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자!" 이은, 이재구, 장윤현, 장동홍 감독의 <파업전야>

극장을 박차고 나와 관객과 호흡한, 한국의 몇 안 되는 인터랙티브 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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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전야>를 보면서 장산곶매에 관해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들은 혹시 전태일이 분신자살한 70년부터, 작품이 제작된 90년까지 열악한 노동환경에 대해 꾸준히 일갈해 왔지만, 언제부터인가 너무나 무서운 상황과 마주한 게 아닐까. 바로 ‘우리 빼고 그 누구도 분노하지 않는 상황’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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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 / 새벽 쓰린 가슴 위로 / 차가운 소주를 붓는다 / 아 / 이러다간 오래 못 가지 / 이러다간 끝내 못 가지... - 박노해의 시, 『노동의 새벽』 中 (1984)


MBC에서 1982년에 방영한 <나는 이렇게 의식화 교육을 받았다> 라는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었다. 거기서 지금 기준으로 굉장히 어이가 없어 포복절도 할만한 ‘의식화 교육’ 재연 장면 하나가 나오는데, '빨갱이들이 의식화 교육을 어떻게 시키는가' 를 묘사하는 순간이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테이블 하나를 두고 양초를 쥔 채 이상한 주문을 외는 것이다. 참고로 이들이 말하는 의식화 교육은 바로 노조결성이었다. 그런데 마치 심장 빼는 밀교 의식 마냥 불편하게 묘사하고 있다. 지금은 개그 콩트에서도 볼 수 없을 이 우스운 풍경이 당시에는 경각심을 주기 위한 의도의 TV 프로그램 쪽에 편성이 되어 방영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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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에서 방영된 TV 프로그램, <나는 이렇게 의식화 교육을 받았다>


노조는 과연 잘못된 단체인가? 그건 이 질문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자기 스스로를 노동자라고 생각하느냐, 혹은 하지 않느냐에 따라 답이 달리, 그리고 간단히 나올 것이다.


사실 노조라는 단어의 존재에 대해 동의하든 말든, 분명 공통적으로 인정하고 가야 할 부분이 하나 있다. 바로 세상에는 자신들의 인권과 현 여건을 대변하고 알릴 수 있는 단체가 하나쯤 필요하다는 점이다. 그런데 세상의 수많은 단체들 중 이상할 정도로 노조는 한국에서 유독 결성과 존재 자체에 관해 많이 부정당해 왔다. 당연히 악덕 기업가 입장에서는 싫겠지만, 여기엔 아마 우리 대부분의 착각도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가 누군가를 부리며 살고 있는 주인이라 생각하니 말이다. 당연히 그래야 맞다. 허나 안타깝게도 실제로 주인처럼 살고 있는 사람들은 따로 있다. 그리고 그렇게 선택받은 자들은 정말 극소수다. 우리는 그들에게 붙어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떡고물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그 때나 지금이나. 영화제작소 장산곶매가 <파업전야>를 제작한 시기는 1970년, 평화시장 재단사였던 전태일이 일 하는 사람들의 인권을 보장해 달라며 분신자살을 하고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뀌었을 때였다. 강산은 바뀌었으나 별로 나아진 게 없었다.


중요한건 바로 인간답게 살아간다는 것


장산곶매는 ‘영화도 운동이 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부터 출발해 만들어진 영화제작집단이다. <파업전야>는 5.18을 다룬 그들의 첫 작품인 <오! 꿈의 나라>에 이은 두번째 작품이었다.


작품은 동성금속이라는 공장을 배경으로 하는데, 이 곳은 틈만 나면 잔업이야 야근이야 하며 제대로 된 밥도 주지 않고 사람들에게 일을 시키고 있다. 도입부에서 이에 못 참은 한 노동자가 일어나 우리도 노동조합을 만들어 필요조건들을 요구해야 한다고 항변한다. 그러자 날아오는 것은? 워커 발길질! 어디서 들었는지 웬 한 무리의 사내들이 나타나 해대는 짓이다. 하지만 곧 그 노동자처럼 생각하는 이들이 하나 둘씩 등장하기 시작한다. 남녀 골고루 모여 노동조합을 한 번 결성해 보자고 결의한 것이다. 다른 공장에서도 성공했었다는 소문에 모든 걸 걸고! 작품은 이후 그들이 벌이는 험난한 노조 결성기, 그 속에서 정작 고민하여 노조를 막는 구사대 쪽에 선 주인공 한수의 번민과 뒤늦은 깨달음 등을 같이 담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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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주인공 커플인 한수와 미자. (김동범, 최경희가 연기) 노조에 들어간 애인을 보며 고뇌하지만, 고단한 현실 속에서 위험을 감수할 수 없어 괴로워 하는 한수.


<파업전야>를 보면서 장산곶매에 관해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들은 혹시 전태일이 분신자살한 70년부터, 작품이 제작된 90년까지 열악한 노동환경에 대해 꾸준히 일갈해 왔지만, 언제부터인가 너무나 무서운 상황과 마주한 게 아닐까. 바로 ‘우리 빼고 그 누구도 분노하지 않는 상황’ 말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이 문제는 사실 중요하다. 내 분노는 말 그대로 나 자신의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도 공감해주면 좋겠지만, 대부분은 남의 일처럼 여기고 만다. 결국 다른 접근 방식이 필요한데, <파업전야>는 노동운동에 관해 심도 깊게 설명하기보다 ‘우리에게 중요한 건 지금 당장 노조를 만드는 것’ 이란 주제의식에 집중한다.


<파업전야>를 만든 스탭들은 스스로 나름 운이 좋았다고 이야기한다. 촬영장을 아무리 찾아 다녀도 이 작품의 이야기를 들은 공장 측에서는 그 어느 곳에서도 촬영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마침 파업을 하는 공장이 나왔고, 그 곳에서 촬영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줬다. 저예산이라 주피터 조명기 (보통 연극 보러 가면 자주 볼 수 있는 조명기다.) 뿐이었지만, 그것으로도 얼추 어둡고 큰 공장 내부들을 훌륭하게 촬영했다고 스스로 이야기 하고 있다. 그러나 관객들의 눈은 스탭들의 눈과는 다르다. 그들에게 배우들의 연기는 대부분이 미숙하고, 16mm로 찍은 탓에 화조는 흐릿하며 흐름 상 필요하긴 했지만 남녀 주인공의 섹스 시퀀스는 뭔지 모르게 더 미숙하고 튀어 보일 것이다. 관객들을 비하하는 의미가 아니다. 결국 영화를 만든 사람과 아닌 사람의 눈에 먼저 띄는 것들은 다르다는 얘기다. 이렇기에 <파업전야>가 보여준 방식은 영리하다고 볼 수 있다.


작품의 외형은 다소 초보적이었지만 작품은 감독, 혹은 운동가들이 아니라 ‘관객’의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점을 알았고, 열 사람의 한 걸음이 한 사람의 열 걸음 못잖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작품은 노조 설립을 위한 절차와 어려움, 막으려는 자들의 잔혹한 탄압을 꼼꼼히 설명하면서도 열심히 주인공으로 나오는 노동자들의 소소한 말장난들과 사랑 등 극적 이야기에도 충실한 모습을 보인다. 그렇게 관객을 몰입시키다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고 한 번에, 지금 영화를 보고 있는 우리는 저들을 보며 끓어오를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이미지로 그들에게 선택의 여지를 준다. 지금 파도처럼 쏟아져 나오는 이 노동자들을 보며 당신은 끓어 오르고 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만약 끓어 오른다면, 작품 입장에서는 성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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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유명한 결말! *


작품은 영상물등급위원회에 의해 제대로 극장개봉을 할 수 있는 등급과 영화로서의 자격을 박탈당하자 전국 대학 강당과 문화회관을 돌며 상영을 시작했다. 이에 발맞춰 당시 노태우 정부는 <파업전야>의 상영을 막기 위해 경찰 기동대와 페퍼 포그, 헬리콥터를 동원하여 대한민국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이것이 본의 아니게 작품의 홍보에 도움을 주고 있다는 사실도 까맣게 잊은 채.. 결국 이 작품은 제대로 극장 개봉을 하지 않았는데도 30만명이 넘는 관객동원에 성공한다. 심지어 이 관객들은 작품의 필름을 지키기 위해 공권력과 싸우기까지 했다. 흔히 말하는 ‘독립영화’, 그것도 1990년에 노조에 관한 이야기를 가진 영화로 따져도 불가사의할 정도의 성공이었다.


불가사의함은 지금도 지속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파업전야> 이후로도 세상은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끓어올랐던 관객은 다시금 자신들의 현 처지에 무관심해졌다. 직접적으로 가해지는 사회의 폭력은 사라졌지만, 자본의 얼굴을 하고 점점 자신들의 밥줄을 쥐며 지쳐가게 만들고 있다는 점은 모르고 있어서다. 그 와중에 장산곶매는 해체됐고, 독립영화는 여전히 열악하다. 노동자의 환경에 관해 이야기하려면 여전히 조심스럽다. 이후에 한국의 사회를 논하는 작품들은 모두 24년 전에 나온 <파업전야> 식의 화법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 그 때문에 촌스럽다.


현재 한국에서는 안타깝게도 <파업전야> 수준으로 현재의 폭력을 고발할 수 있는 파괴력을 지닌 작품이 만들어지지 않는 중이다. 이유가 뭐지. 덜 절박해서? 만약 그렇다면 우린 얼마나 더 절박해져야 <파업전야> 속 인물들의 처지를 남의 일처럼 여기지 않게 될까. …이 작품 개봉한지 어느새 24년이 지났는데 가끔 보면 좀 의아하기도 하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거 보면 다들 보도 블록을 던지든, 뭐라도 해야 하는데 말이다. 전국에서 파도처럼 밀고 나와야 하는데 말이다. 곧 겨울이라 추워서 그런가. 스산하다, 스산해..

 

 


p.s. ? 장산곶매는 해체됐으나, 그 인원들 중 몇몇은 여전히 영화계나 연극계 등에 남아있다. 심재명 대표와 부부의 연을 맺고 명필름을 이끌고 있는 이은 감독이 대표적이다. 그 명필름이 E 마트 노조 탄압 사건을 다룬 부지영 감독의 <카트>를 공동제작 해서 개봉한다. ‘이 사회에서 <파업전야>가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지게 될 때는 과연 언제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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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홍준호

네이버(에서 전혀 유명하지 않은)파워블로거, 대학졸업생, 딴지일보 필진, 채널 예스에서 글 쓰는 사람. 혼자 작품을 보러 다니길 좋아하고 또 그런 처지라서 코너 이름을 저렇게 붙였다. 굳이 ‘리뷰’ 라고 쓰면 될 걸 뭐하러 ‘크리티끄’ 라고 했냐 물으신다면, 저리 해놓으면 좀 고상하게 보여서 사람들이 더 읽어주지 않을까 싶어서다. 이거 보시는 분들 글 마음에 드시면 청탁하세요. 열과 성을 다해 써서 바칠께요. * //sega32x.blog.m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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