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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명재의 사랑하는 시] 고요한 사랑의 선언
고명재의 사랑하는 시 6편
사람들이 사랑하는 순서도 이런 식이다. 사랑은 이해가 선행된 뒤 수행되는 것이 아니라, 먼저 닥치고 이해가 뒤따르는 것이다. 물론 그 이해는 단순한 (지식화의) 앎이 아니라 존재 전체를 껴안는 사랑의 앎이 된다.
시인의 사려 깊은 시선을 통해, 환한 사랑의 세계를 만나 보세요. |
겨드랑이 밑으로 숨어드는 얼굴을 자꾸 끌어다놓고서
나는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다
옥수수알들이 옥수수를 향해 결의하듯이
뜨거운 햇볕을 견디며 하품하듯이
옷을 입고 옷을 입고 옷을 입고
당신은 앞니 두 개가 튀어나왔다
당신은 곱슬머리를 갖고 있다
당신의 눈은 졸음을 향해간다
나는 대답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지만
늘 언제나 매일
머리를 빗고 머리를 빗고 머리를 빗고
나는 내 앞의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는 내 옆의 사람을 끝까지 사랑하는 사람이다
사랑으로 체중이 늘고 체중이 늘고 체중이 늘고
우리는 발을 씻듯 허무를 견디고
계단을 오르듯 죽음을 비웃고
닭다리를 뜯다가 시계를 보고
- 이근화, 「대화」 전문 (『내가 무엇을 쓴다 해도』)
시는 참 이상하고도 신비한 장르다. 나는 여전히 이 시가 잘 이해되지 않는데, 그럼에도 이 시가 일으키는 효력은 온전히 느낀다. 생강차를 호호 불며 마시는 느낌. 사랑하고 싶은 마음. 옥수수의 결의. 그러니까 시는 먼저 도착하는 것. 이해되기 전에 작용부터 하는 것. 차(茶)나 약을 먹을 때도 그렇다. 우리는 찻잎이나 약의 성분을 잘 알기 때문에 그것의 효력이나 향을 느끼는 것이 아니다. 이해 이전에 발생하는 힘이 있다. 꽃다발처럼 사랑부터 안겨주는 시. 이런 시를 읽을 땐 우선 느끼려 한다. 언어의 불어옴이라 할까. 도래감(到來感)이라 할까. 그런 것들을 먼저 안고 읽어나가면 깊은 이해가 서서히 찾아오는 것이다.
사람들이 사랑하는 순서도 이런 식이다. 사랑은 이해가 선행된 뒤 수행되는 것이 아니라, 먼저 닥치고 이해가 뒤따르는 것이다. 물론 그 이해는 단순한 (지식화의) 앎이 아니라 존재 전체를 껴안는 사랑의 앎이 된다. 이 사람은 배려심이 많아서 천천히 걷는 거구나. 이 사람은 아픈 개를 키워서 보폭이 작구나. 이 사람은 사랑을 얼마 전에 잃어서 뭇국을 뭉근하게 끓이는 거구나. 이와 같은 이해에는 품과 시간이 든다. 그래서 나는 시가 어렵게 읽히는 게 좋다. 한 사람의 삶과 마음을 패스트푸드처럼 손쉽게 다루려 하지 않는 것. 시 읽기가 어렵고 힘들수록 우리가 기울인 사랑의 시간도 길었던 것이다. 시를 읽는 일도 살아내는 일도 그런 것이다. 「대화」는 그렇게 이루어진다.
처음 이 시를 읽고 반해버렸다. 이후 수십 번 이 시를 다시 읽으며 나는 다음과 같은 이해에 도달했는데, 이 시는 정말이지 고요하지만 단호하게 사랑을 선언하는 시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랑의 선언은 무엇인가. 자애로운 철학자의 이야기를 빌려 보자.
사랑의 선언은 우연에서 운명으로 이르는 이행의 과정이고, 바로 이런 이유로 사랑의 선언은 그토록 위태로운 것이며, 일종의 어마어마한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는 것입니다. 게다가 사랑의 선언은 필연적으로 단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길고 산만하며, 혼동스럽고 복잡하며, 선언되고 또다시 선언되며, 그런 후에조차 여전히 다시 선언되도록 예정된 무엇일 수 있습니다. (...) ‘나는 너를 사랑해’라고 말하는 것은 결코 단순하지 않습니다. (...) 그것은 하나의 우연이었던 것에서 내가 다른 것을 끄집어내겠다는 걸 말하기 위함입니다. 우연으로부터 내가 지속성 · 끈덕짐 · 약속 · 충실성을 이끌어 낼 것이라고 말입니다.
- 알랭 바디우, 『사랑 예찬』 중에서
바디우는 ‘사랑의 선언’이 우연을 필연으로 고정시키는 말이자 힘이라고 믿는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일은 우연적 사태다. 그러나 ‘너를 사랑한다’라고 선언하는 바로 그 순간, 두 사람은 완전히 다른 관계를 탄생시킨다. (‘내일부터 1일!’이라는 선언 이후로 놀랍도록 달라지는 국면을 생각해 보자) 그리고 이 선언은 일회적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속성, 끈덕짐, 약속, 충실성 등으로 위태롭게 지속되어야 하는 고난이기도 하다.
이근화의 「대화」가 정말 사랑스러운 건, 이 시가 시작점에서 이루어지는 ‘화려한 사랑의 선언’이 아니라, 일상에서 계속해서 시도되는 ‘익숙하고도 반복적인 사랑의 선언’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이 시에서는 ‘반복’이 매우 중요하다. 이 시는 참으로 ‘부드러운 반복’을 수행하는데 시가 전개됨에 따라 이러한 반복의 효과는 더 깊고 아름다운 차원을 향한다. (자세히 보면 시의 초반부는 일상의 반복을 그리고 후반부는 그럼에도 닳지 않는 사랑의 반복을 보여준다.)
시의 초반부는 생활의 장면(아이나 연인)을 그린 것 같다. 아침에 눈을 떴고 일상이 시작되어야 하는데 “겨드랑이 밑으로 숨어드는 얼굴”이 있다. 칭얼대는 사랑, 자꾸 졸려오는 시간. “나는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다그치면서 “옷을 입고/ 옷을 입”는 생활의 모습. 그렇게 뭉그적거리면서 “결의하듯” 하루는 시작된다. 그 와중에 참으로 깜찍하게도 “당신은 앞니 두 개가 튀어나왔”고 “곱슬머리를 갖고 있다.” 이렇게 한 사람의 특수성을 생각하는 일이 사랑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또한 이 시에는 매우 흥미로운 형식적인 구성이 있다. 이를테면 “늘 언제나 매일”이 하나의 단독 행이라는 것. 이 부사어들은 일상의 반복성과 지속성을 환기시키고 최종적으로는 이 시가 말하고자 하는 ‘사랑의 선언’ 역시 매일매일 갱신되어야 할 선언임을 보여준다. 그래서 시인은 시 전반에서 문장을 끝맺지 않는다. 이 시에 쓰인 대부분의 ‘반복 표현’이 연속성을 지닌 말(연결어미 ‘-고’)로 끝처리가 된다. (“옷을 입고” “머리를 빗고” “체중이 늘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음의 연은 오로지 반복과 작은 변주만으로 이루어지는데, 이 반복은 정말이지 너무 아름다워서 오래도록 다시 읽고 싶어진다.
나는 내 앞의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는 내 옆의 사람을 끝까지 사랑하는 사람이다
사랑으로 체중이 늘고 체중이 늘고 체중이 늘고
이 연이 무척 감동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시 전체에서 화자가 너무나도 부드러운 어조를 유지하다가 갑자기 매우 단호한 문장을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나는 너를 사랑해’라는 문장이 아니라, 내 정체성 자체를 정의 내려버리는 방식으로 문장을 서술하고 있는 것이다(나는…사랑하는 사람이다). 그것도 “앞”과 “옆”의 방향을 가리지 않고 “끝까지” 그러하겠다고 말해내는 것.
이런 사랑은 능히 “허무를 견디”게 한다. “체중이 늘” 듯 존재감을 느끼게 한다. 무엇보다도 이런 반복적인 선언은, “계단을 오르듯 죽음을 비웃”을 용기가 된다. 죽음 따위 오라 그러지? 성큼성큼 오를 수 있다! 왜냐하면 “나는 내 옆의 사람을 끝까지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그러니 “닭다리를 뜯”는 일상에서도 사랑하는 이는 진정한 시간(“시계”)을 산다. 어떤 허무가 와도 포기하지 않겠다고, 죽음이 와도 우리는 사랑을 해내겠다고. 그래서 벤야민은 이렇게 말한 것이 아닐까. “어떤 사람을 아는 사람은 희망 없이 그를 사랑하는 사람뿐이다.” (발터 벤야민, 「아크등」, 『일방통행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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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다. 첫 시집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과 첫 산문집 『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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