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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이 사람을 닮아야 하는 이유

로봇 ‘휴보’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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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휴보의 탄생에서부터 성장 과정, 그리고 전 세계 로봇 산업의 현재와 미래를 다룬 이야기다. 휴보가 발표된 지 10년, 휴보 연구팀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때로는 휴보 다리에 납땜을 같이 하면서까지 휴보와 동거동락했던 저자가 휴보 탄생의 비화에서부터 일본과 미국 등 로봇 산업 선진국을 휴보 연구팀과 함께 넘나들며 휴보의 모든 것, 인간형 로봇의 모든 것들을 담으려 애썼다.

‘무식하면 용감하다!’ 순전히 이 말 한마디만 믿고 책을 쓰기로 했습니다. 기술적으로 오류가 있는 부분은 오준호 교수께서 감수 과정에서 다듬어 주시리라 믿고서 겁 없이 덤벼든 결과물입니다.

이 책은 모두 8개의 장(Chapter)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각 장의 말미에는 ‘전(全) 기자의 로봇 만들기’라는 제목으로 로봇 제작 기술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를 풀어 드릴까 합니다.

이 ‘로봇 만들기’ 코너는 과학잡지인 ‘월간 과학동아’에 1년 간 부정기적으로 연재했던 내용과, 이 책을 쓰면서 새롭게 추가한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로봇 기술 이해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사람은 도구를 사용합니다. 과학과 문명이 발전하면서, 기계장치를 이용해 일을 하는 건 당연한 일이 됐습니다.

그렇다면 간단한 질문을 하나 해 보겠습니다. 과학자들은 왜 사람처럼 두 발로 걷고, 두 손으로 일을 하는 로봇을 개발하는 걸까요? 가사노동에 지친 주부들을 위해서? 아니면 사람 대신 무슨 일이든 척척 해 주는 만능 심부름꾼이 필요하기 때문에?

사실 아직 인간형 로봇은 혼자서 아무런 일도 하지 못합니다. 사람이 일일이 할 일을 순서대로 정해 줘야 하지요. 이런 (별 쓸모없는?) 인간형 로봇 한 대의 가격도 수억 원을 우습게 넘어갑니다. 능숙하게 훈련된 기계 기술자가 항상 대기하면서 각종 부품을 갈아 끼우는 등 점검도 해줘야 합니다. 유지비를 생각한다면 이만한 비용과 노력을 들일 바엔 차라리 가사 일을 도와 줄 도우미나 집사를 고용하는 편이 훨씬 더 합리적이 아닐까요.

더구나 세상은 점점 좋아지고 있습니다. 사람이 힘든 일을 할 때 도울 수 있는 여러 가지 기계장치도 속속 개발되고 있고, 다양한 전자제품이 발전하면서 가사노동은 점점 더 편해지고 있습니다. 로봇이 아니어도 인간의 생활을‘편리하게’해 줄 수 있는 방법은 많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만약 꼭 로봇이 필요하다고 해도 그렇습니다. 그 로봇이 꼭 사람처럼 생겨야 하는 이유를 어디서 찾아야 할까요.

하지만 사람들은 인간을 닮은 로봇을 열망합니다. 과거 과학기술이 부족하던 시절에는 만화나 영화, 소설 같은 작품을 통해 대리만족을 얻었고, 이제는 어느 정도 기술력이 확보되자 세계의 내로라 하는 과학자들이 저마다 달려들어 ‘내가 만든 로봇이 더 인간에 가깝다’고 자랑하는 단계에 이르렀지요.

일부 심리학자들은 이런 이유를 동물로서의 본능에서 찾습니다. 사람을 비롯해 모든 동물은 본능적으로 자신과 닮은 존재를 세상에 남기고 싶어 합니다. 자신을 닮은 아이를 남기고 싶고, 자신의 얼굴모습을 남기기 위해 사진을 찍습니다.

이런 본능이 유달리 강한 사람이 예술적 자질을 손에 넣었다면 아마도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림이나 조각품으로 만들어 남기려 하겠지요. 이런 욕구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으로 어떤 논리적 이유를 찾아 붙이기 어렵습니다. 자신이 평생 가꾼 기념적인 어떤 물건을 남기려는 심리와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굳이 핑계를 대려면 그냥 만들고 싶고, 그냥 갖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요.

만약 기계, 전자, 소프트웨어 기술이 탁월한 과학자라면 어떨까 생각해 봅시다. 아마도(매우 당연한 수순으로) 사람처럼 움직이는 로봇으로 눈을 돌리지 않을까요? 인간을 닮은 어떤 존재를 창조하고 싶어 하는 기본적인 본능이 계속되는 한, 사람은 인간형 로봇의 개발을 포기하지 않을 걸로 보입니다.

하지만 간과해선 안 될 문제가 한 가지 있습니다. 인간은 감성적이지만 이성적이기도 합니다. 아무리 로봇이 갖고 싶고 만들고 싶다고 해도, 합리적인 필요성이 증명되지 않는다면 이렇게까지 수없이 많은 연구비를 들여서 연구할 당위성이 사라집니다. 과학자 몇몇 사람의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해 전 국민이 세금을 내서 지원해 줄 이유는 없는 거지요.

하지만 인간을 닮은 기계는 분명히 쓸모가 있습니다. 기계공학자들은 ‘로봇이 인간을 닮아야 하는 이유는 인간 사회에서 사람과 함께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라고 답합니다. 이미 모든 사회구조는 인간을 위해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이런 곳에서 사람 대신 궂은 일을 하고, 또 사람을 도우며 살아가야 하는 로봇의 존재는 반드시 사람을 닮아야 한다는 설명입니다.


2004년 개봉한 영화 아이로봇(I Robot)의 한 장면:
로봇에게 생활의 모든 편의를 제공받으며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될 신뢰 받는 동반자로 여겨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로봇과 인간이 함께 살아가는 모습은 다양한 영화나 소설, 만화 등을 통해 끝없이 드러납니다. 흔히 이런 미래 모습을 잘 나타낸 영화로 헐리우드 유명 배우 윌 스미스가 주연한 영화 <아이로봇>을 자주 꼽습니다. 이 영화에는 로봇이 사람 대신 가사 일을 하거나 심부름을 가는 모습이 등장하곤 하지요. 로빈 윌리엄스가 주연을 맡아, 사람이 아닌 로봇 배역으로 출연한 영화 <바이센티니얼 맨>도 비슷한 설정을 갖고 있습니다. 일본의 만화작가 데즈카 오사무가 쓴 명작만화 <아톰>에서도 사람과 똑같은 모습과 지능을 한 로봇과 인간의 갈등이 그려지기도 합니다. 로봇이 이렇게 사람을 위해 어떤 일을 하려면, 사람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것이 작가들의 생각이었습니다.


2000년 개봉한 영화 바이센티니얼맨(Bicentennial Man)의 한 장면:
로봇이 인간 대신 목공작업을 하는 등 다양한 일을 대신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사실 사람의 신체구조는 다른 동물에 비해 대단히 범용성(?)이 높은 편입니다. 두 손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건 무엇보다 큰 장점이니까요. 물건을 들어 옮길 수 있고, 어떤 기계장치를 조작해 또 다른 일을 할 수도 있습니다. 네 발이 달린 로봇은 걷고, 뛰고, 물어뜯는 행동 밖에 할 수 없겠지만, 두 발과 두 손이 달린 로봇은 사람이 할 수 있는 행동을 대부분 해낼 수 있습니다.

휴보를 만든 오준호 KAIST 교수가 언젠가 필자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전쟁상황을 가정해 보자. 등에 폭탄을 짊어지고 절벽을 기어 올라갈 수 있는 로봇이 꼭 필요하고 한다면, 어떤 모습으로 만들어야 옳겠나?”라고 이야기했던 기억이 납니다. 한국계 로봇 과학자인 데니스 홍 미국 버지니아 공과대학 교수도 필자와 인터뷰 도중에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그는 “사람 대신 일을 하는 로봇은 인간형이 될 수밖에 없다. 공장, 빌딩 등 모든 사회구조가 인간을 위해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에서 개발한 국제우주정거장 조작용 로봇 로보너트(Robonaut)의 모습:
상반신 뿐인 로봇이지만 정밀한 손가락을 갖고 있다. 극한 우주환경에서 사람 대신 우주선 조작을 담당한다.

로봇은 기계입니다. 하지만 인간형 로봇은 기계장치를 사람 대신 조작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실제로 미국항공우주국은 우주공간에 떠 있는 국제우주정거장에 사람처럼 손가락을 가진 로봇(상반신뿐이긴 하지만)을 올려 보내 원격으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 미국 국방성에선 영화 <터미네이터>에서나 등장하던, 인간의 모습을 닮은 모습의 전투용 로봇까지 개발하고 있는 모습도 포착됩니다.

결국 두 발과 두 팔이 달린 ‘인간형 로봇’을 개발하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친구를 만들어 내고 싶다는 기본적인 바람, 그리고 사람 대신 위험하고 다양한 일을 척척 해 낼 수 있는 만능 기계장치를 만들겠다는 욕심. 그 본능과 필요를 좇아 과학자들은 오늘도 인간형 로봇 개발에 열심입니다.


[관련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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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보이즘: 나는 대한민국 로봇 휴보다 전승민 저 | MID 엠아이디
미국 헐리우드 영화 「로보캅」 이나 「아이언맨」 이 판타지이고, 일본 혼다자동차의 ‘아시모’가 로봇 산업의 현재라면, 대한민국의 대표 로봇 ‘휴보’의 위치는 어디쯤이 될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휴보는 이미 철지난 구제품 아니냐”며, 아직도 개발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면 깜짝 놀라기도 하고, 로봇 산업에 대해 조금 아는 사람들일지라도 휴보는 “역대 정부의 전시형 사업”이라며 비난하는 사람도 있다. 과연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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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전승민

‘현실세계에 도움되는 기술이 진짜 과학’이라는 모토로 국내 과학기술계 현장을 두 발로 뛰고 있는 과학전문기자. 현재 과학전문 언론사 「동아사이언스」 소속으로 ‘대덕연구 개발특구(대덕연구단지 일원)’를 전담해 취재하고 있다. 의료과학「 로봇「 국방과학 등 실용성 높은 과학기술에 관심이 많다. 대덕연구단지 인터넷 신문 「대덕넷」 취재기자로 근무했다. 「동아일보」 신문 지면에 과학 기사를 쓰고 있으며「 인터넷 과학포털 「동아 사이언스」 일간뉴스 담당기자로 근무하고 있다. 월간 과학전문지 「과학동아」에도 정기적으로 기사를 게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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