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전건우의 예능과 인생
무한도전 가요제, 너희들 왜 그렇게 열심이니
열심히 사는 인간들의 축제
이번 가요제에서 제일 마음에 들었던 무대는 ‘병살’의 ‘사라질 것들’이었다. 맨 마지막의 단체곡도 좋았지만 나는 이 ‘사라질 것들’이 <무한도전>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곡이라 느꼈다. 그리고 우리 인생을 아주 간명하게 정리한 곡이기도 했다. 모든 것은 사리지게 마련이고 죽음이라는 끝은 정해져 있다. 우리가 바꿀 수 없는 운명이다.
음악은 힘이 세다
음악은 힘이 세다. 백 마디 말보다, 수십 쪽의 글보다, 한 곡의 노래가 주는 감동이 훨씬 강하다. 벌써 2년 전의 일인데, 나는 <나는 가수다>의 첫 방송을 보기 위해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었다. 당시는 예능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을 때인데도 <나는 가수다>만은 기대가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부산스러운 몇 분이 흘러간 뒤 이소라가 무대 위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특유의 표정으로 “바람이 분다”라고 속삭였을 때 내 얼굴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소설을 써서 누군가를 울리려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문장들이 필요할까? 나는, 질질 짜고 훌쩍거리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무한도전>이 2년마다 가요제를 열고 그 중간에도 깨알 같은 노래 관련 미션을 넣는 이유는 음악이 지닌 그 거대한 힘 때문이리라. ‘2007년 강변 북로 가요제’로 시작했던 무한도전 가요제는 시작은 미약했으나 그야말로 그 끝은 창대했다. 강변 북로 밑에서 바락바락 악을 쓰던 멤버들, 그 중에서도 특히 하하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그때는 참 초라했다. ‘2009년 올림픽대로 듀엣 가요제’는 규모가 조금 커졌다. 타이거 JK, 윤미래, 제시카, 이정현 등의 게스트 진도 무게가 있었고 준비한 곡들도 2년 전과는 비교가 안 되게 좋아졌다. 물론 그때도 관중은 별로 없었다.
비약적인 발전을 한 것은 ‘2011년 서해안 고속도로 가요제’부터다. 10cm, 지드래곤, 정재형, 바다, 스윗소로우, 싸이, 이적으로 이어지는 가수 라인업부터 기대감을 상승시키더니 공연 당일에는 구름 관중이 몰려들어 달라진 무한도전 가요제의 위상을 짐작케 했다. 각 멤버들의 무대도 훨씬 화려하고 멋있어 졌다. 믿거나 말거나, 이제는 국제 가수가 된 싸이도 이때의 겨땀 굴육을 극복하기 위해 절치부심 노력한 끝에 ‘강남스타일’을 터트렸다. 이제 싸이는 겨땀쯤 아무렇지도 않은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지, 암.
다시 또 2년의 시간이 흘러 드디어 ‘2013 무한도전 자유로 가요제’가 열렸다. 이번에는 임진각 평화 누리 야외 공연장으로 그 규모가 몇 배가 커졌다. <무한도전>은 장장 5주에 걸쳐 ‘무도 가요제 특집’을 방송했다. 일부에서는 너무 우려먹는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김치, 된장처럼 묵혀두고 숙성시켜야 제 맛을 내는 것도 있는 법. 무도 가요제 특집은 매 회 큰 웃음을 선사하며 시청자들의 기대감을 상승시켰고, 과연 장독 뚜껑을 열고 보니 기가 막힌 김치가 쏟아져 나왔다. 김태호 PD 또한 솜씨 좋은 요리사 아닌가. 그러니 믿고 먹을, 아니 볼 수밖에.
왜 그렇게 열심히니?
모든 작가들은 대부분 게으르다. 안 그런 작가도 많으니 오해하지 말길. 다만 내 주위에는 하나같이 다 비슷하다. 다른 사람 인생을 자꾸 대신 살아주다 보니 정작 나는 게을러질 수밖에. 나도 게을러서 늘 빈둥빈둥 거린다. 글을 쓰지 않으면 나무늘보처럼 소파에 들러붙어 텔레비전을 보거나 책을 읽는데, 그런 내가 유일하게 등을 꼿꼿이 세우고 있는 순간이 바로 <무한도전>을 볼 때이다. 지독히도 열심히 하는 멤버들을 누워서 본다는 게 왠지 미안하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무한도전>의 광팬이니까 일종의 경건함을 보이려는 걸 수도 있겠지. 아무튼, 지난 8년 간 <무한도전>은 한 번도 게으름을 피운 적이 없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이번 자유로 가요제를 준비하는 모습도 똑같았다. 이제 8년이나 했고 다들 자리를 잡았으니 설렁설렁해도 될 텐데 어쩜 그리 열심인지. 게으른 백수 작가는 반성, 또 반성하게 된다. 그러면서 <무한도전>이 끝나면 다시 소파에 눕는 것은 비밀!
내가 생각하기에 이번 가요제는 그 어느 때보다 도전의 강도가 심했다. 정준하는 김C를 만나 전혀 새로운 음악에 도전해야 했고, 유재석은 알앤비라는 장르를 만나 고전을 면치 못했으며 길은 팔자에도 없는 춤을 배워야 했다. 어디 그뿐이랴, 힙합에 도전한 박명수도, 레게와 잠시 이별하고 록 시피릿에 몸을 맡긴 하하도, 고질병인 박치를 고친 노홍철도 모두 도전의 연속이었다. 나는 5주간의 연습 과정과 본 공연을 지켜보며 <무한도전> 멤버들에게, 그리고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왜 그렇게 열심이니?’
조금 찔리기는 하지만 나 역시 필요한 순간에는 열심히 노력하는 이 시대의 평범한 가장이다. 당신들도 그렇다. 누구보다 열심히 사는 학생이요, 주부이고, 회사원이며, 백수이리라. 우리는 모두 열심히 산다. 아주 죽을힘을 다해서 살아간다. 인생 뭐 별거냐, 하면서도 아침을 거르고 서둘러 출근길에 오르고 하품을 참아가며 공부를 하고 허리 아프도록 집안 청소를 한다. 왜 그럴까? 왜 우리는 열심히 살까?
나는 이번 가요제를 시청하면서 노래보다도 공연을 펼치고 있는 멤버들과 가수들의 표정에 주목했다. 무대에 오르기 전까지 긴장으로 굳어있던 그들의 얼굴이 점차 시간이 흐르며 기쁨과 행복의 기운으로 가득 차는 모습, 그리고 공연이 끝난 후 상기된 얼굴로 인터뷰 할 때의 그 표정을 지켜봤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이 미련퉁이 같은 사람들이 죽어라 연습하고 또 연습한 이유는 이 한 순간을 위해서라는 사실을. 십 분이 채 안 되는 공연을 위해, 그때 느끼는 희열과 행복을 위해 참 열심히도 노력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쩌면 우리네 인생도 비슷하지 않을까?
나는 어렴풋이 그런 생각을 해 본다. 우리가 죽어라 열심히 살아가는 것은 언젠가 다가올 행복을 기대하기 때문이 아닐까? 대학에 합격하는 행복, 취직하는 행복, 멋진 집으로 이사 가는 행복을 위해서 오늘도 또 우리는 열심히, 열심히……. 그런 ‘열심’들이 쌓이게 되면 어느 순간 무한도전 가요제처럼 신명나는 축제를 펼칠 수도 있으리라. 모두가 환호하고 신명나게 춤을 추고 기쁨의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축제. 나는 <무한도전>을 통해 그런 희망을 품어 본다.
사라질 것들
이번 가요제에서 제일 마음에 들었던 무대는 ‘병살’의 ‘사라질 것들’이었다. 맨 마지막의 단체곡도 좋았지만 나는 이 ‘사라질 것들’이 <무한도전>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곡이라 느꼈다. 그리고 우리 인생을 아주 간명하게 정리한 곡이기도 했다. 모든 것은 사리지게 마련이고 죽음이라는 끝은 정해져 있다. 우리가 바꿀 수 없는 운명이다. <무한도전>도 언젠가는 끝을 맞이하게 되리라. 그때가 언제인지 모를 뿐이다. 내 삶이 그러한 것처럼, 언젠가는 반드시 끝난다. 그래서 아름답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라질 것들은 그 운명이 정해져 있기에 치명적으로 아름답다. 그래서 열심히 살아간다. 그래서 아침을 거르고 서둘러 출근길에 오르고 하품을 참아가며 공부를 하고 허리 아프도록 집안 청소를 한다. 게으른 소설가는 오늘도 컴퓨터 앞에서 소설을 쓴다. ‘사라질 것들’의 마지막 가사는 이렇다. 나는 그 속에서 긍정을 발견한다. 열심히 사는 인간들만이 품을 수 있는 긍정을.
오늘밤 그 길을 확인하러 가고 싶은 건데
오늘밤 그 길을 함께 걸어가고 싶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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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아빠, 백수, 소설가, 전업작가로 살아간다. 운동만 시작하면 뱃살이 빠지리라는 헛된 믿음을 품고 있다. 요즘 들어 세상은 살 만하다고 느끼고 있다. 소설을 써서 벼락부자가 되리라는 황당한 꿈을 꾼다.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3』,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4』에 단편을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