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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붕 두산, 진필중을 떠올려라

마운드의 수호신이었던 사나이, 진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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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진필중은 9이닝을 혼자 책임지며 자이언츠 타선을 3안타 1실점으로 틀어 막고, 시리즈를 원점으로 돌려 놓는다. 당시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도 자이언츠 에이스 윤학길과 맞대결을 펼쳐 전혀 밀리지 않는 투구를 펼쳤던 진필중은 팀이 가장 어려운 상황에 홀로 마운드를 책임지는 최고의 활약을 펼친다.

멘붕 두산, 이대로 무너지나


프로야구 포스트시즌의 막이 올랐다. 정규시즌 3위 넥센 히어로즈와 4위 두산 베어스의 준플레이오프가 한창 펼쳐지고 있는데, 베어스 팬들로서는 자칫하면 올 시즌 베어스의 가을 잔치를 더 이상 못 볼지도 모르는 상황에 처해 있다. 5전 3선승제의 준플레이오프에서 베어스는 1,2차전을 접전 끝에 모두 끝내기 안타를 내주면서 패배, 탈락 위기에 몰렸다.

  

하지만 베어스 팬들이 베어스를 응원하는 결정적인 키워드는 바로 ‘뚝심’이다. 32년 프로야구 역사 속에서 가장 극적인 뒤집기를 많이 연출했던 팀이 바로 두산(OB) 베어스다. 불가능할 것처럼 보이던 순위 경쟁에서 시즌 최종일에 극적인 뒤집기를 연출하는가 하면, 포스트시즌에서도 벼랑 끝에 몰려 있다가도 ‘뚝심’을 발휘해 극적인 승리를 따내는 저력을 보이기도 했다. 마스코트인 곰의 이미지와 싱크로율이 100% 가까이 일치하는 ‘뚝심’ 가득한 플레이는 팬들의 충성심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비록 올 시즌 포스트시즌에서 베어스는 탈락 위기에 몰려 있지만 베어스 팬들은 여전히 희망을 품을 수 있다. 달콤했던 기억들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베어스가 창단 두 번째로 우승을 거머쥐었던 1995년 한국시리즈는 여전히 베어스 팬들의 기억 속에서 달콤함의 유효기간이 지속되고 있다.

 

1995년 정규시즌 1위로 한국시리즈에 직행한 OB(현 두산) 베어스는 정규시즌 3위로 플레이오프에 올라 당대 최강으로 군림하던 2위 LG 트윈스를 접전 끝에 제치고 올라온 롯데 자이언츠와 한국시리즈에서 맞붙었다. 양팀은 매 경기 치열한 접전을 거듭하며 명승부를 연출했다.

 

특히 5차전은 8-7 케네디 스코어로 승부가 결정되면서 치열한 타격전이 펼쳐졌는데, 베어스는 당시 경기 초반 4-0의 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역전패를 당하면서 벼랑 끝에 몰리게 된다. 2승 3패로 몰려 있던 베어스의 김인식 감독은 한국시리즈 6차전 선발로 당시 신인이었던 진필중을 내세운다.


시간을 거슬러, 1995년으로

 

휘문고-중앙대를 거쳐 OB 베어스에 입단한 진필중은 입단 당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었다. 입단 당시 그가 받은 계약금은 4천 2백만원, 1995시즌을 앞두고 LG 트윈스에 1차 지명으로 입단한 심재학이 신인 사상 최초로 계약금 2억원 시대를 열었고, 같은 팀에 입단한 투수 송재용이 계약금 1억 5천 8백만원을 받은 점을 감안하면 진필중에 대한 기대치는 그다지 높지 않았었다고 볼 수 있다.

 

프로에 입단하기 전에도 진필중은 늘 스포트라이트와는 거리가 멀어 있었다. 휘문고 시절에는 1년 후배 임선동이 에이스로 군림했고, 중앙대 시절에는 부상으로 등판기회를 못 잡았고, 역시 1년 후배 최창양(미국 필라델피아 필리스 마이너리그를 거쳐 삼성 라이온즈에 계약금 5억원에 입단)에 밀려 주목을 받지 못했었다.

 

프로 입단 후 그는 체계적인 훈련을 통해 업그레이드 되기 시작했다. 꾸준한 러닝을 통해 하체를 보강하면서 그의 직구에 위력이 더 실리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당시 베어스 마운드에는 진필중이 들어갈 틈이 따로 마련되어 있지는 않았다. 에이스 김상진, 권명철 쌍두마차에 김경원, 강병규, 이용호 등의 계투진, 그리고 관록의 노장 박철순 등이 주축으로 자리했기 때문이다. 1995시즌 8월까지 2승 2패 2세이브에 머물러 있던 진필중은 순위 경쟁이 한창 치열하던 9월부터 붙박이 선발로 투입되면서 상승세를 타기 시작한다.

 

선발로 고정된 후 4연승을 거둔 진필중은 선두 경쟁에서 팀이 극적으로 선두를 탈환하는데 큰 공헌을 한다. 당시 주축 선수들이 지쳐가던 상황에서 진필중의 가세는 반등의 원동력이 된 것이다. 한국시리즈에서도 6차전 선발로 나선 진필중은 김인식 감독의 사실상 ‘배수의 진’이자 마음을 어느 정도 비우고 미래를 내다 본 일종의 투자였던 셈이다.

 

승부의 고비가 된 5차전에서 베어스는 선발 권명철을 비롯, 박철순, 김경원, 이용호 등 주축 투수들을 대거 투입하여 투수진이 바닥난 상황이었다. 결국 베어스로서는 신인 진필중의 어깨에 팀의 운명을 건다.

 

당시 상대팀 자이언츠의 선발투수는 염종석이었다. 염종석은 1992년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었고, 비록 부상 후유증이 남아 있었지만 관록으로 볼 때 염종석에게 우위가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진필중의 묵직한 구위는 자이언츠 타선을 완벽하게 압도하였다.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진필중은 9이닝을 혼자 책임지며 자이언츠 타선을 3안타 1실점으로 틀어 막고, 시리즈를 원점으로 돌려 놓는다. 당시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도 자이언츠 에이스 윤학길과 맞대결을 펼쳐 전혀 밀리지 않는 투구를 펼쳤던 진필중은 팀이 가장 어려운 상황에 홀로 마운드를 책임지는 최고의 활약을 펼친다.

 

이 경기는 진필중의 프로야구 인생에 최고의 터닝 포인트로 작용하게 된다. 진필중은 전국구 스타가 되었고, 소속팀 베어스는 7차전에서도 자이언츠에게 4-2로 승리를 거두면서 프로 원년 이후 무려 13년 만에 감격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거머쥐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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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베어스 공식 홈페이지(//www.doosanbears.com/)

 

비록 신인이었지만 선발투수로서 진필중의 두둑한 배짱과 묵직한 구위의 가능성을 확인한 김인식 감독의 과감한 용단이 없었다면 스타 진필중의 탄생도, OB 베어스의 13년 만의 한국시리즈 우승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또한 아마시절부터 프로 입단 당시까지 늘 관심 밖으로 취급 당하던 설움에 싸여 있던 진필중은 묵묵한 자기 계발을 통해 가장 중요한 무대에서 스포트라이트의 중심에 서게 된다.


한국시리즈 우승, 마무리로 변신


비록 95 한국시리즈 MVP는 팀의 유격수 김민호가 차지했지만 실질적인 MVP는 진필중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진필중의 활약은 눈부셨다. 1995시즌 이후 진필중은 선발투수로 활약하다가 1998시즌 선발과 마무리를 겸하면서 8승 6패 19세이브를 기록한 이후, 1999년부터 붙박이 마무리로 전환하게 된다. 1999시즌부터 마무리로 전업한 진필중은 ‘애니콜’ 임창용(삼성 라이온즈)과 더불어 리그 최강의 마무리 쌍두마차로 군림한다.


2000시즌 진필중은 마무리 투수로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한다. 59경기에 등판, 73이닝을 던지면서 5승 5패 42세이브, 평균자책점 2.34를 기록한 진필중은 1994년 정명원 이후 두 번째로 40세이브 고지에 도달했다.


하지만 너무 앞만 보고 달려왔던 탓일까. 2001시즌 진필중은 89.1이닝을 투구하며 9승 6패 23세이브를 기록하지만 평균자책점이 전년보다 1점 가까이 높아진 3.22를 기록하며 불안한 징조를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2002시즌을 앞두고 진필중은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메이저리그 진출을 시도하지만 자신의 기대와는 달리 입찰에 응하는 구단이 나타나지 않으면서 진필중은 심리적으로 큰 타격을 입는다.


2002시즌을 마친 후 그는 트레이드로 KIA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는다. 유니폼을 바꿔 입은 진필중의 구위는 전성기 시절과는 거리가 멀었고, 경기를 그르치는 경우가 많아졌다. 4승 4패 19세이브에 그친 그는 마무리로 전업한 이후 처음으로 20세이브 고지 등정에 실패한다. 타이거즈에서 1년 간 활약한 이후 FA 계약을 통해 LG 트윈스 유니폼을 입는다.


트윈스 유니폼을 입은 진필중은 팬들에게 찬사의 대상이 아닌 비난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2004시즌 마무리로 활약하다 2005시즌부터 선발로 전업하지만 더 이상 자신의 구위를 회복하지 못하고 2006시즌 이후 1군 무대에서 자취를 감추게 된다. 2008시즌 진필중은 새로 창단한 우리 히어로즈에 입단하여 재기를 모색하지만 2군 마운드에서 잠시 선을 보였을 뿐 더 이상 1군 마운드에 오르지 못하고 유니폼을 벗는다.


비록 명예로운 은퇴에는 실패했지만 진필중은 팀이 어려운 순간, 그를 필요로 할 때 묵묵히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며 리그 최고의 투수로 자신의 이름을 새겨 놓았다. 아마 시절부터 프로 입단 당시까지 늘 2인자의 설움 속에 살아왔던 진필중은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고 묵묵히 기량을 향상시켜 최고 투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팀이 어려운 순간 위기에서 팀을 구해낸 진필중의 뚝심이 지금 포스트시즌에서 위기에 처한 베어스에게 가장 필요한 예방주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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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양형진

모든 것이 풍요롭게만 느껴졌던 1990년대의 진한 향수가 느껴지는 흔적을 탐사하는 X세대 블로거. 스포츠와 영화를 보고 듣고 쓰는 것을 즐긴다. 늘 끄집어내도 변치 않는(不老) 추억들에 대한 글들을 함께 나누고 싶은 소박한 바램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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