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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인물 중 존경하는 사람이 있나요?

딸 이름을 지으면서 쓴 별로 심각하지 않은 글 자식에게 역사 이야기를 해 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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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이 입시교육에는 좋을지 모르나, 뭐니 뭐니 해도 교육은 부모로부터 시작한다. 어릴 때부터 엄마와 아빠로부터 직접 역사 이야기를 들으며 자란 사람은 뭐가 달라도 다르지 않을까. 물론 무작정 역사를 이야기하기보다는 ‘역사를 말하는 주체가 누구인가’도 중요한 문제다.

분량을 좀 더 늘리기 위해서 사소한 개인사를 공개하려고 한다. 최근에 필자는 딸을 얻었다. 태명은 부부 협의로 지었으나, 이름은 그럴 수 없었다. 후에 개명할 수도 있으나, 보통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함께 가는 게 이름 아닌가. 내 몸의 세포는 변해도 이름은 쉬이 변하지 않는다. 더구나 기표는 끊임없이 미끄러진다고 했던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이름과 그 이름이 지칭하는 대상 사이에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믿어왔다. 오죽하면 공자가 중요하게 생각한 ‘정명(正名)’도 결국은 이름에 관한 담론 아니던가.

 

그래서 부부는 딸의 이름을 작명소에 맡겼다. 두 사람은 사춘기에 이른 딸이 정체성을 고민하며 ‘엄마, 아빠가 이름을 마음대로 지어서 세상이 이 모양이고 내가 이렇게 살고 있잖아?’라고 대드는 게 두려웠다. 부부가 작명소 선생님에게 건넨 요구는 간단했다. 세계화에 걸맞게 어떤 언어로 발음해도 편하게, 받침이 없으면 한다. 작명소에서는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사주를 고려하다 보니, 받침 없이 이름을 정하기가 쉽지 않았다는 설명. 그렇게 해서 이름이 나왔다. 작명소에서는 이름을 4개 지어줬다. 그 이름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게 부부의 몫. 썩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중 하나를 택했다. 그래, 사주를 고려했다고 하지 않나. 빛 좋은 개살구나 속 빈 강정보다 낫겠지.

 

“딸 이름이 뭐야?”
“OOO”
“아, 너 걸그룹 OOO의 팬이구나.”

 

공교롭게도 그 이름이 걸그룹 멤버의 이름이었다. TV를 거의 보지 않고, 음악도 그쪽 음악은 듣지 않는지라 몰랐다. 평소에는 별다른 생각이 없었는데, 이 일이 있고 난 뒤 역시나 공교롭게도 이런 대화 내용이 귀에 쏙쏙 들렸다.

 

“너 요즘 어떤 아이돌 좋아하니?”
“대세는 OOO지.”
“그래, 나도. 나는 OOO 멤버 중에 OOO가 제일 좋더라.”
“걔는 너무 중성적이라 싫어. 난 OOO.”

 

HOT와 젝스키스 이후로 아이돌에 빠졌던 적이 없는지라 잊었을 뿐, 여전히 아이돌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였다. 다음에 혹시나 저런 질문을 받으면 딸 이름을 대며 ‘실은 아이돌이 아니라 내 딸 이름이야, 반전이지?’ 정도로 답해야지, 하며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전혀 뜻밖의 질문을 받았다.

 

“역사 속 여성 인물 중에서 존경하는 사람이 있나요?”

 

의표를 찌르는 질문이었다. 그때 받은 느낌을 묘사하자면, 토론을 위해 온갖 논문과 통계 자료를 습득하고 왔는데 상대방은 가족 욕으로 시작하는 상황? 저 질문이 가족 욕과 같이 비이성적이고 비논리적이라는 뜻이 아니라, 그만큼 평소에 생각도 못 했다는 의미다. 그렇다고 ‘역사 속 여성’이 아니라 ‘역사 속 인물’로 질문의 범위를 넓힌다고 해도 마땅히 생각나는 사람이 없었다. 나라는 사람은 아이돌에도, 역사 속 인물에도 관심이 없는 걸까, 하고 넘어가려는 찰나 재미있는 책을 발견했다. 『조선 사람』이 주인공이다.

 

책 제목보다는 ‘재일조선인 1세가 겪은 20세기’라는 부제가 책에 관해 많은 내용을 알려 준다. 저자는 1923년 평안북도 의주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만주에서 보내고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일본에 건너갔다. 인상적인 대목은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부분이었는데, 저자는 부모님으로부터 을지문덕이라든지 이순신이나 강감찬 등 역사 속 명장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한다. 조일전쟁 때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한국에서 저지른 만행도 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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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는 별로 상관이 없는 서삼릉

 

사교육이 입시교육에는 좋을지 모르나, 뭐니 뭐니 해도 교육은 부모로부터 시작한다. 어릴 때부터 엄마와 아빠로부터 직접 역사 이야기를 들으며 자란 사람은 뭐가 달라도 다르지 않을까. 물론 무작정 역사를 이야기하기보다는 ‘역사를 말하는 주체가 누구인가’도 중요한 문제다. 그러고 보니 필자도 어린 시절에 의병장 곽재우를 존경한 기억이 이제서야 떠오른다. 평소 사극 보기를 즐겨 했고, 특히 전쟁 이야기를 좋아하면서도 약자가 강자를 쓰러뜨리는 드라마를 좋아하는 아버지 덕택인지도 모르겠다.

 

참고로 사극은 좋은 교육 자료이면서도 적절하게 검증하면서 봐야 한다. 우연히 <기황후>를 봤다. 언제나 어디서나 하지원의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는 멋있었다만, 공교롭게도 마침 본 장면이 다소 이해되지는 않았다. 극적 요소를 고조하기 위해 사실을 과장하거나 축소할 수는 있다고 쳐도 황제가 사형의 방식을 즉흥적으로 결정하는 장면은 실제 중화문명권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한나라로부터 명시적으로는 법가가 아니라 유가를 통치체제로 활용한 중국에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형벌 사용이 엄격했다. 한국사를 배경으로 한 작품에서도 왕은 종종 한 사람의 목숨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으로 그려지지만, 그렇지 않았다.

 

중화문명권에서는 가능하면 형벌 사용을 피하려 했고, 법률이 정하는 사형에 해당하는 사건이 아니라면 사형에 처할 수도 없었다. 사형의 형식도 황제든 왕이든 한 지도자가 마음대로 정할 수는 없었다. 티모시 브룩과 그레고리 블로, 제롬 부르곤 등 중국학 전문가가 함께 쓴 『능지처참』 “중국의 사법제도는 제멋대로 형벌을 부과하지도, 일상적으로 처형하지도 않았다.”고 밝힌다. 물론 이 책이 분석하는 시기가 주로 명나라와 청나라 위주이긴 하지만, 공자의 가르침이 오래전부터 통치 체제로 기능했다는 점에서 원나라 시대도 예외는 아닐 테다.

 

그럼에도 사극을 즐겨 보는 사람은 “역사 속 여성 인물 중에서 존경하는 사람이 있나요?”와 같은 돌발 질문에도 대처가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사극보다 더 훌륭한 방법은 엄마 아빠가 직접 이야기하는 역사일 테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역사책을 함께 읽는 자식과 부모가 된다면 더할 나위 없지 않을까? 서점에서 일해서 이런 말을 하는 건 아니다.

 

어쨌든 “어떤 아이돌 좋아하세요” 만큼이나 흔한 대화 소재로 “역사 속 인물 중 존경하는 사람이 있나요”라는 질문이 사용될 그 날이 오기를 기다리며 열심히 책을 읽어야겠다. 그 날이 오면 자랑스럽게 “OOO”라고 대답할지도 모르겠다. 그 이름의 주인공이 내 딸이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자식 덕에 호강 좀 해 보자.

 

* 글이 끝난 김에, 사족을 하나 달자면, 『조선 사람은 구술사라는 면에서 흥미로운 책이었다. 특히 식민지 시기 토지조사 이후 만주와 일본 본토로 조선 농민이 대거로 이주하는 대목. 이 부분을 읽으면서, 아 우리사회에서 인클로저는 개별 민족국가 단위가 아니라 동아시아 차원에서 광범위하게 전개되었구나! 하며 혼자 좋아했는데, 옆에서는 아이가 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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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손민규(인문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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