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륜 있는 전설과 재기가 넘치는 신예가 함께 굴려가는 것이라 했던가. 경쟁이라면 경쟁이겠고, 협동이라면 협동일 이 역학 관계가 결국 대중음악의 역사를 이끌어온 원동력이다. 복귀도 많았고 출현도 많았던 2013년의 싱글 무대에서 굳이 한 편에 무게를 실어야한다면, 상당한 약진들을 보였던 젊은 피들의 손을 들고자 한다. 빌보드로 대표되는 메인스트림에서의 기록도 그랬고 공식적인 경로로 내놓은 싱글들의 완성도 면에서도 그랬으며, 지나칠 뻔도 했던 앨범 내의 미발표곡에서도 의외성이 가득한 번뜩임을 선보이며 음악 팬들을 즐겁게 했다. 여러모로 만족스러웠던 한 해였다. 이즘에서 활동하고 있는 필자들과 외부에서 활약 중인 음악평론가들이 선정 작업에 참여했으며 순서는 알파벳순으로 순위와는 무관하다.
악틱 몽키즈(Arctic Monkeys)-Do I wanna know?
충격적인 데뷔 이후 ‘변화’라는 키워드에서 갈팡질팡했다. 그 방황의 꼭짓점은 <Suck It And See>로 점철되었고, 밴드는 물론 팬들의 고민은 깊어졌다. ‘성장 중’이라는 안도감과 ‘퇴보’라는 양분된 불안 속에서 건네진 「Do I wanna know?」 로 이제 모든 논란은 잠재워졌다. 음악적 성숙도가 절정에 이르렀으며, 창조력에 대한 자신감 역시 차고 넘친다. 그렇게 ‘브랜드 뉴’ 악틱 멍키스(Arctic Monkeys)의 모습으로 어느 때보다도 침착하고 고결한 사운드를 집결해냈다.
캐피탈 시티스(Capital Cities)-Safe and sound
단번에 들리는 복고적 전자음이 시계를 1980년대로 돌려놓는다. 그루브한 비트가 몸을 들썩이게 하고, 트럼펫으로 연주되는 주 멜로디는 구시대의 유산 위에 신세대의 청량함을 더한다.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EDM) 전성시대의 수많은 디제이들이 새로움을 창조해내려 애를 쓰지만, 캐피탈 시티스는 오히려 과거를 바탕으로 하여 누구보다도 혁신적인 상징적 싱글을 만들어냈다. 명실상부 전 세계를 홀린, 올해의 리듬이다.
다프트 펑크(Daft Punk)-Get lucky
올 여름 코첼라 페스티벌 무대에서 짧은 프로모션 비디오가 상영될 때만 해도 전 세계가 1970년대의 디스코 사운드에 매료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었던 일들도 얼마나 많았나. 이러한 우려에도 나일 로저스, 퍼렐 윌리엄스, 다프트 펑크가 뭉친 올스타급 밴드는 산술적 총합 이상의 흥겨움을 자아냈다. 전매특허의 펑크 리프는 세월을 무색하게 만들 정도의 그루브를 자랑했고, 퍼렐의 탄력적인 보컬은 동시대적인 감각을 놓치지 않았다.
물론 마에스토로는 다프트 펑크다. 월리처 피아노를 내세운 인트로로 단번에 귀를 잡아끄는 능력과 보코더로 그 시대의 풍미를 연출하는 각론까지 흠잡을 곳이 없다. 무엇보다 6분이 넘는 대곡임에도 지루함을 느낄 수 없는 태생적인 그루브감이 전 세계를 들썩거리게 했다. 신예들이 키워나가는 EDM계의 성장가도 속에서도 뿌리를 재탐구하는 거장이 내린 ‘신의 한수’는 멋있을 수밖에 없다.
드레이크(Drake)-Started from the bottom
힙합이라는 범주 내에서도 우아할 수 있다는 증명이다. 2013년, 멍청하게 놀기 좋았던 트랩뮤직들 사이에서 유일무이하게 품격을 지니고 있다. 똑같이 베이스로 바닥을 울리고, 하이-햇으로 박자를 쪼개지만 그것이 전부. 셰이커로 튕김을 돋울 뿐, 박력 넘치는 랩과 공포 분위기는 없다. 보편적인 트랩 뮤직들과 다르게 간결하다. 오로지 드레이크의 유려한 플로우와 훅만으로 승부를 봤다. 자전적인 가사가 그의 행보를 지켜본 힙합 팬들에게 감동을 전하기도 한다. 굳이 달리지 않아도 조용히 신이 나는 이유다.
에미넴(Eminem)-Berzerk
에미넴과 릭 루빈은 여전히, 아니 오히려 더 강력해졌다. 싱글 자켓이 보여주듯 엘엘 쿨 제이의 <Radio>를 오마주로 삼고 있지만 절대 뒤쳐지지 않는다. 28년이 지났어도 릭 루빈의 프로듀싱은 그때처럼 젊고 힘이 넘친다. 여기에 음이탈까지 의도해 랩으로 승화시켜버리는 엠신의 위엄이 폭발한다. 훌리건들의 폭동을 청각화했다. 미친 래퍼로 유명한 그의 가장 난폭한 싱글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무자비하다. 자존심 강한 래퍼들의 살인적인 디스가 난무하는 힙합신에서 에미넴이 ‘Rap god’이라고 자칭해도 아무도 한 구절 뱉지 못한다. 「Berzerk」 는 그 절대적인 래퍼가 온 힘을 다해 날리는 체어샷이다.
이매진 드래곤스(Imagine Dragons)-Radioactive
일본발 방사능에 대한 공포가 세상을 잠식하고 있을 때, 음악차트에서는 이미 그 상상이 현실화되고 있었다. 이매진 드래곤스의 「Radioactive」 는 올해 그 어떤 싱글보다 차트를 장기집권하며 사람들의 일상 근처를 파고들었다.
음악적 소스를 거침없이 반죽하면서도, 결과적으로 ‘어울리게’ 만든 것이 주효했다. 덥스텝과 록을 뒤섞은 음악은 많았지만, 「Radioactive」 처럼 맛깔스레 반죽한 음악, 또 그를 통해 폭 넓은 대중의 선택을 받았던 싱글은 없었다. 2013년 가장 성공한 록 밴드의 입신출세작. 용을 상상하던 4인조는 결국 자력으로 공룡 밴드로 거듭났다.
제임스 블레이크(James Blake)-Retrograde
어려운 음악이 좋은 음악이란 법은 없다. 다만 복잡해 보이는 그림 안에서 좋다고 캐치할 수 있을만한 요소가 들어있을 때 그 어려운 음악은 충분히 좋은 음악이 된다. 제임스 블레이크를 바로 그 예이지 않을까. 탈초점과 균열로 만든 사운드의 흐릿함이 제일 먼저 다가오는 겉모습이나 그 안에는 감정선을 격정의 순간으로 서서히 끌어올리는 정형화된 팝의 구조가 존재한다. 결국 좋은 곡이냐 아니냐를 가름하는 결정적인 관건은, 낯섦이라는 색감과 친숙함이라는 밑그림을 어울리게끔 배치할 수 있는 재조직에서의 역량에 달려있었다고 할 수 있을 텐데, 아티스트는 이 부분에서 이미 탁월한 재능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제임스 블레이크의 미학은 바로 모호함의 미학이다. 그 독특한 사운드 메이킹이 반영된 「Retrograde」 는 이를 적확히 설명하는 올해 최고의 싱글 중 하나로 자리한다.
맥클모어 앤 라이언 루이스(Macklemore & Ryan Lewis)-Thrift shop (feat. Wanz)
맥클모어 앤 라이언 루이스의 신선한 바람은 이 노래로부터 시작되었다. 후에 1위를 차지했던 「Can't hold us」 도 좋지만 「Thrift shop」 은 그들의 정체성이다. 온 앨범을 다해, 기성 힙합 세력에 반대하는 그들의 진심이 농축되어있다. 괴짜 같은 비트와 훅을 넘어 다니며 ‘중고 매장’을 찬양하는 그들이 웃기지만 우습지는 않다. 역으로 대다수의 래퍼들을 바보로 만들어 버렸다. 라이언 루이스의 인디 록적인 감각과 맥클모어의 확고한 가치관이 담긴 래핑의 시너지가 빛나는 잊지 못할 첫인상이다.
파라모어(Paramore)-Still into you
이모코어의 감성을 머금은 멜로디와 강성한 기타 리프, 여기에 개성 충만한 보컬이 오묘한 조화를 이룬다. 애절한 가사지만 격렬한 진행으로 틴에이지 록의 색채를 지웠다. 멤버 탈퇴 이후 팝 스타의 길을 걷나 싶었던 여장부 헤일리 윌리엄스지만 오히려 그녀의 잠재력을 폭발시키며 커리어의 새로운 전환점을 만들어냈다. 유독 록이 부진했던 2013년, 「Still into you」 의 발랄한 선전은 헤일리 본인에게나 록 마니아들에게나 커다란 저항의 상징이었다.
제드(Zedd)-Clarity (feat. Foxes)
일렉트로닉 댄스음악과 팝의 경계가 모호해져 가는 시대를 반영했을 뿐만 아니라 팝의 감각을 겸한 일렉트로 하우스가 주류에서 히트하는 양상을 기록한 노래이기도 하다. 「Clarity」 는 장르 특유의 구조는 갖추되 매끈한 선율과 순조로운 이어짐으로 음악팬들에게 편안하게 다가갔다. 또한 분위기의 고조, 폭발하듯 에너지를 방출하는 후렴, 중독적인 루프의 뒷받침 등 각종 장치가 튼튼하고 깔끔하게 맞물렸다. 20대 초반의 젊은이가 만든 음악에 전 세계의 클러버들이 몸을 맡긴 것이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선정인(가나다 순, 20명) : 김도헌, 김반야, 배순탁, 소승근, 신현태, 여인협, 위수지, 윤은지, 이기선, 이대화, 이수호, 이종민, 임진모, 전민석, 정우식, 조아름, 한동윤, 허보영, 홍혁의, 황선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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