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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삼화 연출가 “성장통에 대한 애틋하고 각별한 성찰”

연극 <바람직한 청소년>, 오히려 어른들이 더 재밌게 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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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끼리는 열심히, 재밌게 작품을 올렸지만 관객 반응이 이렇게까지 좋을 줄은 몰랐어요. 그래서 깜짝 놀랐어요. 지금까지 제가 공연한 작품 중에 <바람직한 청소년>이 제일 재밌다고 하더라고요.

문화예술 전방위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시인 김경주가 매월 공연 예술인을 만나 여러분께 소개해드립니다.

매달 12일 연재.

 

문삼화 연출, 이오진 작의 연극 <바람직한 청소년>은 불량학생, 왕따 피해자, 게이 고등학생 등 현대사회에서 ‘문제적 청소년’으로 인식되는 주인공들의 성장통을 담은 작품이다. CJ문화재단의 신인 공연 창작자 지원 프로그램 ‘크리에이티브마인즈’가 올리는 연극으로,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하고 싶은 말을 숨긴 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그동안 하지 못했던 말들이 무엇이었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극장뎐-문삼화

 

오히려 어른들이 더 재밌게 보는 청소년극


김경주 : <바람직한 청소년>이라는 제목이 흥미롭습니다. 작품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문삼화 : ‘바람직한’이라는 말은 반어적으로 쓰인 겁니다. 바람직하길 강요당하는 청소년들의 이야기인데요. 청소년의 이야기로 끝나는 게 아니라 바람직하기를 강요당하는 어린이, 청소년, 중년들까지 모두를 포함하는 이야기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저는 크리에이티브마인즈의 조광화, 배삼식 예술 감독에게 연락을 받고 이번 작품을 함께하게 됐어요. 이전까지는 크리에이티브마인즈에서 신인 작가에게 연출과 섭외까지 맡겼는데, 작가와 연출 모두가 신인이어서 어려움이 있었나 봐요. 그래서 작년에는 두 예술 감독님께서 현장에서 활동 중인 연출가를 신인 작가와 매칭 해주셨던 거죠. 그러니까 <바람직한 청소년>은 제가 고른 작품이 아니고 매칭업이 된 건데요. 낭독공연을 한다고 하는데 안 할 이유가 없었죠. 저희를 포함해서 총 여섯 팀이 공연을 했고, 그 결과 세 팀이 뽑혔어요. 올해 1월에는 세 작품의 공연이 올라갔고요. 그리고 ‘이다’에서 너무 고맙게도 이 작품을 앵콜할 수 있게 손을 뻗어주셨어요. 참 감사한 일이죠.
 
김경주 : 1월에 초연된 후에 6개월 만에 리뉴얼 된 거네요.

 

문삼화 : 지금 멤버들이 처음 만난 건 지난 해 8월이었어요. 그때부터 낭독 공연을 연습해서 9월 말 쯤에 공연을 했고요. 작품 선정이 돼서 1월 15일에 공연을 올렸고, 이번에 다시 또 공연을 올리게 된 거죠.

 

김경주 : 사실 청소년극이나 성인극이라는 장르가 따로 정해져 있지는 않잖아요. 연극이 관객의 연령대에 따라 맞춤식 장르가 될 수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데요. 이 극이 ‘청소년’을 다루고 있지만 분명 그 너머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문삼화 : 네. 저희는 굳이 청소년극이라고 규정짓고 싶지 않아요. 소재의 측면에서 청소년극인 거지, 청소년극이라고 하기에는 오히려 어른들이 더 재밌게 봐요.
 
김경주 : <바람직한 청소년>은 ‘타일러 클레멘티’ 라는 미국의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만든 작품이라고 들었습니다. 모티프가 된 외국의 실화와 작품을 연결시키는 연출님의 방식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문삼화 : 이 작품은 주인공인 동성애자 남학생이 연인과 뽀뽀하는 모습을 도촬 당하고, 그 사진이 게시판에 붙으면서 사건이 발생돼요. 그 친구는 전교 1등인 모범생이에요. 저는 우리나라가 동성애나 성소수자에 대해서 너무나 폐쇄적이고 부당한 대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예전에 잠깐 외국에서 생활할 때 동성애자 친구들도 많았고요. 그런 인식이 변화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릴 것 같기는 해요. 지금 우리는 동성애를 마치 치료가 필요한 대상인 것처럼 생각하잖아요.

 

엊그제도 그런 기사를 봤어요. 동성애자에서 이성애자로 돌아왔다는 사람의 이야기를 동성애자의 양심선언이라면서 보도했더라고요. 정말 가관이었어요. 마치 절대 빠져서는 안 될 구렁텅이에 갔다가 다시 돌아온 양, 본인이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저는 그런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냥 우리랑 똑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되고, 우리가 하는 사랑과 똑같은 사랑이라고 생각하면 되거든요. 그런 문제의식을 늘 가지고는 있었지만 감히 제가 그 이야기를 할 생각은 없었어요. 저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으니까요. 그런데 이 작품이 저에게 온 거죠.

 

문삼화 : 이번 연극 역시 저희 초기 멤버 중에 독실한 기독교 신자가 몇 명 있었는데 대본을 읽고 같이 해야 할 지 망설였다고 하더라고요. 특정 종교를 폄하하는 건 아니지만, 기독교 신자들은 동성애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잖아요. 그렇다보니까 첫 만남에서 ‘동성애란 무엇인가’ ‘우리는 동성애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했어요. 그러면서 그 친구들도 마음을 많이 열었죠.

 

김경주 : 연출가님도 이 작품을 하면서 생각이 바뀐 부분이 있었나요?

 

문삼화 : 말씀하신 것처럼 <바람직한 청소년>은 ‘타일러 클레멘티’라는 외국의 사례를 모티프로 하고 있는데, 사실 저도 작품을 하기 전에는 그런 사례가 있었는지 몰랐어요. 그런데 미국은 많이 성적 소주자의 문제의식에서 열려있고 특히 동성애에 개방되어 있다고 하는데도 그런 일이 발생하는 거잖아요. 예를 들어 섹스씬 찍어서 유튜브에 올려서 자살하게 만들고요. 결국은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는 데에서 비롯된 거라고 생각해요. 정말 ‘다를 뿐’인 건데 그걸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오는 불행이라고 생각해요.

 

극장뎐-문삼화

 

가짜로 키스하면 혼내요


김경주 : 문학이나 다른 예술장르에 비해 동성애나 퀴어 같은 소재가 우리 연극(정극)에서 적극적으로 들어온 경우는 조금 낯선 것 감은 있습니다. 외국의 사례는 많이 보아왔지만 이 작품처럼 공격적으로 전방에 배치한 텍스트는 근래에 좀 드물었던 것 같거요. 물론 몇몇 작품에서 부분적인 코드로 사용된 것은 보아왔지만 이번 작품은 그 이야기들을 정말로 주제적으로나 이야기의 전개적으로나 전면에 내세우고 있잖아요. 그 과정에서 연출님만의 지향점이 있었다면 무엇인가요?

 

문삼화 : 동성애라는 소재를 향한 저만의 무엇이 있었던 건 아니었고요. 예를 들어서 가짜로 키스한다고 하면 혼을 내요.

 

김경주 : 메소드적인 접근을 하셨네요(웃음).

 

문삼화 : (웃음) 소극장에서 각도 틀어서 가짜로 키스하고, 이건 아니라는 거죠. 저는 남녀 간의 키스신도 가짜로 하는 거 싫어해요. 이번 작품에 실제로 키스하는 씬이 있었고, 저는 가감 없이 시켰어요. 원래는 어둠 속에서 신음소리까지 나는 장면이 처음에는 있었는데, 그건 많이 불편하더라고요. 프롤로그처럼 되어 있는 부분이었는데 프롤로그를 없애고 자연스럽게 넘어갔어요. 이야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그런 장면이 나오면 오히려 반감을 불러일으킬 것 같았거든요. 소재와 상관없이 제 연출의 지향점은 앙상블이고, 배우들의 살아있음 이거든요. 그런데 저희 배우들이 지금 너무 잘하고 있어요. 케미가 끝내줘요(웃음).

 

김경주 : <바람직한 청소년>에는 동성애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불량학생을 비롯한 다양한 학생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잖아요.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 성장통을 다루는 작품인데, 연출님께서 겪으셨던 체험적인 성장통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배우들과도 성장통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셨을 것 같은데요.

 

문삼화 : 세대가 다르니까 차이점은 있더라고요(웃음). 처음에는 학창시절 때 얘기를 많이 했어요. 작품에 일진이 등장하니까요. 저는 정말 얌전하게 자랐기 때문에 그 세계를 몰라요. 그리고 그때만 해도 왕따 문제가 심각하지 않았어요. 분명히 왕따는 존재했지만 사회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었어요. 오히려 선생님이나 학교의 폭력은 더 심했죠. 너무 강압적이었고요. 그래서 일단 저는 배우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학창시절을 어떻게 보냈는지 물어보면서요. 배우들이 20대 후반~30대 초반 또래들이거든요. 그들의 학창시절과 전형적인 군상들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하려고 했고요. 그러면서 서로 만나는 접점이 있었던 것 같아요.

 

김경주 : 연출가님의 성장통은 기억이 나시나요?

 

문삼화 : 기억도 잘 나지 않고, 성장통을 심하게 앓은 케이스도 아니었어요. 그런데 나중에 20대 후반이 되어서야 분노했죠. 어렸을 때는 학교에서 선생님이 때리는 걸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무식하게 때렸는데 말이죠. 그걸 뒤늦게 깨닫고 ‘왜 그때 나는 분노하지 않았을까, 왜 그걸 당연하게 생각했을까’라고 생각하면서 분노했었어요. 저의 경우에는 강압적인 시스템 안에서 너무 순응을 하고 살았기 때문에 성장통이 있었는지도 모르고 자랐고, 서른이 다 돼서야 폭발했던 거죠. 그때가 본격적으로 연극을 시작했을 무렵이었는데요. 직장 생활을 하다가 연극을 하겠다고 결심했을 때였어요. 그때 ‘나는 왜 바보같이 모든 걸 당연하게 느끼면서 분노하지 않았던 걸까’라고 생각했으니까, 저는 <바람직한 청소년>의 배우들과는 달리 깨달음이 더딘 아이였던 거죠. 저희 배우들은 지금 팔딱팔딱하는 친구들이거든요.

 
김경주 : 대부분의 배우들이 20대 후반~30대 초반이니까, 어느 정도 학교 안에서의 암묵적이고 만연된 폭력에 노출되었던 경험이 있는 친구들이겠군요.

 

문삼화 : 그렇죠. 당해보기도 하고 자신들이 해보기도 하고요.

 

김경주 : 청소년기의 성장통은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시스템에 적응하느냐, 아니면 뛰쳐 나가냐’에 대한 고민에서 비롯되는 것 같습니다. <바람직한 청소년>의 아이들은 어떤가요?

 

문삼화 : 이 아이들은 뛰쳐나가지 못해요. 일탈을 못하는 거죠. 바람직 하려고 노력하는 거예요. 사회에서 요구하는 사람 노릇을 하려고 시스템 자체를 거부하지 않아요. 시스템에서 일탈하거나 극단적으로 나아가지 않죠. 그래서 안쓰러운 거예요. 바람직 하려고 애쓰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사회가 정해놓은 틀에 그 정도는 맞춰줘야 자신의 미래가 보장된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래도 고등학교를 졸업해야 사람 노릇을 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는 식이죠. 결국은 바람직한 청소년의 모습으로 마무리를 지으려고 참고 애쓰고 있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아이러니가 느껴지면서 가슴이 짠한 데가 있어요.

 

극장뎐-문삼화


 
그들도 다 성장통을 겪었을 거예요


김경주 : <바람직한 청소년>이 드러내고 싶은 주제도 극단적 일탈을 통한 해방감이나 자유가 아니라, 시스템 안에서의 어떤 견딤과 그로 인한 비애이겠군요.

 

문삼화 : 사실 극단적인 일탈을 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어요. 극단적인 일탈이라는 건 우리가 꿈꾸는 판타지에 가까운 것이죠. 실제로 극단적인 일탈을 하는 아이가 있기는 하지만 비율로 따지면 굉장히 적잖아요. 대부분의 아이들은 작품 속의 아이들처럼 살고 있거든요. 가족 때문에라도 참고 견디죠.

 

김경주 : 그 과정 속에서 물리적이거나 감정적인 폭력이 존재할 텐데요. 그것들을 목격하는 자의 시선도 있을 것이고, 주도하는 자의 시선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연출님께서는 작품 속의 다양한 시선들을 어떻게 바라보셨나요?

 

문삼화 : 원래 작품은 저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관객들의 시선과 인생과 위치에 따라서 다르게 보이는 거더라고요. 그래서 관객들의 리뷰를 보면서 놀랄 때가 많아요. ‘이런 것도 읽어 내다니’ 싶을 때가 많더라고요(웃음). 관객은 자신의 인생과 만나지는 부분에서 작품을 보기 때문에, 저의 의도와는 상관없죠. 다양한 시선에 대해서 이야기하셨는데, 작품을 이루는 축은 두 개예요. ‘아이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폭력’과 ‘선생님으로 대변되는 시스템이 아이들에게 가하는 폭력’이죠. 더 직접적이고 눈에 보이는 건 아이들 사이의 폭력이고, 시스템에서 비롯된 폭력은 직접적이지 않죠. 하지만 그게 더 아이들을 옭아매고 있는 거예요. 그런 부분은 무대 위에 재현된 ‘반성실’이라는 공간-답답하게 갇힌 공간을 통해서 보여 지기도 해요. 그런데 그런 폭력이 과연 선생님들의 잘못이냐? 라는 문제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거죠.

 

김경주 : <바람직한 청소년>의 배우들은 두 명의 주인공을 빼놓고는 모두 1인 2역을 하고 있는데요. 배우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주셨나요?

 

문삼화 : ‘이 아이들이 자라서 이런 선생님이 됐을 거라고 생각하고 가자’고 얘기했어요. 그래서 선생님들도 찌질하고 아이들도 찌질해요. 선생님이 폭력의 주체가 아닌 거죠. 자칫 잘못하면 시스템의 전면에 서있는 선생님들이 책임을 뒤집어 쓸 수가 있잖아요.
 
김경주 : 그렇죠. 가해자와 피해자의 이분법적인 구도나 대립으로만 바라보기는 어렵죠. 폭력의 구조안에는 항상 입장론이 존재하고 누구든 피해자가 될 수 있고 누구든 가해자가 될 수 있으니까요. 그런 질문은 일종의 우리가 살고 있는 동시대의 공존지대에 대한 성찰로도 보여집니다. 그러한 공존의식이 작품 속에도 담겨있는 것 같습니다.
 
문삼화 : 네. 저는 시작을 그렇게 했어요. 선생님 역의 배우들도 1인 2역으로 고등학생까지 연기하니까 ‘네가 연기하는 선생도 어렸을 때는 네가 연기하는 학생 같았을 거야. 그런데 중간에 잘해서 선생이 된 거지. 그렇게 생각하고 연기해 보자’고 말한 거죠. 왜냐하면 우리에게 폭력적이었던 선생님들도 고등학생 시절을 거쳤잖아요. 그들도 다 성장통을 겪었을 거예요. 저는 배우들과 작업할 때 매커니즘적인 부분은 처음에만 설정해요. 그것을 계속 염두 해 둔다거나 거기에 매이지는 않아요. 처음 테이블 리딩을 할 때는 매커니즘적인 측면에서 얘기를 해요. 그런데 배우들과 같이 작업하는 연출의 입장에서는, 배우들에게 주제적인 이야기를 하는 게 도움이 되지 않아요. 주제가 무엇인지,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말하는 게 배우들의 연기를 더 가둬두는 일이 되어버려요. 그래서 배우들과는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이야기를 나눴어요.

 

극장뎐-문삼화

 

작가의 몫이 크지 않을까 싶어요


김경주 : <바람직한 청소년>에 담긴 동성애나 왕따, 불량학생의 문제들이 결국은 감정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안에서 연출님께서는 감정의 질서를 어떻게 만들어 나가셨는지 궁금합니다. 특히 이 작품은 관객들로 하여금 굉장히 미묘한 감정들을 느끼도록 하는데요. 감정의 결들을 만들어갈 때 유념하시는 부분은 어떤 것들인가요?

 

문삼화 : 사실은 공연을 올리고 난 후에 반응이 너무 좋아서 깜짝 놀랐어요. 드라마 <학교> 시리즈가 큰 인기를 얻었던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사실 학교라는 소재가 새로운 건 아니잖아요. 그래서 저는 <바람직한 청소년>이 동성애 코드 외에는 색다른 지점이 없다고 생각했었어요.

 

김경주 : 관객들의 리뷰를 보면 이 작품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하고 독특한 매력이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던데요.

 

문삼화 : 그건 아마 작가의 몫이 크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인물들을 더 생생하게 살려낸 건 저와 배우들이지만, 작가가 만들어 놓은 세계가 있잖아요.

 

김경주 : 이 작품의 캐릭터들은 강하다고 생각하시나요?

 

문삼화 : 아뇨, 캐릭터들이 다 인간적이에요.

 

김경주 : 저는 캐릭터가 강하다는 느낌보다는 구조가 매력적으로 느껴지더라고요.

 

문삼화 : 그러니까요. 그런 부분에서 작가의 몫이 큰 것 같아요. 저희끼리는 열심히, 재밌게 작품을 올렸지만 관객 반응이 이렇게까지 좋을 줄은 몰랐어요. 그래서 깜짝 놀랐어요. 지금까지 제가 공연한 작품 중에 <바람직한 청소년>이 제일 재밌다고 하더라고요(웃음). 제 조카가 어릴 때부터 제 공연을 다 봐왔는데 볼 때마다 재밌다고 했었어요. 이번 작품 전에 <일곱집매>를 공연했을 때에도 보고 나서 가장 재밌다고 했거든요. 그런데 <바람직한 청소년>을 보고 정말 신났더라고요. 사실 두 작품은 소재도 전혀 다르고 인물들도 완전히 다르거든요. <일곱집매>는 평택 기지촌의 양공주 할머니들의 이야기니까요. 그런데 <일곱집매>와 <바람직한 청소년>의 공통점이 있다면 연출이 ‘문삼화’라는 거죠. 그건 휴먼이 살아있다는 느낌일 거예요. 그게 저의 특징이 아닐까 싶어요. 흉내 내지 않고 너무 오버하지도 않는 부분을 관객들이 좋아하는 것 아닌가 싶어요.

 

극장뎐-문삼화

 

이제 어려운 얘기는 그만 하자


김경주 : 무대 디자인이나 구성에 대한 이야기도 중요하잖아요. 소극장 무대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고, 소극장에 오시는 관객은 그것을 어느 정도 인식을 하고 오시는 편인데요. 이번 작품은 소극장임에도 불구하고 무대 공간 활용이 구성적으로 매력있고 특이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삼화 : 초연은 아트센터K 세모극장에서 했는데요. 그때는 배우들이 무대에서 뛰어내리기도 했어요. 돌발적으로 뛰어나오고 밑으로 들어가기도 하고요. 학교라는 시스템에 대한 주제의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무대 활용이었죠.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그런 주제 의식을 배우들에게 강요하지는 않아요. 배우들한테 도움이 안 되니까요. 하지만 연출로서는 도움이 되는 측면이 분명히 있거든요. 마치 닭장 속에 갇혀 있는 닭 같은 아이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에 그런 무대 활용이 가능했던 거예요. 디자인도 비슷한 방향으로 진행해 줬고요. 그리고 ‘현신’과 ‘이레’라는 아이들의 캐릭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죠.

 

김경주 : 연출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전달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무엇인가요?

 

문삼화 : 제가 2003년도에 정식 데뷔해서 연극을 한 지 10년이 조금 넘었는데요. 초창기에는 예술적인 것, 극단적인 것을 해야만 연극이 자기 몫을 하는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김경주 : 사실 그런 작업들은 여전히 필요하죠.

 

문삼화 : 그렇죠. 그 작업들이 의미가 없어진 게 아니라 저의 시각이 변한 거죠. <일곱집매>를 하기 몇 년 전부터 계기가 된 것 같은데요. 소위 말해서 남들이 난해하다고 이야기하는 작업들을 연달아 하다가 욕을 엄청 먹은 거예요. 그런데 당시 작품들에 성의가 없었던 것도 아니었고 싫어했던 것도 아니었는데, 순간 ‘이제 어려운 얘기는 그만 하자’ 싶더라고요.

 

김경주 : 소통에 대한 생각이 계기가 되었나요?

 

문삼화 : 그렇죠. 이렇게 공감하지 못하는 얘기를.  제 친구들이 그런 말을 하더라고요. 우리 삶도 힘들어 죽겠는데 공연장까지 와서 또 힘들어야 하냐고요. 그 말을 듣고 나니까 어느 순간 ‘내가 너무 잘난 척 하고 있는 거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하게 된 거예요. ‘삶을 그렇게 극단적으로 살아본 적도 없으면서 너무 관음증적인 잘난 척이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걸 다 털어버리고 한 작품이 <고령화 가족>이었어요. 그 작품부터 제가 시선이 약간 비껴갔던 것 같아요. ‘내 옆에 있는 이야기, 내가 아는 이야기를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예전에는 제가 모르는 얘기를 좋아했어요(웃음).

 

김경주 : 사람의 경우는 어떤가요? 이해할 수 있는 사람과 이해할 수 없는 사람, 누구에게 매력을 느끼시나요?

 

문삼화 : 사람도 똑같아요. 지금은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좋아요(웃음). 어릴 때는 이해가 안 되는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잖아요. 그러니까 제가 나이가 들어가는 거예요(웃음). 작품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이해가 안 되는 작품한테 매력을 느끼다가 전환점이 된 게 <고령화 가족> 직전에 했던 작품들인데요. <거리의 사자> <언니들> <안녕 피투성이 벌레들아>처럼 난해한 작품들을 연달아 올렸었어요. 그렇다고 지금의 제가 센 이야기들을 싫어하게 된 건 아니에요. 굉장히 독특하고 연극적이고 극단적인 이야기들을 보면 여전히 끌려요. 다만 중간에서 살짝 제 반성을 했던 것 같아요. ‘이것이 정말 소통을 하고 싶은 것이냐, 잘난 척을 하고 싶은 것이냐’의 차원에서 <고령화 가족>을 했던 거죠. <고령화 가족>은 제가 선택했던 건데, 이후에 만나지는 작품들이 제가 선택했다기보다는 저한테 다가왔던 것 같아요. <일곱집매>도 그렇고, 우리 옆에 있는 이야기들이 들어온 거죠.

 

김경주 : <바람직한 청소년>의 관객들이 어떻게 작품을 만나면 좋을지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문삼화 : 정말로 그건 잘 모르겠어요. 저는 그냥 여기까지라고 제시하는 것 같고요. 만남은 철저하게 관객의 몫인 것 같아요. 당연히 연출로서는 아웃라인을 가지고 있고, 그에 따라서 무대를 연출하죠. 하지만 ‘시스템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치는 이 아이들을 보세요’라고 말하는 건 맞지 않는 것 같아요. 제가 봐도 극이 재밌으니까 관객들도 재밌게 볼 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까지 좋아할 줄은 몰랐어요. 그래서 놀랐고요. 오히려 나이가 많은 제 친구들이 좋아하더라고요. 옛날 생각도 나고 ‘아직도 내가 변하지 못하고 저 모습대로 살고 있는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어서 좋았대요. 그래서 이 작품은 어른들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는데요, 그것뿐이죠. 관객들이 어떻게 보면 좋을지는 잘 모르겠어요.

 

김경주 : 앞으로의 활동과 관련해서는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신가요?

 

문삼화 : 아마 당분간은 이렇게 잔잔한 우리가 아는 얘기를 하게 될 것 같고요. 이러다가 또 몇 년 지나면 또 극적이고 센 작품으로 갈 것 같은데요. 어떤 작품을 할 것이냐에 대한 고민도 하지만, 연출가로서 어떻게 살 것이냐에 대한 고민을 더 많이 할 수밖에 없잖아요. ‘앞으로 내가 얼마나 더 연극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고 <일곱집매>를 하면서 사회 참여적인 부분에 대해서 눈을 많이 돌렸어요. <고령화 가족>을 하면서 ‘극단적인 세계냐, 가까이 있는 세계냐’에 대한 시선이 변했다면 <일곱집매>를 하면서 사회 참여적인 부분에 관심이 많아졌어요. 보통 우리는 공연을 만들어서 찾아가는데, 앞으로는 제가 그들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요. 연출로서 아마추어들과 함께하는 작업들을 많이 할 생각입니다. 노동자나 노인들은 물론이고, 저를 필요로 하고 연극 작업을 필요로 하는 곳으로 들어가고 싶어요.

 

기획 엄지혜 기자
정리 임나리

 

 

 


 

 


바람직한청소년*극장뎐 줌 인(zoom in) - <바람직한 청소년>


문삼화 연출, 이오진 작의 연극 <바람직한 청소년>은 불량학생, 왕따 피해자, 게이 고등학생 등 현대사회에서 ‘문제적 청소년’으로 인식되는 주인공들의 성장통을 담은 작품이다. CJ문화재단의 신인 공연 창작자 지원 프로그램 ‘크리에이티브마인즈’가 올리는 연극으로,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하고 싶은 말을 숨긴 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그동안 하지 못했던 말들이 무엇이었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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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경주

시인이자 극작가. 연극실험실 '혜화동 1번지'에 작품을 올리며 극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야설작가, 대필작가, 카피라이터 등을 전전하다가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를 펴내면서 이 문단과 대중으로부터 호평을 받으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2008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시'상, 2009년 오늘의 젊은 예술가 문학 부문상, 2009년 제28회 김수영 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독립영화사 '청춘'을 확장 개편한 무경계 문화펄프 연구소 '츄리닝바람'을 운영하면서 다양한 인디문화를 제작하고 개발하며 공연기획들을 하였다. 최근에는 스튜디오 '나는 공항'에서 다양한 문화 작업과 실험극 운동을 하고 있다.

오늘의 책

AI, 전혀 다른 세상의 시작일까

유발 하라리의 신작. 호모 사피엔스를 있게 한 원동력으로 '허구'를 꼽은 저자의 관점이 이번 책에서도 이어진다. 정보란 진실의 문제라기보다 연결과 관련 있다고 보는 그는 생성형 AI로 상징되는 새로운 정보 기술이 초래할 영향을 분석했다.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

한국 문학의 지평을 더욱 넓혀 줄 이야기

등단 후 10년 이상 활동한 작가들이 1년간 발표한 단편소설 중 가장 독보적인 작품을 뽑아 선보이는 김승옥문학상. 2024년에는 조경란 작가의 「그들」을 포함한 총 일곱 편의 작품을 실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름들과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한 권에 모두 담겨 있다.

주목받는 수익형 콘텐츠의 비밀

소셜 마케팅 전문가 게리 바이너척의 최신작. SNS 마케팅이 필수인 시대, 소셜 플랫폼의 진화와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콘텐츠 제작을 위한 6단계 마케팅 전략을 소개한다. 광고를 하지 않아도, 팔로워 수가 적어도 당신의 콘텐츠는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다.

삶의 끝자락에서 발견한 생의 의미

서른둘 젊은 호스피스 간호사의 에세이. 환자들의 마지막 여정을 함께하며 겪고 느낀 경험을 전한다. 죽음을 앞둔 이들과 나눈 이야기는 지금 이순간 우리가 간직하고 살아야 할 마음은 무엇일지 되묻게 한다. 기꺼이 놓아주는 것의 의미, 사랑을 통해 생의 마지막을 돕는 진정한 치유의 기록을 담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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