지 확장되었다. 10대 후반~20대 초반의 아이돌을 자식처럼 여기며 애지중지하는 소위 어르신 팬들은, 머릿수로 승부하는 10대 팬들과 달리 비교적 자유로운 시간과 빵빵한 통장, 그리고 전략적이고 조직적인 움직임이 특징이다. 아이돌 산업에서 없어서는 안 될 빛과 소금 같은 존재건만, 이 어르신 팬들은 세상의 가혹한 편견과 오지랖에 수시로 줘터지기 일쑤다. 에이지즘이 분할하고 작동 시키는 편견과 규범 때문이다. ‘팬질’을 하기에 너는 적절한 나이가 아니라는 압박, 이제 그 나이에 적절한 행동을 하라는 권유. 우리는 좀 더 엄격해질 필요가 있다. 어떤 성향으로 차별과 편견을 조장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최소한의 자각이 있다면, 나이에 대한 언급이나 강요를 삼가야 한다. 도대체 적절한 나이와 그에 맞는 행동은 누가 정했으며, 거기에 따르지 않는 것은 왜 문제인가? 그딴 것에 착취 당하기에, 열성을 다해 좋아하는 감정은 너무나 귀하고 아깝다! 리모콘 돌릴 힘 없어도 된다. 하루 종일 엠넷 틀어놓고 그냥 누워 있으면 되는 거 아니냐능. 노래도 있던데? 야이야이야아, 내 나이가 어때서~사랑하기~딱~좋은! 나인데~! 


아, 나이랑 상관없이 건강관리는 열심히 하자. 아이돌 팬은 수시로 무릎을 꿇고 심장을 폭행당하며 뒷목을 잡고 넘어갈 일이 가득한 극한 직업이니까. 

 

 

[추천 기사]

- 유난은 떨 필요가 있다
- 아(아이가) 어(어떤 채널을 틀어도) 가(가열차게 나온다)
- 취미가 뭐냐건 그저 웃지요
- 괜찮아? 사랑이야?
- 어디서 타는 냄새 안 나요?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4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 | 이진송

비연애인구 전용잡지 <계간홀로> 발행인. 문충이(文蟲)가 되고 싶은 그냥 식충이. 뭐든지 재미 있어야 하지만 재미의 기준은 내 마음. 읽고 쓰고 덕질합니다.

나이든다는 것과 늙어간다는 것

<빌헬름 슈미트> 저/<장영태 > 역10,800원(10% + 5%)

“우리는 평온하게 나이들 권리가 있다” - 멋지게 나이들기 위한 삶의 기술, ‘마음의 평정’ 과학기술의 발달로 ‘늙음’을 정복할 수 있다는 희망이 커지면서 ‘나이듦’은 고독, 불안, 우울, 빈곤 등과 같이 부정적이고 불쾌한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젊음이 경쟁력인 시대, 은퇴 설계가 필수인 시대, 주름을 ..

  • 카트
  • 리스트
  • 바로구매
  • 8,400원(80% + 0%)

    • 카트
    • 리스트
    • 바로구매
  • 19,300원(19% + 1%)

    • 카트
    • 리스트
    • 바로구매
  • 19,300원(18% + 1%)

    • 카트
    • 리스트
    • 바로구매

오늘의 책

끝나지 않는 오월을 향한 간절한 노래

[2024 노벨문학상 수상] 1980년 5월 18일부터 열흘 간의 광주, 그리고 그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작가의 철저한 노력으로 담아낸 역작. 열다섯 살 소년 동호의 죽음을 중심으로 그 당시 고통받았지만, 역사에서 기록되지 않은 인물들의 이야기를 꺼내 보이면서 그 시대를 증언한다.

고통 속에서도 타오르는, 어떤 사랑에 대하여

[2024 노벨문학상 수상] 2023 프랑스 메디치 외국문학상 수상작이자 가장 최근작. 말해지지 않는 지난 시간들이 수십 년을 건너 한 외딴집에서 되살아난다. 깊은 어둠 속에서도 “지극한 사랑”이 불꽃처럼 뜨겁게 피어오른다. 작가의 바람처럼 이 작품은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다.

전세계가 주목한 한강의 대표작

[2024 노벨문학상 수상] 2016년 인터내셔널 부커상을 수상한 장편소설이자 한강 소설가의 대표작. 보이지 않는 영혼의 고통을 식물적 상상력으로 표현해낸 섬세한 문장과 파격적인 내용이 큰 울림을 만들어낸다. 폭력의 악순환을 끊고,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나무가 되고자 한 여성의 이야기.

더럽혀지지 않는 어떤 흰 것에 관한 이야기

[2024 노벨문학상 수상] 한강 소설가의 아름답고 고요한 문체가 돋보이는, 한 편의 시와 같은 작품. 삶과 죽음의 경계를 허물고, 그 사이를 넘나드는 소설이다. ‘흰’이라는 한 글자에서 시작한 소설은 모든 애도의 시간을 문장들로 표현해냈다. 한강만이 표현할 수 있는 깊은 사유가 돋보인다.


PYCHYESWEB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