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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증 아동은 정말 공감을 못 할까

공감 ① 자아 경계와 공감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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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 경계와 공감의 관계는 정신 건강을 이야기할 때 자주 거론되는 중요한 개념 중의 하나이다. 자아 경계가 확실히 선 사람만이 공감을 할 수 있다고 하기 때문이다.

영어에서는 자기 애인이나 배우자를 부르는 이름 가운데 달콤한 것과 연관된 이름이 많다. 꿀honey, 단 완두콩sweet pea, 단 파이sweet pie 등등. 그러다가 사이가 더 깊어지면 나의 반쪽my half 또는 나보다 나은 나의 반쪽my better half이라는 표현을 쓴다. 그런데 한국어는 어떤가? 애인을 부를 때 아예 ‘자기’라고 부른다. ‘너’를 ‘나’로 부르니, 그보다 더 가까운 연결의 표현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 ‘너’가 ‘나’라는 이야기일까? 이것은 정신의 건강과 질환 상태를 나누는 중요한 질문이다. 나와 너 사이의 자아 경계를 넘어가는 것처럼 느끼느냐 아니면 경계를 정말 넘어가느냐에 따라 다르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전자는 사랑에 빠진 거고, 후자는 미친 것이다.


자아 경계는 나와 너 사이에 확실한 경계가 있다는 것을 말하는 심리학 용어이다. 이것은 서양 심리학의 중요한 전제 중의 하나로 확실한 자아 경계는 건강한 자아의 척도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실제로 타인에게 감정이입이 되고 상대가 느끼는 것을 함께 느끼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며, 이것은 우리 모두가 타고난 능력이라고 최근의 연구 결과들은 밝히고 있다. 우리 모두가 가진 이 능력을 공감empathy이라고 부른다.


자아 경계와 공감의 관계는 정신 건강을 이야기할 때 자주 거론되는 중요한 개념 중의 하나이다. 자아 경계가 확실히 선 사람만이 공감을 할 수 있다고 하기 때문이다. 공감은 내가 네가 아닌 것을 알면서도 네가 나인 것처럼 자아 경계를 넘어가는 행위이기 때문에, 자아 경계의 성립과 그것을 넘어가는 행위 둘 다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아 경계가 없는 사람은 공감을 하지 못할까? 서구의 심리학은 그렇다고 가정한다. 즉 자폐는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는 공감의 능력이 부족하고, 정신분열증은 자아 경계가 붕괴되어 내가 아닌 것까지 나라고 정의하기도 하고, 나를 내가 아닌 것으로 여기기도 하여 공감을 못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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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도 달팽이, 나도 달팽이>(2014), 캔버스에 유화,65*53

 

그런데 새로운 추측과 새로운 연구 결과가 이전에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을 그렇지 않게 여기게 한다. 자아 경계에 관한 확고한 믿음에도 금이 가기 시작한다. 나는 너와 확연히 구분되어 존재한다는 서구의 모더니즘적인 세계관에 “그래? 정말 그럴까?” 하는 질문의 목소리가 다문화적 연구에 자극받아 서구의 심리학 내부에서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서구의 심리학에서는 나와 네가 독립된 존재임을 아는 것이 정신 건강의 척도이지만, 공동체적인 다른 많은 사회에서는 “개별화의 확립은 자아의 건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의 고립을 의미하거나 부적응 또는 정신이상으로 보일 수도 있다”는 연구들이 있다. 생태심리학의 선구자인 로작Roszak은 ‘자기’에 관한 집착은 이 사회의 집단적인 정신병이며, 개인을 존재하게 하는 많은 관계(예를 들어서 타인과의 관계, 자연과의 관계)와 따로 떨어뜨려서는 생각할 수 없다고 했다.


이렇게 자아 경계가 확립되어야 건강한 자아라는 서양의 심리학에 대한 반박이 많이 일어나고 있지만, 보수적인 치료계에서는 아직도 자폐증과 정신분열증을 가진 사람들은 공감을 하지 못한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으며, 공감을 못하는 것이 자폐증과 정신분열의 증상 가운데 하나라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실습을 하면서 처음 만난 자폐증 아동들은 내가 상상한 것처럼 숫자나 외우고 있고 달력이랑 놀며 다른 사람들과 관계 맺기를 전혀 하지 않는 그런 아이들이 아니었다. 아이들은 각기 다른 성격과 특징과 자폐 유형을 보였으며, 하나하나 특별하고 특이한 존재였다. 그 아이들 중에서도 이 책 서론에 언급한 데이비드는 나의 이름을 불러주었고, 안 잊을 거라고 했고, 그리고 정말로 잊지 않았다. 내가 머문 뒤 1년이 지나서 후배가 같은 곳으로 실습을 하러 갔는데, 데이비드는 그 후배가 나와 같은 학교에서 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에게 편지를 대필하게 했다. 내용은 이랬다. “은혜야. 안녕? 잘 지내? 보고 싶어.”


이런 아이가 어떻게 공감을 못한다는 것일까? 아니면 우리의 방식으로 공감하지 않기 때문에 혹여 못 알아듣는 것은 아닐까? 보통 생각하는 것처럼 자폐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공감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너무 공감이 잘되어서 견디지 못해 내면으로 후퇴하는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최근 발표된 바 있다. 그 연구 결과는 자폐를 가진 사람의 말을 인용하면서 “사람들이 모인 방 안으로 들어가면 다른 사람들이 너무나 잘 느껴져서 견딜 수가 없으며, 차갑게 보이는 행동은 사실 너무 많은 공감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자기 방어를 하는 것”이라는 설명을 내놓았다. 즉 공감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 많이 해서 내면으로 들어가 버린다는 굉장히 다른 해석이다. 자폐증과 공감에 관한 연구는 계속될 것 같다.


어떻게 결론이 날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공감이라는 것에 다양한 형태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우리와 같은 방법으로 느끼지 못한다고 해서 감정이 없는 사람으로 치부되어 어렸을 때부터 엄하고 호된 행동 요법을 치료라는 이름으로 받아온, 그래서 마치 사육당하다시피 살았다며 그러한 치료를 거부하는 자폐 운동가의 말이 생각난다. 또 그는 자폐를 가진 사람들이 일반 사람들과 같이 반응하도록(사실 반응하게 보이는 것처럼 교육받은 행동 요법) 강요하는 대신 그들이 우리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다름을 가지고 같이 공존하자고 한다. 그리고 아직 작은 목소리이지만 자폐적 상태를 ‘독특한 문화’ 또는 ‘소수인의 행동 양식’으로 받아들이자는 목소리도 있다.


그렇다면 정신분열증 환자 역시 공감 능력에 문제가 생긴 것일까?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토론 사이트에 “당신은 공감을 하는 데 문제가 있습니까?”라는 질문이 올라왔다. 여러 종류의 답변들이 있었다. 전혀 그렇지 않다는 대답도 있고, 정신분열증이 발병하고 난 뒤에는 너무나 많이 느껴져서 괴로웠는데 약물 치료를 하고 증상이 나아지면서 오히려 공감이 안 된다는 대답도 있었고, 또 이런 대답도 있었다.


“누구도 그 사람에 대하여 관심 보이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그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보이기 아마 어려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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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기를 두려워 말아요정은혜 저 | 샨티
《행복하기를 두려워 말아요》는 미술 치료를 공부한 정은혜 씨가 미술 치료사로 살아가기 시작하면서 만난 정신병동의 환자들, 쉼터의 청소년들과 소통해 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더불어 8년이 넘는 치료 경험 속에서 배우고 익힌 창조적인 미술 치료의 기법들, 나아가 미술 치료에 대한 통념을 깨는 경험과 통찰 등 미술 치료사로서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직접 그린 치료적인 그림들과 함께 속 깊게 풀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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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정은혜

미술 치료사이며 화가다. 캐나다에서 회화와 미술사를 공부하고 한국에서 뉴미디어 전문 미술관인 아트센터 나비의 기획자로 일하다, 자신이 바라던 삶이 최첨단 기술을 이용한 소통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공감을 바탕으로 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누군가를 도울 때 기뻐하던 자신의 모습을 기억하며 미국으로 건너가 미술 치료 공부를 시작했다. 미국의 The School of the Art Institute of Chicago에서 미술 치료 석사 학위를 받고 시카고의 정신 병원과 청소년치료센터에서 미술 치료사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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