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녀선수들이 많이 포진되어 있다는 배구. 공격수가 아무리 능력을 발휘하려고 해도 제대로 된 토스가 없으면 점수를 따낼 수 없겠죠. 리더가 아무리 유능하다고 해서 팀을 승리로 이끄는 것도 아닙니다. 서로의 팀워크가 이루어져야겠죠? 이렇듯 메인 보컬이 개성을 띄울 수 있는 것은 묵묵히 그들을 받쳐주는 서브 보컬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이번에 소개할 2세대 걸 그룹 서브 보컬은 불길같이 맹렬한 메인들과 비교하면 그 기세가 확연히 드러나진 않지만, 한 결 같이 은은한 매력이 있답니다. 누가 뛰어난 서브보컬인지 살펴볼까요.
소나티네 소유!
씨스타 메인 보컬 효린이 ‘소나타’라면 소유는 ‘소나티네’ 랍니다. ‘작은 소나타’ 란 뜻인 ‘소나티네’ 는 소나타 형식이 작은 규모로 축소된 것을 말하는데요. 언뜻 들어보면 메인 보컬 효린과 비슷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차이가 있답니다. 허스키함에 속이 탁 트이는 고음을 가진 효린에 반해, 소유 역시 허스키하지만, 강력함보다는 ‘공기 반 소리 반’의 ‘공기’가 훨씬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호흡이 많이 섞여 있다면 소유의 목소리죠. 성량이나 기교적인 면에서는 아직 다듬어지지 않았지만, 이 부분이 소유의 단점이자 개성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최근에 발표한 2집 타이틀 곡 「Give it to me」 에서 제대로 느낄 수 있습니다. 첫 소절 ‘서른이 넘기 전에 결혼은 할런지, 사랑만 주다 다친 내 가슴 어떡해라’ 는 가사는 스물두 살의 아이돌이 진지하게 전달하기란 쉽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소유의 그러한 호흡이 긴박함이 있는 탱고 선율에 제격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씨스타 인기곡(So cool, Loving U, 나 혼자) 대부분의 첫 소절을 효린이 첫 소절을 끊었던 것에 비하면 이번에는 소유를 첫 부분에 투입한 것도 그 이유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또한, 긱스의 곡에 피쳐링한 「Official missing you」 , 매드클라운과 함께한 「착해 빠졌어」 는 메인 보컬 효린, 체육 돌 보라, 그리고 연기 돌 막내 다솜에게 밀려 자칫 존재감을 잃을 뻔했던 그만의 단독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곡입니다. 「착해 빠졌어」 에서는 애절함과 짙은 호소력으로 잘 어루만졌지만 다소 과한 점은 기존의 보컬보다 호흡이 많이 차지한 면이 있습니다. 숨소리가 과해지면 자칫 축 처지는 분위기를 초라할 수 있으니 이 점은 앞으로 균형감 있게 조절해야겠습니다.
소유는 1세대 걸그룹 쥬얼리의 서브 보컬 서인영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개성 넘치는 보컬을 갖고 있었지만, 리더이자 메인 보컬 ‘박정아’의 인기가 독보적이었죠. 하지만 해체 후에도 계속된 솔로 활동으로 걸 그룹 출신 타이틀을 희미하게 하고 있으면서. 쥬얼리 멤버 중 현재까지 꾸준히 노래하고 있는 유일한 멤버랍니다. 씨스타의 서브 보컬 소유 역시, 아직은 다른 멤버들에게 가려져 존재감이 흐릿하지만, 지금처럼 피처링 참여, 솔로 활동 등으로 계속해서 노래 곁에 머무를 가수가 아닐까 합니다.
세컨드 메인 보컬 제시카!
도도한 외모에 조용조용한 말투는 ‘얼음공주’ 라는 닉네임에 더할 나위 없는데요. 노래하는 목소리 역시도 새침하답니다. 2009년 <김정은의 초콜릿>에서 들려준 「Fly me to the moon」 을 들어보면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부드러운 영어발음은 물론, 제시카 특유의 옅은 떨림이 더욱 매혹적으로 들리는 선곡이었습니다. 가녀린 음색이 재즈 사운드에 더해지니 바에 온 듯한 분위기도 물씬 풍겨냈습니다. 화려한 걸 그룹 군무를 잠시 차단한 채 나긋나긋 무대를 걸어 다니던 자태도 아름다웠습니다. 제시카는 두성이나 흉성 등의 전문적인 발성을 소유하지 않아도, 은은한 고급스러움을 연출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곱디고운 목소리가 건조하게 들릴 때가 있습니다. 아쉽게도 가끔 라이브 무대에서 음 이탈을 내기도 하는데, 수분 보충과 꾸준한 연습으로 기술적인 면을 보완하면 더욱 월등해질 것으로 생각됩니다.
걸 그룹 활동 곡이 아닌, 자유곡을 부를 때면 선호하는 음악 성향을 알 수 있는데요. 제시카도 본인이 잘 부르고 자신만의 색채를 드러낼 수 있는 곡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Sixpence None The Richer - 「Kiss me」 , Mandy Moore - 「Only hope」 , M2M - 「Don't say you love me」 , 제이 - 「어제처럼」 , 에즈원 - 「원하고 원망하죠」 등 어떤 분위기 인지 감이 오지 않나요? 생기발랄하고 사랑스럽거나, 아련한 알엔비 장르의 곡이 다수랍니다. 그래서인지 소녀시대의 댄스곡보다는 발라드곡 「Dear Mom」 , 「오빠 나빠」 등에서 훨씬 음색 전달력이 강합니다.
아무리 얼음공주라 할지라도 노래를 하는 모습만큼은 ‘예쁜 척’은 없는 제시카. 고음 구간에 콧구멍이 커지고 입이 커지는 그 진지함마저 아름답죠?
본격적인 영역확장 원더걸스 예은!
본인만의 ‘보컬 정체성’이 잡히기 전부터 일찍이 트레이닝을 받으면 노래를 할 때에 안 좋은 습관이 남아 있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불러내죠. 예를 들면 원더걸스 선예, 투에이엠 조권, 소녀시대 태연 등이 그렇습니다. 하지만 본인의 스타일을 어느 정도 확립한 후에는 정석대로 부르기가 쉽지 않습니다. 즉 담백하게 부르는 것이 잘되질 않고 기교를 넣어 부르는 것이 오히려 스스로 더 편안하게 느낄 것입니다. 그것을 데뷔 전과 데뷔 초 예은이 증명한 것 같습니다.
데뷔 전 원더걸스 UCC 오디션에서 부른 「Joyful Joyful」 에서, 언뜻 들어보면 고등학생이라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출중한 실력을 갖춘 것으로 들리겠으나 자세히 살펴보면 그렇지 않았답니다. 선곡 자체가 워낙 화려한 탓도 있지만, 바이브레이션이 필요 이상으로 과도하고 끝 음 처리도 분명하지 않았습니다. 기교가 듬뿍 담겨있고 화려한 스타일의 보컬은 자기가 할 수 있는 노래만 소화를 잘해낸다거나 유독 고음구간에서만 실력을 발휘하는 수가 있습니다. 가슴으로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기교나 개성이 뚜렷한 음색의 보컬을 들려주는 것이죠. 데뷔곡 「아이러니」 의 라이브 무대, 이어서 「텔미」 가 그러했습니다. 마침 2012년 KBS <이야기 쇼 두드림>에서 얘기했습니다. “「텔미」라는 곡을 처음 받고, 바이브레이션을 넣어 불렀는데 이 노래는 깔끔하게 불러야 한다며 바이브레이션을 모두 빼라는 지적을 받았다” 며 녹음하는 순간부터 힘들었음을 얘기했습니다. 학창시절 보컬 동아리를 하면서부터, 오디션을 볼 때에도 항상 알엔비 창법을 구사한 그에게는 힘이 들었을 것입니다. 자꾸 바꾸려고 노력했지만 쉽게 되지 않아 힘들었고 무대를 설 때마다 음 이탈이 자꾸 나서 무대에 서는 것이 두려웠다고 합니다. 이미 자신의 보컬 정체성이 잡히고 난 후였고, 「텔미」 라는 곡 역시도 본인이 추구하는 장르가 아닌 콘셉트나 퍼포먼스에 취중을 한 곡이었기 때문에 워낙 적응이 안 됐을 겁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습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밤을 새워가며 끊임없이 노력한 결과 나중에 본인이 작사 또는 작곡에 참여한 곡(Hello to my self, Girls girls)에서는 한층 가벼워진 음색에 필요 없는 멋은 잘라내고 적당한 테크닉까지 프로다움이 깔려있습니다. 직접 써내려간 노랫말에 진솔함도 묻어있죠.
그뿐인가요? MBC <피크닉 라이브 소리, 풍경>이라는 프로그램에서는 인디밴드 ‘몽니’ 와 호흡을 맞추었는데, ‘아이돌+인디밴드’ 라는 낯선 조합도 무색하게 할 만큼 손발이 척척 맞는 무대를 자랑하기도 했죠. 연습을 이어가던 중에도 자작곡을 만들어내는 열정도 발휘했다고 합니다. 몽니와의 콜라보레이션을 펼치면서 새로운 경험을 하고, 본인 스스로 빚어낸 곡으로 호흡을 맞춰나가는 것이 자신이 맞지 않는 옷을 입었다고 했을때 보다 더욱 편안해 보였습니다.
빼어난 비주얼속에 가려진 보컬 다비치 강민경
외모는 내로라하는 절세가인이지만 부족한 가창력이 치명적인 약점인 걸 그룹 아이돌은 부지기수입니다. 그러나 강민경은 좀 특별합니다. 무수히 쏟아지는 걸 그룹 멤버들 중에서도 손으로 꼽힐 만큼 빼어난 미모를 자랑하지만, 실력이 묻히는 경우입니다. 아이러니하죠. 성대에 피가 날 정도로 노력했다고 하지만 리드보컬 이해리의 보컬은 출중하고, 작사를 하고 피처링에 참여해도 대부분의 대중은 곡에 젖어들기보다는 강민경의 외모나 몸매, 그리고 그가 어떤 옷을 입었는가를 더 보게 될 뿐입니다. 가수가 노래를 잘해야 가수라는 생각을 굳게 가진 그의 설움을 누가 알까요. 그간의 마음고생은 <불후의 명곡>에서 토해냈나 봅니다. 패티김의 「이별」 , 신중현의 「꽃잎」 등은 리드보컬 이해리 없이도 흔들림이 없이 전곡을 불렀으며 김광석의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는 최종우승을 안겨주기도 했죠. 오히려 불후의 명곡에서는 비주얼 역시 눈에 띄기도 했지만, 그것들이 가려질 만큼의 충분한 실력을 선사했답니다. 살 다보면 지천을 넘나들 만큼 약이 오를만한 일들이 생기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 과정일 뿐입니다. 이를 제대로 증명하는 강민경은 가수로서 더욱 성숙해져 가고 있는 예입니다.
이미지와는 반전감이 있는 목소리에는 중저음의 깊이감이 있습니다. (2006년 데뷔 한 ‘씨야’ 의 멤버 남규리도 그러하죠.) 자신의 파트도 명확합니다. 다비치 대부분 곡의 첫 소절을 끊고 시작하거나 화음구간에는 메인 멜로디를 담당하죠. 중저음 목소리가 강점인 탓인지 2008년 데뷔 곡 「미워도 사랑하니까」를 시작으로 「사고 쳤어요」 , 「안녕이라고 말하지마」 등 떠나간 연인을 기다리는 애절함을 충분히 소화합니다. 하지만 아쉬운 점은 강민경의 중저음 보컬이 음역을 확장하려 하면 가끔 먹먹하고 울부짖는 것처럼 들립니다. 그래서인지 「사랑과 전쟁」 , 「My man」 과 같이 밝거나 미디움 템포의 곡도 다소 어둡게 들리기도 하는데, 답답한 체증을 풀어줄 세심한 안목이 필요하겠습니다.
안드로메다형 걸 그룹 에프엑스의 크리스탈
걸 그룹의 일률적인 콘셉트 노선은 “보호본능을 끄집어내는 가녀린 요정 → 세련된 성숙미 → 비축이라도 해놓은 듯한 관능미 → 더 나아가, 여성미에서 탈피하는 반항적인 모습” 입니다. 에프엑스는 이 모든 전유물을 거부합니다. 오직 10대만의 세계를 정교하게 구현합니다. 서브 보컬 크리스탈은 그러한 표상을 더욱 짙게 하지 않나 싶습니다.
시종일관 눈웃음으로 큐티 빔을 쏘는 다수의 걸 그룹들에 반해 크리스탈은 가만히 있기만 해도 왠지 모를 우아한 기품이 흐릅니다. 팀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 시키지도 않은 행동을 한다거나, 묻지 않는 말에 나서서 대답하는 경우도 없습니다. 엉뚱하고 호기심 가득한, 그리고 자신만의 세계에 묻혀 있는 10대 소녀의 면을 에프엑스는 연출하고 있고, 크리스탈은 그러한 것들 속에 본인도 모르게 가장 스며들어있고, 자연스레 무대에서 표출되는 것이 에프엑스를 제작하는 연출의도와 맞아 떨어지지 않나 싶습니다. 특히 「일렉트릭 쇼크」 에서 고스란히 재현합니다. 단연 크리스탈의 매력발산 최대치라고 할 만큼의 에너지를 선사하죠. 날카로운 선율 속에 고고한 그의 보컬이 돋보입니다. 전기충격과 같이 아슬아슬하고도 찌릿함을 밀고 당기면서 불러냅니다. 날카로운 바늘에 찔려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그의 고고한 보컬에는 냉정하고 차가움이 묻어나지만 10대 소녀들만이 가질 수 있는 종잡을 수 없는 톡톡 튀는 매력도 담겨 있습니다. 이렇듯 앞으로 독보적인 콘셉트를 소유하고 있는 것도 좋지만 10대 연령층을 뛰어넘어 여러 층을 어루만지는 안목도 생긴다면 더할 나위 없겠습니다.
글/ 허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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