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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이방인> 선생님, 제 심장이 왜 이러죠?
SBS <닥터 이방인>을 보고
두근두근, 무엇이든 두근거려 보겠다고 칼럼 명도 그렇게 지었는데, 굳이 애써 찾을 거리도 필요 없이 오히려 심장 박동을 안정시키지 않으면 안 될 드라마가 시작했다.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고명우대학병원의 흉부외과를 배경으로 메디컬 첩보 멜로라는 복합장르물이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고 있다.
드라마 덕후 이종석이 선택한 작품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집에서 드라마 보는 것이 제일 행복하다는 드라마 덕후이자 그럼에도 유일하게 의욕을 느끼는 일이 연기라고 말하는 배우 이종석. 그래서인지 자신이 출연하는 드라마를 고르는 안목도 훌륭하다. <학교2013>의 고남순을 통해 남자와 소년의 이미지를 동시에 가진 자신의 매력을 영리하게 이용했다. 고등학생 이미지를 우려먹는 게 독이 되진 않을까 하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초능력 소년 박수하를 연기했던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는 복잡한 감정을 섬세하게 보여줌과 동시에 이보영과의 케미 폭발로 누나들의 심박수 BPM을 한껏 올려주었다.
그 이종석이 차기작으로 선택한 드라마 <닥터 이방인>. 탈북한 천재 의사라는 사전 배경 설명을 위해 대한민국 심장수술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린 아버지 박철이 어떻게 월북하여 김일성의 심장수술을 맡게 되었고, 어떤 연유로 북에 남게 되어 박훈이 아버지 못지 않게 천재적인 실력을 갖춘 의사로 성장했으며, 탈북하기까지의 과정을 1,2화를 통해 보여준다. 드라마 시작부터 등장인물의 파란만장한 삶을 축약적으로 보여줘야 하는 한계로 인해 드라마의 톤이 무겁고 친절하다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전개가 빨랐다. 그 안에서도 이종석은 짙은 멜로 감성과 진중함, 분노와 고뇌, 애절함과 사랑스러움을 완벽하게 연기했다. 몰아치는 전개 속에서도 인물이 느끼는 비극적 상황과 감정을 이입 가능케 한 것은 이종석의 연기였다.
3화는 이종석의 매력이자 이 드라마의 매력을 집약적으로 보여준 회차라 할 수 있었다. 아버지를 살려달라고 수술비로 500원짜리 동전을 내미는 소녀에게 의사면허증이 박탈당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수술을 시도하여 따뜻한 인간미를 드러냈다. 천재적인 의사라는 수식에 맞게 신속하면서도 완벽한 수술 실력도 유감없이 보여주었고, 그 와중에도 유머러스한 태도를 잃지 않으면서 여유롭고 능청스러운 박훈을 연기했다. 그러나 자신의 첫사랑인 송재희와 관련해서라면 절박하고 절절한 감정을 드러내며 급격하게 톤이 변하는 연기도 어색하지 않게 드러냈다.
이종석은 어떤 역할을 맡든 이종석이라는 인간이 가진 매력을 반영하면서도, 얼핏 비슷해 보일 수 있는 이전 작품의 캐릭터를 차별할 수 있도록 그 역에 맡는 자기를 만들어낸다. 고남순과 박수하는 같은 고등학생임에도 동복과 하복의 차이만큼이나 구분 지을 수 있고, 한 여자만 사랑하고 그 여자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박수하와 박훈이 닮아있지만 연상과 동갑내기를 사랑할 때의 질감 차이만큼이나 달라 보인다. 연기경력 고작 4년차에 아직 더 보여줄 것이 많은 매력을 가진 이종석은 이미 믿고 볼 수 있는 배우가 되었다.
뻔하지 않은 멜로를 보여줬던 진혁 PD
탈북한 이력이 있는 천재 흉부외과 의사가 한국 최고의 대학병원에서 일하는 이야기라고 했을 때만 해도 큰 기대가 없었다. 아무리 장르 드라마라 해도 한국드라마 특성상 연애로 흘러갈게 뻔했다. 이런 말이 있지 않은가. ‘미드는 형사가 나오면 수사를 하고, 의사가 나오면 진료를 한다. 일드는 형사가 나오면 형사가 교훈을 주고, 의사가 나오면 의사가 교훈을 준다. 그러나 한드는 형사가 나오면 형사가 연애를 하고 의사가 나오면 의사가 연애를 한다.’
하지만 특수 직군 혹은 능력자를 다루면서도 그 속에 멜로를 어색하지 않게 녹아내고 동시에 코믹한 요소들을 잘 포진시켜놓았던 <온에어>, <바람의 화원>, <검사 프린세스>, <시티헌터>, <주군의 태양> 등을 연출한 진혁 PD의 차기 작이라는 것을 알고 월화 10시의 본방 사수 드라마로 결정짓지 않을 수 없었다. 전작을 챙겨본 팬이라면 향수를 불러일으킬만한 출연진이나 카메오 캐스팅을 통해 잔재미도 느낄 수 있다.
어떠한 시련도 견뎌내게 만드는 박훈의 사랑
어떤 때의 시련은 큰 그릇을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대개의 경우 시련이란 보통의 그릇을 찌그러뜨려 놓기가 일쑤라는데, 지금까지 박훈이 겪어야 했던 삶의 시련을 생각하면 그의 생이 망가지지 않은 것이 놀라울 뿐이다.
이 드라마의 현재 시점이 오기까지 박훈이 겪어야 했던 시련을 간략하게만 요약해 보겠다, 초등학교 저학년의 박훈, 이미 부모님은 이혼한 상태이다. 아버지는 자신에게 차갑고 무뚝뚝하기만 하다. 학교 갈 채비는 혼자 해야 하고 ‘학교 다녀오겠습니다’라고 몇 번이나 말해도 아버지는 반응도 해주지 않는다. (그날 아버지에게 의료소송이 있어 민감했다는 변명을 굳이 하더라도 그런 태도는 어린 아이가 상처받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어머니 역시 재혼을 이유로 자신을 거부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래도 내색하지 않고 아버지를 배려한다. 정치적 계략에 휘말려 월북한 아버지에게 김일성의 심장 수술 성공을 압박하기 위한 미끼로 자신도 북에 끌려가게 되고 아버지의 수술 도중 자기 머리엔 총이 겨눠진다. 수술은 다행히 성공적으로 끝나지만 결국 남측의 배신으로 인해 숙청당할 위기도 겪는다. 낯설고 엄격한 북에 남게 되어 삶의 이유이자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 행복해지나 싶더니 그 여자 역시 아버지가 정치범이란 이유로 수용소에 끌려가 생 이별을 하게 된다.
간략하게 요약하려고 했는데 아직 절반의 시련도 쓰지 않았는데 이 정도다.
아버지의 재능을 물려받아 평양의대를 다니던 박훈 역시 지도자의 건강을 연구관리 한다는 명목으로 잔인 무도한 인체실험을 자행하는 만수무강 연구소에 끌려가게 되고, 5년 동안 인간으로서 견디기 힘든 실험과 수술로 임상경험을 쌓게 된다. 실력으로 누구도 깔 볼 수 없는 위치에 올라가 송재희를 찾는데 온 힘을 쏟지만 그토록 찾아 헤매던 그녀와 재회한 건 실험대상자로서였다. 그녀의 아버지를 살리느냐 그녀를 살리느냐라는 딜레마에 빠져야 했고 아들이 의사로서의 사명이나 인간성을 잃어 가는 걸 마음 아파한 박철은 아들과 송재희를 탈북시키려고 한다. 박훈이 아버지를 두고 갈 수 없다고 결정하자 그는 아들 앞에서 자살을 선택한다. 자신을 구하겠다고 죽음을 선택한 아버지를 목격해야 했다. 심장이식 수술을 성공해서 겨우 살려놓은 송재희의 심장을 탈출을 위해 잠시 멈추게 만들어야 했고 겨우 대사관까지 오는데 성공하지만 망명을 허가해주지 않아 도망자가 된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송재희가 총에 맞아 다리에서 떨어지게 되고, 겨우 손을 뻗어 그녀를 붙잡지만 박훈 역시 어깨에 총을 맞아 버티기 힘든 상황에 된다. 송재희는 자기를 기억해 달라며 스스로 손을 뿌리치고 강물 속으로 떨어진다.
이야기는 시간을 건너 뛰어 우여곡절 끝에 탈북에 성공해 남한에서 의사를 하고 있는 박훈을 보여준다. 그러나 살아남아 북송 되었다는 송재희 소식을 듣고 그녀를 찾으려고 북한에 돌아가려다가 붙잡혀 벌써 몇 번이나 교도소 생활을 했다는 사실을 드러내며 송재희는 여전히 박훈의 현재를 지배하고 있는 강렬한 에너지임을 보여준다.
박훈은 우울하거나 무기력하지 않다. 오히려 뻔뻔하고 능청스럽다. 분명한 생의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작은 희망. 그녀가 살아있을지도 모른다는 그 가능성을 믿고 그걸 확인하기 위해 살아간다. 생의 목표이기에 절박하다. 운명은 결국 그런 절박함을 이용해 다시 한 번 그를 정치적 소용돌이 속으로 밀어 넣게 만들 것이다. 이 드라마의 큰 그림은 아직 윤곽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드라마의 끝까지 변치 않을, 의심도 할 수 없는 박훈의 사랑은 앞으로 일어날 어떤 시련에도 박훈이 굴복하지 않을 것이며 이 사랑을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보여준다.
이 사랑을 살려내기 위해 수백 번이고 심폐소생술을 할 용의가 넘치는 그런 농도 짙은 사랑이 그리고 박훈의 천재적인 의술 실력이라는 비현실적 요소는 한동안 무엇에도 요동치지 않았던 현실의 내 심장이 강하고 빠르게 박동하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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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태그: 닥터이방인, 이종석, 박해진, 강소라, 진세연, 진혁
사랑과 연애 그리고 섹스에 대한 글을 쓰며 살고 있다. 몇 번의 사랑을 경험하며 제법 깊은 내상을 입었지만 그만큼 현명해졌으며 자신의 욕망을 들여다보는 걸 수줍어하지 않게 되었다. 놀라운 재생능력으로 사랑할 때마다 소녀의 마음이 되곤 한다. 누군가의 장점을 잘 발견해내고 쉽게 두근거린다. 『사랑만큼 서툴고 어려운』, 『나를 만져요』 등을 썼으며, 블로그 '생각보다 바람직한 현정씨'를 운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