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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잉의 매혹, 결핍의 자유 <탐 엣 더 팜>

이 아이, 영화사를 새롭게 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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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허, 이 녀석 참. 꼰대 같은 소리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그런 탄성이 절로 나온다. 자비에 돌란의 4번째 작품 <탐 엣 더 팜>은 왜 세계 영화팬들이, 유수의 영화제가 이 어린 청년에게 열광하는지를 증명하는 작품이다.

과잉의 매혹, 결핍의 자유 <탐 엣 더 팜>

 

어허, 이 녀석 참. 꼰대 같은 소리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그런 탄성이 절로 나온다. 자비에 돌란의 4번째 작품 <탐 엣 더 팜>은 왜 세계 영화팬들이, 유수의 영화제가 이 어린 청년에게 열광하는지를 증명하는 작품이다. 겉멋에 치중해서 속은 비었다는 일부의 평도 있지만, 멋지게 채색된 깡통은 예술일 수 있다고 그는 과시하고 증명한다. 게다가 수면을 유영하다가 한 번씩 심연으로 불쑥 잠수하는 법도 알고 있다.

 

그는 그저 과대평가된 젊은 감독 정도로 치부하려는 사람들에 맞서 야심차게 6년 동안 다섯 작품을 줄기차게 세상에 내놓았다. 물론 편차는 있지만, 어느 작품 하나 버릴 것 없이 개성 있는 자신만의 목소리를 덧입히고, 자비에 돌란 표 영화를 브랜드로 만들어 버렸다. 권투로 치자면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는’ 알리 같은 프로 복서는 아니지만, 머리를 멍하게 만드는 어퍼컷을 몇 번쯤 날리고, 날아드는 주먹을 제법 유연하게 피하는 세련되고 아름다운 몸짓도 보여줄 줄 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관객을 그로기 상태에 빠뜨릴 수도 있다. 물론 감성이 맞을 경우에만 말이다.



 

애인 기욤을 잃은 탐(자비에 돌란)은 장례에 참석하기 위해 퀘벡 주의 작은 농장인 기욤의 집으로 찾아간다. 그곳에서 그는 기욤의 어머니 아가테(리즈 로이)를 만난다. 탐은 아가테에게 자신이 기욤의 애인이라는 사실은 밝히지 못하고 그저 친구라 고백한다. 기욤의 형 프란시스(피에르 이브 카디날)는 탐에게 비밀과 거짓말을 강요하며,  그를 떠나지 못하게 막는다. 탐은 프란시스의 폭력에 길들여지고, 어느 순간 자발적으로 그에게 구속된다. 영화는 줄곧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린 자들의 슬픔이 뒤틀린 그리움과 집착으로 변하고, 선의로 시작된 거짓말이 모두를 파국으로 이끄는 과정을 보여준다.

 

줄거리로 요약할 수 없는 많은 장면들에서 자비에 돌란은 그 자신이 연출이면서 주인공을 맡아 불쑥 들이닥치는 감정의 가닥들을 능수능란하게 엮고 풀면서 하나의 이야기를 직조해 나간다. 그리고 그 대부분이 인물의 감정과 심리로 지배된다는 점에서 젊은 감각 못지않은, 깊이 있는 연출력을 보여준다. 그의 전작들은 감각의 과잉에 비해 이야기의 깊이는 다소 약하다는 평가를 얻었다. 하지만 <탐 엣 더 팜>은 세계적인 극작가 미셀 마크 부샤르의 동명희곡을 원작으로 하는 만큼, 탄탄한 이야기와 내면으로 파고드는 심리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자비에 돌란은 원작이 있는 이야기를 선택하면서, 그의 영화가 지극히 개인적 사담이라는 일부의 평가를 불식시키고 각색을 통해 원작 보다 폭력적이고 미스터리한 관계, 개방되어 있지만 감옥 같은 광야의 폐쇄성을 강조한다. 이를 통해 낯선 장소에서 겪는 이방인의 두려움과 불안, 달아나려고 하지만 어느새 폭력에 길들여지는 아이러니까지 담아낸다.

 

공간과 인물 사이의 직조된 관계도 매우 세밀하다. 주인공 각각이 다른 목적으로 비밀을 유지하면서, 또 필요에 의해 상대방의 비밀을 지키려고 애쓰는 그 이면에는 다른 깊이, 다른 차원의 사랑이 있다는 극의 구성도 독특하다. 기욤과 프란시스 사이에 숨겨진 이야기, 프란시스가 엄마를 사랑하는 방식, 탐이 기욤을 기억하는 방식, 또 불러들인 기욤의 가짜 애인이 털어놓는 비밀까지 여러 가지 영화적 장치들이 숨 막히는 정서를 만들고, 대단할 것 없는 이야기에 서스펜스를 고조시킨다.

 

주인공들 각각의 사랑은 비틀어진 신체처럼 뒤틀려 있다. 농장의 한적함과 침침한 날씨, 그리고 그 속에 침잠되어 있는 인물을 통해 불안함을 고조시키며, 핸드 헬드 카메라는 주인공 탐의 흔들리고 요동치는 내면을 감각적으로 드러낸다. 집착과 뒤틀린 사랑이라는 퇴폐적인 감수성이 지배하는 정서 역시도 불안정하고 답답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데 한 몫 한다. 본격적인 스릴러를 기대하는 관객에겐 다소 밋밋해 보일 수 있지만, 감정들이 빼곡하게 쌓이다가 폭발하는 엔딩 장면에서는 반전에 가까운 충격과 섬뜩한 정서에 도달하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탐앳더팜

영화 <탐 엣 더 팜> 스틸컷

 

자비에 돌란?

 

2009년 만 19세의 나이에 첫 번째 장편영화 <나는 엄마를 죽였다>로 데뷔했다. 증오하지만 결코 떼어낼 수 없는 엄마에 대한 애증을 10대 소년의 감수성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감독 겸 주연을 맡았던 자비에 돌란이 실제로 16세에 쓴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한 자전적 ‘느낌’의 영화였다. 젊고 소란스럽고 감각적인 이 천재감독을 발견한 건 칸이었다. 칸은 그에게 황금카메라상을 수여했고, 덕분에 그는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젊은 연출가가 되었다.

 

다음해 2010년 프랑스에서 만든 두 번째 장편 <하트비트>는 짝사랑에 대한 재치 있고 대중적인 영화다. 취향이 같은 게이 프란시스와 친구 마리가 동시에 니콜라에게 반하면서 벌어지는 삼각관계 아닌 삼각소동이 유쾌하고 우스꽝스러운 청춘 영화이다. 하지만 영화는 그리 단순한 소품만은 아니다. 자비에 돌란은 짝사랑에 빠진 두 남녀의 치사하고 집요한, 그래서 민망한 애정고백을 끝까지 파고든다. 이를 통해 누구나 겪었을 지독한 짝사랑이 당사자들에겐 열병 같지만, 지켜보는 이들에겐 우스꽝스럽다는 것을 보여준다.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데뷔작 <나는 엄마를 죽였다> 보다는 자비에 돌란의 두 번째 작품 <하트 비트>를 보고, 그의 천재성을 발견했다. 비장하고 무거웠던 데뷔작으로 너무 어린 나이에 세계적으로 주목 받은 감독이 너무 과한 기대를 배반하는 재치를 보인 작품이었다. 직접 프로듀싱을 비롯하여 아트 디렉팅, 편집에 관여하면서 20세 감독이 그려낼 수 있는 온갖 감각적 실험을 주저 없이 털어낸다.

 

세 번째 작품 <로렌스 애니웨이>는 남성인 자신의 육체가 싫어, 남은 인생은 여자로 살고 싶다고 선언한 남자친구와 그의 애인 사이의 이야기다. <로렌스 애니웨이>는 나쁘게 말하면 허세 그 자체이지만 과장되게 차고 넘치는 이미지의 폭풍은 역으로 이 영화를 매력적으로 만드는 장점이 된다. 자비에 돌란의 영화를 보자면 누벨바그부터 페드로 알모도바르 같은 장르 혹은 감독들이 스쳐간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그의 작품이 앞선 그 누구와도 유사하지 않다는 것이다. 벌써 그는 자비에 돌란만의 아우라를 연출해 낸다.

 

칸이 사랑한 자비에 돌란의 다섯 번째 장편 <마미>는 2014년 제67회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 황금종려상 수상 후보에 올랐다.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ADHD를 앓는 아들과 그의 엄마, 옆집 이웃 사이에 벌어지는 사건을 그린 영화다. 1989년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로 26세에 경쟁 부문에 진출한 스티븐 소더버그 보다 한 살 어린 나이, 25세로 역대 최연소 경쟁부문 진출의 기록을 세웠다. 스티븐 소더버그는 그해 이 작품으로 수상까지 했는데, 올해 자비에 돌란은 수상에 이르지는 못해 최연소 수상자 기록은 바꾸지 못했다. 대신 누벨바그 운동을 이끌었던 세계적 거장 장 뤽 고다르의 <언어와의 작별>과 함께 심사위원상을 공동수상했다. 84세의 거장과 25세 청년을 하나로 묶어버린 칸느의 선택은 충분히 상징적이다. 이 아이, 영화사를 새롭게 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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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최재훈

늘 여행이 끝난 후 길이 시작되는 것 같다. 새롭게 시작된 길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느라, 아주 멀리 돌아왔고 그 여행의 끝에선 또 다른 길을 발견한다. 그래서 영화, 음악, 공연, 문화예술계를 얼쩡거리는 자칭 culture bohemian.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후 씨네서울 기자, 국립오페라단 공연기획팀장을 거쳐 현재는 서울문화재단에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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