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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어두운 현실은 눈을 돌린다고 없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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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는 『변신』을 통해 사회와 가족이 개인을 바라보는 방식을 통렬하게 폭로해 냈고, 독자들은 읽으면서 알 수 없는 울화가 치밀어 오른다고 토로합니다.

영화 <트랜스포머>의 대흥행으로 우리는 소년들의 로망으로 여겨졌던 ‘변신로봇’에 대한 열망이 유년의 전유물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한 바 있습니다. 변신, 한 존재의 외적인 대부분을 구성하는 신체라는 존재가 새로운 형태로(그리고 새로운 의미로) 변화하는 이 과정은 현실 세계에서는 목도하기 어렵지만, 그 변화에 대한 상상만큼은 자유롭기에 ‘변신’이라는 주제로 다채로운 이야기가 나타나곤 합니다.

동양 민담에 자주 등장하는 구미호의 둔갑술 같은 경우는 변신을 통해 새로운 능력을 얻어 활약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고, 루마니아의 흡혈귀 민담은 인간과 시체 사이의 존재인 ‘뱀파이어’로의 변신을 통해 새로운 삶의 중간점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신은 결국 변형이 개인 그 자체의 변형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개인을 둘러싼 모든 관계의 변형을 포괄하는 개념입니다.

오늘은 그 포괄적 의미로서의 변신을 재미있고도 우울한 상황극으로 다루어 고전의 반열에 오른 단편소설을 읽어 보고자 합니다. 그 이름도 유명한 프란츠 카프카의 대표 단편 『변신』입니다.



 

 

단편소설 『변신』은 정말 짧은 분량의 소설입니다. 짧은 만큼 그 핵심 줄거리도 매우 간단합니다.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멀쩡한 회사원인 주인공 잠자는 어느 날 갑자기 잠에서 깨어 보니 흉측한 벌레가 되어 있었고, 이 때문에 가족과 사회로부터 배척받기 시작하고, 결국엔 그냥 벌레인 채로 죽습니다. 참 단순하기 그지없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이 짧고 단순한 이야기는 실제 현실에 없는 이야기를 현실이라는 공간에 옮겨 담음으로써, 일종의 실험을 통해 현실을 조명하는 거울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랬기에 『변신』은 오랜 세월 많은 이들의 손과 입을 거치는 고전의 자리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당장 소설은 평범한 외판원인 주인공이 갑자기, 아무 이유 없이 벌레가 되어 버리는 황당한 내용으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왜 벌레가 되었는가에 대한 친절한 설명 따위는 없습니다. 자고 일어나니 벌레가 되었다는, 유행어 같은 이야기로 소설은 시작됩니다.

정작 주인공도 자신의 신체가 혐오스러운 형태로 변화(내지는 훼손이라 불러도 무리 없을)한 점에 대해 생각하는 것 이상의 분노나 공포를 보여 주진 않습니다. 그냥 ‘이를 어쩌지.’ ‘왜 이런 거지.’ 정도의 생각만이 교차합니다. 되돌릴 방법에 대해서도 소설은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고, 다만 그 당혹스러운 심경에 대한 묘사만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소설이 주목하는 것은, ‘왜 벌레가 되었느냐’가 결코 아닙니다. 소설이 핵심적으로 다루는 부분은 사실 관계의 변화입니다. 소설은 주인공이 벌레가 된 이후에 찾아오는 그의 일상적인 인간들이 보여 주는 모습들을 통해 평범한 직장인이 벌레가 되었을 때 벌어지는 상황들을 그럴듯하게 그려 냅니다.

당장 도저히 벌레의 형상으로 회사에 출근할 수 없는 주인공은 무단결근을 하게 되고, 외판원의 결근을 당연히 판매 대금 횡령이라고 생각한 회사 상사는 집으로 찾아옵니다. 하지만 주인공이 벌레가 된 모습을 보고는 적어도 그의 상상은 깨지게 되고, 그와 함께 주인공의 벌레 모습을 처음 목격한 가족들 또한 경악하고 기절합니다. 소설은 주인공이 벌레가 된 이유가 아닌, 벌레가 된 이후를 주목하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인간 그레고르 잠자가 유지하고 있었던 모든 사회적 관계는 깨어집니다. 사회 속의 모든 인간은 기본적으로 멀티 플레이어입니다. 직장에선 열심히 일하는 사원, 친구들 모임에선 성실하고, 또는 재미있고, 또는 믿음직한 벗, 취미 활동 모임에선 회원이거나 리더거나 총무거나 하는 역할을 맡아 살아갑니다. 그리고 모든 사회의 기초 단위라 불리는 가족에선 각자 생계를 떠맡는 가장, 아이를 양육하는 부모,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여 살아가는 아이들과 같은 역할을 가집니다. 그런데, 주인공은 벌레가 되면서 기존에 가졌던 이 모든 관계를 잃습니다.

기존의 관계망에서 그레고르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회사원이었습니다. 그의 월급으로 그의 가족들은 먹을 것을 구했고, 동생은 학비를 댔습니다. 그러나 이제 벌레가 되어 버린(더 이상 회사에 출근할 수 없는, 월급을 벌어 오지 못하는) 그레고르는 가족의 관계 속에서 의미 없는 존재로 전락합니다.

이 ‘관계의 몰락’이라는 주제는 일전에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다루면서 간단히 언급했던, ‘부조리’라는 개념과 맞닿아 있습니다. 모두가 인식하고 있는 가족이라는 키워드는 사실 구성원 모두에게 친절하고 보편적이며, 가장 안전하고 포근한 안식처입니다. 하지만 『변신』에서 카프카는 그 구성원 중 하나인 주인공의 외모만을 바꿔 놓았는데, 가족이라는 보편 가치가 실제 세계에서 동작하는 데 필요한 원리ㅡ생존과 이익의 원리ㅡ를 독자들의 눈앞에 꺼내 듭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언어로 포장된 가족이라는 가치라도, 그 이면에는 사실상 ‘먹고사니즘’이라는 본연의 논리가 좌우한다는 사실이지요. 이것이 바로 ‘가족’의 부조리입니다.

가족이라는 말을 사용할 때 우리가 이미 배경에 전제하고 있는 조건 중 몇 가지만 바꾼다면 사실 세상은 미디어에서 말하는 것처럼 따뜻한 세상이 아닙니다. 현대 사회에서 가족이라는 아름다운 가치는 경제적 여건이라는 냉혹한 현실 앞에 힘을 잃는 경우가 많습니다. 생계가 힘들어 갓난아이를 버리는 부모도 간간이 나타나고, 유흥비가 필요해 부모를 살해하는 일도 없는 일이 아닙니다. 이러한 현상들이 정말 가족 자체는 완벽한 개념인데 단지 현실의 벽에 흔들려서 발생한 것일까요? 아니면 카프카가 소설 속에서 은유하는 대로, 그 개념 자체가 이미 설정된 개념이며 실제 현실에서 가족이 구성되기 위한 원리는 현실적인 문제에 기반하고 있는 것일까요?

바로 이 부분이 카프카의 『변신』이 다루는 핵심 주제입니다. 사실 『변신』은 대학 독후감 숙제로 꽤나 자주 나오는 책인데, 대부분의 과제 제출물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상당수의 학생들이 『변신』의 핵심 주제를 놓치고 있다는 점입니다. 주인공이 벌레가 되든, 아니면 조금 현실에 가깝게 갑자기 실업을 해서 거지가 되든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니, 아예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그레고르 잠자가 로또를 맞아서 벼락부자가 된다고 해도 『변신』의 주제에는 큰 무리가 없습니다.

이러한 관계의 변형은 결국 주인공의 소외를 부릅니다. 안 그래도 인간과 말이 통하지 않는 벌레가 되어 버린 마당에, 자신의 입장을 제대로 해명하지도 못한 채 벌레가 된 주인공은 서서히 정말 벌레가 되어 갑니다. 인간의 먹이보다 벌레의 먹이가 입에 당기고, 인간의 침대보다 어둡고 눅눅한 구석에 몸을 뉘입니다. 그렇게 벌레가 되고, 가족들은 그러한 주인공을 더욱 경멸하고, 마침내 벌레가 된 주인공은 죽어 갑니다.

재미있는 점 하나를 이야기하자면, 이 부분은 재미있게도 최근 개봉한 모 영화의 한 장면과 매우 가까운 이미지를 보여 줍니다. 정답은 바로 <디스트릭트 9>입니다. (<디스트릭트 9>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 <디스트릭트 9>는 벌레처럼 생긴 외계인들이 남아공에 불시착한 뒤, 격리 구역에 살아가다가 관리원인 한 인간이 사고로 인해 점차 외계인으로 변해 가는 이야기를 보여 줍니다. 『변신』의 주인공처럼 <디스트릭트 9>의 주인공도 처음엔 인간의 사고로 살아가다가 점차 외계인의 몸과 습성에 익숙해지고, 결말엔 고스란히 외계인이 되고 마는 변신의 과정을 보여 줍니다.

영화 또한 소설 『변신』의 주제와 다를 바 없이 관계의 변화를 이야기합니다. 처음엔 외계인을 억압하는 관리원으로, 감염된 이후 외계인의 신체가 되면서부터는 외계인과 인간의 중간자적 입장으로, 마지막엔 결국 외계인의 심리로 동화되면서 그를 둘러싼 관계는 인간에서 외계인으로 옮겨 갑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변신’이라는 주제는 그래서 결코 개인의 변신이 아닙니다. 우리는 개인과 개인이 서로 관계를 맺고 사는 사회망 속의 존재이고, 그 사회망은 현재까지 인간이 보유한 소통 수단으로는 사실 외적인 요소들만으로 맺어지는 관계입니다. 그 외적인 요소 하나가 변한다면, 개인으로서 실존하는 존재는 잊혀진 채 그가 맺었던, 또 그 사회로부터 위치 지어졌던 개인의 존재는 말 그대로 거의 변신의 수준에 다다릅니다.

멀리 있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한때 문전성시를 이루던 고관대작도 어느 날 권력이 바뀌어 ‘끈 떨어진 연’이 되면 장례식 때도 누가 찾아와 주지 않는다는 한탄이 비현실적이지 않습니다. 겉으로는 침 발라 가며 듣기 좋은 소리가 오가고, 외교적으로 매끄러운 수사들이 우리의 관계를 포장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 도사리는 현실의 부조리는 소설 『변신』이 보여 주는 인간 본연의 어두운 굴레입니다.

부조리란, 오늘날같이 순화된 미디어의 세상에서 개인이 참 직면하기 어려운 현실입니다. 카프카는 『변신』을 통해 사회와 가족이 개인을 바라보는 방식을 통렬하게 폭로해 냈고, 독자들은 읽으면서 알 수 없는 울화가 치밀어 오른다고 토로합니다. 세상을 너무 어둡게만 보는 것도 인생에 그리 득이 되는 건 아니지만, 미디어의 온통 장밋빛 환상과 긍정의 가치만이 포장되어 넘쳐 나는 세상에서 냉혹한 현실을 주시하는 것은 균형 있는 삶을 지켜 주는 지적 비타민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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