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은 어떻게 발급되는가 - <친구 2>

번외편 제작을 촉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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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서 영화나 소설은 개연성이 중요한 것인데, 이 생각을 하느라 ‘여권 씬’이후로는 줄곧 그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러니 자연히 영화가 끝나자마자, ‘도대체 저 여권은 어떻게 발급받은 것인가?’하는 의문이 떠나지 않았다.

어떤 사람의 얼굴을 떠올릴 때, 코만 기억난다든지, 점만 떠오르는 경우가 있다. 그 사람에게 눈이나 입, 귀가 없다는 게 아니다. 유독 코만 기억나는 것이다. 요컨대 특정부분의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 전체를 잠식해버린 것이다. 소설이나 영화 역시 마찬가지인 경우가 있다. 분명 완독을 하고, 러닝타임 내내 졸지 않고 집중해서 봤는데, 결과적으로는 한 문장 혹은 한 장면만 기억날 때가 있다. 

 

영화 <친구>에서 가장 또렷이 기억나는 대사는 나의 경우 “니가 가라, 하와이”였다. <친구 2>는 이 연상작용에 호응이라도 하듯 비슷한 장면을 심어놓았다. 감독은 이 대사의 사회적 여파를 의식했는지, ‘2편’에는 그 숫자에 걸맞게 두 번이나 유사장면을 이식해놓았다. 영화를 보며 ‘오호. 저런 장면이 있었지’ 하며 떠올렸는데, 그러다 그만 흐름이 깨지고 말았다. 이유는 살인을 저지른 김우빈에게 유오성이 ‘외국 좀 가있어라’며 내민 비행기 티켓에 여권이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필자는 우리 나라의 여권 발급체계에 대해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여권은 본인만 신청할 수 있다. 물론, 예외는 있다. 여권 신청이 불가능할 정도의 질병이나 장애가 있는 경우, 대리인이 신청할 수 있다. 하지만 이때에도 본인의 위임장이 필요하다. 아울러, 법정대리인은 친권자나, 배우자, 2촌 이내의 친척만 가능하다. 구체적으로 흘러가서 미안한데, 필자는 몹시 꼼꼼한 성격이라 설명하지 않을 수 없다. 대상자가 미성년자일 경우 대리인 신청이 좀 수월해지는데, 영화 속 김우빈은 자그마치 28세다(유오성을 처음 만났을 때, 자기 입으로 스물일곱이라고 한다. 그리고 1년 뒤 여권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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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필자는 이때부터 영화의 흐름과는 상관없이 ‘아, 그럼 본인이 신청해놓고 잊어먹었단 말인가’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김우빈은 유오성이 여권을 꺼내놓았을 때 몹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 감독의 의도는 유오성이 칼이나 총을 꺼낼지 알았는데, 여권을 꺼내서 김우빈이 놀랐다는 것 같았지만, 대학 때 연극반에서 메서드 연기를 한 연기파 출신인 나는 한 눈에 알아보았다. 김우빈의 눈빛은 바로 ‘아! 여권이 이렇게 생겼구나’하는 내면 연기였다. 따라서 김우빈이 기억상실증에 걸리지 않은 한, 본인이 여권을 신청해놓고 잊었다는 설정은 성립될 수 없다. 어림도 없다.

 

여기서 매년 기부를 과하게 많이 하는 필자의 박애적인 인내심이 발휘되는데, 십분양보하여 다른 가능성을 떠올려 보았다. 영화에는 유오성의 각종 비행을 눈감아주는 형사가 등장한다. 그는 룸살롱에서 유오성이 건네는 돈뭉치에 매수당한 전력이 있기 때문에, 형사가 인맥을 활용해 줬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개연성이라고는 노벨문학상 수상자도 눈물을 흘릴 정도의 과학적 소설을 쓰는 필자가 보기에 형사는 원칙주의자이다. 돈을 건네고 “소주라도 한 잔하자”는 유오성의 제안을 일언지하에 “어데! 형사랑 건달이랑 같이 댕기는 거 눈에 띄가 좋을 일 있나”하며 거절할 줄 아는 강직한 인물이다. 역시 용돈은 어느 정도 챙길지언정, 약속은 칼 같이 지키는 공무원이다. 그는 유오성에게 돈을 받으면서도 “전쟁은 해도 죽는 사람이 나오면 곤란하다”고 명확히 선을 긋는다. 아니나 다를까 유오성의 부하가 죽자마자 전화를 걸어 유오성에게 호통을 친다. “니 다시 감방갈래!” 그런 그가 본인이 가지도 않는 구청 여권발급까지 친절하게 알선할 리 만무하다.

 

나는 이쯤에서 너무 깐깐한 게 아닌가 싶어 다시 관대한 상상을 덧붙이기로 했는데, 그건 실은 조직에 김우빈과 굉장히 닮은 도플갱어가 있어서 김우빈 행세를 하고 여권을 신청했다는 것이다. 마침 구청 공무원은 간만에 야근을 해서 몹시 피곤한 상태라 꼼꼼히 챙기지 못한 채, 그럭저럭 여권 신청접수를 받고야 말았다. 하지만, 한국 소설가 중에 가장 관대한 본인일지라도 다음 사실에 관해선 양보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건 바로 여권발급은 근무일수 기준으로 4일이 소요된다는 것이다. 주말이 끼면 6일이나 걸린다. 즉, 김우빈이 사람을 죽였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곧장 조직 내에서 김우빈을 가장 닮은 사람을 수배하고, 아울러 전날 야근한 가장 피곤한 구청 공무원을 찾아내 여권 신청을 하더라도 바로 다음날 여권이 나올 수는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여권 발급은 대전에서 하지 않는가(아, 대전까진 길 막히면 정말 오래 걸린다.) 본인도 예전에 국가 공무에 준하는 일이 있어 여권을 초고속으로 발급 받은 적이 있지만, 대전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시간까지 단축시킬 수는 없었다. 이 경우엔 보통 대전에서 곧장 인천공항으로 여권이 간다. 아무리 양보 한다해도 영화처럼 유오성과 김우빈이 만나는 논두렁, 즉 부산 근교까지 그 시간에 배달될 수는 없다.

 

이래서 영화나 소설은 개연성이 중요한 것인데, 이 생각을 하느라 ‘여권 씬’이후로는 줄곧 그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러니 자연히 영화가 끝나자마자, ‘도대체 저 여권은 어떻게 발급받은 것인가?’하는 의문이 떠나지 않았다. 결국 나는 감독에게 지면을 통하여 공식적인 요구를 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건 바로 친구2의 번외편을 제작해달라는 것이다. 제목은 <친구2 - 여권발급의 비밀>로 해서 말이다. 일단, 내가 관객 열 명은 데려갈 참이다.

 

곽 감독님 힘내세요! 기억상실증이나, 귀신 씌었다는 탈출구도 있으니까요.

 

 [관련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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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최민석(소설가)

단편소설 ‘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라’로 제10회 창비신인소설상(2010년)을 받으며 등단했다. 장편소설 <능력자> 제36회 오늘의 작가상(2012년)을 수상했고, 에세이집 <청춘, 방황, 좌절, 그리고 눈물의 대서사시>를 썼다. 60ㆍ70년대 지방캠퍼스 록밴드 ‘시와 바람’에서 보컬로도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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