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그곳에 가면 행복할까? - 《곰스크로 가는 기차》, 프리츠 오르트만
“그 모든 순간마다 당신은 당신의 운명을 선택한 것이지요.”
곰스크! 실제로 존재하는지 알 수도 없는 이 도시는 어린 시절부터 주인공이 꿈꾸던 이상의 도시였다. 아주 어릴 적 주인공은 아버지로부터 곰스크라는 도시의 존재를 듣게 되었고, 아버지의 이야기 속에서 곰스크를 꿈꾸게 되었다. 그때부터 주인공의 유일한 꿈은 곰스크가 되었다. 언젠가는 반드시 그곳에 가리라고 매일 같이 꿈꾸었고, 드디어 아내와 함께 그곳으로 가는 기차를 타는 것이 바로 이 소설의 시작이다.
156몇 년 전만 하더라도 내겐 닮고 싶은 롤 모델이 참 많았다 . Y에게는 감각적인 어휘력과 매끈한 문장력을, B에게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의 막강한 네트워크를, H에게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줄 아는 리더십을 닮고 싶었다. 그래서 난 무조건 그들과 친해지기 위해 노력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노력 덕분에 지금의 난 롤모델을 잃어버렸다.
“사람이 원한 것이 곧 그의 운명이고, 운명은 곧 그 사람이 원한 것이랍니다. (중략)
그 모든 순간마다 당신은 당신의 운명을 선택한 것이지요.”
감각적인 어휘력을 자랑하던 Y에게는 신경질적인 예민함과 남을 아래로 보는 나쁜 습성이 있었고, 막강한 네트워크를 자랑하던 B는 여기서 하는 말과 저기서 하는 말이 달라 어느 것이 그 사람의 진정한 속내인지 알 수 없었다. 또한 리더십이 뛰어났던 H는 남들 마음에 끌려다니다 정작 자신의 마음은 피폐해지고 결정력마저 희미해지는 부작용을 갖게 되었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증명하듯, 내 이상의 현실은 내가 꿈꾸던 것과 너무나 달랐다. 이상은 이상으로 남아 있을 때만 이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던 때, 이상향을 그린 책 《곰스크로 가는 기차》를 읽게 되었다. 곰스크! 실제로 존재하는지 알 수도 없는 이 도시는 어린 시절부터 주인공이 꿈꾸던 이상의 도시였다. 아주 어릴 적 주인공은 아버지로부터 곰스크라는 도시의 존재를 듣게 되었고, 아버지의 이야기 속에서 곰스크를 꿈꾸게 되었다. 그때부터 주인공의 유일한 꿈은 곰스크가 되었다. 언젠가는 반드시 그곳에 가리라고 매일 같이 꿈꾸었고, 드디어 아내와 함께 그곳으로 가는 기차를 타는 것이 바로 이 소설의 시작이다.
그런데 기차가 출발하자 아내가 불안에 떨기 시작한다.
“우리는 점점 익숙한 곳에서 멀어지고 있어요. 이 여행은 끝이 없을지도 모르죠. 언젠가 들은 남의 얘기 말고 곰스크라는 도시에 대해서 들은 말이 또 있나요? 그곳은 당신이 어린 시절 아버지한테 들은 그 곰스크와는 다른 도시일지도 모르잖아요.”
그리고 곰스크로 향해 가던 기차가 멈춘 간이역에서 아내는 남편에게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산등성이에 올라가 노을을 보자고 제안하며 시간을 끌기 시작한다. 다시 기차가 떠나기까지는 2시간 남짓의 여유가 있었기에 주인공은 아내를 따라 마을 뒷산에 올랐다. 하지만 지나치게 늑장을 부리는 아내 때문에 결국 곰스크행 기차를 놓친다.
아내의 이상한 태도는 그날부터 시작되었다. 언제 올지 모르는 곰스크행 기차를 기다리며 어쩔 수 없이 묶게 된 한 여인숙에서 아내는 마치 그곳에 눌러살 사람처럼 정성스럽게 방을 닦고, 이것저것 수리를 하고, 여행 가방에 있던 옷들을 다 꺼내 장롱에 차곡차곡 걸어 놓는다. 다음 날에도, 그 다음 날에도 아내는 떠나자는 주인공의 말을 무시한 채 느긋함을 보인다. 아내는 여기 더 있다가 가면 무슨 큰일이라도 생기냐며 보채는 남편을 타이른다. 심지어 표의 유효기간이 지나 새롭게 표를 사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남은 돈으로 ‘안락의자’를 사와 곧 ‘떠날’ 집 안에 들여놓는다.
주인공은 그런 아내를 이해할 수 없었다. 떠나기 전만 하더라도 분명 아내도 함께 가고 싶어 하는 줄 알았는데, 갑자기 아내의 태도가 돌변한 것이다. 아내가 그럴수록 곰스크에 대한 주인공의 갈망은 더욱 깊어졌고, 하루빨리 이 마을을 떠나 그곳에 가고 싶은 조바심마저 생겼다. 주인공과 아내의 갈등은 드디어 열심히 모은 돈으로 곰스크행 티켓을 샀을 때 최고조에 이른다. 아내가 안락의자를 가지고 가야 한다며 생떼를 부리기 시작한 것이다. 화가 난 주인공은 혼자 가겠다며 기차에 올랐고 끙끙대며 안락의자를 끌고 온 아내는 의자를 가져가지 않는다면 자신은 이 작은 마을에 남겠다고 버텼다.
과연 이들의 여정은 어떻게 될까? 주인공은 곰스크에 갈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대답은 읽는 이들을 위한 배려로 남겨놓으려 한다. 곰스크에 대한 주인공의 갈망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주인공에게 곰스크는 이유도 없는 단순한 갈망의 대상이 되어버린 도시였다. 그곳에 가기 위해서 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문제는 그러는 사이 정작 자신이 가지고 있는 많은 것을 놓쳤다는 것이다. 그는 그곳에 있지 않은 지금의 자신은 불행하다고, 이건 내가 원한 삶이 아니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정말 그랬을까? 마지막에 한 노인이 주인공에게 이런 충고를 건넨다.
우리는 늘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일보다는 하지 못한 수많은 일에 대한 미련을 가지고 지금을 그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고 치부한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역시 자신의 선택이었다. 그 누구도 지금 당신이 하는 일을 하라고 떠밀지 않았다. 당신은 늘 주어진 현실에서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지금은 우리 스스로가 선택한 운명이다.“그 모든 순간마다 당신은 당신의 운명을 선택한 것이지요.”
주인공 역시 현실이 아닌 다른 이상의 공간에서 행복을 찾았다. 지금의 나의 모습이 아닌 다른 사람의 모습에서 이상을 찾으려고 했기 때문에 엉뚱한 곳에서 길을 잃고 헤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지금 내 옆에 있는 아내, 나를 둘러 싼 친구들,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다. 행복은 그리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는 너무나 당연한 진리를 난 《곰스크로 가는 기차》를 읽으며 깨닫게 되었다.
이 책에는 <곰스크로 가는 기차> 외에 7편의 단편이 더 수록되어 있다. 또 다른 단편인 <배는 북서쪽으로>도 돋보이는 작품이다. 목적지가 서로 다르며 선장조차 자신이 정확히 어디로 향하는지 모르는 배에 탄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배에 탔지만 그 안에서 모두가 방향을 잃어버린 혼란스러움을 느낀다는 스토리다. 프리츠 오르트만의 단편들은 그 플롯이 매우 단순하지만 독자들에게 남기는 여운은 참 길고도 깊다. 많은 이가 이 책을 통해 자신의 삶의 방향과 삶의 목적을 찾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 ||||||||||||||||
관련태그: 곰스크로 가는 기차, 프리츠 오르트만, 야밤산책
6년 전 어느 날 누군가가 버리고 간 책 무더기에서 《리듬》이란 책을 발견하고 그 책에 감명 받아 그날부터 ‘리듬’이 되기로 했다. “나는 변하지 않는 것이 좋다. 바람처럼 하늘처럼 달처럼…… 변하지 않고 있어주는 것이 좋다”는 책 속 구절처럼 변하지 않고 늘 그 자리를 지켜주는 책의 매력에 빠졌고, 그때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다.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1년에 단 한 권의 책도 제대로 읽지 않았지만, 흔들리던 20대 중반 책으로부터 큰 위로를 받아 출퇴근길 지하철을 독서실 삼아 닥치는 대로 읽기 시작했다. 읽은 책은 꼭 블로그에 기록을 남겼고, 그렇게 남긴 기록이 차곡차곡 쌓여 이제 50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다녀간 유명 블로거가 되었다. 애서가이기는 하나 장서가는 아니라 소장한 책이 1,000권을 넘은 뒤로는 적정량의 책을 유지하게 위해 읽은 책은 과감하게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하고 있다.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중어중문학을 전공했으며, 중국 22개 성 모두를 여행하는 게 꿈이다. [대학내일] 인터뷰와 [우먼센스], [쎄씨] 등에서 책벌레로 소개되며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4년 연속 네이버 책 분야 파워블로거로 선정되었다. 지금은 제이 콘텐트리엠앤비에서 기획자로 일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잘나가는 회사는 왜 나를 선택했나?》(공저) 등이 있다.
<리듬의 달콤 쌉싸름한 일상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