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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P 13] 평생 잊을 수 없는 것들에 관하여 - <드보르작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

진정한 ‘프라하의 봄’을 듣고 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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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보르작의 교향곡 9번을 들으면,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다. 영화의 장르는 SF다. 귀를 기울이게 할 만큼 고요하게 시작했다가 웅장하게 팡파레가 터지는 도입부는, 우주선을 타고 우주 공간을 유영하는 기분이 들게 한다. 앞으로 얼마나 흥미로운 여행을 하게 될지 기대감을 한껏 높이는 시작이다. 영화 <스타워즈>나 <스타트렉>의 한 부분에 그대로 얹혀도 좋을 만큼 말이다.

한번 가보면 잊히지 않는 도시, 프라하


전 세계에 수많은 나라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체코는 내가 손에 꼽을 만큼 좋아하는 도시다. 매년 여행을 떠날 때마다 새로운 나라의 호기심이 나를 자극하지만, 체코에 대한 그리움도 대단히 커서, 새로운 나라를 여행할지, 다시 체코에 다녀올지 한번은 꼭 고민하게 된다.

체코는 오래 시간을 두고 천천히 여행할수록 좋은 도시다. 그림 같은 빨간 지붕. 강을 따라 아기자기하게 어우러져 있는 집. 동네 풍경을 만끽할 수 있는 트램, 해 질 녘, 한밤중, 새벽마다 얼굴을 달리하는 까를교, 맛있는 음식과 더 맛있는 맥주까지. 체코는 그대로 일 년이고 이년이고 살아도 좋겠다 싶은 여행지 중의 하나다.

그렇게 프라하에서 일상 같은 여행을 즐기고, 근처 오스트리아 빈으로 넘어갔는데, 맙소사. 나는 하루 만에 프라하가 그리워졌다. 프라하보다 훨씬 널찍하고 잘 닦은 길이나, 육중하고 거대하게 지어진 빈의 건물들은 굉장한 삭막함을 안겼다. 물론 프라하에 워낙 애착이 많았기 때문이었겠지.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프라하 때문에 내 기억 속에 빈은 밋밋한 도시로 남았다.

그저 보름을 머물렀던 여행자에게도 이런 그리움을 남기는 프라하니, 그 도시가 고향인 드보르작이 미국에서 앓았을 향수병이 어련했을까. (그 마음 압니다. 아무렴. 이해하고 말고요.) 이번 주 미션곡 <드보르작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가 드보르작이 미국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에서 쓴 음악이라는 얘기를 마 선배에게 들었을 때, 이 음악이 내게 한 발짝 더 다가오는 기분이었다.

나는 드보르작이 그리워했던 것들을 상상해보며 이 음악을 들었다. 곡 자체가 워낙 극적이고 전개가 흥미로워서, 사전 설명 없이도 재미있게 들을 수 있는 곡이지만, 다른 곳도 아니고 프라하라는 도시를 품고 있는 음악이라니, 음악을 들을수록 아련하게 프라하의 풍경과 분위기, 그 속에서 느꼈던 설렘이 마음속에서 출렁거렸다.


원조 보헤미안 드보르작


쿠벨릭이 연주하는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

“드보르작은 체코 보헤미아 지방의 한 시골에서 태어났어. 그래, 바로 그 원조 보헤미안인 셈이지. 아버지는 정육점을 경영했고,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가업을 물려주려고 했지만, 드보르작은 계속 음악을 공부하길 원했어. 결국 정육점을 경영할 수 있는 자격증까지 따내야 했지만, 음악적 재능 역시 두드러졌기 때문에 친척의 원조로 프라하 음악학교로 유학도 떠나게 돼.

그때 체코의 국민 음악가 스메타나에게 음악을 배웠고, 30대에는 브람스의 눈에 띄어 심적 물적으로 든든한 지원을 받으며 음악적 교류를 하게 돼. 브람스의 추천으로 출간한 드보르작의 악보집이 큰 인기를 얻게 되면서 전 유럽에 이름을 떨치는 음악가가 됐지.

1891년에 드보르작은 프라하 음악원 교수로 임명되는데, 얼마 되지 않아 뉴욕 국립음악원 원장으로 제안을 받아. 거액의 급여는 물론이고, 파격적인 휴가까지 조건에 달아 든든하게 음악적 지원을 해주겠다는 제안이었어. 그렇게 미국으로 건너가 3년 동안 음악원에 재직하면서 쓴 곡이 바로 이 <교향곡 9번>이야. 그래서 제목이 말하는 ‘신세계’는 미국을 뜻한다는 게 지금의 정설이지.”


드보르작의 교향곡 9번을 들으면,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다. 영화의 장르는 SF다. 귀를 기울이게 할 만큼 고요하게 시작했다가 웅장하게 팡파레가 터지는 도입부는, 우주선을 타고 우주 공간을 유영하는 기분이 들게 한다. 앞으로 얼마나 흥미로운 여행을 하게 될지 기대감을 한껏 높이는 시작이다. 영화 <스타워즈>나 <스타트렉>의 한 부분에 그대로 얹혀도 좋을 만큼 말이다.

2악장은 어떻고? 큰 전투가 끝난 뒤, 살아남은 대원들이 감격에 찬 채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이 있다면, 이 음악에 딱 어울린다. 당분간은 아무 일도 없을 거라고. 당장에라도 엔딩 크레딧이 솟구쳐 올라올 것만 같은 분위기의 곡이다.

“2악장의 편안한 선율에는 노래가 붙었는데 제목이 ‘going home'이야. 역시 이 곡에서 느꼈던 컴백홈 정서는 만국 공통이었던 모양이야. 소년 합창단이 부른 ’going home‘을 들어봐. 당장 짐 싸들고 집에 돌아가고 싶어지는 곡이라니까.”


소년합창단 리베라가 부르는 Going Home

하지만 영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강렬한 알림 음으로 시작되는 3악장은 집에 돌아간 대원들을 다시 호출한다. 우리가 지금 즉시 떠나야 할 곳이 어딘지 서둘러 알려주는 듯한, 앞날의 모험을 격려하는 듯한 음악. 그리고 하이라이트인 4악장이 이어진다.

누구나 들으면 ‘아하’하고 고개를 끄덕일만한 유명한 전주가 있는 곡이다. “악장마다 색이 확연히 다르고, 매 악장이 매력적인 이 곡은, 새로운 세상에 대한 가슴 벅찬 희망과 동시에 고향에 대한 아련한 향수가 잔잔히 느껴지는 약간은 아이러니한 느낌의 곡이지.”

영화 <조스>의 OST가 이 음악을 배경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신세계로부터’ ‘고향을 그린’ 곡이 공포영화 <조스>에 이렇게나 잘 어울린다는 게 오묘하긴 하지만, 그만큼 예측 불가하게 뻗어 나가는 선율, 끊임없이 반전하는 분위기, 풍성한 연주가 매력적인 음악이다. 모차르트나 베토벤 교향곡과는 또 다른 분위기, 독특한 에너지가 있는 곡이다.

“드보르작은 어떻게 이런 곡을 쓰게 되었을까? 드보르작이 미국에서 접한 흑인영가 등의 민속 선율에 관심이 많았고, 거기에서 영감을 받아 이 작품을 썼다고 해. 클래식과 민속선율. 얼핏 보면 어울리지 않는 장르 같지?”

“그런 데에 관심을 보이고 영감을 얻은 건, 역시 보헤미안이라는 그의 정체성과 관련이 있는 걸까요?”

“영향이 없진 않겠지? ‘보헤미안’의 사전적 정의를 보면, 규칙이나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방랑하며 사는 사람을 말해. 집시들에게서 유래된 말이지. 보헤미아 지방에 집시들이 많이 모여 살았는데,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떠도는 그들의 문화가 지역특색이 된 거지. 그들의 음악과 춤 솜씨도 유명하잖아?

어릴 때부터 이런 환경에서 자란 드보르작은 민속 음악에 관심을 많이 두고 있었고, 자기 음악에 그 선율들을 즐겨 사용했어. 드보르작이 스메타나와 함께 대표적인 민족주의 작곡가로 꼽히는 것도 이러한 성향 때문이고. 그런 그가 미국에서 흑인 영가나 인디언 음악에 관심을 가진 건 그로선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지.”



진정한 프라하의 봄을 연주한, 라파엘 쿠벨릭


“이 곡 역시 인기가 많아서 많은 지휘자가 앨범을 남겼는데, 역시나 같은 체코 출신의 지휘자 라파엘 쿠벨릭의 연주를 최고로 쳐. 아무리 음악은 국제적인 언어이긴 하지만, 아리랑을 다른 나라 사람이 연주해서 최고로 꼽히는 일은 상상하기는 좀 어렵잖아?

체코는 여러 걸출한 지휘자를 배출했는데, 바츨라프 탈리히, 라파엘 쿠벨릭 그리고 현대에 와서는 바츨라프 노이만이 그대를 잇고 있어. 체코 음악가들의 음악은 이 사람들 연주를 믿고 들으면 돼.”


라파엘 쿠벨릭은 낯선 이름이지만, 프라하의 음악사에서 잊히지 않는 한 장면을 연출한 지휘자다. 20살의 어린 나이로 체코 필하모닉을 이끌고 데뷔한 지휘 신동이었고, 이내 상임 지휘자로 선임되었지만, 조국의 상황이 그를 내버려두지 않았다. 체코가 나치의 통치하에서 겨우 벗어나는가 싶었던 1948년, 체코가 공산주의 물결에 휩쓸리면서, 공산주의 정권에 반대한 라파엘 쿠벨릭은 서방으로 망명해야 했다.

“그 이후로 1989년에 체코의 민주혁명이 성공할 때까지 40여 년을 미국과 유럽을 떠돌며 살았지. 그런데 떠돌았다는 표현은 정확하지 않은 표현일 수도 있겠다. 각 나라에서 대표 오케스트라의 지휘를 맡으며, 밖에서도 잘 나갔던 분이니까 말야.”


1990년 프라하의 봄 축제 실황 영상

1986년에 지병으로 은퇴했지만, 체코 민주혁명이 성공한 이듬해인 1990년에 열린 역사적인 "프라하의 봄 음악제"에서 42년 만에 체코 필하모닉을 이끌고 다시 지휘대에 섰어.” 민주화가 된 조국에서 40년 만에 선 무대였다. 은퇴한 상황이었음에도, 당시 바츨라프 하멜 대통령의 요청으로 서게 된 무대였다.

지휘자로서 무대에 섰을 때, 그가 연주하는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을 관객들이 들었을 때, 기분이 어땠을까? 선배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감격스러울 정도였다. 그날 곡을 연주하는 내내, 객석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때 그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은, 아마 그때 그 음악을 평생 잊지 못할 거다. 영광스럽게도, 그날의 실황 영상과 음반이 남아 있다.

“이때의 ‘프라하의 봄 음악제’는 관객에게도, 지휘자에게도 남달랐겠지. 진정한 ‘프라하의 자유의 봄’을 연주했을 테니까 말이야. 체코도 역사적으로 격동에 휘말린 시간이 많아서, 우리나라 사람들과 비슷한 정서가 있나 봐. 우리나라 사람들이 ‘한민족’이라는 말을 들으면 가슴속에 끓어오르는 무언가를 느끼듯이, 체코 사람들 역시 드보르작이나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 같은 음악을 들으면서 민족에 대한 향수를 느꼈을 거야.

쿠벨릭은 그다지 많은 연주를 남기지는 않았고, 세련되고 섬세함과는 거리가 멀었어. 대신 직설적이고 거침없으며 강렬한 개성이 있어. 흔히 쿠벨릭의 연주는 ‘중독된다’라고들 해. 특히나 스메타나와 드보르작 같은 체코 음악가들의 연주에 대해서는 그냥 믿고 들으면 된다고 할 정도로 훌륭하지. 오늘 선정된 음반에 같이 수록된 <교향곡 8번>도 혹자는 <교향곡 9번>을 능가하는 명곡이라고 평하는 이가 있을 정도니, 보너스라고 생각하고 같이 들어보도록 하자“



두 번째로 선택된 음반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 드보르작 :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 / 스메타나 : 몰다우

두 번째로 많이 선택된 음반은, 역사상 가장 유명한 지휘자, 이미 칼럼에 몇 번 등장한 적이 있는 카라얀이다. 교향곡에서는 뭐든지 둘째는 가는 카라얀의 인기는 가히 대단하다. 이 곡은 카라얀이 특히 맘에 들었던지 여러 번의 녹음을 남겼는데, 이 음반이 5번째 녹음이다. 특히 관악기와 현악기가 경쟁하듯 화려하게 어우러지는 4번째 악장에서는 그의 매력을 한껏 느껴 볼 수 있다. 그를 뒷받침 해주는 카라얀 골드 시리즈의 깨끗한 음질 또한 감상의 즐거움을 더해준다.

이 음반도 들어보세요

   이반 피셔 : 드보르작 : 교향곡 8, 9번 “신세계로부터”

필립스의 인기 반이 채널클래식스에서 SACD로 다시 제작된 이 음반은, 멀티채널로 듣는 이 곡이 이렇게 좋구나라는 점을 깨닫게 해준 음반이다. 체코의 옆 나라 헝가리출신의 이반 피셔와 부다페스트 오케스트라는 역시나 드보르작의 매력을 제대로 살려주고 있다. 따뜻하고 섬세하면서도 소리를 내야 할 때는 제대로 내어주는 연주가 자꾸 손이 가게 만드는 매력적인 음반.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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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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