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나이 먹지 않는 뮤지컬 - <사운드 오브 뮤직>

<사운드 오브 뮤직>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 관객들을 극장으로 가장 많이 끌어들인 영화 중 하나이다. 1965년 이 영화는 불가침의 영역처럼 여겨지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제치고 흥행 기록을 경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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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운드 오브 뮤직> (The Sound of Music, 1965년, 20세기폭스)
음악: 리처드 로저스(Richard Rodgers)
감독: 로버트 와이즈(Robert Wise)
각본: 어니스트 리먼(Ernest Lehman)
주연: 줄리 앤드류스, 크리스토퍼 플러머, 리처드 헤이든

1939년 나치의 군홧발이 평화로운 오스트리아를 짓밟는다. 음악 축제에 나간 폰 트랩 대령(크리스토퍼 플러머)은 가족을 대표해서 관중들에게 작별 인사를 보낸다. 그의 작별 인사에는 두 가지 중층적인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겉으로는 제3제국 군대 입대를 목전에 두고 이별을 고하는 인사이지만, 실제로는 나치의 압제를 피해 자유의 땅을 찾아 떠나는 망명객으로서 보내는 인사이기 때문이다. 그는 다시 만나지 못할 사람들, 고향의 벗들과 조국을 위해 오스트리아 국가나 다름없는 노래 「에델바이스」(Edelweiss)를 이별의 곡으로 부르기 시작한다. 대령은 어느 순간 목이 멘 나머지 더 이상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그를 바라보던 마리아(줄리 앤드류스)와 아이들이 무대로 나와 아빠를 도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대령이 손짓하자 극장 안을 가득 메운 관객들도 다 같이 벅차오르는 가슴으로 노래를 따라 부른다. 극장 안에 「에델바이스」 합창이 한목소리로 울려 퍼지면서 조국을 잃은 오스트리아 국민의 슬픈 감정이 절절히 전해 온다. 짧은 노랫말을 통해 조국애와 휴머니티, 음악이 주는 위대한 힘을 느낄 수 있다.

<사운드 오브 뮤직> 국내 개봉 포스터.
<사운드 오브 뮤직>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 관객들을 극장으로 가장 많이 끌어들인 영화 중 하나이다. 1965년 이 영화는 불가침의 영역처럼 여겨지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제치고 흥행 기록을 경신했다. 도대체 어떤 마력이 존재하기에 그토록 많은 관객들이 스크린이 선사하는 매혹에 사로잡힐 수 있었던 것일까. <사운드 오브 뮤직>은 마리아 폰 트랩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리처드 로저스와 오스카 해머스타인 2세(Oscar Hammerstein II)가 브로드웨이 뮤지컬로 옮긴 작품이다. 브로드웨이에서 메가 히트를 기록한 이 작품의 판권을 20세기폭스 사에서 사들였다. 처음에는 <벤허>를 연출했던 윌리엄 와일러가 감독을 맡았으나 건강상의 이유로 사의를 표명했다. 그래서 <웨스트사이드 스토리>를 연출했던 로버트 와이즈가 바통을 이어받아 영화를 완성하게 된다.

완성도 높고 빼어난 뮤지컬의 모든 요소가 이 영화에 담겨 있다. 아름다운 음악이 적재적소에 흐르고, 가족에 대한 사랑이 있으며, 등장인물들이 예쁜 화음으로 들려주는 노래들이 있다. 조국애와 인간애, 그리고 음악이 세상을 바꾸어 줄 수 있다는 희망도 담겨있다. 거기에 동화 같은 잘츠부르크의 풍경이 펼쳐진다. 영화가 끝나면 몇몇 음악은 완전히 머릿속에 각인된다. 리처드 로저스와 오스카 해머스타인은 대중적 뮤지컬답게 쉽고 간결한 노래들을 반복적으로 배치함으로써 음악만으로도 관객들을 사로잡을 수 있게 했다. 두 음악가는 훌륭한 뮤지컬이 갖추어야 할 미덕, 즉 막이 내리고 난 후에도 기억에 남는 음악을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 비극적인 상황조차 아름답게 만들어 내는 뮤지컬의 힘. <사운드 오브 뮤직>은 지금 다시 본다 해도, 줄거리를 전부 알고 있다 해도, 영화가 주는 흥겹고도 리드미컬한 즐거움을 다시 경험할 수 있는 작품이다.

<사운드 오브 뮤직> OST LP의 원판과 한국 발매판.

내 친구 중 하나는 <사운드 오브 뮤직> 사운드트랙 앨범을 틀어 주면 혼자서 거의 전 곡을 신나게 따라 부르곤 한다. 그만큼 모든 노래들이 친숙하고 대중적이다. 따라 부르기에 전혀 어렵지 않다. 사운드트랙 앨범은 무려 1,000만 장이 넘게 팔렸다. 주요 곡들은 영화 내내 재차 편곡되어 흘러나온다. 장면이 바뀌어도 청각에 새겨진 분위기는 계속 이어지면서 친근감을 잃지 않는다. 영화 내내 편곡되어 깔리는 음악은 「사운드 오브 뮤직」을 비롯해서 「도레미 송」(Do-Re-Mi) 「So Long, Farewell」, 그리고 「에델바이스」이다. 이 노래들은 영화를 보는 사이 관객들의 잠재의식 속에 스며든다. 관객들이 영화에 몰입된 상태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정확하게 계산된 영화적 장치인 셈이다. 소리와 음악에 익숙해진 관객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스크린에 펼쳐지는 영상에 친근감을 가지게 된다.

잘츠부르크는 음악의 도시다. 굳이 음악 축제 때문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이 도시와 영원히 함께하는 두 개의 위대한 이름을 알고 있다. 그곳은 모차르트의 고향이며, <사운드 오브 뮤직>의 고향이다. 그래서 언제나 도시 전체에 음악이 흐를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잘츠부르크역에 내리면 이미 영화 속에 들어온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모차르트 초콜릿을 먹으면서 <사운드 오브 뮤직>을 따라나서는 관광은 낯설지가 않다. 모든 아름다운 정경들을 이미 영화에서 봤기 때문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된 잘츠부르크 구시가지는 고풍스럽지만 친숙하게 느껴진다. 그렇게 음악과 사람은 먼 이국의 도시에서 하나가 된다.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는 음악을 통해 모든 소통이 이루어진다. 마리아는 순수하고 낙천적이다. 그런 마음씨는 군대처럼 딱딱하고 엄격했던 트랩 가족의 분위기까지 바꿔 놓는다. 아이들은 아빠의 관심을 끌기 위해 가정교사를 곯려 주기로 마음먹는다. 마리아의 주머니에 개구리를 몰래 집어넣고, 의자 위에는 솔방울을 올려놓는다. 화를 낼 줄 알았던 마리아는 모든 걸 웃음으로 화답한다. 아이들은 당황해 한다. 여태껏 사람이 주는 애정과 따뜻함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명령을 내리던 호루라기 소리는 점차 사랑이 담긴 노랫소리로 바뀌어 간다. 언제나 즐거운 마음을 먹으면 된다. 좋은 것을 생각하면서 살면 된다. 「My Favorite Things」 같은 노래에는 그래서 꿈이 담긴다. 천둥 번개가 몰아치는 무서운 밤에 아이들은 이 노래를 들으면서 두려움을 떨쳐낸다. 자기들이 사랑하는 마리아가 떠나 버렸을 때도 아이들은 그녀를 생각하면서 이 노래를 부른다. 돌아온 마리아가 아이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며 그들은 다시 하나가 된다. 그렇게 가족은 다시 만들어진다.

폭풍과 번개에 놀라 잠깬 아이들은
「My Favorite Things」를 배우며 다시 행복해 한다.

장미꽃잎에 떨어진 빗방울과 아기 고양이 수염,
반짝이는 놋쇠 주전자와 포근한 털 벙어리장갑.
갈색 종이와 노끈으로 잘 포장한 소포 꾸러미들,
이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지.

크림색 조랑말과 바삭거리는 사과 과자,
초인종과 썰매 방울, 국수를 곁들인 슈니첼,
달빛 아래 날갯짓하며 날아가는 기러기들,
이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야.

하얀 드레스에 파란 새틴 허리띠를 두른 소녀들,
내 콧등과 속눈썹에 내려앉은 눈송이들,
봄기운에 녹아드는 은빛 겨울 풍경,
이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야.

개에 물리거나 벌에 쏘이고 마음이 슬퍼질 때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간단히 생각만 해도
나는 더 이상 슬프지 않아.

대령이 며칠간 빈으로 떠나자 아이들은 집 밖으로 뛰쳐나간다. 마리아가 초록색 커튼으로 손수 만든 우스꽝스러운 놀이옷을 입고서. 산 위 수녀원에서 내려온 마리아가 처음 대령과 만날 때 입었던 옷처럼 촌스럽지만 여기에 <사운드 오브 뮤직>다운 순수함이 있다. 마리아와 아이들은 그 옷을 입고 다리를 뛰어서 건너고, 시장에서 사과와 과일들을 사고, 산으로 올라가는 기차를 탄다. 아이들이 첫 피크닉을 간 곳은 영화 첫 장면에서 마리아가 「사운드 오브 뮤직」을 부르던 그 언덕이다. 크지만 갑갑한 대저택에만 갇혀 지내던 아이들은 마리아와 함께 웅대한 자연의 풍광 속에서, 마리아가 노래 부르던 알프스 산기슭에서 같이 숨 쉬게 된다.

아이들은 노래에서 즐거움을 느낀다. 그런데 노래를 부르려 해도 아는 노래가 하나도 없다. 그렇게 해서 마리아가 행복이란 것을, 진정한 사랑이란 것을 알 수 있도록 가르치는 노래가 「도레미 송」이다. 차근차근 서두르지 않고 기초부터 찬찬히 배우면서 아이들은 노래와 하나가 되어 간다. 글을 배울 때 A, B, C를 먼저 배우듯이 도, 레, 미를 배우면서 노래의 기쁨을 알아 간다. 역사 속의 도시 잘츠부르크는 이 「도레미 송」 시퀀스를 통해서 등장인물들의 오늘과 동시대로 들어온다. 잘츠부르크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돌계단 위에서, 옛 유적들로 가득 찬 시내를 돌아다니는 마차 위에서, 맑은 호반 옆을 따라 달리는 자전거 위에서. 관객들도 등장인물들과 함께 잘츠부르크의 풍경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히틀러의 손아귀에 들어갈 위기에 처한 유서 깊은 도시에 속하게 되는 것이다.

<사운드 오브 뮤직>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다. 트랩 가족은 나치를 피해 망명했고, 미국으로 건너 와서 합창단 활동을 하면서 살았다. 수녀에서 백작 부인이 되었으나 2차 대전으로 말미암아 조국을 등지게 된 마리아는 자신의 경험을 한 권의 책으로 엮어냈다. 실화를 단순히 영상으로 옮긴 것임에도 그 스토리는 지어낸 것보다 더 극적이다. 그것이 바로 <사운드 오브 뮤직>이라는 영화가 지닌 힘이다. 줄거리와 화면은 영원히 나이를 먹을 것 같지가 않다. 일곱 남매도 언제나 그렇게 영화 속 모습을 간직한 채로 살아갈 것 같다. 눈 속에 활짝 피어나 영원히 시들지 않을 것 같은 에델바이스처럼.



[Tip 1] 영화의 원작은 『트랩 가족합창단 이야기』(The Story of the Trapp Family Singers)이다. 국내에도 번역된 적이 있지만 지금은 중고 서점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 어릴 적에 읽었던 기억만 아련할 뿐이다. 영화는 실제와는 약간 다른 점들이 있다. 마리아와 폰 트랩 대령은 독일이 침공하기 10년 전에 이미 결혼을 했고, 둘 사이에는 아이까지 있었다. 또한 가족이 망명한 곳은 스위스가 아니라 이탈리아였다. 영화에서 낭만적으로 그려낸 하이킹이 아니라 기차를 타고.

[Tip 2] 트랩 가족이 사는 대저택은 몇몇 장소를 조합한 것이다. 전면은 바로크풍의 빌라인 헬브룬 궁전(Hellbrunn Palace)에서 찍었다. 아이들이 물에 빠지고, 외로운 모습으로 마리아가 거닐던 건물 후면은 레오폴드스크론 성(Shcloss Leopoldskron)에서 촬영했다. 리젤과 랄프가 「Sixteen Going on Seventeen」을 부르고, 마리아와 폰 트랩 대령이 「Something Good」을 부르는 정원 한가운데 ‘유리 정자’(glass gazebo)도 이곳에서 찍은 것이다. 또 마리아와 아이들이 「도레미 송」을 부르던 정원은 미라벨 정원(Mirabell Gardens)이다. 분수와 조각상들이 있는 아름다운 공원이다.

[Tip 3] <물랭 루즈>에서 이완 맥그리거가 처음 작사해서 부르는 노래가 「사운드 오브 뮤직」이었다. 르네 젤위거도 <브리짓 존스의 일기 2-열정과 애정>에서 이 노래를 부른다.

[Tip 4] <사운드 오브 뮤직>의 노래들은 미국영화연구소(AFI) 선정 100대 영화 주제가에 무려 3곡이나 포함되었다. 「사운드 오브 뮤직」 「도레미 송」 「My Favorite Things」이 그것이다.


[Tip 5] 리처드 로저스와 오스카 해머스타인 2세는 브로드웨이 뮤지컬 역사상 가장 막강한 콤비였다. 두 사람은 <오클라호마>를 시작으로 유쾌하고 완성도가 높은 뮤지컬을 연이어 선보이며 황금기를 열었다. <회전목마> <남태평양> <왕과 나> <사운드 오브 뮤직> 등 그들 콤비가 만들어 낸 라인업은 화려하다. 그러나 1960년에 해머스타인이 사망함으로써 뮤지컬 극 <사운드 오브 뮤직>은 두 콤비의 여덟 번째 작품이자 마지막 작품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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