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미개한 사회를 향한 쓴 소리: <노리개>, <공정사회>

숨겨진 진실, 공정하지 못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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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작은 목소리가 큰 목소리가 되는 그 날까지, <공정사회>와 <노리개> 같은 영화들은 계속 만들어지고 쓴 소리를 들려주어야 한다. 영화 한 편이 세상을 바꿀 수는 없겠지만 그 쓴 소리를 듣고 변한 마음이 모이면, 조금씩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힘을 가진 수컷이 호령하는 정글 속에서 한 숨만 쉬면서 살 수는 없지 않은가?


<도가니>

2011년 공지영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도가니>는 충분히 처벌받지 않은 악마들이 여전히 득세하며 사는 우리나라의 현실, 그 바닥을 헤집어 놓았다. 법원, 종교, 학교, 종교인, 교사, 어느 누구도 제 정신이 아니다. 사립학원의 선생이 되기 위해 바치는 뇌물, 학원 비리를 눈감아주는 부패경찰, 전직 판검사 변호사 개업 시 유리한 판결을 내려주는 전관예우, 자기 관할이 아니라며 책임을 떠넘기는 시청과 교육청, 안하무인의 기독교 교단, 물대포와 최루탄으로 진실을 짓밟는 공권력까지…….진실에 맞서 싸울 수 없는 한국사회의 부패가 극에 이르렀음에도, 힘없는 개인은 맞서 싸울 힘조차 없다는 처절한 자괴감에 빠진 관객들은 공분하기 시작했다. 이런 공분의 여론 덕분에 2011년 11월에는 일명 ‘도가니법’이 상정되는 등 사회적인 여파도 컸다.


<부러진 화살>


<돈 크라이 마미>

정지영 감독의 <부러진 화살>은 석궁테러라 불리는 사건을 바탕으로 사법부의 문제점을 통력하게 비꼬는 영화였고, 개봉 이후 사법부를 질타하는 대중의 목소리가 커졌다. 80년 광주의 비극을 담은 <26년>과 고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자전 수기를 토대로 극화한 <남영동 1985>, 용산 참사 사건을 다룬 <두 개의 문>이 순차적으로 개봉되면서 사회 문제를 통렬하게 꼬집고 비판했으며, 2012년 성폭행 당한 딸의 자살로 인해 가해자를 직접 처벌하기에 이르는 엄마의 참담한 복수극 <돈 크라이 마미>로 이어졌다.


<노리개>

4월에는 한국사회에서 죄의식 없이 가해지는 성폭행의 잔인한 현실 <공정사회><노리개>가 개봉되어 관객과 만나고 있다. 한 여배우의 자살 사건 후 진실과 정의를 쫓는 기자와 검사가 죽음의 진실을 알리고자 거대 권력 집단에 맞서 싸운다는 이야기를 그린 <노리개>는 연예인 지망생과 신인 여배우들에게 자행되는 성상납 요청과 그 배후에 숨어있는 기득권의 치졸함을 고발한다. <노리개>는 4년 전 억울한 자신의 처지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죽음을 선택한 나약한 신인 여배우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그러면서 영화는 사회의 구조를 갑과 을로 나뉘는 철저한 상하관계로 도식화하면서 연예기획사에서 톱 배우를 보호하기 위해 성접대용 배우를 대타로 내세우는 지독한 현실까지 파고든다. 여배우의 죽음 이후 공권력이 움직이는 방식은 예상보다 훨씬 더 치졸하다. 변호사는 학연을 들먹여 검사를 회유하고, 심지어 검사를 협박한다. 판사 역시 정의보다는 명예와 위신이 더욱 중요하다. <노리개>는 이 지점에서 영화적인 스토리텔링 보다는 시사 고발의 역할에 초점을 맞춘다. 이미 너무 익숙한 이야기가 단편적인 인물들에 의해 나열되어 긴장도가 떨어지고, 관객에 앞서 감독이 이미 너무 화를 내고 있어, 화를 넘어선 설득력을 가지지 못하는 점은 아쉽다. 하지만 <노리개>에는 네티즌을 대상으로 영화 홍보비 크라우딩 펀딩을 시도해 2,500만원을 모으는 등 제작과 개봉을 위해 고군분투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공정사회>

이지승 감독의 <공정사회>는 열 살 된 딸을 성폭행한 강간범을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엄마의 복수극을 그리고 있다. 경찰의 무책임함과 성폭행 피해자에 대한 가혹한 수사과정, 가족에게 조차 외면 받는 현실을 드러내며 관객들의 마음을 쥐어뜯는다. 하지만 <돈 크라이 마미>에 비한다면 <공정사회>의 복수는 훨씬 더 잔인하고 통렬하다. 그리고 소스라치게 놀랄 그 복수는 <노리개>의 미지근한 결말에 비한다면 관객들에게 후련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 받지 못한 ‘아줌마’의 추적극 속에는 아동성폭행 문제뿐만 아니라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만 여기는 남성 중심의 사회에 대한 비판도 폭넓게 담겨있다. 2012년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된 뒤 코스타리카 인터내셔널 필름페스티벌 최우수 장편영화상, 라스베이거스 네바다 필름페스티벌 플래티넘 어워즈, 위스콘신 벨로이트 국제영화제 작품상, 2013 어바인 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 등 해외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영화를 위해 배우부터 스태프까지 모두 노개런티로 참여한 덕에 순제작비 5,000만원으로 제작된 <공정사회>는 시사회에 참여한 주부 1,000 여명이 서포터스를 자청하고 나서는 등 작은 힘들이 모여 만들어진 의미 있는 작품이 되었다.


<노리개>


<공정사회>

<노리개><공정사회>를 보면서 가장 분노하게 되는 순간은 두 영화의 가해자들이 너무 떳떳하다는 것에 있다. <노리개>의 언론사주와 그를 변호하는 변호사는 ‘그깟 여배우 하나 죽은 걸로…….’라고 하며 돈, 명예, 권력을 이용해 진실을 은폐하고 오히려 진실을 찾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을 위협한다. <공정사회>의 범인은 아예 ‘이 사회가 공정한 줄 아냐’며 주인공을 조롱하기 까지 한다. 하지만 <공정사회>의 아줌마는 법과 사회가 도와주지 않고 방치한 자신의 현실을 인식하고, 범인은 물론 자신에게 상처를 준 모두에게 복수를 하며 자신만의 정의를 실현한다. 법과 정의를 주장하는 <노리개>의 논조보다 사적 복수에 손을 들어주는 <공정사회>의 카타르시스는 훨씬 크지만, 여전히 우리나라에서 정의의 실현을 위해서 법의 영역을 뛰어넘을 수밖에 없다는 엄연한 사실은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뮤직 박스>

문득 사회적 이슈를 담은 정치 스릴러의 거장 코스타 가브라스의 1989년작 <뮤직 박스>가 떠올랐다. 일류 변호사 앤의 아버지가 전범으로 고발된다. 그가 2차 대전 중 양민을 학살했다는 것이다. 앤은 변호사로서의 역량을 발휘해 아버지의 무고를 입증한다. 사건이 마무리 되는 듯 했지만 앤은 뮤직박스에서 양민을 학살하는 아버지의 사진을 발견한다. 자식에게 부끄럽지 않은 엄마, 공정한 사회 속에서 살 수 있게 한다는 신념으로 앤은 아버지를 고발한다. 지금, 여기, 한국에서 제대로 살기 위해서는 ‘앤’의 신념을 가진 어른들이 더욱 많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아주 작은 목소리가 큰 목소리가 되는 그 날까지, <공정사회><노리개> 같은 영화들은 계속 만들어지고 쓴 소리를 들려주어야 한다. 영화 한 편이 세상을 바꿀 수는 없겠지만 그 쓴 소리를 듣고 변한 마음이 모이면, 조금씩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힘을 가진 수컷이 호령하는 정글 속에서 한 숨만 쉬면서 살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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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최재훈

늘 여행이 끝난 후 길이 시작되는 것 같다. 새롭게 시작된 길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느라, 아주 멀리 돌아왔고 그 여행의 끝에선 또 다른 길을 발견한다. 그래서 영화, 음악, 공연, 문화예술계를 얼쩡거리는 자칭 culture bohemian.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후 씨네서울 기자, 국립오페라단 공연기획팀장을 거쳐 현재는 서울문화재단에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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