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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볶이, 라면 없이 살 수 있어요?

식도락 특집 ② 분식에 얽힌 우리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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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식의 고급화가 대세다. 프리미엄 김밥은 5천 원을 줘야 사먹을 수 있고, 떡이 고작 15개 정도 들어있는 떡볶이가 4천 원이란다. 주머니가 가벼울 때, 우리가 쉽게 먹을 수 있는 게 분식 아니었던가? 어쩌다가 이제는 분식도 부담스러운 메뉴가 되었단 말인가!

아무리 분식이 고급화가 되어도 학창시절 자주 먹었던 학교 앞 떡볶이 맛은 낼 수 없다. 조미료 맛이라고 한들, 결코 잊을 수 없는 그 때 그 맛. <채널예스>, 예스블로그, 예스24 SNS 담당자들이 ‘분식’하면 떠오르는 추억을 꺼내보았다. 오늘, 아마도 당신은 떡볶이 아니면 라면을 먹게 될 것이다.

 

떡볶이, 언제나 나에겐 1순위


떡볶이세계여행을 할 때 가장 생각났던 음식이 ‘떡볶이’였다. 페루의 마추피추에서도, 볼리비아의 우유니 사막에서도, 터키의 카파도키아에서도, 한국에 돌아가면 먹고 싶은 음식리스트 1순위였다. 빨갛고 매운 떡볶이는 세계 어디를 가도 생각나는 중독성 있는 음식이었던 것이다. 떡볶이에 대한 사랑은 초등학생 때부터 시작된 것 같다. 어렸을 적 집으로 가는 길에 항상 소량의 떡볶이를 컵에 넣어 파는 용달차가 있었다. 등하교 길이 좀 길었던 탓일까! 항상 그 용달차에서 단돈 200원을 주고는 컵 떡볶이를 먹으며 행복감에 젖어 긴 하교 길을 즐겁게 다닐 수 있었다.

 

200원의 컵떡볶이에 행복해하던 어린이는 어른이 되고 나서 퇴근 후 맥주와 마시는 떡볶이에 행복감을 느끼곤 한다. (예스24블로그 김인지 대리)

 

 

잊을 수 없는 강화도 국물 떡볶이


떡볶이나는 강화도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강화도에서도 깊숙한 곳에 있는 시골 학교였다. 떡볶이가 먹고 싶으면, 세 시간마다 한 대있는 버스를 잡아타고 30분을 달려 읍내로 가야 했다. 그 때는 그런 번거로움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로 군것질을 입에 달고 살던 때였다. 열 여덟 살, 처음 생긴 남자친구와 함께 투닥거리며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평일에는 어딜 나가는 게 학교 규정상 금지 돼 있었는데, 저 멀리서 담임 선생님 차가 정류장 쪽으로 오고 있었다. “너네 차에 타.” 무섭게 말하던 선생님은 읍내에 도착해서 후미진 골목으로 우릴 데리고 갔다.

 

거기에는 아주 작고 허름한 분식집이 하나 있었다. 선생님은 자연스럽게 국물 떡볶이와 쫄면을 시켜놓고 우리에게 얘기했다.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왔던 분식집이야. 처음 여자친구를 만났을 때도 이 곳에 자주 왔었어.” 그 때 먹었던 국물 떡볶이를 잊을 수 없다. 자박자박한 국물을 숟가락으로 떠 먹고, 떡을 호호 불어 먹으며 선생님 얘기를 들었다. 우리는 스무 살이 넘어서도 강화도에만 가면 그 분식집을 찾았고, 지금은 그 분식집만 생각해도 혀에서 감칠맛이 돈다. 그리고 가슴이 따뜻해진다. (예스24블로그 전소연)

 

 

맵지 않은 라면은 없나요?

 

라면지금은 모르겠지만, 치킨이 지금 정도로는 유행하지 않았던 7년 전. 한 수업에서 쌀밥 다음으로 많이 먹는 게 뭐냐고 교수님이 물어보셨다. 그에 대한 답으로 대부분은 ‘라면’이라고 답했다. 라면은 조리법이 매우 간단하니, 집에서 밥 해 먹기 귀찮을 때 끼니 때우기로 안성맞춤이다. 더구나 자취생이었던 나에게는 더더욱. 결혼을 하고 난 뒤에도 종종 라면을 먹지만, 분식집에서는 전혀 먹지 않는다. 시장 점유율 1위인 신라면의 힘인지, 분식집에서도 라면을 시키면 대개 매웠다. 일일이 확인은 안 해 봤지만 많은 분식집에서 신라면을 사용하는 듯하다.

 

 

신라면에 관해서는 고등학교 때 추억이 떠오른다. 부산 충무 교차로 남쪽 방향으로 이어진 골목이 있는데, 그곳 라면집이 친구들 사이에서 유명했다. 한창 먹성 좋을 시기, 남학생에게 맛집의 요건은 무조건 양. 그곳에서 라면 한 그릇을 다 먹은 사람이 없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내기가 붙었다. 처음에는 “먹는다”와 “못 먹는다”였는데, 나중에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가장 많이 남기는 사람이 라면 값을 다 내기로 했다. 전통적인 맛집이 그렇듯, 다소 누추한 위치에 허름한 모습으로 라면집은 우리를 맞았다. 심지어 라면집의 이름도 없었다. 공간도 좁았다. 벽면을 보고 일렬로 앉았다. 주문한 라면이 나왔을 때, 우리는 경악했다. 정말로 양이 많았다. 양도 양이었지만, 꽤나 매웠다. 매운 걸 못 먹는 내가 꼴찌였고, 라면 값을 부담했다. 덧붙이자면, 그 당시 가장 먹성 좋아서 학교 급식을 담당했던 영양사 분을 당황하게 했던 내 친구 K마저 한 그릇을 다 먹진 못했다. 컨디션이 안 좋다는 핑계를 대며.

 

지금도 그 라면집이 남아 있는지는 모르지만, 떡볶이집을 비롯한 분식집도 하나 둘씩 프랜차이즈화되는 거리를 보면, 간판도 없고 좁았지만 양과 아주머니 인심은 넉넉했던 그 라면집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곳에서 ‘사리곰탕’을 팔았으면 결과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채널예스 손민규 대리)

 

 

가장 주관적인 내 고향 맛, 익산 우리분식의 매운 라면 맛


라면고향을 떠나 서울로 올라 온지도 어느덧 7년 째. 고향에서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이 뭐냐고 묻는다면 서슴없이 말할 수 있다. ‘라면’이라고.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 선배들, 그리고 후배들과 먹었던 익산 중앙시장 분식집의 라면 맛은 서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그 라면을 처음 맛본 건 첫 동아리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선배들을 따라 ‘우리분식’이란 곳에 갔다. 그곳엔 여러 가지 종류의 라면과 탕수육을 팔았다. 늦은 오후까지 사람들이 줄을 설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그때까지 엄마가 끓여준 라면만 먹었던 나는 왜 사람들이 줄을 서가면서까지 먹는지 이해가 안됐다.

 

곧 우리 차례가 되어 옹기종기 테이블에 앉았다. 나는 기장 선배가 고른 짬뽕 라면을 따라 시켰다. 몇 분 뒤 라면이 나왔다. 면발을 입에 넣자 곧바로 코끝을 찡하게 하는 매운 맛이 느껴졌다. 뭐니뭐니해도 라면은 매운 게 최고라는 것을 그때야 알았다. 집에서 엄마가 끓여준 적당히 넣은 스프맛이 아닌 물배 채우며 끝까지 먹는 분식집 라면은 신세계였다. 입가심으로 쭈쭈바를 빨면서 학교로 다시 돌아와 어떤 소설에 관해 토론했다. 어떤 소설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분식집의 라면 얼얼한 그 맛은 강렬하게 기억이 난다.

 

덧) 고향에 통 내려갈 일이 없어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그래서 대체된 사진은 삼청동의 유명한 ‘라면땡기는날’의 치즈라면과 짬뽕라면. (예스24 SNS 김유리)

 

 

추억의 떡볶이, 떡볶이의 추억


사실 나는 떡볶이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매운 것을 즐기지 않는 터라 고추장에 버무려진 떡볶이는 내겐 너무 낯선 음식이었다. 이를 좋아하게 된 첫 번째 계기는 중학교 때였다. 방학을 앞둔 겨울날 오전, 친구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나 가출했어. OO 상가 분식집으로 와” 나가보니 떡볶이 한 접시를 시켜놓고 앉아 있는 친구 왈, 엄마에게 어디 간단 말없이 집을 나섰단다. 그렇다. 말없이 나오는 게 가출이라고 생각하는 그런 나이였다. 그렇게 우리는 떡볶이 한 접시를 나눠먹고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 점심 무렵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면서 ‘가출’을 마쳤다. 어떤 연유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날 이후 떡볶이는 친구들과 즐겨먹는 메뉴로 등극했다. 두 번째 계기는 대학 시절 학교 앞 포장마차 떡볶이의 매콤하고 달달한 맛에 다시 한 번 반하면서였다. 포장마차가 세워져 있던 건물의 이름을 빌려 ‘소구장’이라고 불리던 그 포장마차 떡볶이의 맛이 가끔 그리운데, 비슷한 맛을 내는 곳을 찾진 못 했다. 그립다, 그 때 그 시절의 떡볶이와 추억들이. (채널예스 조선영 편집장)

 

 

그래도 갈 수밖에 없는 그 맛


떡볶이내가 사는 강서구에는 ‘목동분식’이라는 유명한 분식집이 있다. 강서구에 있는데 왜 이름이 목동분식일까 다들 의아해 하는, 그러나 그 이유는 아무도 모르는 집. 즉석떡볶이를 판매하는 이곳에선 지켜야 할 수칙이 몇 개 있다. 늦게 주문하지 않기, 단무지 많이 퍼가지 않기. 조금이라도 꾸물거리면 퉁명스러운 아줌마의 호통이 들려오고, 단무지를 조금이라도 많이 퍼가면  “단무지 조금만 퍼가!”라는 불호령이 떨어진다. 내 돈 내고 먹는데 이렇게 눈치를 봐야 하나 싶다가도, 즉석에서 끓여지는 떡볶이를 한 입 먹으면 그 서운함이 눈 녹듯 사라진다.

 

 

달달하면서도 매콤한 떡볶이와 꼬들꼬들한 라면, 쫄면의 조화란! 마무리로 밥까지 볶아 먹고 나면 어느새 목동분식의 골수팬이 되어 버리고, 주기적으로 목동분식에 출석도장을 찍게 된다. 떡볶이도 떡볶이지만, 다 먹고 나갈 때 “맛있게 먹었어~? 다음에 또 와~”라고 다정한 인사를 건네는 아주머니의 (급)친절 역시 다시 오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다. 아,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목동분식’의 마력이여.  (채널예스 임수빈)

 

 

우리한테 떡볶이 냄새가 난다고?!


떡튀김한가인, 김혜수, 김자옥이 졸업한 내 여고 앞에는 떡볶이 가게가 즐비했다. 다른 학교 학생들이 견학(?)을 올 만큼 ‘깻잎 떡볶이’의 명성이 자자했다. 밀가루 떡에 깻잎을 왕창 넣은 맛인데, 꽤 먹을만했다. 튀김은 한 개에 150원, 200원 정도? (10년 전 가격) 라볶이 하나에 튀김 몇 개만 시켜도 여고생 두 명의 배는 차고도 남았다. 교복은 예쁘지 않지만 그래도 맛있는 떡볶이집 밀집 지역에 학교가 있다는 자부심으로 살았는데, 어느 날! 떡볶이 골목을 지나던 유희열, 신동엽이 나온 고등학교 남학생이 우리를 보더니, “쟤네 교복에서는 떡볶이 냄새 나는 거 아냐?”라고 지껄이는 것이 아닌가!

 

나름 우리가 선호했던 남고였는데 말이다. 쳇, 자기네들은 여기까지 원정을 와서 떡볶이를 먹는 주제에! 그 이후 우리는 선호하는 남고 리스트의 순위를 바꿔버렸다. 곁들인 사진은 아무 곳에서나 먹을 수 없는 만나분식표 전설의 ‘떡튀김’이다. 꼬치 없는 떡꼬치 맛인데, 기가 막히다. 서촌에 가실 일이 있으시면 꼭 들리시길. (채널예스 엄지혜 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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