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 놀이터

연극 <히스토리 보이즈>의 미소년 윤나무

“딱 교수님이 좋아하는 학생이었어요. 지금은 그걸 깨가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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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이 쏙 빠지게 무언가에 열중하는 모습. 배우만한 게 있을까요? 2006년 토니어워즈에서 작품상 등 6개 부문을 휩쓴 <히스토리 보이즈>는 4월 20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공연됩니다. 8명의 명석한 학생들과 4명의 교사가 시간차 없이 주고받는 해박한 지식. 내용이 틀려도 객석에서는 알아챌 수도 없을 그 많은 지적유희 안에 담겨진 이야기는 어떤 걸까요?

문학은 시대를 뛰어넘어 사람에게 위로를 주는 것, 역사는 시대에 따라 사람에 따라 다시 써질 수 있는 것. 여러분은 어느 것에 좀 더 흥미를 느끼나요? 제목이 <히스토리 보이즈(The History Boys)>이지만 문학과 역사에 관한 연극은 아닙니다. 하지만 중요한 장치들이죠. 셰필드 공립학교(사전적 의미와 달리 영국에서는 소수 정예 사립학교)에 다니는 8명의 남학생들은 옥스브리지(옥스퍼드+캠브리지)입시를 준비 중이라는 이유로 그들의 지적인 우월감을 무차별적으로 관객들에게 난사합니다. 매개자는 인생이라는 시험을 대비하는 문학교사 헥터와 실질적으로 옥스브리지의 문턱을 넘게 도와주는 역사교사 어윈. 세계사와 문학, 철학, 고전영화, 거기에 불어까지 탁구공처럼 통통 튀어 다니는 그들의 지적유희에 놀아나면 이 연극은 어렵거나 또는 무턱대고 대단한 작품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그 허세 속에 숨은 진짜 이야기에 집중해 보죠.


배우 윤나무(왼쪽)

“처음에 대본을 봤을 때는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런데 역사나 문학은 잘 모르지만 사람이 갖고 있는 감성들이 있잖아요. 사랑이든 질투든. 그런 것들이 잘 모아져서 공감도 되고 재미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일요일 2회 공연을 위해 오전 11시부터 공연장에 있었다는 윤나무 씨와 밤 10시에야 마주 앉았습니다. 3시간 동안 무대를 바라본 기자도 힘든데, 그 무대 위의 배우들은 오죽할까요? 하지만 관객으로 느꼈고 기자로 만났으니 극을 끌어가는 요소들이 너무 어렵지 않느냐고 물어봤습니다.

“유럽의 역사나 문학에 대해 정규 연습 전에 다들 스터디를 했어요. 불어수업, 노래수업도 따로 있었고요. 저는 그래도 모범노트를 받아서 수월했는데, 작년에 초연했던 분들은 석 달 이상 연습했다고 하더라고요. 개인적으로는 알아가는 과정이 재밌었고, 관객들도 그렇게 보시는 것 같아요.”

정신이 없어 보이는 그를 보니 무리한 인터뷰 일정에 미안한 마음도 들고, 또 아직 덜 헤어 나왔을 때 ‘포스너’라는 인물에 대해 물어봐야겠다는 욕심도 듭니다.

“저는 씩씩한 아이라고 생각해요. 유대인에 왜소하고 동성애까지. 선입견을 가질 수 있는 집결체지만, 그걸 티내지 않고 밝게 세상을 살아가는 인물로 그려내고 싶었어요. 자기만의 세상이 있고, 그것에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이 헥터 선생님이죠. 마지막에도 남들이 봤을 때는 루저일 수 있지만, 저는 헥터에게 배운 삶의 방식을 갖고 살아가려는 친구라고 생각해요.”




등장하는 남학생만 8명. 더블 캐스팅까지 고려하면 10명의 배우들은 실제 나이 서른 안팎이건만 다들 교복 입던 그 시절로 돌아가 농구와 축구를 즐기고 쉬는 날에도 함께 몰려다닌다고 하네요. 윤나무 씨 역시 배우를 꿈꾸던 그 시절을 돌아봅니다.

“오랜만에 교복을 입으니까 생각이 많이 나더라고요. 고등학교 때 세종문화회관에서 <베니스의 상인>을 보고 배우를 꿈꾸게 됐어요. 안재영(극중 스크립스 역) 배우와는 동창인데, 인문계 고등학교 나와서 연기를 하는 건 흔치 않거든요. 그때는 서로 감추고 있다 대학 입시 때 만나서 놀랐던 생각도 나고. 저희 아버지가 둘이서 교복 입고 있는 공연 포스터를 보시더니 ‘기분 묘하겠다!’ 하시더라고요(웃음).”

소개가 너무 늦었나요? 기자도 아직 연극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나 봅니다. 배우 윤나무. 본명인 김태훈은 너무 여러 명이 활동하고 있다는 이유로 소속사 대표인 김수로 씨가 직접 지어준 예명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윤나무 씨의 그늘 아래서 쉴 수 있는 배우가 되라는 큰 뜻이 뒤늦게 붙여졌다고 하네요(웃음). 생각한 대로 되는지 그는 2011년 연극 <삼등병>으로 데뷔해서 <이기동 체육관> <총각네 야채가게> <커피프린스 1호점> 등에 참여하며 꽤 탄탄히 걸어오고 있습니다. 배우를 꿈꾸던 학생에서 이제는 배우가 됐음을 실감할까요?

“아니요, 그런 건 전혀 모르겠어요. 사실 이렇게 인터뷰를 한다는 것도 당황스러워요. 재밌는 대본을 보고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행복은 하죠. 동기들 중에는 기회가 닿지 않아서 못하는 친구들도 많거든요. 저는 굉장히 행복하게 잘 오고 있는 것 같긴 한데, 안주하지 않고 더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아요.”

이렇게 겸손하지만 윤나무 씨는 현재 뮤지컬 <아가사>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능력 있는 배우만 할 수 있다는 이른바 겹치기. 도대체 지금 그 안에 몇 명이 꿈틀거리고 있는 걸까요?

“원래 이렇게 살던 애가 아니었는데(웃음), <아가사>에서는 40세와 13세의 레이몬드를 연기하고 있어요. 어렸을 때는 추리소설 작가를 꿈꾸는 소년이죠. 명랑하고 호기심 많고, 한 번 물면 끝까지 늘어지는 집념이 있는. 40세의 레이몬드는 완전히 폐인이고요. 반면 포스너는 굉장히 다르죠. 특히 감수성이 남다르다는 생각이 들어요.”




윤나무씨는 어떤가요? 공연 사진들을 보면 배역이나 분장에 따라 이미지가 굉장히 다른데요. 옆에 있는 기획사 직원도 착하고 순박하고 여리게 보이는 모습이 다가 아니라며 실제 성격을 모르겠다고 하시네요.

“얼굴은 제가 봐도 다른 것 같아요. 사진 찍을 때마다, 공연 때마다, 하루하루 얼굴이 달라지나 봐요. 저는 어릴 때부터 진지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연기에 있어서도 철두철미하고, 남들이 보면 숨 막힐, 딱 교수님들이 좋아하는 애였어요(웃음). 그래서 요즘은 깨 가는 단계라고 생각해요. 진지한 것도 좋은데, 배우를 하려면 포스너처럼 감수성도 풍부하고 마음이 유연해야 할 것 같거든요. 연기에는 답이 없지만, 혼자 고민한다고 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일상에서 소통이 잘 돼야 무대에서도 마음이 맞고, 그게 무대에 올라가면 보이더라고요.”

<히스토리 보이즈>와 <아가사> 모두 김태형 연출의 작품입니다. 일상에서 소통을 잘 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인연들이 이어지는 것 아닐까요?

“김태형 연출님하고는 <모범생들>부터 1년을 함께 작업하고 있어요. 이런 있을 수 없는 일이! 연출님과 작업하는 건 재밌어요. 머리 싸매는 스타일이 아니라 놀면서 만들어 가거든요. 배우가 어떤 걸 제시하면 최대한 받아주고 잘 다듬어 주시니까 배우들은 마음 편하죠. 항상 무한 신뢰를 주시고.”




<히스토리 보이즈> 삼연까지 무한 신뢰가 이어진다면 포스너 외에 탐나는 배역이 있나요?

“데이킨이요! 이번에도 배역이 정해진 건 아니고 대본이 좋으니까 뭐라도 하겠다고 했는데, 잘생긴 (박)은석이 형이 더블로 들어오면서 ‘아 그냥 포스너 준비하자’ 그렇게 된 거죠(웃음). 그런데 삼연 때는 나이 때문에 어윈 선생님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웃음)?”

극중 데이킨은 스스로의 매력을 알고 있는, 여러 면에서 자신감이 넘치는 스타일입니다. 연애도 이성에서 동성까지 막힘이 없죠. 윤나무 씨는 어떤가요? 이즈음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팬들을 위해 이상형 한 번 물어보죠!

“사실 연애한 지 굉장히 오래됐어요. (무대와 연애 중인가요?) 아아, 그런 말 싫어요. 제가 하는 일이 스케줄도 불규칙하고, 그래서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 (이해만 해주면 되나요?) 어여쁜 여자를 싫어하는 남자가 어디 있겠어요.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더라고요. 그걸 알게 돼서 연애하기가 더 힘든 것 같아요. 저는 언제 연애하죠?”

윤나무 씨는 연애 얘기를 끝내고 입 안으로 얼음을 투하했습니다. 무대에서는 교복에 가려 실감이 안 났는데 진지한 연애를 생각하는 걸 보니 서른 확실하네요(웃음). 나이 서른의 데뷔 4년차 배우, 생각이 많을 것 같은데요. 관객들을 쉬게 할 그 나무는 얼마나 자랐을까요?

“작년 말부터 올 초까지 정말 정신이 없었어요. 12월 31일에 <아가사>가 오픈했거든요. 공연 끝나고 나니까 해가 바뀌었더라고요. 아직 서른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고 구체적인 생각도 하지 못했는데, 이제 겨우 4년의 나이테가 생긴 거잖아요. 잎은 떡잎 정도나 나왔을까요? 더 열심히 해야죠. 연극, 뮤지컬, 영화... 이런 건 잘 모르겠고 그냥 좋은 배우가 되고 싶어요.”



정신이 쏙 빠지게 무언가에 열중하는 모습. 배우만한 게 있을까요? 하루 내 포스너로 살다 윤나무로 돌아오느라 힘들어하는 배우의 모습을 보니 그만 놓아줘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2006년 토니어워즈에서 작품상 등 6개 부문을 휩쓴 <히스토리 보이즈>는 4월 20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공연됩니다. 8명의 명석한 학생들과 4명의 교사가 시간차 없이 주고받는 해박한 지식. 내용이 틀려도 객석에서는 알아챌 수도 없을 그 많은 지적유희 안에 담겨진 이야기는 어떤 걸까요? 아마도 그 이야기를 발견하면 감동, 그렇지 않으면 신선한 재미에 머물 작품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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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윤하정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

기사와 관련된 공연

    • 부제: The History Boys
    • 장르: 연극
    • 장소: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 등급: 만 13세 이상 관람 가능 (중학생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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