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케이드 파이어(Arcade Fire) <Reflektor>
아케이드 파이어는 흐름을 역행한다. 쉽게 들리는 멜로디와 명료한 메시지의 즉각적 음악이 인기를 얻는 사회에서 이들의 음악은 사전 조사를 통해 배경을 숙지하고, 오래 곱씹어 들으며 숨겨진 감동을 찾아야 하는 숙제를 안겨준다. 데뷔작
<Funeral>부터 세계를 휩쓸었던
<The Suburbs>까지, 모든 앨범은 밴드의 리더 윈 버틀러와 그의 아내 레진 사사뉴의 개인적 경험을 주제로 삼은 단편선과 같다. 이러한 번거로운 이해의 과정에도 불구하고 아케이드 파이어가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밴드로 거듭난 것은 그 결과로 얻을 수 있는 감동의 크기가 워낙 거대하기 때문이었다.
<Reflektor>의 성취는 이 복잡한 과정들을 단순화했다는데 있다. 앨범은 배경이나 줄거리의 이해 없이 다양한 음악적 요소들만으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LCD 사운드시스템으로 유명한 DJ 제임스 머피의 참여와 레진 사사뉴의 고향 아이티를 여행하며 접한 카리브해 연안 전통음악이 좀 더 대중적이면서도 월드뮤직의 요소를 더해 독특한 아케이드 파이어만의 음악을 만들어냈다. 디스코 트랙 「Afterlife」 와 토속적 리듬이 흥겨움을 자아내는 「Here comes the night time」, 레게의 흔적이 묻어나는 「Flashbulb eyes」 등이 대표적이다.
월드뮤직의 흥취와 더불어 록 밴드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트랙들 또한 인상적이다. 「Joan of arc」 의 시작부분은 하드코어 펑크의 문법을 그대로 따르며, 「We exist」 는 1980년대 큐어, 더 스미스 등의 브릿팝 밴드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 중에서도 새로운 시도에 속하는 「Normal person」 은 중독적인 기타 리프 위에서 터져 나오는 화끈한 로큰롤 트랙이다.
흥겨운 음악에도 불구하고 어딘지 모르게 어둡고 무거운 인상이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데, 여기서부터 앞서 언급했던 ‘탐구’의 과정을 밟아나갈 필요가 있다. 앨범의 주된 이야기는 그리스 신화의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비극적인 사랑, 그리고 이를 브라질 카니발 축제로 재해석한 1959년 영화 <흑인 오르페>다. 망자가 되어버린 애인을 위해 저승으로 걸어가는 오르페우스와, 사랑하는 마음에 뒤를 돌아봐서는 안 된다는 금기를 어겨 다시 어둠속으로 사라지는 에우리디케의 이야기는 「Awful sound (oh eurydice)」, 「It's never over (hey orpheus)」 에 자세히 묘사되어있으며,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의식이다.
아케이드 파이어는 비극적 신화의 단순한 재현을 넘어 인간사회의 고독과 단절, 죽음을 이야기한다.
<Reflektor>라는 제목은 의사소통을 반사해버리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막다른 벽을 의미하고 있다. 이러한 단절의 아픔은 동명의 「Reflektor」 부터 선명하게 드러나며, 이는 「We exist」 와 「Normal person」 을 통해 존재론적 회의로 이어진다. 망자를 애타게 그리워하는 「Afterlife」 와 「Supersymmetry」 를 통해 그 비극성은 한층 더 배가된다. 이승과 저승에서 오는 운명론적 단절의 신화가 ‘도시의 섬’과 같이 고립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일상으로 치환되는 순간이다.
‘장례식’, ‘유년 시절’과 같이 전작들이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자의식의 발로였다면, 신보는 그보다 더 본질적인 질문인 ‘인간의 존재’에 대해 고뇌한다. 특정인의 감정이 아닌 우리 모두의 감정에 대한 고민은 음악적으로나 메시지의 차원에서나 좀 더 보편적인 형식으로 나타났고, 이는 공감의 폭을 넓힘으로서 좀 더 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릴 수 있는 기회로서 작용한다. 앞서 언급했던 ‘번거로운 이해의 과정’이 요구됨에도 불구하고 아케이드 파이어의 음악이 소중한 것은, 이들이 우리를 하여금 ‘생각하게’ 만드는 몇 안 되는 아티스트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힘은 갈수록 거대해지고 있다.
그리스 비극은 거친 운명에 휩쓸리는 인간의 존재에 관한 고뇌의 결과물이었다.
<Reflektor>는 수천 년이 지난 21세기에도 인류의 위대한 정신적 유산이 여전히 전승되고 있음을 증명하는 작품이다. ‘개인들의 대변자’였던 아케이드 파이어는 이제 ‘시대의 대변자’를 꿈꾸고 있다.
글/ 김도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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