쉘 위 스위츠 in 홋카이도
입술과 혀보다 마음이 먼저 말한다 달고 부드러운 것들은, 그냥 좋은 거라고
열기 없이도 몸을 따뜻하게 해준다. 어색한 자리를 살갑게 바꾼다. 궁색한 손을 부끄럽지 않도록 메운다. 허전한 시간을 달래준다. 풀지 못한 피로를, 과한 욕심을 잠재운다. 무엇보다 달고 부드러운 것들은, 당신의 오후를 완벽하게 채워준다.
아저씨의 파르페
낡은 가죽 가방을 옆자리에 둔 중년의 아저씨가 홀로 앉아 있었다. 해가 서쪽에서 붉게 뭉개지고 있을 즈음이었다. 그의 눈은 온통 한 곳만을 바라보았다. 알록달록 고운 파르페였다. 그는 얇고 긴 스푼을 조심스럽게 쥐었다. 그러고 나서 오랫동안 눈을 감은 채, 차갑고 달콤한 그것을 시간을 두고 음미했다. 부드러운 바닐라 아이스크림 위엔 크래커와 껍질을 벗겨낸 붉은 과육, 그리고 캐러멜 시럽이 얹어져 있었다. 아래로 좁아지는 컵 속으로 아저씨는 스푼을 휘저었다. 밑에 남겨진 알갱이까지 빈틈없이 긁어 입으로 가져갔다. 그런 그를 보고 있자니, 낡은 가방에 실려온 시름이 사라지는 것 같아 마음이 편해졌다.
세상엔 우리가 생각지 못했던 콤비가 많다. 새끼 호랑이를 돌보는 침팬지나, 동성을 좋아하는 사람 같은. 다만 중년의 남성과 그의 애정을 듬뿍 받는 파르페는 좀처럼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이후로 나는 아이스크림에 집착하는 일본 남성들을 자주 관찰하게 됐다. 그들은 하나같이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행복에 도취해 있었다. 우리나라 관광지에 가면 번데기나 떡볶이 팔듯이, 소프트크림 가게는 꼭 하나씩 있다. 그 앞은 줄 서는 남자들로 늘 가득하다.
맛은 우유를 크림으로 만든 것처럼 담백하고 고소하며, 식감은 부드러우면서 쫄깃하다. 첨가물을 최소화했기 때문이다. 흘러내리는 아이스크림 콘을 붙잡고 걸음이 느려지는 것도 주로 아빠들이다. 카페나 디저트 전문점에 가도, 남자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앉아있는 모습이 종종 보인다. 손수건만 한 테이블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그렇게 수다를 떠는 것이다. 팔뚝만 한 파르페를 하나씩 시켜 놓고 순수해지는 남자들이란, 꽤 매력 있는 풍경이라는 거 아시는지. 그들이 자상하고 조심스럽게 디저트를 다루는 모습이란 말이다.
한 조각 규칙
그리고 내가 한참 적응하지 못했던 건, 모두 아무렇지 않게 ‘1인 한 접시’를 고수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각자 음료를 시키고 케이크 한 개를 나눠 먹는 게 보통이지만, 여기는 그 반대다. 디저트 카페, 혹은 스위츠 카페라고 하는 곳은 ‘달다구리 마니아’들에겐 천국과도 같다. 케이크, 쿠키, 아이스크림, 파르페, 푸딩, 화과자, 빙수 등 온갖 달콤한 것들을 통틀어 ‘스위츠(Sweets)’라고 부르는데, 이것에 곁들여 차나 커피를 마신다. 두 조각 이상을 먹는 사람들도 꽤 있다.
일단, 공장에서 가져온 냉동 생지가 아니다. 파티시에가 직접 만든 생지를 쓴다. 사르르 녹는 생크림에 제철 과일이나 진한 초콜릿, 위스키나 럼주가 들어가기도 한다. 생각만큼 느끼하지 않고, 적당히 달다. 아울러 장식은 어찌나 아기자기한지, 디저트 카페를 찾은 사람들의 목소리 톤은 점점 높아질 수밖에 없다. 혹시 우울할 때라면 다녀올 곳이 있다. 두 시간 동안 단것들을 원 없이 먹을 수 있는 ‘스위츠 뷔페’다. 이쯤 되면 살찔까 걱정될 법도 하지만, 예쁘고 단 것들을 잔뜩 집어 먹은 몸이 붕 뜨면 모든 걸 잊을 수 있다.
나는 우선 무스케이크부터 먹어 보기로 했다. 손잡이가 긴 스푼을 유리잔에 깊숙이 넣어 무스케이크를 살며시 퍼 올렸다. 입안에 넣자 진한 초콜릿과 부드러운 위스키 맛이 한데 어우러졌다. 알맞게 거품을 낸 위스키 사바이옹은 쫀득쫀득 식감이 살아있었다. 사바이옹에는 보통 샴페인이 들어가는데 이건 싱글 몰트를 넣은 위스키에서 뿜어 나오는 과실향이 카카오향과 어우러져 콧속으로 빠르게 흘러들어 갔다. _우에다 사유리 「쇼콜라티에」
빵 굽는 냄새로 분주한 오비히로의 하늘
이탈리아 장인이 한 땀 한 땀 가방을 바느질하듯이, 일본에는 디저트 장인이 있다. 홋카이도 스위츠의 대표는 오비히로(??)에 있다. 섬 한가운데의 드넓은 토카치 평야 지역에서 가장 큰 도시다. 토카치 평야에서 나는 작물은 홋카이도 식량 자급률 1,000%를 웃돈다. 이는 일본의 네 개 섬 중 가장 작은 시코쿠의 전 주민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양이라고 한다. 토카치 지역에 가면 끝 없는 평야와 초원뿐이다. 처음엔 한가로운 정취와 자연에 취하지만, 몇 시간을 달리다 보면 졸음이 몰려오는 똑같은 풍경이다. 오비히로도 비슷하다. 한적해서 심심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이곳에서 바쁘게 돌아다니며 사치를 할 기회가 있다. ‘스위츠 투어’가 바로 그것이다. 토카치 평야의 곡식과 초원의 목장에서 나는 신선한 유제품이 탄탄한 뒷받침이 된다. 거기에 가게들만의 특색을 더한 역사 깊은 스위츠 명가들이 즐비하다. 본점에서만 맛볼 수 있는 한정 제품도 놓칠 수 없다. 오래된 제과점에서 구워내는 빵 냄새를 맡다 보면, 어렸을 적 한 번쯤 가져봤던 빵집 사장님의 꿈이 되살아나는 듯하다. 단 것이라면 눈이 번쩍 뜨이는 분들이여, 오비히로는 아마도 당신의 성지가 될 것이다.
골목의 파티시에
손바닥만큼 작은 간판을 단 가게들은 가로수 사이에 숨어있다. 어떤 집은 치즈 케이크만 파는 곳도 있고, 온통 초콜릿인 곳도 있다. 케이크와 빵들은 조용히 구워지고, 단정하게 겉모습을 가꾼다. 그것들의 하루는 기다림이다. 마침내 당신이 찾아와 달콤한 한 때를 즐길 때까지 인내한다. 그리하여 접시에 옮겨 담는 동안엔 엄숙함 마저 느껴진다. 불그스름히 수줍은 딸기 쇼트케이크, 우아한 밤 몽블랑, 마력의 가토 쇼콜라, 깊은 풍미의 단호박 치즈 케이크……. 오후의 농도 짙은 햇살과 바람에 살랑이는 커튼 자락이 잘 어울리는 풍경이다. 작은 골목의 당신과 케이크 한 조각은 그렇게 완성된다.
열기 없이도 몸을 따뜻하게 해준다. 어색한 자리를 살갑게 바꾸며, 궁색한 손을 부끄럽지 않도록 메운다. 허전한 시간을 달래준다. 풀지 못한 피로를, 과한 욕심을 잠재운다. 무엇보다 달고 부드러운 것들은, 당신의 오후를 완벽하게 채워준다. 스위츠가 있는 곳에 슬픈 사람은 없다. 그리하여 당신의 입술과 혀보다 마음이 먼저 말한다. 그건 그냥, 좋은 거라고.
- 비쎄 스위츠 (Bisse Sweets): 홋카이도를 대표하는 스위츠 브랜드 6가지가 모여 있다. 지하철 오도리 역 13번 출구.
- 삿포로 스위츠 카페 (Sapporo Sweets Cafe): 매년 삿포로 시에서 선정한 파티시에의 스위츠를 모아 판매한다. 오도리역 지하상가 오로라타운(Aurora Town) 인포메이션 센터 옆.
- 다이마루 백화점 지하 1층: 여러 가지 브랜드의 스위츠를 시식할 기회가 많다. 기념품으로 포장할 수 있다. 삿포로역 쇼핑 센터.
* 오비히로 스위츠 전문점 주소
- 롯카테이(六花亭) 본점: 오비히로 西二條 南9-6
- 크랑베리 본점: 오비히로 西二條 南6-2-5
- 류게츠(柳月) 본점: 오비히로 大通 南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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홋카이도의 매력에 흠뻑 빠져 삿포로에서 살고 있다.
새로운 언어와 문화, 일상을 여행한다.
먹고 마시는 것과 사소한 순간을 좋아하며, 종종 글자를 읽고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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