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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희망은 남았다 <눈에게 바라는 것>
도쿄에서의 사업 실패로 고향인 홋카이도로 도망 온 마나부(이세야 유스케)는 남아있던 마지막 돈마저도 경마에 걸어 모두 날려 무일푼이 된다. 마나부는 반에이 경마 조교사인 형 다케오(사토 코이지)를 찾아가지만, 형은 13년 전 자신의 성공을 위해 어머니와 형을 버렸던 마나부에 대해 좋지 못한 감정을 지니고 있다. 도피 중인 마나부는 형의 마사(馬舍)에서 일을 도우며 경마 시즌을 보내게 된다. 그곳에서 자신의 남은 돈을 걸었던 늙은 말 ‘운류’를 돌보고 마구간의 동료들과 가까워지며 적응해 가는 마나부. 하지만 과거의 사업 파트너였던 친구가 찾아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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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행에 성공하는 영화는 그리 많지 않지만, 쉴 새 없이 수많은 영화들이 쏟아지는 최근에는 가끔씩 제목과 포스터만 보고 영화에 대한 오해를 갖게 되는 경우가 있다. 서정적인 멜로 영화를 연상시키는 제목과 포스터 때문에 필자 역시 <눈에게 바라는 것>에 대해 그런 오해를 품었었다. 물론 <눈에게 바라는 것>는 로맨스 코드가 약간 첨가 되어 있기는 하지만 통속적인 멜로 영화라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위와 같은 선입견 때문에 필자는 DVD 출시가 된 지 이미 1년 여가 흐른 최근에야 이 영화를 보게 되었다. 나중에야 안 사실쳀지만 이 영화는 도쿄 영화제에서 작품, 감독, 남우주연, 관객상을 수상한 수작으로 평가받는 영화다.
이 영화의 중심 소재인 ‘반에이 경마’는 세계적으로 홋카이도 지방에서만 시행된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스피드’가 중심이 되는 일반 경마와 달리, 무려 460Kg에서 1톤에 이르는 시멘트 썰매를 끌고 장애물을 넘어 목표 지점을 향해 걸어가는 ‘힘’의 경기다. 이 경기에 동원되는 말들은 과거부터 농경에 사용되던 만마(농경용으로 개량된 말)로 통상 1톤이 넘는다고 한다. 이 경주는 영화 속에서 ‘인생’에 대한 비유로 사용되는데, 영화 속에서 묘사되는 경주의 진행 과정만 봐도 이런 직유법은 타당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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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경주는 단순히 상대 말을 앞서서 나아가는 것으로 승부가 가려지지 않는다. 높은 두 개의 언덕을 넘어서는 것이 관건인데, 아무리 힘 좋은 말이라고 할지라도 무거운 썰매를 끌고 이 장애물을 한번에 넘어서기는 어렵다. 기수는 자신의 말의 특성과 컨디션을 고려해서 적절한 타이밍을 잡아야 하고, 그 순간을 말이 이겨내지 못하면 경주에서 이기기는 어렵다. 워낙 말의 힘이 많이 필요한 경기라 말은 결승점에서 멈추어 버리기도 하고, 그러하기에 승부는 끝에 가야 알 수 있다. 즉 ‘반에이 경마’는 예측불가능한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의 오프닝에서 주인공 마나부는 사업에서 실패하고 고향에 돌아와 마술에 걸린 것처럼 자신의 마지막 남은 돈을 이 경마에 건다. 그가 돈을 거는 말은 ‘과거에는 잘 나갔던’ 말 운류. 하지만 경주를 잘 이끌어 가던 운류는 마지막 장애물을 끝내 넘어서지 못한다. 영화에서 이렇게 ‘운류’의 모습은 마나부와 겹쳐진다. 마나부 역시 도쿄에서 잘 나가던 사업가였지만 그 역시 고비를 넘지 못하고 몰래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다. 경주마로서의 효용 가치가 떨어져 ‘말 육회’가 될 위기에 처한 운류나 산더미 같은 빚을 ‘생명보험’으로 갚아야 하는 마나부는 이를테면 같은 처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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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눈에게 바라는 것>은 인간과 동물 사이의 ‘교감’을 강조한 <각설탕>이나 할리우드산 가족 영화와는 달리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 자체에 보다 집중한다. 이 영화에서 ‘패배자’의 모습은 단지 마나부와 운류라는 캐릭터에게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사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캐릭터들, 즉 마나부의 형 다케오와 그의 마구간에 있는 캐릭터들은 모두 사회적으로 ‘실패자’라고 말할 수 있다. 그들은 각기 다른 이유들ㅡ시험에 계속 실패하거나 게으르거나 늙었거나 지능이 떨어지거나ㅡ때문에 주변부의 삶을 살아간다.
그들은 외부로부터 격리되어 있지만 적어도 그 작은 공동체 안에서만큼은 행복을 구가할 수 있다. 물론 그들 역시도 경쟁 사회 속에서 ‘성공’을 증명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말은 때리지 않지만 사람은 때리는’ 다케오처럼 때론 치열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의 ‘성공’은 현대인들이 추구하는 ‘성공’과는 분명히 다르다. 그건 주인공 마나부가 형인 다케오에게 자신이 왜 가족과 인연도 끊고 앞만 보고 살아왔는지를 설명하는 장면에서 뚜렷하게 등장하는데, 이 장면은 형인 다케오와 동생인 마나부의 가치관과 삶의 차이뿐 아니라 전통적인 삶과 현대인들의 모럴의 차이를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마나부: 나도 필사적으로 살았어!
다케오: 나랑 어머니를 버리고?
마나부: 그래, 그렇게 열심히 하지 않으면 세상에 보여줄 수 없으니까!
다케오: 왜 세상에 보여주어야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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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나부, 즉 현대인은 어느새 가족과의 연결 고리를 끊어버리고 쉼 없이 질주하는 사이, 자신을 지탱해 줄 뿌리조차도 잃어버렸던 것이다. 이 영화의 이런 태도는 마나부가 어머니가 있는 요양원에서 자신의 존재 자체를 잃어 버린 어머니와의 조회 장면에서 재차 확인된다.
이 영화의 베테랑 연출자 네기시 키치타로는 홋카이도의 반에이 경마장과 마구간을 배경으로, 두 형제와 주변부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따뜻하게 그려간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마나부는, 영화 전반부에서는 거의 기억하지 못했던 초등학생 동창과의 추억을 떠올리며 행복하게 웃는다. 마나부는 마구간에서 일하면서 자신으로만 좁혀졌던 세계를 점차 넓혀가는 과정을 거치게 되며, 기수 마키에(후키이시 카즈에)를 구원하기도 하며, 늘 도망만 다니던 자신의 삶을 정면으로 맞설 용기를 지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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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게 바라는 것>은 결코 완벽한 성공이나 화해의 완성을 그리고 있는 영화는 아니다. 영화의 막바지에는 기대되는 결말이 기다리고 있기는 하지만, 영화는 결코 환희로 마무리되지 않는다. 더구나 등장인물들의 관계는 외면적으로는 큰 변화가 없다. 하지만 분명히 이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영화 안에서 성장해 있으며 그들에게는 아직 ‘희망’이라는 것이 남아 있다. 결코 거대한 성공을 꿈꾸기는 어렵겠지만 그들은 어쨌든 인생을 힘차고 즐겁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 희망의 근거는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기 위해 길을 나서는 마나부의 프리즈 프레임에서 확인할 수 있다.
<눈에게 바라는 것>은 양질의 일본 영화가 가지고 있는 장점을 잘 보여주는 영화다. 안정된 연출과 탄탄한 연기력 위에 삶에 대한 경외감을 신중하게 다루는 자세는 일본 고전 영화의 전통이었고 이런 자세는 현재까지도 탄탄히 이어져 왔음을 이 영화 속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또 다른 이 영화의 흥미로운 지점은 이 영화 역시 최근의 많은 일본 영화에서 발견되는 일종의 대안 가정을 다룬다는 점이다. 이 영화 속의 마구간 식구들은 엄연히 아버지와 어머니가 존재하는 따사로운 가족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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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의 영상은 일본 영화 특유의 약간 답답한 채도를 구현한다. 흔히들 일본 영화 DVD는 사실감은 돋보이는 편이나 화사함이 떨어진다고 하는데, 그건 이 영화 역시 마찬가지다. 상당히 정확한 인물표현과 홋카이도 특유의 풍광이 잘 담겨져 있는 편이지만, 어두운 장면 등에서 나타나는 필름 그레인 등 화면 질감은 다소 거칠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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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무리한 사운드 표현보다는 정확한 음향 표현을 강조하는 일본 영화답게 음향 포맷은 돌비 디지털 스테레오만을 지원한다. 인생을 상징하는 듯한 서정적인 사운드의 표현이 잘 살아 있으며 대사음의 표현은 별 무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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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VD의 서플먼트는 비교적 많은 편인데, 그건 이런 규모의 작은 영화에는 많은 서플먼트가 들어있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먼저 도쿄 국제영화제 수상작답게 눈에게 바라는 것-도쿄 국제 영화제의 궤적(22분 8초)이라는 서플먼트가 눈에 띄는데, 영화제에서의 인터뷰 장면과 공개 당시의 무대 인사 장면, 감독과의 대화 그리고 수상 당시의 모습을 꼼꼼하게 담고 있다.그 외에는 주역인 네 배우들의 인터뷰-이세야 유스케(7분 19초), 사토 코이지(5분 26초), 코이즈미 쿄코(5분 4초), 후카이시 카즈에(5분 3초)가 수록되어 있으며, 국내판과 해외판 극장용 예고편이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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