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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 칼럼] 당신의 중력
김지연의 그림의 등을 쓰다듬기 3화
한 걸음 한 걸음은 한땀 한땀 꿰매는 행위다. 걸음이 반복되는 사이에 우리는 마주치고 멀어지고 접었다 펼쳐지며 새로운 장면을 만든다.
예술가와 관객을 잇는 현대미술 비평가 김지연 작가의 에세이. 격주 화요일 연재됩니다. |
안국역 1번 출구를 나와 곧장 오른쪽으로 돌면 공예박물관 뒤로 옛 대통령의 이름을 딴 길이 시작된다. 아주 오래된 출판사의 모퉁이를 돌아 매년 장미와 능소화가 조금 일찍 피는 양지바른 담벼락을 지난다. 안국역에서부터 갤러리들이 모여 있는 삼청동을 향해 걷는 길은 새로운 카페와 식당으로 늘 풍경이 바뀌지만 이렇게 자리를 지키는 오래된 것들이 있다. 이십 년 전부터 그곳을 걸으며 두 발에 골목을 새겼다. 이 길에 섞여 든 풍경이라면 백 개라도 더 말할 수 있다. 지금도 차곡차곡 걸음을 쌓으며 익숙한 거리를 지나 어떤 그림을 보러 가는 중이다.
몇 년 전 작가의 작업실에 들어섰을 때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다양한 모양의 곡자였다. 곡선을 그리기 위해 특수 제작한 그것을 바닥에 펼친 캔버스 위에 지그시 누르고 색연필로 선을 긋는다고 했다. 미세한 간격을 조정하며 수없이 선을 쌓으면 화면 위에는 어느새 일렁이는 환영이 펼쳐진다. 입자의 파동이 눈에 보인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이미지로 만들기 위해서 작가는 한 손의 무게로 캔버스와 곡자를 누르며 다른 쪽 팔을 움직여 선을 긋는 행위를 수천 번 반복했다. 선을 긋기 전 여러 번의 밑칠과 그보다 더 긴 시간 동안 화면을 구성하는 일은 말할 것도 없다. 그곳은 지난한 노동과 무수한 반복의 자리였다.
언젠가 내게도 반복의 시간이 있었다. 기나긴 수험생활은 머리보다는 인내의 싸움이다. 매일 넘기는 페이지의 가냘픈 무게, 하루에 한 시간 더 책상 앞을 지키는 엉덩이의 무게가 쌓이고 쌓여 실력을 만든다. 견디기 어려울 때는 걸었다. 바닥에 새겨지는 내 몸의 무게를 느끼며 무심하게 걸음을 반복했다. 매일 걷고 페이지를 넘기면서, 작은 반복으로도 어느 날 훌쩍 먼 곳에 도착할 수 있다는 진리를 배웠다. 세상에 안착하지 못한 채 시간을 보내는 사람에게 반복적인 일상은 버텨내야 할 무게인 동시에 삶을 현실에 붙잡아 두며 지키는 중력이다. 그 중력이 시간을 견디고 나를 숨 쉬게 했다.
여름이 한풀 꺾였는지 부는 바람이 시원하다. 어느새 국립현대미술관 옆길이다. 짧은 블록이지만 초록이 무성해서 좋아한다. 운이 좋으면 아트선재센터 근처를 배회하는 검은 고양이를 만날 수도 있다. 걷는 사이에 내 몸이 길에 새겨지고 풍경에 섞여 든다. 나는 매번 비슷한 듯 다른 이 길을 알고, 이 길은 때마다 다른 나를 안다.
걸음으로 풍경을 새기는 한 작가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끈질기게 걸으며 장면을 수집하고 건물과 블록의 거리를 쟀고, 무려 20미터의 화폭에 기나긴 강남대로를 옮겨냈다. 종로의 거리에서 오래된 나무 간판들의 먼지를 털어낸 뒤 직접 종이를 대고 탁본을 떠냈다. 만지고 두드리고 문지르는 사이에 작가의 신체가 풍경에 묻었다. 반복하는 손과 발의 움직임, 그리고 땀방울이 거기 남았다.
발걸음을 옮기는 사이로 풍경이 스민다. 걷는 일은 함께 접혔다 다시 펼쳐지는 일이다. 데칼코마니처럼 양쪽이 섞인 이미지가 새로이 탄생한다. 리베카 솔닛은 『걷기의 인문학』에서 걷기를 바느질에 비유했다. 길을 걷는 행위를 통해서 우리가 서로 다르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마주치며 통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걸음 한 걸음은 한땀 한땀 꿰매는 행위다. 걸음이 반복되는 사이에 우리는 마주치고 멀어지고 접었다 펼쳐지며 새로운 장면을 만든다. 하나의 마주침이 일어난 자리는 더 이상 이전의 자리가 아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을 지나 갤러리로 향하는 마지막 모퉁이를 돌며, 이제 곧 보게 될 그림의 바로 앞 장면을 생각한다. 걷기라는 작은 반복이 우리를 멀리 데려가는 것처럼, 매일 반복하는 예술가의 작업은 신비로운 재능보다는 지난한 수행의 결과다. 바티칸 성당의 천장화를 그려낸 미켈란젤로를 우리는 천재라고 부르지만, 그는 수년간 고개를 뒤로 젖히고 중력을 거스르며 그림을 그린 탓에 목디스크와 시력 저하 등 각종 질환에 고통받았다. 그도 신이 아닌 인간이기 때문일 테다. 성실하게 매일의 무게를 이겨내는 노동, 현실의 삶을 지키는 중력. 여기에도 당신과 같은 삶이 있다.
마침내 그림 앞에 도착했다. 커다란 벽면을 가득 채운 우주 앞에서 그것을 통과한 작가의 시간을 상상한다. 발자국을 땅 위에 새기듯, 자를 누르고 선을 그으며 중력을 새긴다. 캔버스의 표면과 색연필이 마주칠 때마다 마찰하는 열기 사이로 한 사람의 경험과 생각이 스민다. 미세하게 손이 떨린다. 잠시 호흡을 참아낸다. 곡자의 흐름을 타고 색연필 부스러기가 떨어진다. 선이 쌓이는 만큼 이미지는 팽창한다. 일렁이는 곡선 사이로 힘이 피어오른다.
매끈하게 완성된 이미지는 우리를 먼 우주로 데려간다. 그게 예술의 역할이다. 그러나 나는 자꾸 다른 곳에서 눈이 멈춘다. 선이 쌓인 만큼 팽창한 이미지 뒤에는 나이테처럼 새겨진 작가의 시간이 있다. 과정을 알면 자꾸 작품 뒤의 사람이 보인다. 재능을 날개 삼아 가뿐히 날아오르는 게 아니라, 가진 재능을 책임지며 사느라 고단하고 외로운 작업을 반복하는 그림자들이. 이미지는 환영일지라도 예술은 환상이 아니다. 현실에 단단하게 발을 딛고 선 누군가가 성실히 일한 결과다.
나는 여전히 힘들 때마다 걷는다. 걸음마다 바닥을 굳게 딛으며 발바닥에 실리는 무게, 중력을 이기고 다시 지면을 밀어내는 힘을 느낀다. 마치 그런 걸음처럼, 화면을 눌러내며 그은 선, 숨을 참고 반복하는 붓질, 종이 위를 수천 번 두드리고 문지르는 손길이 있다. 중력을 이겨내는 작은 반복들이 쌓여 우리를 아주 멀리 데려간다. 드러나지 않는 진실을 눈앞으로 끌어당긴다. 훌쩍 먼 곳에 도착하고 나면 또 다른 반복에도 용기가 생긴다.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동시에 다시금 우리를 살게 하는 그 자리에, 당신의 중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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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비평가. 예술과 도시, 사람의 마음을 관찰하며 목격한 아름다운 장면의 다음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쓴다. 현대미술과 도시문화에 관한 글을 다수 매체에 기고하며, 대학과 기관, 문화 공간 등에서 글쓰기와 현대미술 강의를 한다. 비평지 <크리티크 M>의 편집위원이며, 예술 감상 워크샵, 라디오 방송 등 예술과 사람을 잇는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쓴 책으로 『당신을 보면 이해받는 기분이 들어요』(2023), 『필연으로 향하는 우연』(2023), 『반짝이는 어떤 것』(2022), 『보통의 감상』(2020), 『마리나의 눈』(2020)이 있다.
<리베카 솔닛> 저/<김정아> 역17,550원(10% + 5%)
다양한 인간의 역사를 통해 '걷기'라는 가장 보편적인 행위의 가능성을 그려본다. 걷기와 생각하기, 걷기와 문화 사이의 관계와 연결 고리를 찾아내며, 속도 위주로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걷을 수 있는 공간의 필요성을 강조한다.1부에서는 걷기를 사유의 방법으로 택한 철학자들과 걷기를 통해 영감을 얻은 작가들의 삶..