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향 “청춘, 나이보다 마음에 관련된 것”
제3회 문학동네 대학소설상 수상작 『초록 가죽소파 표류기』 소설을 펴낸 뒤, 도리어 이해를 받은 기분이 들었다
가장 젊은 상상력의 이야기를 발굴하고자 제정된 ‘문학동네 대학소설상’. 올해의 주인공은 『초록 가죽소파 표류기』를 집필한 정지향이다. 현재 명지대 문예창작과에 재학 중인 정지향 작가는 “당시에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나 해야만 하는 이야기를 계속해서 꾸준히 써나가고 싶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초록 가죽소파 표류기』의 주인공은 ‘수많은 쓸모 없는 주제의 동아리 중에서도 가장 쓸모 없는 걸 하는 동아리’에 가입한 ‘나’와 선배 ‘요조’, 그리고 18살에 여행을 시작해 4년째 세계를 떠돌고 있는 ‘카우치 서퍼’ 민영이다. 이들은 마치 ‘고아의 도시’와도 같은 공간, 학생들이 떠나 텅 비어버린 지방 대학가의 자취촌에서 함께 산다. 사회로의 진입을 꿈꾸며, 또 동시에 회피하며 청춘을 지나고 있는 세 사람. 현실에 표류하지 않기 위해 발버둥을 치다가도 결코 자신의 모습을 잃지 않는다. 실제 청춘인 작가가 그린 풍경이기에 세 사람의 고민과 갈등, 혼란은 낯설지 않다. 하나의 정답, 하나의 방향이 존재할 수 없는 ‘청춘의 성장통’. 정지향 작가는 자신의 고민 속에서 『초록 가죽소파 표류기』를 탄생시켰다.
‘제3회 문학동네 대학소설상’이 정지향의 『초록 가죽소파 표류기』로 결정 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심사위원 전원의 마음이 일치했기 때문이다. 김미월 소설가는 “지금 이 시대 대학생이 쓸 수 있는 성장소설의 모범답안 같은 작품”이라고 『초록 가죽소파 표류기』를 평했다.
“당선 통보 전화를 받은 것은 올 1월이었는데요, 돌이켜보면 그날부터 오늘까지 매일매일 새로 이 상을 받는 기분으로 지냈던 것 같습니다. 외출 준비를 하다가도, 친구들과 마주앉아 밥을 먹다가도, 길을 걷다가도 문득 놀라고는 했습니다. 제가 쓴 이야기를 많은 분들께서 읽게 되었다는 것이 믿을 수 없이 감격스럽고 행복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좀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행복함이나 두려움 같은 감정들은 조금씩 내려놓고 오랫동안 굳건히, 묵묵히 써나가겠다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백일장 키드였던 정지향 작가는 이제 전업작가를 꿈꾼다. 생활을 견디면서 오랫동안 소설을 쓰고 발표할 수 있기를 바란다. 어떤 거창한 계획보다는, 당시에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나 해야만 하는 이야기를 계속해서 써나갈 계획이다.
그날의 문장은 그날에만 쓸 수 있다
『초록 가죽소파 표류기』의 주인공은 작가님과 많이 다르지 않은 예술대 학생입니다. 작품의 출발이 궁금합니다.
스무 살 이후로 제가 느껴왔던 감정과 주변의 친구들이 고민하는 문제들을 소설로 잘 그려보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어요. 20대에 대한 논쟁이 벌어졌고, 한편에서는 청춘에 대한 책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그것들을 마주할 때마다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었어요. 와 닿는 부분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어쩐지 우리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 대해 이야기하는 듯했어요. 어떤 세대를 누군가 단번에 아우르는 일이 불가능하다 하더라도, 그들에게 공감과 교류, 나아가 치료를 가능케 할 이야기가 필요하다면 그것은 그 세대 속에서 나와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작가님이 생각하는 청춘은 어떤 시기인가요?
나이보다는 마음에 관련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일반적으로 청춘이라 불리는 시기에 있다 하더라도 너무 일찍 무뎌진 누군가에게는 거추장스러운 말일 수 있으니까요. 알아왔던 것이 틀렸을 수도 있다는 것, 다시 말해 무엇을 새로 깨닫는 일에 대한 거부감이나 두려움이 없고, 깨닫기 위해서 원래 있던 자리를 벗어나 길을 떠나고, 전혀 다른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용기 같은 것이 아닐까 합니다.
카우치 서핑을 한 경험이 있나요? 카우치 서핑을 소재로 다루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혼자 여행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에요. 스무 살 이후로는 매해 한두 번 배낭을 멨습니다. 말레이시아에서 만난 영국인 카우치 서퍼에게서 처음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카우치 서핑은 단순히 현지인들에게서 잠자리만을 얻는 것이 아니고, 그 나라에서 살아가는 누군가의 생활을 체험하는 일이므로 가장 적극적인 여행 방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거예요. 여행지에서의 피로를 편안한 숙소에서 푸는 자유를 포기하고 낯선 이의 집으로 돌아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겁니다. 몸을 사리지 않고 새로운 장소와 타인의 생활을 만나는 매력적인 그 여행법은 누군가의 젊은 시절에도 비유할 수 있을 듯했습니다. 저도 조만간 용기를 내볼 생각입니다.
“상대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마음을 괴물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 매일 열심히 사랑해야 하는 것이었다.”고 말하셨는데요. 글도 마찬가지겠지요?
네. 중의적으로 읽히기를 바라며 쓴 문장입니다. 같은 글에 “그날의 문장은 그날에만 쓸 수 있다”고 덧붙였는데요. 시간이 흐른 뒤에 더욱 명확하고 선명하게 볼 수 있는 것이 있다 하더라도, 그날의 불투명한 시선이 소중하지 않은 건 아니니까요. 매일 열심히 사랑하는 것이든, 매일 열심히 쓰는 것이든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앞으로도 그런 마음으로 지내겠다는 다짐입니다.
99쪽을 보면, 학생들이 경쟁하듯 습작을 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혹시 작가님도 비슷한 경험이 있을까요? 문창과 학생들의 생활이 궁금합니다.
혼자 시간을 견뎌야 하는 글쓰기 작업의 특징 때문인지, 문예창작과에 다니는 학생들은 다소간 개인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과 전체에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긴장감은 없지만, 열심히 글을 쓰는 친구들 사이에서는 경쟁이 붙곤 합니다. 하지만 고학년이 될수록 열심히 작업을 하는 학우들이 점점 적어집니다. 대학사회에 만연한 위기의식 속에서 문학에 대한 열정을 계속 좇기는 힘든 것 같습니다. 소설의 화자 '나'가 소설을 쓰지 못하는 것도 같은 이유이지요. 그런 시기를 오래 앓았던 제 경험을 토대로 썼습니다.
소설가 김미월은 “이 작가는 좋은 소설이 이야기의 집인 동시에 언어의 집이기도 하다는 점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듯하다. 그만큼 한 문장 한 문장 공을 들였다는 점에도 신뢰가 갔다.”라고 문장에 대한 칭찬을 하셨는데요. 이번 작품을 집필하면서, 어떤 문장들을 쓰고자 노력하셨나요?
읽어나가기에 부담 없이 편하면서도 가볍게 느껴지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차분하고 담담한 어조라고 생각했는데, 먼저 읽어준 친구들이나, 책이 나온 뒤 독자들께서 우울이나 슬픔이 많이 느껴진다는 얘기를 해줬어요. 그 이야기를 듣고 제가 스스로의 상처를 덤덤한 듯 포장해왔던 것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고, 도리어 이해를 받은 기분이 들기도 했어요.
매일 아침 일기를 쓰고, 창 밖을 보다 보면
고등학생 때부터 습작을 시작했고, 청소년 잡지 <풋,>에 단편소설을 싣기도 했습니다. 어릴 적부터 문학소녀였나요? 글을 좋아하게 된 동기가 궁금합니다.
어릴 때부터 책 읽는 것과, 일기나 편지를 쓰는 것을 좋아하기는 했지만 유별난 독서광도, 교내 백일장마다 상을 받는 문학소녀도 아니었어요. 중학교 시절, 제가 겪은 몇 가지 충격적인 일들을 일기장에 쓰는 대신 꾸며낸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처럼 써보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던 것 같아요. 그때 그간 읽어왔던 소설의 형식을 조금씩 이용해본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 이후로 조금씩 습작을 했고, 예술고등학교의 문창과에 진학한 뒤로 작가가 되겠다는 목표가 명확해졌습니다.
좋아하는 작가나 작품은 무엇인가요?
좋아하는 작가는 자주 바뀌어왔습니다. 글을 쓰고 책을 읽는 일을 어릴 때부터 좋아하기는 했지만, 소설이라는 장르로 글을 쓰고 싶다는 확신이 든 것은 신경숙 선생님의 『외딴방』을 읽은 뒤였어요. 김연수 선생님의 산문은 습작을 해오는 내내 작가로서의 태도뿐 아니라 삶과 사람을 마주하는 방법을 배워가는 데 좋은 지침이 됐고, 소설 역시도 아주 좋아합니다. 유디트 헤르만과 다니엘 켈만과 같은 현대 독일작가들의 젊고 감각적인 소설에 관심이 있습니다.
평소 주로 쓰게 되는 소재가 있나요?
최근 쓴 소설의 소재나 주제는 『초록 가죽소파 표류기』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와 비슷한 나이의 인물들이 사회로 진입하지 못하고 맴도는 장소들과, 여행, 성정체성에 대한 혼란이나 연애 같은 것입니다.
작가님에게 책, 소설, 문학은 어떤 존재인가요?
삶이라는 거창한 말보다는, 생활이라는 단어에 더 가까웠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사람들을 만나고, 집과 거리를 오가고, 크고 작은 생각을 하는 일상과 그것을 통해 쓰고 읽는 일이며 삶을 이해해나가는 일이 나눠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현재 대학생이신데요. 요즘 가장 많이 하고 있는 생각은 무엇인가요?
다른 대학생들과 마찬가지가 아닐까 하는데, 저에게 생활을 꾸려갈 수 있는 능력이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글을 계속 쓰고 싶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고, 그렇다면 어떤 일을 해야 할까, 할 수 있을까, 그 지난함을 이겨갈 힘이 나에게 있을까, 하는 질문을 자주 합니다.
앞으로의 버킷리스트가 있나요?
몇 해 전부터 혼자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여행하는 일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그 철도의 길이가 지구 둘레의 사 분의 일이라고 합니다. 매일 아침 새로 시계를 맞추고, 일기를 쓰고, 창 밖을 보다 보면 지구의 크기를 조금은 체감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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