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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와 희망 그리고 사랑의 가능성 <방문자>
대학의 영화과 시간강사 호준(김재록)은 불안정한 비정규직 생활 중에 이혼까지 당한 채 홀로 허름한 방을 얻어 이사를 한다. 자신이 몰던 차를 팔아야 할 정도로 경제적으로도 궁핍한 호준은 세상에 대한 불만이 높다. 한편 독실한 여호와의 증인의 신도인 계상(강지환)은 건실하고 모범적인 대학생이지만 자신의 종교적 신념 때문에 일상생활에 어려움이 많다. 어느 날 계상은 전도를 위해 호준의 집을 찾는데, 문고리가 고장 나 화장실에 고립된 호준을 구해내게 된다. 이렇게 기적적으로 서로 매우 다른 두 남자는 인연을 맺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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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자> DVD의 출시는 어려운 DVD 시장의 상황과 우리 영화계의 척박함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계기가 된다. 일단 감독의 사재와 가족의 재정적 도움으로 2005년도에 완성된 영화가 극장에서 공개가 된 것은 2006년 11월경에 이르러서였다. 다행히 이 영화의 완성도에 대한 평가는 매우 호의적이어서, 영화는 베를린영화제와 카를로비바리영화제 등지에 초청받아 상영되었으며 시애틀영화제에서는 뉴 디렉터스 부분의 심사위원대상을 차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영화가 공개되고 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도 이 영화의 DVD는 출시되지 못했다. DVD 출시사는 이 작품의 판매량에 대해 비관적이었고 지속적으로 출시를 차일피일 뒤로 미루어 버린 것. 결국 배우 강지환의 팬클럽이 중심이 되어 DVD 배급업체에 이 영화의 출시를 요구하는 상황에 이르렀고, 출시사는 최소 600장 이상의 사전 판매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약속이 있으면 출시하겠다는 조건을 제시한다. 결국 선 판매를 예약하는 카페까지 등장했고 이 카페의 활발한 움직임 때문인지 출시사는 이 DVD의 출시를 결정하게 된다.
다른 국내외의 많은 독립영화의 상황과 비교하면 어쩌면 <방문자>는 운 좋은 소수에 들어가는 경우일 수도 있겠지만 이 영화의 작품적인 성과를 생각해 보면 이런 상업적인 현실은 절망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신동일 감독의 장편영화 데뷔작 <방문자>는 흔히 난해하거나 어두울 것이라고 예상되는 독립영화에 대한 선입견과는 거리가 먼 영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문자>는 현재의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다양한 차별의 문제를 다루고 있으며 정치적인 지향이 뚜렷한 영화이기도 하다. 즉, 이 영화는 강한 개성을 지닌 두 남성 캐릭터의 버디 무비이자 블랙 코미디인 동시에 한국의 현실을 날카롭게 지적하는 리얼리즘 영화의 전통을 면면히 유지하고 있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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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이 영화는 반복 감상을 통해 연출자가 미장센에 배치한 촘촘한 영화적 장치를 발견하는 기쁨을 주는데, 무심한 듯 연출된 주인공과 단역 격의 캐릭터들과의 관계 묘사 역시 의미심장하다. 가령 영화 초반부 호준이 불러들이는 출장안마사가 바로 옆집에 살고 있다거나 호준이 말을 거는 동네 수퍼마켓 아주머니가 빚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 또 대학 동창 모임에서 술만 마시고 있는 호준의 옆에서 아랑곳하지 않고 이야기를 나누는 386들의 대화 등은 모두 우리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예다. 특히, 동창 모임 장면에서 386 세대에 대한 묘사는 과거의 이상에서 벗어나 현실에 투항한 386세대에 애정 어린 비판이 돋보이는 장면이다.
이 영화가 담고 있는 알레고리는 의외로 풍부해서 한국의 현실뿐 아니라 영화에 대한 오마주 그리고 종교적인 의미까지 포괄하고 있는데, 영화 속에서 호준이 빈사 직전에 ‘하나님, 고다르’라고 말하는 장면이나 주인공들이 영화를 보러가고 영화 테마 주점에서 영화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 또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책이 등장하는 장면 등은 ‘영화’ 자체와 관련된 장면이며 신의 존재에 대한 호준과 계상의 대화, 계상에 의해 구해진 호준이 십자가 모양으로 침대에 누워있는 장면은 종교적인 담론이 영화의 근저에 배치되어 있음을 확인하게 하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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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위와 같은 알레고리와 별개로 <방문자>는 호준과 계상이라는 상반된 캐릭터의 충돌을 통해 현실의 문제를 짚어내는 데 방점이 찍혀 있는 영화다. 영화에서 여러 번 반복되는 ‘문고리’ 장면에서 보듯 이 영화는 관계의 열림과 닫힘에 관한 영화다. ‘Host’라는 말에서 출발했다는 호준은 행위뿐 아니라 마음의 문까지도 걸어 잠그고 있는 인물이다. 반면 ‘Guest’라는 단어에서 출발한 계상은 문을 열려고 하지만 타인에 의해 거부되는 인물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호준은 폐쇄적인 좌파 지식인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보수 신문을 상징하는 영화 속 ‘조국일보’에 대한 깊은 적대감을 지니고 있으며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깊은 애정을 표시하고 있지만, 동시에 가족으로부터 내쳐진 그는 타인과의 관계 만들기에 깊은 장애를 가지고 있어 그의 언어는 늘 매몰차며 공격적이다. 그에 비해 계상은 나직하고 친근하게 타인에게 다가서는 사람이다. 하지만 따뜻한 그의 외면과 달리 그의 신앙적인 견고함과 단단함은 타인과의 불화를 낳는다. 사실 이 두 사람은 일반적인 사회 속에서 공존하기 어렵다. 호준은 까칠한 유물론자이고 계상은 따뜻한 신본주의자인 것이며 이들의 이런 성향은 물과 기름처럼 뒤섞이기 어려운 성질의 것이다.
하지만 <방문자>의 재미는 근본적으로 매우 달라 보이는 이 두 사람이 실은 동질의 아웃사이더라는 점을 알게 되고 결국은 서로를 구원한다는 데 있다. 서로의 다른 이상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현재의 한국 사회에서 내쳐진 존재며 의식의 근저에는 ‘패배주의’가 깔려 있다. 영화는 호준과 계상의 삶의 흔적을 꼼꼼히 배치하고 그들이 느끼는 좌절의 감정을 놓치지 않는다. 영화에서 과잉된 호준의 반응과 수동적으로만 보이는 계상의 모습은 그들이 겪었을 좌절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영화는 차근차근 깊은 상처를 입은 두 남자가 싸우고 서로를 이해해가는 과정을 담아낸다. 말뿐인 진보주의자가 종교적인 신념 하나로 부조리한 현실과 맞닥뜨리는 순수한 청년에 동의하게 되고, 영어의 몸이 되어있는 청년에게 ‘이제 내가 꺼내 줄게.’라고 말하는 순간, 영화는 이 현실의 절망을 극복하는 방법은 결국 ‘연대’뿐이라는 것을 역설한다. 결국 영화의 말미에서 이들은 각자가 지닌 지향을 넘어서 에리히 프롬이 말했던 기본적인 ‘사랑’인 ‘형제애’로 굳게 맺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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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모든 형태의 바탕에 놓여 있는 가장 기본적인 사랑은 ‘형제애’이다. 나는 형제애라는 말로 책임, 보호, 존경, 다른 사람에 대한 지식, 다른 사람의 생명을 촉진하려는 소망 등을 나타내고 있다. 이것은 성서에서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과 같은 종류의 사랑이다.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 p.70)
<방문자>는 묵직한 주제 의식만큼이나 섬세한 연출력이 돋보이며 동시에 영화적인 재미까지 갖춘 영화다. 비록 저예산 독립영화라는 한계 때문에 영화적 힘과는 별개로 상업적인 배급망을 타지 못해 광범위한 대중적 지지를 얻지는 못했지만, 이토록 동세대의 삶에 대해 세밀하게 관찰하는 영화는 한국 영화계에서 이창동과 홍상수의 영화 정도 외에는 찾아보기 어렵다. 더욱이 신동일의 영화는 앞서 두 거장의 영화가 지닌 인간 묘사의 서늘함과는 다른 따뜻한 온기를 품고 있다. 해외에서 이 영화가 지닌 탁월한 캐릭터 묘사와 휴머니티 넘치는 연출에 대해 ‘한국의 우디 앨런’이라고 평한 것은 단순한 수사만은 아닌 것이다.
필자에게 있어 이 영화의 연출자인 신동일 감독의 차기작은 가장 다음 영화가 기대되는 영화 중 하나다. 사실 그의 두 번째 장편영화는 이미 완성되어 있는 상태다. 그의 두 번째 장편영화 <나의 친구, 그의 아내>는 이미 완성되어 있으나 <방문자>와 마찬가지로 평단의 호평 속에서도 상업적인 이유 때문에 차일피일 공개가 미루어지고 있다. 그 와중에도 현재 신동일 감독은 세 번째 장편영화인 <반두비>를 촬영하고 있다. 그의 세 번째 장편영화는 여고생과 이주노동자의 삶과 로맨스를 그린다고 한다. 또 다시 그가 그려낼 한국 사회와 인간에 대한 통찰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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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적으로 출시되었지만 <방문자> DVD의 영상 자체는 평균적인 최신작 DVD의 영상 퀄리티에 견주어보면 그리 훌륭한 편은 아니다. 물론 따뜻한 질감의 색감과 서울 뒷골목의 황량한 풍경은 잘 살아있는 편이지만, 세심한 부분을 따지고 보면 인물 윤곽선의 표현은 날카롭기보다는 약간 뭉개진 것이 느껴진다. 하지만 이는 이 영화가 저예산 독립영화라는 점을 분명히 감안해야 한다. 감독의 음성해설에서 확인할 수 있듯 일부 장면을 제외하면 자연광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환경 속에서 35mm 필름으로 촬영된 이 영화에 높은 퀄리티를 원한다는 것은 사실 무리다. 이런 점을 감안한다면 영화의 전체적인 영상 퀄리티는 기대 이상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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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비 디지털 5.1 채널 서라운드 포맷을 지원하는 음향 역시 스펙 자체에 큰 의미를 두기 어렵다. 이 영화에서 음악의 사용은 무척 자제되고 있는데, 노래방 장면에서 잠깐, 호준이 부르는 밥 딜런의 ‘Blown in the Wind’, 그리고 영화의 주제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는 동요 ‘곰 세 마리’ 정도가 전부다. 영화 전반적으로 사운드는 현실음을 바탕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간혹 뚜렷하지 않은 대사음이 잘 들리지 않기도 한다. 일부분의 장면에서는 작은 대사음이 감독의 연출 의도에 의한 것이기도 하지만, 녹음 상태가 아주 말끔하지는 않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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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자> DVD는 자료가 풍부하지 못한 독립 장편영화의 현실을 감안한다면, 비교적 풍부한 서플먼트가 담겨있다. 영화의 연출자인 신동일 감독과 독립영화 진영의 또 다른 히트작 <은하해방전설>의 윤성호 감독이 진행하는 음성 해설은 편안한 분위기로 진행된다. 나직한 목소리의 신동일 감독은 영화의 의미를 차근차근 설명하고, 밝은 목소리의 윤성호 감독은 관객을 대신해 영화에 대해 궁금한 점을 묻는다. 그 외 서플먼트로는 주연배우들의 목소리로 영화 촬영 과정과 캐릭터 소개, 감독의 연출 스타일 등에 대해 설명하는 메이킹(11분 23초), 본 영화 촬영 전에 작은 리허설 장에서 연습을 하는 두 주연배우의 모습을 담은 오디션(4분 27초) 그리고 영화보다는 좀 더 가볍게 느껴지는 극장용 예고편(2분 10초)이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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