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 놀이터

겨울 스포츠의 왕국, 홋카이도

스키장에서 올림픽 정신까지 너무 커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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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홋카이도의 겨울 스포츠를 즐기는 방법’이 이번 화의 주제였다. 봄에는 봄처럼 여름에는 여름처럼 살라던 누군가의 말을 인용하려고 적어놨었다. 그러니까 겨울에는 설산을 활강하며 겨울처럼 살겠다고 개인적인 결의 같은 걸 하려고 했다.



열등감의 시작

시작은 스키복이었다. 스포츠용품 아웃렛에서 고르고 골라 산 녀석이었다. 지하철역에서부터 한참을 걷다가 눈보라에 내가 눈사람이 될 즈음에야 나오는 곳이었다. 유난을 떨면서까지 장만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첫째, 홋카이도에선 11월부터 4월까지 일 년의 반을 스키를 탈 수 있다. 둘째, 집에서 버스로 삼십 분이면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스키장에 닿을 수 있다. 셋째, 몇 번 대여 할 비용이면 장만하는 게 경제적이다. 물론 발품을 팔아야 돈을 아낄 수 있다.

각설하고, 2월도 반이나 지났는데 스키복은 여태 동면 중이다. 아직 개시하지 못한 사정은 ‘여러모로 바빴다.’는 말로 함축할 수 있겠다. 옷장을 열면 핑크와 보랏빛의 고운 자태로 접힌 스키복이 나를 내려다본다. ‘이럴 줄 알았다.’ 하는 원망이 뒤통수를 콕콕 찌르는 것 같다. 이번만은 향유하는 레포츠 하나 꼭 가지고 싶었다. 제대로 즐길 줄 아는 운동이 하나도 없다는 열등감을 지우고 싶었다.


그 열등감은 특히 다른 나라를 여행할 때 강렬했다. 어느 섬나라에서 파도를 맨몸으로 맞으며 ‘몸 뒤집기 놀이(?)’를 하고 있던 때였다. 신나서 몇 시간이나 헤벌쭉거리며 놀고 있었다. 그때 동네 초등학생 몇 명이 웃통을 벗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꼬마들은 서핑 보드에 올라타 파도를 들었다 놨다 했다. 왠지 모를 굴욕감이 느껴졌다.

동남아의 한 리조트에선 레포츠를 선택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동네에서 좀 쳐봤다는 배드민턴과 비슷한 테니스가 그나마 친숙했다. 라켓 휘두르는 것보다 엄한 데 떨군 공 줍느라 허리가 뻐근했다. 결국 삼십 분도 안 돼서 그만뒀다. 애처로운 눈빛으로 순서를 기다리던 사람들에게 코트를 양보했다. 휴양지에 운동하러 오느냐며, 여유로운 게 최고라고 둘러대며 산책을 했다. 그렇게 하릴없이 걷고 먹고 마시기만 하는 사람은 대부분 한국 아니면 중국 사람이었다. 이런 걸 어떤 종류의 동질감이라고 해야 하나. 언젠가 그들을 깔보는 말로 ‘졸부’라는 단어를 쓰기도 했던 것 같은데……

나름 체육 시간엔 종류별로 공도 튕겨 보고, 오래달리기도 끝까지 해냈다. 그래서 어떤 미국 여자애가 농구하러 가자고 했을 때도 별생각 없었다. 네트에 누가 공 많이 집어넣나 내기 정도 할 줄 알았다. 고등학교 특별활동 시간에 했다던, 누구나 이 정도는 한다던 그녀의 드리블에 그만 얼어 붙었다. 그리고 ‘아임 쏘리’라고 말했다.

유럽 애들 따라 스노보드를 타러 갔던 때는 굴욕의 대미를 장식했다. 보드를 한 번 신어본 적은 있던 터라 꽤 가벼운 마음으로 리프트에 올라탔다. 십 분이 넘도록 멈추지 않고 어딘가로 계속 올라갔다. 겨우 다다른 곳에선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안 됐다. 발밑으로 보이던 구름과 바다가 황천길인 줄 알았다. 기다시피 해서 두 시간 반이 걸려 원래 있던 자리로 내려올 수 있었다. 그 뒤로 겨울 스포츠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추운데 판때기에 발 묶고 왜 돈을 쓰냐며 비아냥댔다. 연평균 적설량이 6미터가 넘는 홋카이도에 살면서도 ‘겨울=온천’ 공식만 고집했다. 그런데 파우더같이 곱고 부드러운 눈을 밟으며 살다 보니 그게 아니었다. 유모차 대신 썰매를 끌고, 집집 마다 가족 수 대로 스키 장비를 갖춘 이곳 사람들을 보니 자꾸만 마음이 동했다. 그리고 결심했다. 여기 있을 때 겨울 스포츠 하나는 꼭 제대로 해보자고!




홋카이도 사람들의 겨울 스포츠

홋카이도에서는 초등학교 때부터 고교 졸업 때까지 스키와 스노보드를 필수 과정으로 이수한다. 아이들은 교복처럼 스키복을 입고 다닌다. 아침이면 학교 운동장에 단체 버스와 장비가 정렬해 있다. 소치 올림픽에도 일본 대표 중 40%가 홋카이도 출신이라고 한다. 자기 몸집만 한 보드를 매고 지하철을 타는 사람도 많이 보인다. 전 세계에서 겨울 스포츠를 즐기러 이곳을 찾는다. 그래도 시설이 많아 인산인해를 이루지 않는다. 동네 공원만 가도 썰매부터 걷는 스키, 스노 슈즈, 눈길 승마 등 겨울에 할 수 있는 스포츠가 참 많다. 헬기에서 뛰어내려 야산을 내려오는 스키가 취미인 사람을 만나기도 했다.

집을 나서면 전방 2km 정도 지점에 산이 하나 보인다. 해발 309미터의 나지막한 산에는 스키점프 경기장이 자리 잡고 있다. 1972년 삿포로 동계 올림픽 때 사용했던 ‘오쿠라야마 경기장’이다. 영화 <국가대표> 촬영지로도 유명세를 탄 곳이다. 그 영화로 인지도는 생겼지만, 우리나라에서 스키 점프의 입지는 아직 미미한 편이다. 반면 오쿠라야마 경기장에선 매년 일본 전국 대회나 국제 경기가 열리곤 한다. 그럴 때 집 앞에서 산을 바라보면 하늘 위로 붕 떠올랐다 내려오는 선수가 작게 보인다. 과연 이곳이 겨울 스포츠 왕국이라는 걸 깨닫게 하는 이국적인 풍경 중 하나다.




올림픽과 메달

동계 올림픽이 시작됐다. 이상화 선수가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합계 74초 70, 지난 대회보다 0.78초를 앞당긴 기록이다. 2위, 3위와는 각각 0.36초, 0.78초 차이다. 숨을 미처 한 번도 들이쉬지 못한 시간, 생각조차 할 수 없던 시간이다. 존재했지만 몰랐던 백 분의 일 초라는 시간을 넘어선 그녀에게 온 국민이 환호한다. 4년에 한 번씩만 존재감이 있는 시간이다.

소치 올림픽 순위와 메달권 선수들의 신변과 과거 등이 검색어 순위에 오른다. 스포츠 언론계에서 저명한 인사가 쓴 칼럼엔 버젓이 이런 말도 등장한다. ‘하계 올림픽이 갖지 못한 자의 대회라면, 동계 올림픽은 가진 자의 대회다. 동계 올림픽에서 우리도 금메달을 다루는 국가로 격상해 금석지감이다.’ 물론 동계 스포츠를 하려면 어느 정도 경제력이 필요한 건 사실이다. 그렇지만 분명한 건 모든 선수들은 인생의 대부분을 고된 훈련으로 채웠다는 것이다. 그것이 맨몸이든 장비가 필요한 경기든, 필요한 건 메달 보단 스포츠 정신이다. 그래서 우린 몸을 움직여 땀 흘려 보아야 한다. 평범한 사람도 스포츠를 즐길 줄 알아야 한다. 가진 자의 대회에서 이름을 날리는 것보단 땀 흘려 얻은 가치를 함께 공감할 수 있는 기본 바탕이 있어야 한다. 그게 진짜 부자 나라의 스포츠다. 과연 평창 올림픽이 끝난 후는 어떨까? 오쿠라야마 경기장처럼 매년 하늘을 날아오르는 스키 점프 선수들을 쉽게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좋아하는 운동이 뭐야? 할 줄 아는 운동 있어?”라는 질문을 받으면 일단 과거의 체육 시간을 떠올린다. 대한민국 평균을 사는 여성에게 운동이란 아마도 그게 전부일 테다. 목재 사물함 속에서 케케묵은 체육복을 꺼내 커튼 뒤에서 갈아입곤 했다. 피구와 발야구는 전교생이 열광하는 운동회 단골이었다. 일 년에 한 번 체력장을 거쳤고, 국민체조는 노래만 들어도 벌떡 일어날 것 같다. 고3 때는 일주일에 한 번 있던 체육 시간도 자습으로 슬쩍 바뀌었다. 그 뒤론 헬스장과 요가를 전전하며 다이어트 시장 발전에 일조했다. 물론 그다지 부지런한 건 아니었다. 그런데 이제는 새로운 운동을 시작하기가 두렵다. 제대로 하지 못할까 두렵고, 잘하지 못하면 안 될 것 같다는 강박이 뿌리 깊게 박혔다. 이것저것 핑계를 댔지만, 스키를 배울 생각이 있다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땀을 흘려야 한다.


사실 ‘홋카이도의 겨울 스포츠를 즐기는 방법’이 이번 화의 주제였다. 봄에는 봄처럼 여름에는 여름처럼 살라던 누군가의 말을 인용하려고 적어놨었다. 그러니까 겨울에는 설산을 활강하며 겨울처럼 살겠다고 개인적인 결의 같은 걸 하려고 했다. 어쩌다 올림픽 정신에 4년 뒤 평창까지 걱정하게 된 건지 막막하다. 칼럼을 마무리하려면 대한민국 스포츠 협회나 연맹의 실태라든가, 경쟁국 선수를 몰아붙이는 시끄럽고 몰상식한 몇몇 캐스터에 대한 비판이라든가, 평창 동계 올림픽을 준비하는 선진 국민의 자세라든가, 이런 이야기를 심도 있게 다뤘어야 했다. 결국 나는 제대로 된 운동 한번 해 본 적 없어서 다들 하는 인터넷을 뒤졌다. 그도 잘 안 돼서 페이스북을 열었다. 그리고 찾았다! 함축적 은유는 물론, 바른말과 섹시한 포즈로 언제나 날 매료시키는 하상욱 시인의 단편 시로 너무 커져 버린 이번 화를 마무리한다.

당연한


말하지


                 -메달

* 오쿠라야마 스키점프 경기장

1972년 삿포로 동계 올림픽의 90m급 점프의 무대가 된 곳. 사계절 주ㆍ야간 점프가 가능한 현대 설비를 갖추고 있어 시즌별로 각종 국제 대회를 개최한다. 대회나 공식 연습이 없는 날엔 일반에 공개하여 2인승 리프트로 산 정산까지 올라갈 수 있다. 정상 라운지에선 삿포로 시내를 전망할 수 있다. 리프트 왕복 요금은 500엔.

지하철 토자이선 ‘마루야마 공원’역 하차 후, 2번 출구로 나와서 버스터미널에서 14번 승차. ‘오쿠라야마 경기장 입구(大倉山競技場)’에서 하차 / 삿포로 시내에서 택시 요금 약 2,000엔

주소 : 札幌市中央( )宮の森1274
전화 : 011-641-8585
홈페이지 : //www.sapporo-dc.co.jp/krn/okurayama/index.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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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송인희

홋카이도의 매력에 흠뻑 빠져 삿포로에서 살고 있다.
새로운 언어와 문화, 일상을 여행한다.
먹고 마시는 것과 사소한 순간을 좋아하며, 종종 글자를 읽고 쓴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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